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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2014년 4월 25일 오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간첩 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뒤 나오고 있다.
▲ 유우성 간첩혐의 '무죄' '탈북자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씨가 2014년 4월 25일 오전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간첩 혐의 무죄를 선고받은 뒤 나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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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사건의 증거를 조작했던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20일 항소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일부 국정원 직원들은 실형 또는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1심과 달리 벌금형을 선고받아 피해자 유우성씨의 변호인들은 "법원이 형식적 판단으로 사실상 봐주기를 했다"며 비판했다.

이날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김상준)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항소심 과정에서 법정 제출용 증거를 위조한 국정원 김보현(49·4급) 과장과 그를 도운 조선족 김원하(62)씨와 김명석(61)씨의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다. 또 그들의 죄질이 무겁다며 1심보다 형량을 늘려 김 과장에게는 징역 4년, 김원하씨에게는 징역 2년, 김명석씨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관련 기사 : '간첩 증거조작' 국정원 직원·협조자 6명 모두 유죄).

하지만 대공수사처 이재윤(55) 처장과 권세영(52·4급) 과장, 이인철(49) 주 중국 선양총영사관 영사는 공소사실 상당 부분을 무죄로 보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형이 나왔던 이재윤 처장은 벌금 1000만 원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던 권 과장과 이 영사는 벌금 700만 원에 처해졌다. 재판부는 권 과장과 이 영사의 경우 이례적으로 선고를 유예하기도 했다. 선고유예는 범행 동기 등을 감안해 형의 선고를 미루는 것으로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선고 기록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집행유예와 다르다.

재판부, 증거조작 직접 가담자들 책임 무겁게 판단

국정원 증거조작사건의 시작은 2013년 8월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월,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던 재북화교 출신 북한이탈주민 유우성씨가 간첩활동을 해왔다는 혐의로 구속됐다. 하지만 법원은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2013년 8월 유씨의 간첩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국정원 수사팀은 증거보강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김보현 과장과 권세영 과장, 이인철 영사는 유씨가 중국·북한을 오간 출입경기록과 관련 서류들을 위조,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조선족 김원하씨와 김명석씨는 증거조작을 도운 협조자들이었다. 1심(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재판장 김우수 부장판사)에서 인정한 '국정원 증거조작사건'의 개요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도 1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인철 영사가 작성한 확인서 등 일부 서류는 새로운 증거를 조작했다기보다는 진술서에 가깝다며 모해증거위조 및 행사죄 등을 무죄로 판단했다. 이재윤 처장과 권세영 과장도 증거조작 과정 등을 상세하게 알았다고 보기 어렵다며 1심과 달리 일부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증거를 직접 위조한 김보현 과장과 김원하·김명석씨 세 사람의 혐의를 가장 무겁게 봤다.

김상준 부장판사는 특히 김보현 과장이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끝까지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점을 질타했다. 그는 "피고인 김보현은 국정원 수사관으로서 더욱 엄격한 준법의식으로 수사 업무 등을 행해야 하는데도 다수의 증거를 위조했고, 동료들까지 범행에 끌어들였다"며 "죄질이 극히 불량한데도 재판과정에서 후회나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피해자인) 유가강(유우성)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한 바가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국정원의 잘못된 수사 관행도 지적했다. 이재윤 처장과 이인철 영사, 권세영 과장 등은 자신들이 관여한 허위공문서는 김보현 과장의 말만 믿고 추가로 사실관계 등을 확인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국정원의 오랜 관행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김상준 부장판사는 "피고인들의 변명은 오히려 그동안의 대공수사관행에 문제점이 많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반드시 시정돼야 할 잘못된 관행이므로 엄중한 책임을 묻는 길밖에는 다른 (시정)수단이 없다"고 말했다.

'엄중한 책임' 묻는다더니 벌금형?... "납득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국정원 지휘선상에 있던 이재윤 처장이나 권세영 과장, 이인철 영사 등 다른 국정원 직원들이 '벌금형' 처벌을 받자 유우성씨의 변호인들은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용민 변호사는 "국정원 조직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김보현 과장이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없는 구조인데 이재윤 처장이나 동료 과장이 공모하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형식적인 판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허위공문서 작성은 영사관에 대한 신뢰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엄청난 범죄"라며 "선고유예한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일반 국민이 사문서를 위조해도 집행유예가 나오는데, 더욱 엄하게 처벌받아야 하는 공무원의 범죄라는 점도 재판부가 감안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은 형사사건의 증거조작이나 과거 간첩조작 같은 범죄를 엄하게 처벌, 조작의 연쇄 고리를 단절시킬 중요한 기회였다"며 "(재판부가) 그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버린 것 아닌가 싶다"고 아쉬워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국정원 증거조작, #유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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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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