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 JTBC가 출범한 지도 어느덧 4년이다. 그간 JTBC는 다른 3개 종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젊고 감각 있는 프로그램들을 선보이며 종편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시켜 왔다. 그 중심에는 <마녀사냥>과 <썰전>이 존재했고, 뒤이어 방영된 <비정상회담>이 JTBC의 간판 프로그램 계보를 이었다.

단단한 팬덤을 유치해 온 해당 프로그램들은 동시에 심각한 분란들을 일으키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채널의 전유물이던 '쿡방(요리 관련 방송을 일컫는 신조어)'을 예능으로 풀어내며 별다른 논란 없이 차곡차곡 시청률을 쌓아온 모범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셰프들의 장인정신 돋보이는 <냉장고를 부탁해>

 김풍 캐릭터는 <냉장고를 부탁해> 재미를 더하고 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는 셰프들. ⓒ JTBC


그렇다면 과연 <냉장고를 부탁해>의 힘은 무엇일까? '쿡방'이나 '먹방'을 소비하는 심리는 매우 다양할 테지만, 분명한 것은 더 이상 음식이 식욕을 해결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고 취미의 한 영역으로 공고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과 달리 그럴듯한 맛과 모양을 갖춘 음식을 분위기 있는 환경에서 즐기는 행위를 통해 '여유 있는 삶'의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또 1인 가구가 증가하며, '끼니 때우기'용 식사 대신 혼자서도 근사하게 한상을 차려 먹을 줄 아는 '자취 전문가'들이 새로운 음식 문화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는 점 역시 '쿡방'을 트렌드로 만든 요인 중 하나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이러한 문화적 경향성에 기대면서도, 고유의 셀링포인트로 시청자들을 매료한다. 이는 실종된 줄만 알았던 '장인정신'이다. 자신의 냉장고도 아니고, 남의 냉장고 속 음식들로 15분 만에 그럴싸한 요리를 만들어 낸다는 콘셉트는 가히 묘기에 가까운 장면들을 탄생시키며 놀라움을 자아냈다. 식재료와 요리에 대한 전문적 지식과 노하우가 없으면 불가능했을 해당 장면들에는 '자존심을 건 셰프들의 대결'이라는 드라마가 함께 존재한다. 이미 업계에서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셰프들이지만,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15분 만에 플레이팅까지 완벽한 요리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들은 긴장해서 손을 떨기도 하며, 0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가는 시계를 바라보며 초조해 하고, 냉장고 주인이 시식 후 짓는 표정을 숨죽이며 기다린다. 평생을 오롯이 요리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온 이들의 진심은 전파를 타고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

이 같은 감동의 드라마는 지난 4일 방송된 이연복 셰프와 최현석 셰프의 대결에서 정점을 찍었다. 최현석 셰프는 <냉장고를 부탁해>의 가장 큰 예능적 요소인 허세를 잠시 접어두고, 대가와의 대결에 진지하게 임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연복 셰프 역시 요리 도중 칼에 손을 다치는 실수를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요리를 완성시켰다. 신성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두 장인의 맞붙음에 김성주와 정형돈마저 말을 잃었다.

이처럼 시청자들은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요리를 마주하는 전문가들의 진지함을 본다. 그들은 기계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혀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간 쌓아온 지식과 지혜를 접시 위에 전부 털어 넣는 진풍경을 보여 준다.

물론 이 프로그램에는 전문 셰프만 출연하는 것은 아니다. 웹툰 작가 김풍, 방송인 홍석천이나 기자 박준우도 쟁쟁한 셰프들과 대결을 펼친다. 그러나 이들 역시 요리에 대해서는 셰프 못지않은 열정과 경험을 갖고 있음은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식재료에 대한 지식만은 셰프들을 능가할 때도 있는 박준우와 요식업계의 큰손 홍석천을 포함해 웃음을 담당하는 캐릭터라고만 생각했던 '야매요리'의 거목 김풍까지, '준전문가'라고 부르기 아까운 출연진들은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매력 포인트다.

신입 셰프 맹기용 등장에 맹비난하는 시청자들...왜?

