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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이삿날...우리의 대안은?

우리의 23점으로는 갈 곳이 없다
▲ 너무도 어려운 장기전세주택 분양 우리의 23점으로는 갈 곳이 없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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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기사에도 썼듯이 우리 부부의 장기전세주택 분양은 실패로 끝났다(관련기사: 생각없이 깬 주택청약... 이런 후폭풍 있을 줄이야). 그냥 실패가 아니라, 처절한 수준의 현실 인식이 이어진 대참사였다. 겨우 23점을 가지고는 어떤 장기전세주택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깨달음. 높은 전셋값에 다자녀 특혜까지 있었기에 우리가 지원만 하면 되리라 예상했던 목동 푸르지오도 그 커트라인이 무려 26점이나 되었다.

시프트가 게시한 커트라인을 보고 있자니 장기전세주택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운이 좋아야 하는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같은 지역의 같은 단지라도 그 동의 빈집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커트라인이 달라지는데 신청자의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확률을 따져 빈집이 많은 곳을 신청해야 할지, 아님 빈집이 없어 역으로 사람들이 몰리지 않을 것 같은 곳에 신청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나마 분명한 건 오직 하나, 우리의 23점은 장기전세주택을 구하는데 명함도 못 내민다는 사실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 재건축의 미래 얼마 남지 않았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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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렇다고 우리에게 장기전세주택 분양의 기회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2월의 공고가 어차피 신규 물량이 아닌 빈집 위주였으니, 올해 6월이나 9월에 있을 신규 물량의 경우에는 23점이 꽤 높은 점수가 될 수도 있었다. 물론 이번처럼 빈집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이 시나리오의 함정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에서 아이가 셋이니 그래도 장기전세주택이 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그러나 우리에게는 더 큰 문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입주 시기였다. 장기전세주택의 가장 빠른 공고가 6월인데 아무리 빨리 계약을 하고 입주를 한다고 하더라도(물론 김칫국이다!) 우리의 현재 전세 계약 만료일인 7월을 훌쩍 넘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결론인즉슨 장기전세주택 분양은 분양대로 넣되 7월 안에 옮길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제일 처음 전세난을 걱정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다. 다시 전세난의 정점에 서 있는 강동구에서 전세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결국 돌고 돌아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우리 부부의 집구하기 프로젝트. 우리는 과연 다시 처음처럼 강동 전체를 대상으로 발품을 팔아야만 하는 것일까?

이때, 아내가 갑자기 그동안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사실을 지적했다. 재건축은 결코 한꺼번에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렇다. 아내는 내게 재건축이 예정되어 있는 고덕주공 아파트나 둔촌주공 아파트에 들어가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주공 아파트로 이사할까

누구에게는 경축, 누구에게는 비극
▲ 재건축 이주안내 누구에게는 경축, 누구에게는 비극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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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주공 2단지의 마지막 봄
▲ 벚꽃은 이렇게 만개했는데 고덕주공 2단지의 마지막 봄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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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 예정인 주공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자는 아내의 의견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사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금이나 시기의 문제로 볼 때 주공 아파트로의 이사는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기도 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앞으로 1년 남짓, 그 이후에는 우리가 굳이 강동구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또한 앞으로 우리가 열심히 장기전세주택에 신청을 해서 분양을 받게 된다면 전세 기간이 채 2년이 되지 않는 재건축 예정 주공 아파트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했다. 주공 아파트는 재건축 계획 때문에 강동구의 미친 전세난에도 불구하고 그 가격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아내의 의견에 찬성했고, 그 뒤로 아내는 열심히 재건축 예정인 주공 아파트들의 정보를 수집했다. 대부분 아파트들이 재건축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지에 따라서 그 일정이 들쑥날쑥이었던 바, 우리는 주공 아파트들 중 아직 재건축하기에는 시간이 남아 있어 보이는 단지만을 돌아다녔다. 어쨌든 모든 아파트들을 한꺼번에 재건축 할 수 없으니 2년은 버티지 않겠느냐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파트는 낡아가고, 나무는 무성해 간다
▲ 대비 시간이 갈수록 아파트는 낡아가고, 나무는 무성해 간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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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어느 날, 아내는 주공 아파트에 위치한 부동산에서 연락이 왔다며 집을 같이 보러 가자고 했고, 나는 흔쾌히 점심시간을 이용해 사무실을 나왔다.

그렇게 찾아간 고덕주공아파트 5단지. 옆의 4단지는 재건축에 들어가 이미 펜스를 친 뒤 건물을 부수고 있었으며, 3단지는 언제 재건축이 들어갈지도 모르는 만큼 단지가 정비가 안 되어 어수선해 보였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쨌든 돈이 필요한데 재건축을 조금이라도 앞당기기 위해선 그런 돈이 투입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5단지는 3단지나 4단지보다 그 상태가 양호해 보였다. 비록 재건축을 위한 조합이 최근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5단지는 30평 이상의 주택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아직 적지 않은 사람들이 주거하고 싶어 하는 공간이었던 바, 훨씬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아파트가 오래 되어서 가구에 따라 복불복으로 수도꼭지에서 가끔 녹물이 나온다지만, 그것 빼고는 주거환경이 과히 나쁘지 않다며 주위 사람들도 추천한 단지였다.

