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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시 수업을 마치고 쉬는 시간이었다. 영어 선생님이 희수(여)와 찬규(남)를 교무실로 '끌고' 왔다. 죄명은 풍기문란. '풍속의 질서가 바로 서 있지 않고 어지럽다'는 게 풍기문란의 뜻이니 희수와 찬규가 학교 풍속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거다. 사연을 들어보니 좀 놀랄 만했다. '풍속의 질서'가 세상의 흐름이나 속도를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폭삭 주저앉아 있는 대한민국의 학교 문화에서 이들의 행동은 불쑥 솟아오른 혁명적 발상이었다.

희수와 찬규는 사귄 지 두어 달 남짓했다. 서로 같은 반이었다. 둘이는 죽고 못 살아 안달이 나는 사이였다. 쉬는 시간에 함께 붙어서 속삭이는 것은 당연했다. 수업 시간에는 친구들에게 부탁해 자리를 바꾸어 짝꿍이 되어 앉았다. 담임선생님 시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태연한 모습을 보이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봄날 3교시 영어 수업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수업을 진행하던 영어 선생님은 교실 뒤편에서 나는 수상한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어 무심히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의 눈빛과 분위기가 평소와 달랐다. 얼마 후 바로 그 수상한 소리가 다시 들렸다. 이번에는 선명했다.

'쪽~ 쪽!'

책상 두 개를 붙여 짝을 짓고, 중간 중간 통로를 만들어 여섯 줄이 나란히 앉아있는데 가운데 맨 끝자리에 같이 앉아있던 희수와 찬규가 함께 내는 소리였다. 책상에 낮게 엎드려서 교과서를 세워놓고 열심히 문제를 푸는 척 모양을 만들어 놓고 둘이서 살짝쿵 입맞춤을 하고 있었던 거다. 아주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교실을 흔들어 놓기에는 충분한 음향 효과. 영어로 소리를  냈더라면 혹시 안 들켰을까. 어설프고 서툰 입맞춤이 빚은 대형 참사였다.

그 기막힌 광경을 마치 정지 화면인 듯한 착각 속에 직접 확인한, 교육 경력 30년을 넘긴, 나이가 예순에 가까운 영어 선생님은 고만 입이 딱 벌어졌다. 평소에도 불같은 성격이었기에 어찌된 사정인지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마침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자마자 영어 선생님은 찬규와 희수 둘을 교무실로 끌고 왔다.

공학인 학교에서 중딩들이 서로 사귀면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일은 사실 흔하고 흔하다. 어제의 연인이 오늘은 타인이 되고, 어제 친구의 연인이 오늘 나의 애인이 되기도 한다.
▲ 여친의 뽀뽀 자국을 자랑하는 중학생 공학인 학교에서 중딩들이 서로 사귀면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일은 사실 흔하고 흔하다. 어제의 연인이 오늘은 타인이 되고, 어제 친구의 연인이 오늘 나의 애인이 되기도 한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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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꼰대리즘은 그만

교무실에 끌려온 찬규와 희수는 아무 말도 못하고 서 있고, 영어 선생님은 참았던 화를 터뜨렸다.

"너희들 수업 시간에 그게 뭐하는 짓이야! 여긴 학교야 학교!. 학교가 너희들 연애하는 곳인 줄 알아?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도대체 수업 시간에 무슨 짓이냐고? 응?"

영어 선생님은 씨근벌떡 거친 숨을 몰아가며 찬규와 희수에게 한바탕 퍼부었다. 그걸 한동안 지켜보던 담임선생님이 자신이 찬규와 희수를 데리고 이야기를 해 보겠다며 영어 선생님을 만류하고 나섰다. 그러지 않았다면 영어 선생님은 계속 화를 내다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녀 공학인 학교에서 중딩들이 서로 사귀면서 애정행각을 벌이는 일은 사실 흔하고 흔하다. 어제의 연인이 오늘은 타인이 되고, 어제 친구의 연인이 오늘 나의 애인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두 찬규와 희수처럼 그렇게 대놓고 수업시간에 일을 벌이는 건 아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서로 손을 잡고 다닌다거나, 남학생이 여학생의 보호자 혹은 흑기사 노릇을 하며 챙겨 주거나 호위하는 정도. 온갖 선물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애정을 과시하는 정도. 좀 더 보태면 아무도 몰래 둘이 껴안거나 입맞춤을 하는 정도가 중딩이 하는 애정 표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중고교의 교칙이나 학교생활규정에는 "남녀 학생이 교내에서 만날 때에는 개방된 장소를 이용해야 한다"라는 조항이 들어 있다. 10대들(의 사랑)을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어른들의 삐딱한 상상이 만들어놓은 '유령 그물'인 셈이다. 사랑을 어떻게 만들고 가꾸어야 하는지를 알려주거나 가르치는 대신 금지와 감시만 촘촘하다. 이미 인생의 봄을 만나 지극히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데 말이다.

예외적인 경우이긴 하나 선을 넘어서는 일도 그들 사이에서는 드물게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 2015년 2월 대한간호학회지에 수록한 '중학생 성관계 경험 영향 요인'이라는 논문에 따르면, 전국 400개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 3만7297명의 응답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성경험이 있는 중학생은 725명으로 1.9%였다. 이 중 남학생은 2.5%, 여학생은 1.6%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중딩들의 사랑을 두고 케케묵은 '풍기문란'의 범죄 혐의만 씌워 화내고 욕하면서 처벌부터 하려는 건 시대착오적 사고, '꼰대리즘'의 발로라고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어른들의 눈앞에서만 하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금지하고 감시하며 벌주기 전에 아름답게 사랑하고 흉터없이 이별하는 법을 제대로 가르치는 게 학교와 어른들의 일이었으면 한다. 사랑은 삼라만상 모두의 일인데, 그 가운데 가장 귀하다는 사람, 중딩도 바로 그 '사람'이므로.

그건 그렇고! 담임선생님께 불려간 희수와 찬규는 천만다행으로 징계를 피할 수 있었다. 여차 했으면 '교내봉사'나 '사회봉사' 정도의 징계를 받을 일이었다. 둘 사이를 알고 있었던 담임선생님께서 주의를 주고, 찬규와 희수가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것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집에도 따로 연락하지 않는 걸로 정리했다. 그러나 그 후로도 한동안 몇몇 꼰대정신이 투철한 선생님들은 이름 대신 '수업 시간에 뽀뽀한 놈들'이라는 애칭(?)으로 둘을 불러대는 통에 찬규와 희수는 얼굴을 붉혀야 했다.

○ 편집ㅣ박순옥 기자



태그:#중학생, #중2병, #학교생활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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