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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 포스터
 영화 '귀향' 포스터
ⓒ 제이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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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목단강 부근에 진을 치고 있던 일본군이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후퇴를 하기 전 위안부 소녀들을 죽이려 한다. 온 몸을 부르르 떠는 소녀들이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비명소리를 지른다.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소녀도 있다. 이때 광복군이 나타나 일본군을 무찌르고 소녀들을 구출해낸다. 카메라의 앵글이 쉴 틈 없이 배우들의 표정을 잡아내고 있다.

지난 16일과 17일 경기도 연천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귀향'의 마지막 전투 장면 촬영이 있었다. 촬영은 일본군이 연합군과 싸우는 장면, 소녀들을 일렬로 세우고 총으로 쏴 죽이려는 장면, 연합군이 일본군을 향해 진격하며 싸우는 장면, 연합군과 일본군 사이의 백병전, 죽은 위안부 소녀의 시신들을 주인공인 정민이 바라보는 장면 등이었다.

오전 5시 30분부터 식사가 시작되고 촬영장 세팅, 배우들에 대한 분장, 촬영현장에서의 리허설, 촬영 등 바쁜 일정이 오후 7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배우들은 파김치가 되어 숙소로 들어왔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더운 날씨 탓에 오전부터 분장을 한 배우들의 얼굴에선 땀이 계속해서 흘러내렸다. 광복군 복장의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누빔옷을 입은 중공군 배우들도 일본군과의 백병전을 위해 땅바닥을 나뒹구는 연습을 했다. 무술 배우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보조출연 배우들을 지도했다.

일본군과 맞서는 광복군 역할은 10대의 배우지망생부터 40대의 연극배우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조정래 감독을 도와주기 위해 기능 재부를 하는 배우들이 대부분이었다. 10대의 배우지망생들은 광주에서 7시간이나 걸려 연천까지 왔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은 무술감독이 "당시 너희들의 누나나 친구가 일본군에게 당했다고 생각하고 촬영에 임해야 한다"고 하자 앳된 웃음마저 감추고 금방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공재민(연극배우) 서울연극협회 사무처장은 보조출연을 하기 위해 경기도 연천을 찾았다. 공씨는 "일본 아베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격하게 우경화가 되어가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을 숨기려 하고 있다"며 "이 영화가 널리 알려져 일본이 반성하고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제대로 사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보조출연을 결심하게 됐다"고 출연 계기를 밝혔다.

일본에서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제일교포 구아무개씨는 "영화에 일본군으로 출연하는 지인과 함께 세트장에 왔다가 광복군으로 출연하게 됐다"며 "이 영화를 계기로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시인하고 반성했으면 한다. 전쟁상황이라는 핑계로 더 이상 이런 아픔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연천 촬영장에서 광복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촬영했다.
 경기도 연천 촬영장에서 광복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촬영했다.
ⓒ 김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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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향>은 10대의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이다. 경기도 광주에 있는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강일출(87) 할머니의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을 본 조정래(42)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지 10년이 넘어서야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강일출 할머니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15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중국 목단강 근처에 끌려갔다. 모진 고초를 당하고 병에 걸리자 일본군이 자신을 불태워 죽이려 했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기억을 그린 그림이 <태워지는 처녀들>이다.

귀향은 지난달 15일 포천의 대진대학교에 마련된 일본군 위안부 세트장에서 크랭크인에 들어가 연천에서 24일까지 촬영을 끝내고 6월 초에는 경남 밀양에서 촬영한다. 마지막 위안부 할머니들의 영혼을 고향으로 불러 모으는 장면은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에서 촬영한다.

조정래 감독은 광복 70주년이 되는 해인 올해 8월 15일 위안부 할머니들과 후원자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시사회를 열 계획이다. 아직 개봉관이 정해지지 않아 국내에서 개봉될 지도 미지수다.

조 감독은 "국내 개봉이 되면 좋지만 해외영화제를 통해 우리 영화가 세상에 알려지면 좋겠다"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문화적 증거로 알려지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위안부 피해자 소녀들의 이야기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전쟁범죄인데도 불구하고 이게 콘텐츠로 만들어진 게 별로 없다"며 "우리 영화가 단초가 되어 앞으로 많은 문화콘텐츠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영화 귀향의 한 장면.
 영화 귀향의 한 장면.
ⓒ 제이오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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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도 촬영이 끝나기까지는 많은 고비가 남아 있다. 제작비가 턱없이 모지라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3분가량의 티저 영상이 공개되면서 많은 네티즌들이 후원하고 후원콘서트 등을 통해 제작비를 모았지만 벌써 바닥이 난 상태다. 영화 제작에 필요한 예산은 25억 원이지만 모금된 돈은 5억 원 정도이기 때문이다.

조 감독은 "영화를 위해서 많은 시민들이 후원을 해주셨다. 열쇠수리공, 가난하지만 빚을 내어 투자해주신 분들도 있고 멀리 해외에서도 후원해주신 분들도 있어 그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며 "예산이 떨어진 지가 한참 됐는데도 기적처럼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조 감독은 하지만 "할머니들을 만나고 또 그 할머니의 그림을 보고 시작한 일이지 내 의지로 시작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할머니들의 영령들이 도와주시고 그 분들이 고향으로 오시고자 하는 강력한 염원과 열망이 지금까지 버티도록 도와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 편집ㅣ김미선 기자



태그:#귀향, #조정래, #일본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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