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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실 여성가족부 전 차관은 여성 행정고시 합격자 4호로 한때는 현역 최고참 여성 공무원이었다. 2001년 '여성부'라는 이름으로 부처가 출범한 이래 첫 여성 차관이기도 하며, 두 번째 내부 승진이어서 더 의미가 컸다.

직장 여성들은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어 한다. 하지만 퇴임과 동시에 이 차관은 가정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엄마 역할만 하기에는 한쪽이 허전했다.

그래서 틈틈이 써둔 원고들을 모아 지난 1월에는 워킹맘의 애환을 그린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카모마일 북스)를 발간하였다. 엄마로서의 모성애, 여자로서 직장에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을 진솔하게 고백하여 많은 워킹맘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발간된 지 두 달 만에 벌써 4쇄를 찍었다.

여가부 이복실 전 차관의 에세이
▲ 여자의 자리 엄마의 자리 여가부 이복실 전 차관의 에세이
ⓒ 하도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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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 정든 공직을 떠난 지 9개월이 흐른 지금 그녀를 만나보았다. 지난 3월부터는 숙명여대 초빙교수로 결혼과 가족, 가족정책 평가론을 가르치고 있다. 월화수 주 3회 2시간씩 가르치는 수업이지만,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 가운데 작년 9월부터는 프리미엄조선일보에 '이복실의 가족이야기'를 지난 3월부터는 조선일보의 '일사일언'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다. 사랑의 판결기준, 성매매와 간통죄의 차이에 관해서 쓰고 있다. 그녀의 글들은 의미와 재미를 갖춘 글로 평가받고 있다. 수십 편에 달하는 글을 보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글 쓰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감추고, 참고 살았는지 궁금해 한다.

지난 2월 헌법재판소가 간통죄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62년만의 일이다. 성매매특별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법도 위헌이 아닐까 기대를 하고 있다. 간통죄나 성매매가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측면에서 같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묻는다.

"간통죄와 성매매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로맨티스트인 학생이 얼른 손을 든다. "사랑에 차이가 있습니다. 간통죄는 사랑으로 시작이 되지만 성매매는 사랑 없이도 할 수 있습니다." 낭만적이다. 경영학과 학생이 이어서 답한다. "돈이 거래된다는 점에 차이가 있어요.성매매는 간통과 달리 돈으로 성을 거래합니다." 맞는 말이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한 학생이 조용히 손을 든다. "성매매는 모르는 사람과 하는 점이 달라요." 옆에서 심리학 전공 학생이 답을 한다. 집단이냐 개인이냐의 차이가 있습니다. 간통은 개인끼리지만, 성매매는 단체로 많이 하고 있어요." 심리학과 학생다운 지적이다. 성매매의 경로가 개인보다는 모임에서 단체로 많이 시작된다는 실태조사가 이를 증명한다. 술도 취했겠다, 옆에서 부추기는 사람도 있으니 힘과 용기가 솟을 것이다.

15세 여중생과 40대 유부남이 만났다. 아기까지 낳았다. 어린 여학생은 성폭력이라 하는데 대법원은 사랑이라 한다.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에 한 여성단체가 이러한 대법원 판결을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했다. 사랑의 모습이 다양할 텐데 이렇게 판결한 사랑의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앞으로 법의 잣대에 사랑의 기준이 만들어 진다면 스텐버그가 주장하는 완전한 사랑만 인정할 것인가? 사랑하지는 않는데 좋아하기만 한다면? 그럼 삐뚤어진 사랑은? 셀 수없이 다양한 모습을 칼로 물 베듯이 정할 수 있을까? 사랑의 기준을 만들기 어렵다고 설마 모든 사랑을 다 사랑이라고 보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최소한 '사랑'이라면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엘리자베스 슈의 슬프고 애절한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노트북>의 노아의 헌신적인 사랑까지는 포함되기를 기대해보고 싶은 것은 과도한 요구일까?  대법원의 사랑의 기준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책에서 '엄마 회사 안가면 안 돼' 하고 울던 딸이 어느새 커서 OECD 정규직시험에 합격했다. 8월부터 파리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딸이 OECD 합격통지서를 받던 날, 30년 전 자신이 행정고시 합격했을 때만큼 감격스러웠다고 이 차관은 "딸아, 엄마는 해 준 것도 없는데 잘 커주어서 고맙구나"라며 소감을 전한다. 현모양처라는 말은 정말 구시대의 산물일까? 여성가족부를 생각하면 '페미니스트'만 떠올리는 현실에서 이 차관의 행복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슈퍼우먼'인 그녀가 이뤄낸 것은 단지 외형적인 타이틀에 있지 않다. 만나는 사람을 항상 배려하고 그런 마음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글속에 담아내는 글쟁이의 실력에도 있지 않다.이 모든 것은 그녀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항상 '교훈'으로 여기며 자신을 비우고 '배우려고' 했던 겸손함과 열정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항상 너그러운 누님 같은 모습을 하는 그녀에게서 '여성'과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태그:#엄마의 자리, #여자의 자리, #이복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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