이제 사라질 마을의 일상.
▲ 고덕주공 2단지의 빨래 이제 사라질 마을의 일상.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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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도착한 부동산 중개인과 그를 따라 전세 나온 집으로 들어간 우리 가족. 옆에서 중개인은 끊임없이 그 집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고 있었다.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어도 이 정도면 괜찮은 집이다,', '지금 이 신발장이나 싱크대가 구식 같아 보이지만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최신식이었다.', '전 세입자가 이 집에서 아이들을 다 잘 키우고 나갔다' 등등.

할 말이 없었다. 집을 보고 나와 중개인과 헤어지자 아내는 이 집이 예전에 자기가 혼자 봤던 고덕주공 아파트보다 양호하다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지만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집이 오래되고 낡은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그보다 베란다 한 구석에 깨어진 창문이 내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때 겪었던 재건축의 기억.

재건축에 대한 기억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봄을 알려줬을 목련이 그렇게 잘려나갔다
▲ 이사 때문에 꺾인 목련 오랜 시간 동안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봄을 알려줬을 목련이 그렇게 잘려나갔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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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쯤으로 기억한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나는 고약한 버릇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하교하는 길에 당시 재건축 예정지였던 화곡 아파트(현대 화곡대림 아파트 자리)에 꼭 들르는 일이었다.

내가 집에 가기 전 화곡 아파트에 들른 이유는 단 하나, 돌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당시 그곳은 새 아파트를 짓기 위해 구 화곡 아파트에 살던 주민들이 이주를 거의 마쳤을 무렵이었는데, 난 매일 그곳에 들러 주인이 없는 집에다 돌을 던져 창문을 깼다. 무엇보다 그때 열심히 보기 시작한 프로야구의 투수 흉내를 내기 위함이었지만, 돌을 던져 유리창이 깨질 때 느끼는 쾌감 역시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역시 빨간 락카로 X표 되어 있는 창문에 열심히 돌을 던지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멀리서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보시다시피 빈집에 돌을 던지고 있다고 말대꾸를 하자 아주머니는 아직도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게 할 짓이냐며 비명 아닌 비명을 지르셨고, 난 움찔해서 도망가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기에 왜 이사를 안 갔냐고.

이 일이 있은 이후 난 어른들께 재건축에 대해 물어봤고, 재건축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사람들한테는 참으로 비인간적이고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던졌던 돌과 외침이 그들에게는 아픈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을. 과연 재건축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아이들의 고향 만들기

재건축에 대한 약 25년 전의 기억.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 보니 아무리 짧은 기간이라 할지라도 재건축 예정인 주공 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가는 것이 꺼려졌다. 집이 오래되고 낡은 것은 감수할 수 있었지만, 살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빠져가는 동네에서 새로 둥지를 튼다는 것이, 그리고 곧 사라지게 될 공간에서 아이들과의 추억을 쌓는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가 혹시 25년 전의 나처럼 돌을 던지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면?

사실 이번 이사는 첫째 까꿍이에게 매우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었다. 녀석 나이 어느새 일곱 살. 이제는 지금의 일을 아주 오랜 시간 후 기억해도 이상할 것 없는 나이다.

오래된만큼 익숙해진 공간
▲ 아이들의 쉼터 오래된만큼 익숙해진 공간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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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사라질 아이들의 고향
 이제 곧 사라질 아이들의 고향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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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런 녀석에게 자신이 사는 공간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 내가 그랬듯이 녀석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고, 그것을 기본으로 공간에 대한 인지능력을 키울 것이다. 단순히 자신이 다니던 유치원을 졸업하느냐, 학교를 전학가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 바탕이 되는 우리 집이 부서진다? 그뿐만이 아니라 주공 아파트 단지 전체가 재건축되면 자신의 마을 전체가 사라지는 것인데 그것이 아이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나의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고향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 오랜 시간 이사도 가지 않고 화곡동에서 쭉 사셨는데, 정작 그 혜택을 본 나는 자식들의 추억은 생각하지 않고 당장의 편의 때문에 재건축 예정 아파트를 들어가려 하고 있으니 원.

결국 난 아내에게 싫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고, 다시 원점에서 고민하기로 했다. 물론 언제 재건축이 될지 알 수 없는 둔촌주공 아파트도 현실적인 고려 대상의 하나였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찜찜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과연 우리는 강동구에서 집을 구할 수 있을까?

○ 편집ㅣ이준호 기자



태그:#전세난, #재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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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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