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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배 진열대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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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어느 햇살 고운 점심시간, 남녀 한 무리 7명의 학생들이 교무실에 불려왔다. 학교 앞 공원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이들을 학교에 신고했기 때문이다. 행인은 공원을 지나가다가 중딩들이 할아버지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것을 봤다면서 학교에 항의 겸 신고 전화를 한 것이었다. 녀석들은 즉각 출동한 담임교사에게 현행범으로 잡혀 교무실로 끌려왔다. 전대미문의 '할아버지 담배셔틀 사건'은 이렇게 실체를 드러내게 되었다.

조사 결과 드러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녀석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 무단으로 학교 밖으로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고는 학교 앞 공원에 모여서 이른바 '식후땡('밥을 먹고 난 후 피우는 담배'를 의미하는 은어)'으로 담배를 피워 물었다. 평소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지만 점심시간이라 공원은 한가한 편이었다.

이들이 뭉게뭉게 연기를 뿜어내며 식후땡의 즐거움과 여유로움을 만끽할 즈음, 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내가 너희들에게 담배를 사다줄 테니 대신 나한테 천 원만 다오."

담배를 피우는 자신들을 꾸중할 것이라 생각했던 할아버지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중딩이라 담배를 사기 어려운 자신들을 대신해 담배를 사다 주는 대가로 수고비를 달라는 것. 녀석들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토록 친절하고 고마운 할아버지가 세상에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 돈으로 담배 3갑만 사 주세요."

녀석들은 주저할 것 없이 당장 돈을 모아 할아버지에게 건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담배를 파는 공원 앞 편의점까지 두 명이 따라 붙었다. 약속대로 할아버지는 담배를 사 주었다. 녀석들도 수고비 약속을 지켰다. 세대를 초월한 신성하고 거룩한 거래가 그렇게 끝나나 싶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을 행인이 보고 학교에 신고를 해 버렸다. 사정을 모르는 행인으로서는 학생들이 연세 드신 할아버지를 위협해 담배 심부름을 시켰다고 생각한 것이다.

녀석들의 담배 심부름을 자청한 할아버지는 이 일이 있기 전에도 가끔씩 나타나 같은 제안을 하곤 했다고 한다. 그가 근처 전철역이나 공원에서 노숙하는 모습을 본 학생들도 있었다.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는 '담배셔틀 맨'이라는 별명으로 제법 유명한 할아버지였다. 노숙 등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그는 그렇게 마련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녀석들은 그런 할아버지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을 채웠던 것이고. 이 부적절한 공생관계 앞에서 녀석들만 나무라기에는 너무 씁쓸하고 헛헛했다.

할아버지 담배셔틀 사건의 주인공들은 결국 '사회봉사' 징계를 받았다. 5일간의 사회봉사를 다녀온 이후 이들이 대오각성하여 담배를 끊었거나 줄였다고 믿는 독자는 아무도 없으리라. 점심 식후땡의 즐거움은 잠시 사라졌지만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녀석들의 담배 연기는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암호문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청소년 금연에 대한 불만을 선언문으로 썼다.
▲ 중학생이 쓴 흡연선언문 청소년 금연에 대한 불만을 선언문으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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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 현동, 담배와 '사랑과 전쟁' 치르는 중

"저, 담배 끊은 지 2주일 됐어요. 170cm 되면 그때 다시 피울 거예요. '야동'도 (키 크는 데) 안 좋대서 줄이려고요."

중2인 현동이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드문드문 불규칙적으로 피워 물던 담배를 안 피우기로 결심했다. 중2가 되면서 시작한 흡연은 많아야 하루 10개비를 넘지 않았는데 그걸 아예 중단한 것이다. 알고 보니 현동이가 이처럼 큰 결심을 하게 된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바로 '키' 때문이었다.

사방팔방 어디를 돌아봐도 길고 늘씬한 몸매를 지닌 친구들이 수북한 세상인데 현동이는 그에 비하면 좀 많이 작다.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도 하얘서 앳돼 보이기까지 한다. 버스를 타거나 하면 초등학생으로 오해받는 일도 종종 생기곤 한다. 현동이는 그런 현실이 몹시 짜증이 났다.

그러다 어디서 들었는지 담배를 피우면 키가 안 큰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난 후부터 현동이는 담배를 끊기로 결심을 했다. 덩달아 가끔씩 휴대폰으로 감상하던 '야동'도 자제하기로 했다. 그 역시 키가 크는 데 방해가 된다는 정보를 들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키만 클 수 있다면, 크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중학생이니까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꾸준히 커 주기만 한다면 담배는 그 다음에 피워도 된다고 생각했다. 영원히 담배를 끊을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굽높이 신발이나 깔창의 도움을 받지 않고 170cm가 될 때까지는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하얀 웃음을 지으며 살짝 다가와 귓속말을 들려주고 가는 녀석의 얼굴에서는 결연한 의지와 함께 자신의 각오에 지지를 보내달라는 메시지가 어른거렸다. 현동이가 170cm가 되려면 아직 15cm 이상 더 커야 하는데 ….

