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에는 영화 <악의 연대기>와 <끝까지 간다>의 내용이 일부 담겨 있습니다.


한 사람의 형사가 있다. 그는 늦은 밤 뜻하지 않는 사고를 겪고, 그로 인해 한 사람이 죽는다. 하지만 정작 '법'을 지켜야 하는 형사는 사건을 덮는다. 하지만 그의 뜻과 달리, 그가 죽인 사람이 그의 목을 조른다. 완벽한 은폐를 위해 무리수를 범하기 시작하는 형사, 그러나 그가 맞닥뜨린 것은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사건이다.

이 개략적인 설명에 어울리는 영화는? 그렇다. 영화 <어벤져스2>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등 외화의 압도적 선전 속에 200만 고지를 바라보며 순항하고 있는 <악의 연대기>의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지난 26일 백상예술대상서 김성훈 감독에게 각본상을, 배우 이선균과 조진웅에게 최우수 연기상을 안겨 준 영화 <끝까지 간다>(2014)의 내용이기도 하다.

<끝까지 간다>는 어머니의 빈소를 지키던 형사 고건수(이선균 분)가 우연찮게 저지르게 된 뺑소니 사건에서 시작된다. <악의 연대기> 역시 혁혁한 성과를 거둬 승진을 앞두고 회식을 한 후 홀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최창식(손현주 분)이 자신을 죽이려던 택시 운전사를 오히려 죽이고 마는 데서 시작한다. 이 두 형사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 혹은 미래의 야망으로 인해 사건을 은폐하고자 한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그들이 은폐한 사건은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고건수가 유기한 시신을 목격한 자가 고건수의 목을 죄어오고, 최창식이 버리고 온 시신은 그가 일하는 경찰서 앞에 매달려 있다. 이때부터 사건을 숨기려는 자와, 그 숨기려는 자를 옭죄어 오는 자 간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이렇게 '범죄를 저지른 경찰'이라는 설정으로 영화 속 선과 악의 경계가 미묘해진다. 처음의 사건과, 그를 해결하기 위해 혹은 무마하기 위해 시간을 다투며 벌어지는 일들은 관객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이는 엄청난 물량 공세로 스크린을 장악하며 한국 시장에서 독식하고 있는 외화, 혹은 천만 관객을 노리고 기획된 흥행 영화들의 득세에도 이 두 영화의 선전을 뒷받침하는 결정적 재미 요소다.

같으면서도 다른 '악의 연대기'와 '끝까지 간다'


하지만 중반 이후 두 영화의 질감은 달라진다. 자신이 벌인 뺑소니 사건을 덮기 위해 어머니 관 속에 시신을 숨긴 고건수는, 그보다 더 나쁜 경찰 박창민(조진웅 분)이 등장하면서 '나쁜 놈과 더 나쁜 놈 간의 싸움'을 벌인다. 분명 시작은 나쁜 짓을 벌인 고건수 때문이었지만, 고건수를 이용하여 더 큰 범죄를 덮으려는 박창민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영화는 도덕적 가치의 경중을 따지기 전에 서부 영화와도 같은 오락적 흥미가 배가되는 영화로 전환된다.

그에 반해 <악의 연대기>는 제목에 포함된 두 개의 단어에 주목할 만하다. 하나는 '서로 뭉쳐 결속하다'라는 뜻의 단어 '연대'요, 또 하나는 '사건의 순서를 쫓아 사실들을 기록한 글'을 의미하는 단어 '연대기'다.

영화는 아버지가 경찰에 잡혀가고 홀로 남은 한 소년이 '나는 살인범의 아들이다'를 독백하는 장면을 통해 이 영화가 누군가의 '연대기'가 될 것임을 보여준다. 또 최창식이 자신을 옭죄어 오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역추적 하던 중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은 과거 그가 결부되었던 형사들의 잘못으로 한 선량한 시민을 살인범을 몰라 죽음에 이르게 만든, '연대'다.

그리고 극의 말미 이 모든 사건의 시작이 '나는 살인범의 아들이다'라고 되뇌었던 한 소년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이 드러나는 순간, 영화는 다시 한 번 '연대기'로서의 가치를 드러낸다. 이렇게 제도 속의 '연대된' 폭력이 또 다른 끔찍한 사건으로 이어졌음을 알게 되면서, 영화의 처절함은 방점을 찍는다.

이 같은 차이에도 <끝까지 간다>와 <악의 연대기>가 기저에 지닌 공통의 소재는 '부패한 경찰', 결국 '시스템이 된 권력의 오류'다. 뺑소니 사건을 낸 <끝까지 간다>의 고건수를 결국 응원하게 되는 건, 그를 이용하여 자신의 범죄를 덮으려는 박창민의 제도화된 부패에서 비롯된다. <악의 연대기> 말미 묘한 슬픔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는 것은 정의로웠던 경찰이 일상화된 부패에 젖어들면서 '악의 연대 세력'이 된 구조에 대한 분노 때문이다.

결국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부패한 권력,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이 <끝까지 간다>와 <악의 연대기>를 추동하는 엔진이다. 이들 영화와 같은 한국형 스릴러는 그 엔진의 동력을 바탕으로 때론 좀 더 오락적으로, 때론 좀 더 묵직하게 변주되며 정착되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