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5.23 14:36최종 업데이트 17.06.07 10:28
지난 1일, 제1기 '오마이뉴스 꿈틀 비행기'가 떴다. 행복 사회 덴마크를 돌아보며 행복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는 동력이 우리 안에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와 스태프를 포함한 32명의 참가자들은 인생 학교와 교육 단체, 덴마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룬트비의 흔적 등을 돌아봤다. 첫 번째 '꿈틀 비행기'에 탑승한 것은 행운이다. 그 행운의 단편을 나누고자 한다. - 기자 말

바우네 호이 에프터 스쿨 다양한 직업적인 체험을 통해서 인생을 설계하는 학교, 캠퍼스의 일부 ⓒ 김민수


덴마크의 다양한 애프터스쿨(인생학교)에 관해서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책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의 3장 '행복한 학교' 부분에 소개한 것을 읽었다. 꿈틀 비행기 일행이 이번에 방문한 바우네호이 애프터스쿨(Baunehøj Efterskole)에 관한 내용은 없지만, 다양한 인생학교 중에서 굳이 우리 말로 옮기자면 다양한 직업체험을 하는 '직업학교'라고 했다.

우리 사회에서 '직업학교'의 의미는 무엇인가? 학벌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를 지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서열을 지으려 한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설령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취업을 한다고 해도, 결국 미래를 위해서 혹은 진급을 위해서는 반드시 대학이나 대학원을 나와야 하는 현실이 존재하고 있다. 더군다나 '직업학교'는 대학에 진학할 능력이 없는 학생들이 가는 것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바우네 호이 에프터스쿨 학교 건물 벽면에 그룬트비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학부모의 재능기부로 그려진 그림이라고 한다. ⓒ 김민수


1980년대 초 내가 다닌 강남의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에 진학할 가능성이 없는 학생들을 '직업반'에 배치했고, 지원이 적어 직업반이 채워지지 않을 경우에는 전교 등수로 뒤에서부터 선두(?)인 학생들을 강제로 직업반에 편성했다. 그러므로 '직업반'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 대학도 갈 능력이 없는 실패자라는 인식이 있었다. 직업반에 속한 아이들는 주눅이 들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은근히 깔보는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덴마크에서 '직업학교'의 의미는 무엇일까? 울라이크 구스 이버슨(Ulric Goods Iversen) 학장의 이야기들 들으며 '직업학교'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울라이크 구스 이버슨 학장 권위적인 모습보다는 학생들과 친구처럼 보이는 학장의 모습, 교사들 역시도 그러했고, 다른 에프터스쿨이나 공립학교 조차도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덴마크에서는 학장이나 교장 등의 나이가 3-40대 젊은 편이 었다. ⓒ 김민수


"저희 학교에는 15~17세의 학생 100명이 재학 중에 있습니다. 이 시기는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시기이며, 삶의 전환기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희 학교는 종합적인 인생학교로 실습과목을 중요시 합니다. 저희의 기본적인 교육정책은 물론 그룬트비의 교육정신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버슨 학장의 이야기는 단지 인생을 설계하는 데 있어 생각만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실습을 통해서 자기의 적성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의미다. 자기가 가장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일, 그것을 찾는 학교인 셈이다.


그리고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서 전인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세워가는 것이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학교인 셈이다. 땀 흘려 작업하면서 노동의 의미를 알고, 창작의 기쁨을 누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인생학교인 것이다.

바우네 호이 에프터 스쿨 학교는 각종 직업훈련 시설과 농장, 기숙시설과 교육시설 등 다양하게 세분화되어 있었다. ⓒ 김민수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급자족' 능력을 갖추게 하는 학교

목공 작업실에는 학생들이 맨 처음에 만들게 된다는 다양한 '새집'에서부터, 제법 전문가의 솜씨가 물씬 풍기는 의자와 벤치, 목공예와는 다르지만 유리공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생들의 작품이 있었다. 그리고 목공예와 관련된 각종 기계들과 그 분야의 전문가인 교사가 있었다. 말도 키우고 취미로 승마를 하는 학생도 있으며, 당연히 학교 텃밭에 농사도 짓는다.

이 모든 일들엔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데 자율적으로 당번을 정해서 진행한다. 이런 일들만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학사행정에 관한 일에 학생들도 참여한다. 교사와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 학교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국가가 지원은 하지만, 학교운영과 교사채용과정 등은 완전히 자율적으로 학교에 일임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재정적인 지원 외에는 학교운영에 일절 간여하지 않는다. 