하지만 170cm가 될 때까지 담배를 끊고 야동마저 줄이겠다던 현동이의 계획은 안타깝게도 불과 한 달을 못 넘기고 담뱃재처럼 꺼져 버렸다. 발버둥 쳐봐야 제 키가 더 안 클 거라는 신의 목소리라도 들었는지, 엄마와 아빠의 키를 아무리 더하고 곱해 봐도 170cm는 어림없다고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다시 담배를 시작하고 만 것이다. 담배의 치명적 매력에 푹 빠진 현동이는 지금도 금연과 흡연 사이를 오가며 담배와 한바탕 사랑과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는 교육, 담배를 피우면서 매운 연기와 시커먼 재, 뜨거운 불똥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흡연 예절 같은 것 정도라도 온전히 가르치면 어떨까.
▲ 학교 화장실 문에 붙인 금연 포스터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도록 하는 교육, 담배를 피우면서 매운 연기와 시커먼 재, 뜨거운 불똥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흡연 예절 같은 것 정도라도 온전히 가르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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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딩들의 '흡연 잔혹사'

사실 중딩들의 흡연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예전에도 그랬다. 최근에는 여중생의 흡연이 큰 비중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실제 학교에서도 보면 담배를 피우는 여학생들이 많아졌다. 손에 담배 냄새를 배게 하지 않으려고 나무젓가락으로 담배를 집어서 피우던 것도 이제는 아주 옛날이야기이다. 일부 여학생들은 화장과 향수로 담배 냄새를 위장하려 애쓰지만 사냥개보다 후각이 예민한 교사들에게 들통 나기 일쑤다.

진작부터 흡연이 중딩만의 일은 아니었다. 18세기 조선의 사대부였던 '이옥'은 담배 백과사전이라고 불러도 좋을 <연경(烟經)>이라는 책을 남겼다. 이 기록을 살펴보면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조 대왕과 다산 정약용은 담배를 정말 사랑한 애연가이자 골초였다고 한다. 남녀노소 안 가리고 골고루 담뱃대에 부싯돌을 그어대던 시절도 있었다. 담배를 태우기 적절한 때와 흡연을 금하는 때를 구분하여 일목요연하게 일러주기도 하는데 이는 오늘날 금지 만능의 금연교육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탁월한 가르침이다.

1653년 조선에 표류했던 하멜이 쓴 <하멜표류기>에서는 "이 나라에서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여자들은 물론 네댓 살 아이도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조선의 풍속을 기록했다. 이런 기록들을 보면 조선은 '담배의 나라'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최근에는 국민들의 건강을 염려(?)해서 정부에서 담뱃값을 훌쩍 올려도 그러거나 말거나 금연 결심은 작심삼일로 마무리 짓고 비싼 담배를 다시 피워 물어 나라 살림에 보태는 어른들이 얼마나 많은가. 학교 안에서 금연할 것을 법률로 정하고 있지만 아랑곳 않고 태연하게 담배를 피워 무는 교사들은 또 어떻고.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에게만 경고와 징계를 앞세우고 학교 밖으로 퇴학시키기를 즐긴다. 형식적인 금연침 시술 등의 몇몇 프로그램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안 한다. 무조건 담배는 피우면 안 된다. 만약 피우다 걸리면 징계 아니면 퇴학, 이게 철통같은 학교의 법이다.

지난 3월 대전의 한 여고에서 흡연으로 꾸중을 받은 학생 2명이 부모를 불러오라는 학교 측의 위협이 두려워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이 역시 징계 만능의 학교 금연 교육이 빚은 참사다. 흡연을 이유로 수십 명의 학생을 퇴학시킨 학교들도 있다. 담배를 피운다는 이유로 문제아로 낙인 찍히고, 흡연은 학교에서 골치 아픈 '문제아'를 솎아내는 가장 쉽고 편한 징계의 근거가 된다.

학교들의 이러한 비겁한 행동은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하거나 교육적인 방안을 모색하는 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외부에서 바라보는 학교의 이미지, 주변의 평판 같은 이른바 '학교 질관리'에 학교들이 관심과 신경을 훨씬 더 많이 쏟는 데 그 원인이 있다.

학교도 알고 있다. 징계를 앞세운 금연 위협이나 양심에 반하는 강요된 금연서약서만으로 학생들이 절대로 담배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학교는 그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줄을 모른다. 그렇다고 그냥 둘 수도 없다. 학교 밖에서야 어쩔 수 없더라도 제발 학교에서만이라도 학생들이 담배를 피워 물지 않기를 바랄뿐. 내용 없고 하는 것 없는 학교금연교육의 실체가 바로 이것이다.

학생들이 온갖 위협과 징계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담배를 피운다면, 무조건 징계와 퇴학으로 다스리는 일은 학교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만 열아홉 살만 넘으면 아무 문제가 안 되는 일이 아직 그 나이에 이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낙인과 징계의 구실이 되어 학교에서 쫓겨나는 데까지 이르는 건 너무 아픈 현실이다.

그보다는 학생들이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며 금연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주고 기다려 줄 수 있는 교육, 이미 18세기 300여년 전에 '이옥'이 그랬던 것처럼 최소한의 흡연 예절이라도 올바르게 가르쳐서 담배를 피우더라도 매운 연기와 시커먼 재, 뜨거운 불똥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는 건 어떨까.

흡연권도 제 권리라며 남들이야 불편해 하든 말든 저 혼자 매운 연기를 뿜으며 거리를 활보하는 무뢰한을 만들기보다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제 삶을 누리도록 하는 게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치는 일일 테니 말이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옥 지음-안대회 옮김, <연경, 담배의 모든 것>, 휴머니스트, 2008.



태그:#중학생, #중2병, #인권, #사회봉사, #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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