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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거래한 최초의 중고물품은 등산배낭이었다. 개인거래였는데 신품에 비해 싸게 사긴 했지만 상태와 디자인이 썩 마음에 차지 않아 두고두고 후회를 했다. 그런데 몇 년의 세월이 흐르고 보니 중고거래는 내 일상이 되어 있다.

중고거래에 대한 생각을 바꾼 건 필름 카메라를 만지면서부터다. 필름카메라를 하나 구해야겠는데 제조사들이 생산을 중단했으니 중고거래말고는 방법이 없는 거다. 그런데 난 카메라에 대해서나 중고거래에 대해서나 문외한이었다.

검색에 들어갔다. 그렇게 회원 수 천 만 명이 넘는 중***이라는 인터넷 카페를 알게 됐고 몇 달간을 '잠복(기다림)'해 있다가 서울 약수동에서 수원 세류역까지 기차를 타고 한달음에 달려가서 밤 9시에 니콘 F3HP를 '득템'했다. 손에 쥘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기뻐서 거래 전에는 이것저것 공부했으면서 정작 거래현장에서는 제품 성능에 대해서는 별달리 확인도 못해봤다. 그저 "이거 상태 어때요?"라고 물었고 판매자가 "좋아요. 괜찮습니다"라는 답을 주기에 만면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돈을 거네고 카메라를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만 있다.

카메라는 훌륭했다. 거래는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 거래에는 문제의 소지가 많다. 어떤 점이? 자연스럽게 중고 거래 2단계로 진입해 보자.

밤 거래는 금물

직장인이 중고거래를 하자면 점심시간을 제외하고는 퇴근 후 밤 시간밖에는 없는 게 현실이다. 위의 사례 모두 밤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밤에 거래를 하는 건 무조건 손해다. 왜? 퇴근 후 물건을 사러 간다고 치자.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려 심신이 지쳐있어서 빨리 거래를 끝내고 싶은 조바심이 밑장으로 깔린다. 게다가 중고거래는 파는 사람이 만날 장소를 정하기에 구매자는 낯선 곳에서 거래를 해야하는 불리함까지 끌어안아야 한다. 여러모로 빨리 끝내고 싶어진다. 그렇게 되면 평소의 꼼꼼함은 여름에 얼음 녹듯 사라진다.

그 뿐인가. 뭐든 자연광에서 살펴봐야 상태를 정확히 볼 수 있다. 어두운 조명 아래서는 놓치는 부분이 많고 왜곡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시간과 어둠에 쫓겨 거래를 하게 되면 제품의 결함을 다음날에야 발견하고는 수습을 하는 데 애를 먹으며 후회를 하는 경우가 있다.

내 첫 거래가 그랬다. 집에서 50킬로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인적도 드문데 가로등 불빛 아래서 물건을 살피자니 뭘 제대로 볼 수 있었겠는가. 그 뒤로는 무조건 낮에 해가 떠 있을 때 거래한다. 평일이 안 되면 주말을 이용해서라도 말이다. 거래에서 조바심을 내면 무조건 지게 되어 있다.

'싸게 싸게'보다는 상태 확인이 먼저

중고거래에도 흥정이 있다. 그 과정에서 흔히 하는 실수가 무조건 '싸게!'를 외치는 경우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을 '이왕이면 싸게'로 해석했기 때문인데 그러면 곤란하다. 왜? 이쪽에서 '싸게싸게!'를 외치면 저쪽에서는 맛 없는 비지떡을 내 오기 때문이다. 싸고 좋은 물건이 드문 건 중고거래도 마찬가지다.

제품의 가격을 깎을 수는 있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내가 얼마의 예산이 있다고 무조건 그 가격에 맞춰 중고품을 구할 수는 없다. 품질에 따른 가격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안 그렇겠나. 중고가격이 다 공개되어 있는데 말이다. 조금만 검색하면 모델별, 상태별로 다른 사람들의 거래 가격을 알 수 있다.

중고품에도 급이 있고 서로 품질이 다르다. 민트급, A급이 신품에 가까운 최상의 상태라면 C급, 하급은 외관과 기능에 문제가 많은 제품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민트급은 비싸고 C급은 싸다. C급 가격으로 민트급 제품을 사는 건 굉장히 어려울 뿐더러 긴 잠복이 필요하다. 그런데 전문가가 아닌 이상 중고 거래 하나에 투자할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머릿속에 무조건 싸게 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접근하면 결국 시간과 예산에 쫓겨 하급을 얻게 된다. 그러니 발견한 중고품이 자신이 원하는 상태의 제품인지를 먼저 체크하는 게 먼저다. 그리고 그 때 체크리스트가 있다면 훌륭하다. 가격 흥정과 예산 조정은 그 다음이다.

칼자루는 판매자가 쥐고 있다

흥정을 하다보면 표면의 작은 긁힘이나 얼룩을 문제 삼아 구매 금액을 깎으려는 분들이 있다. 그럼 협상을 중단한다. 신품에서는 그게 큰 문제이겠지만 중고품에서는 외관의 완벽함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중고품 거래인데 신품 거래처럼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한 수 접어 줘야 원만히 거래가 성사된다. 흔히 말하는 '민트급'이라는 제품들도 직접 보면 이른바 '생활흠집'들은 찾으려고 들면 무수하게 많다. 그걸 미주알고주알 찾아내서 값을 깎아 달라고 하면 파는 사람이 거래를 중단할 위험이 있다.

가게에서 물건 사는 것과 다르게 중고거래의 열쇠는 파는 사람이 쥐고 있다. 돈이 필요해 물건을 팔긴 하지만 그들은 장사꾼이 아니다. 도를 넘어 귀찮게 하면 거래를 안 하면 그만이다. 값을 깎더라도 내가 깎는 게 낫지 깎이는 건 기분이 나쁘다. 당신 아니어도 구매자는 많다. 그래서 만나는 장소도 돈을 지불하는 쪽이 결정하지 않고 파는 사람이 자기 편한 곳으로 정하는 게 대부분이다.

또, 가격을 흥정을 하더라도 터무니 없는 가격제시는 삼가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판매자는 장사꾼이 아니다. 그 가격을 뽑느라 무수히 검색을 한다. 그런데 무작정 싸게 달라고 하면 기분 상하고 거래는 불발된다. 10% 이내의 호가가 무난해 보인다.

이밖에도 택배거래보다는 직거래가 안전하고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현장 흥정은 매너가 아니며 중고거래에 물건을 잡아둔다는 건 뜬구름 잡는 것과 같으며 사진을 여러장 올리는 거래자와 거래하는 게 더욱 믿을 만하다는 상식적인 내용을 첨가할 수 있겠다.

중고거래는 장사 혹은 매매라는 상업활동에 지식과 경험이 없는 비전문가 개인이 만나 원시적인 주고 받음을 하는 거다. 그러니 모든 게 서툴고 낯설고 생소한 게 보통이다. 그러니 만사에 조심조심 하는 게 맞다. 그래야 후회를 안 한다. 그 마음을 먹는다면 중고거래의 반은 성공한 셈이다.

원활한 중고거래를 위해 은어 몇 가지 소개한다.

네고하자 : 가격 좀 깎아 주세요.
쿨거래합시다 : 가격 흥정 하지 맙시다.
찔러보기 금지 : 거래할 마음이 있을 때만 질문하세요.
st, 스타일 : 이 제품은 카피품으로 정품은 아닙니다.
택포 : 택배비 포함 가격
가성비가 좋다 : 가격 대비 성능이 좋으니 잘 사는 거다.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캠핑 블러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태그:#중고나라, #중고거래, #쿨거래, #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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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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