학생들은 애프터스쿨에서 한 가지 직업에 대한 것만 익히지 않는다. 다양한 일들을 최대한 경험한다. 덴마크에는 250여 개의 애프터스쿨이 있는데, 주제가 각기 다르다고 한다. 이곳처럼 직업교육을 통해서 자기의 인생을 설계하게 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앞서 소개한 것처럼 스포츠를 매개로 자기 인생을 설계하게 하는 학교도 있다.

공통점이 있다면 기숙형이라는 점이다. 부모들도 오랜만에 자녀들로부터 해방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고, 학생들도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또래들과 함께 생활하며 더불어 사는 세계를 직접 몸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바우네 호이 에프터스쿨 학생들 이 학생들이 방문한 일행들을 안내하며 인생학교를 설명해 주었다. 한결같이 자기 의사표현을 분명하게 밝힐 줄 알았다. ⓒ 김민수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를 찾는 일,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에 미래의 직업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참으로 유의미한 일이다. 더군다나 덴마크에는 직업에 관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덴마크 시민이라면, 어떤 일을 해도,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소득이 보장되어 있다. 이것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직업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준다.

여기서 '기본소득 보장'의 문제는 아주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기 싫은 일'을 그만 두면(사표를 냈다면), 기본소득 보장은 물론 인간의 품위를 유지할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국가적으로 실업급여 등이 지급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생활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고, 지급 기간도 짧다.

삶은 종합예술, 그것은 머리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비정규직이 넘쳐나는 현실이기에, 일하고 싶다거나 그 방면에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직업을 갖는 일은 쉽지 않다. 물론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예외겠지만, 일반적으로 '기본소득 보장'이 제대로 되지 않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오는 차이는 성인에게뿐 아니라 청소년기 등 모든 시기에 걸쳐서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어떤 직업을 가지는지에 따라 임금의 격차가 극심한 경우에, 임금을 많이 받는 직업을 갖기 위한 경쟁은 어려서부터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직업 간의 임금격차가 크지 않고 차별이 없다면,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면 되므로, 경쟁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들과는 다른 품성을 가지고 자라나게 될 것이다.

학장이 학교 소개를 마치자 학생들이 학교 전반에 대한 안내를 시작했다. 16살의 아이들이라고 하기에는 자기 의견을 너무 잘 이야기한다. 막힘이 없어서 속된 말로 '입만 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덴마크에서 만난 이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말을 엄청 잘한다. 이것은 실습과 글쓰기와 토론이 변행된 교육구조의 결과일 것이다.

음악실에서 학생들이 음악실을 소개하다가 즉석에서 방문객들을 위해 노래를 불러주었다. 매일 아침 전교생이 모여 노래로 시작한단다. ⓒ 김민수


학교를 소개해주던 학생들이 음악실에 도착하자 즉석에서 방문객들을 위해 노래 선물을 하겠단다.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들은 거의 매일 이곳에 모여서 노래도 하고 악기 연습도 한단다. 그리고 매일 아침 전교생이 모여 함께 노래를 부르며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룬트비의 교육이념을 실현하고자 하는 인생학교는 목사이며, 시인이자, 작곡가이자, 정치가인 다재다능한 그룬트비의 면면들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자 하는 것 같았다.

학교 견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남학생 기숙사에서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한바탕 추며 창문 너머로 손짓을 한다.

바우네 호이 에프터스쿨 학생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뒷편엔 덴마크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룬트비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다. 학부모의 재능기부로 그려진 그림이다. ⓒ 김민수


삶은 종합예술이다. 그것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온몸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인간이 독립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 그 독립적인 개체들이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서로를 특별한 인격으로 인정해주는 것, 그런 덩어리들이 하나의 국가라는 시스템으로 작용하면서 만들어낸 행복사회, 그것이 덴마크가 아닐까 싶어 내심 부러웠다.

그러나 비록 우리는 그들이 행복사회 1등(2012, 2013년)을 할 때, 56위(2012년)에 머물렀을지라도, 행복사회를 꿈꾸며 부지런히 꿈틀거리는 이들이 있다. 개인뿐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이런 시도들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덴마크는 마냥 부럽기만 한 사회가 아니라, 우리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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