 맹기용 셰프 투입으로 논란을 야기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맹기용 셰프 투입으로 논란을 야기한 JTBC <냉장고를 부탁해>. ⓒ JTBC


그러나 지난 25일 방송분에서는 이 같은 프로그램의 장점을 내려놓는 행보를 보여 시청자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무탈하게 6개월을 방영해 온 <냉장고를 부탁해>는 젊은 셰프 맹기용을 등용하며 신선함을 더하려 했다. 막내 시절을 포함해서 4년의 요리 경력을 지닌 '엄친아' 오너 셰프 맹기용이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소식에 우려가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4년이든 1년이든, 경력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요리왕 비룡이 경력과 나이가 부족해서 쟁쟁한 요리 고수들을 제치는데 실패했던가? 단언컨대, 문제는 실력이다.

그러나 맹기용 셰프는 이전에 나온 요리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초보적 실수-삶은 마카로니를 끓는 기름에 넣으려 한다든가-로 다소 신뢰를 잃은 상태였다. 왜 굳이 맹기용 셰프일까? <냉장고를 부탁해>의 애청자들은 그의 출연에 당위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맹기용 셰프가 힙합 그룹 지누션의 지누가 가져온 냉장고 속에서 꺼낸 식재료들은 생소한 조합이었다. "교포 초딩 입맛을 만족시켜 달라"는 의뢰인의 요구와도 동떨어진 듯했다. 그럼에도 맹기용 셰프는 특유의 패기를 뽐내며 기대감을 높였다. 그러나 그가 꽁치통조림을 열고 기름을 분리해 프라이팬에 넣은 순간, 반사적으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꽁치에는 오렌지즙이 섞였고, MC진도 지적할 만큼 온 스튜디오를 비린내로 채웠을 끓는 꽁치 기름에는 양송이스프며 우유 같은 재료들이 투하됐다.

그렇게 맹기용 셰프의 요리는 완성됐다. 그러나 냉장고 주인 지누를 비롯한 출연진들은 그의 요리를 한입 이상 먹지 못했다. 그리고 맹기용 셰프와 대결을 펼쳤던 이원일 셰프는 이변 없이 승리를 거뒀다. 먹는 즐거움도, 보는 즐거움도, 긴장감이 주는 즐거움도 없었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JTBC 간판 프로그램으로 일으켰던 모든 마력들은 이 싱거운 대결 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시청자들은 홈페이지 게시판 등을 통해 아쉬움을 표했고, 제작진은 맹기용 셰프를 지켜봐 달라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를 좋아하는 한 청년이 어엿한 셰프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리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보통 '지켜봐 달라'는 해명은 실력이 검증되지 않은 아이돌이나 신인 배우들이 소위 '발연기'를 펼쳤을 때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돈을 받고 요리를 제공하는 프로의 실수를 감싸주기 위한 용도로 쓰일 줄 누군들 짐작이나 했을까.

이 같은 제작진의 태도는 맹기용 셰프의 발탁 과정에까지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장인들의 대결을 다루는 프로그램의 출연진을 수식하는 말로 '훈남' '엄친아' '명문대 출신' 같은 단어들이 필요해서였다면, 생각을 달리 해야 할 듯하다. 마치 '뇌가 섹시한 남자'를 다루겠다면서 그들의 스펙만 줄줄 읊어대는 오류를 목격했을 당시의 느낌이 기시감처럼 다가올 정도다.

한편 인터넷 상에서는 맹기용 셰프의 과거 행적은 물론, 출신 성분까지 거론되며 자격론이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다. 온당치 않은 인신공격까지 가해지는 이 성난 민심을 초래한 것은 대체 누구일까. 별 탈 없이 지내온 <냉장고를 부탁해> 6개월의 방영 기간 중 제작진이 범한 가장 큰 실책이라 할 만하다.

40년이 넘는 세월동안 요리를 해 온 이연복 셰프는 25일 방송분에서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이 자신에 대한 새로운 발견의 기회라고 말하며,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요리를 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대가의 초심은 그런 것이었다. "정말 맛있어요!" 수 천 번, 수 만 번을 들었을 말이지만 그 칭찬을 듣기 위해 <냉장고를 부탁해>의 셰프들은 매번 긴장하고, 설렌다. 그렇기에 "맹기용 셰프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는 등의 '영혼 없는' 마무리 대신, 기존 셰프들이 간직하고 있는 초심을 지켜야 할 것은 바로 제작진이라고 말하고 싶다.

냉장고를 부탁해 맹기용 이연복 최현석 박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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