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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희씨의 생전 모습. 곱고 착한 큰 딸을 잃은 어머니 유미자에게 이 사진은 오히려 아픔으로 남았다.
 황인희씨의 생전 모습. 곱고 착한 큰 딸을 잃은 어머니 유미자에게 이 사진은 오히려 아픔으로 남았다.
ⓒ 유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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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 한 여자가 죽었다. 이름은 황인희. 2005년 5월 사망 당시 그의 나이는 만 23살이었다. 평범한 주부였던 그녀의 어머니는 이후 10년째 딸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며 싸우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유미자. 인터넷에서 '물망초 5'라는 아이디로 유명한 분이다.

내가 유미자씨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013년 여름으로 접어들던 어느 날이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던 당시, 국회 사무실로 50대 중반의 유미자씨가 나를 찾아왔다. '페이스북' 친구로만 알던 그녀를 실제로 만나 들은 사연은 참으로 끔찍했다.

'직장 내 성희롱'이 끔찍한 살인 사건으로...

유미자씨의 악몽은 2005년 5월 30일과 31일 밤 사이 시작됐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만 10년 전 일이었다. 딸 셋의 어머니였던 유미자씨에게 그날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었다. 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세 자매는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특히 맏딸 인희씨는 더욱 그러했다. 어려서부터 유난히 착하고 예뻤던 인희씨는 취업이 쉽지 않았던 2003년, 대학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누구나 선망하는 한 공기업에 정직원으로 조기 채용됐다. 그때가 2003년 8월 1일의 일이었다. 이처럼 좋은 기업에 큰 딸이 취업했으니 어느 부모인들 행복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행복이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의 출발점이 될 줄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시작은 직장에서 만나게 된 한 남자 때문이었다. 연애도 아니었다. 그는 인희씨의 직장 상사였다.

인희씨가 처음 직장에서 근무 배치받은 부서는 사장 비서실이었다. 출중한 미모와 성실한 태도를 인정받아 핵심 부서에 배치된 것이다. 그런데 같은 회사 내 직장 상사가 그런 인희씨를 주목하고 있었다. 직장내 인사과장이던 이아무개씨였다.

이씨는 새로 입사한 인희씨에게 업무를 핑계로 처음 접근했다고 한다. 인희씨는 직장 내 핵심 보직 인사이자 상사인 그의 지휘를 거부할 수 없었다. 처음 이씨는 매우 친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씨의 호의를 이상하게 느끼게 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2005년 당시 만 39살이던 이씨는 자신보다 16살 어린 인희씨의 사생활까지 간섭하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는 유부남이었다. 

그는 첫 번째 결혼에서 딸을 두었는데 당시 딸의 나이는 12살이었다. 그리고 이혼 후 재혼했는데 바로 같은 직장 사장 비서실에 근무하던 여직원이었다. 그 사이에서 또 한 명의 딸을 두었다. 끔찍한 사실은 이씨와 재혼하면서 퇴사한 부인 자리에 새로 채용된 신입 직원이 바로 인희씨였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이씨는 "이혼할 테니 나와 결혼해 달라"며 인희씨를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인희씨는 당연히 거절했다. 이씨의 이후 행동은 놀라웠다. 이씨는 인희씨가 만나는 사람까지 간섭하며 집착하기 시작했다. 인희씨가 이씨를 의도적으로 피하자 늦은 시간 집 앞에서 기다리기도 했다. 스토커 수준의 행위였다.

이로 인해 인희씨가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는 인희씨의 절친한 친구였던 유아무개씨의 진술서에서도 확인된다. 유씨는 "인희가 이씨 때문에 회사까지 그만 두고 싶다는 말을 했다"며 "워낙 속이 깊은 친구라 힘들어도 내색을 잘 하지 않는데 그렇게까지 말을 했을 때 알아채지 못한 것이 미안하고 후회된다"고 했다. 인희씨는 자신의 싸이월드에 괴로운 심정을 이렇게 남겼다.

"사는 게 너무 괴로움. 제발 나를 가만 내버려 두라고. 누가 날 좀 구해줘"

"엄마, 나를 구해줘"... 사건 발생 그날

납골당에 안치된 황씨. 23살에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그의 명복을 빈다.
 납골당에 안치된 황씨. 23살에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그의 명복을 빈다.
ⓒ 유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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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2005년 5월 30일. 월요일이었던 그날, 인희씨는 밀린 업무를 하기 위해 밤 10시까지 야근을 했다. 그리고 같은 부서 직원과 퇴근하면서 그의 차를 타고 경기도 성남 분당 인근 전철역까지 동승했다.

그런데 목적지에 내리자 그곳에서는 한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인사과장 이씨였다. 동료에 따르면, 인희씨가 당황해하는 사이 이씨는 납치하듯 팔을 강제로 잡아 끌며 이씨의 차로 끌고 갔다. 그러자 인희씨가 저항했고 이를 본 남자 동료 직원도 이씨에게 "밤도 늦었는데 내일 이야기 하시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이씨가 그 직원에게 "참견하지 말라"며 일갈했고 그는 물러났다. 이내 차는 출발했다. 그것이 인희씨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밤, 인희씨의 어머니 유미자씨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딸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야근한다며, 조금 늦게 집에 간다던 딸은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았다. 뜬 눈으로 안절부절하던 사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됐다. 여전히 딸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다음날인 5월 31일 아침 8시 35분경, 유미자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인희씨의 회사 팀장이었다. 당시 팀장은 유미자씨에게 두서 없이 다급한 말로 "인희에게 물어볼 것이 있는데 지금 집에 있냐?"며 말했다. 아침 9시까지 출근하는 회사에서 아침 8시 35분에 집으로 전화하여 직원의 행방을 찾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에 대해 유미자씨는 전날 밤 이씨가 인희씨를 납치한 것을 팀장이 알고 난 후 이를 떠보기 위해 전화했다고 생각한다. 전날 인사과장이 인희씨를 강제로 끌고 간 것을 본 동료 직원이 이를 팀장에게 보고하자 어찌된 것인지 떠보려고 전화했다는 것이다.

이에 유씨가 전날 밤 인희씨가 귀가하지 않았다며 행방을 물었지만, 팀장은 인사과장의 납치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때 알았다면 경찰에 신고라도 했을 텐데... 인희씨의 가족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딸의 행방만 찾았다. 그리고 유미자씨가 끔찍한 비보를 듣게 된 때는 실종 48시간이 지나던 6월 1일 밤 10시 30분이었다.

한 통의 전화가 집으로 걸려왔다. 전화를 한 곳은 강원도 원주경찰서. 그리고 듣게 된 끔찍한 딸의 사고 소식. 경찰 발표에 의하면 사건은 2005년 5월 31일 새벽 12시 30분경 발생했다. 경기도 분당에서 인희씨를 강제 납치한 이씨는 이후 경기도 양평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희씨를 살해한다.

유미자씨가 보여준 피해자 인희씨의 모습은 끔찍했다. 경기도 양평의 한 야산에서 이씨는 인희씨를 추행했다. 상의 가디건과 하의 속옷은 벗겨졌고 치마는 반쯤 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인희씨가 극렬하게 저항해 뜻대로 되지 않자 이성을 잃은 이씨는 인희씨를 무참히 살해했다.

경찰이 촬영한 사진 속에서 인희씨의 긴 머리는 흘러내린 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범행이 벌어진 이씨의 차량 안에는 사방에 피가 튀어 있었고 인희씨의 몸은 상처 투성이였다. 차마 세세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했다. 그렇게 예쁜, 그렇게 착한 유미자씨의 희망 인희씨가 그렇게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한편 이씨는 인희씨를 살해한 후 양평 야산에 시신을 유기하고 도주했다. 유미자씨가 딸의 행방을 알 수 없어 애태우던 이틀간 살인범 이씨는 도주 중이었다. 그런데 이 끔찍한 사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연 관계를 추궁'하여 밝힌다는 경찰?

도주하던 이씨가 자수하면서 사건 전모는 밝혀졌다. 그런데 그가 자수한 곳이 참으로 묘했다. 그는 납치를 시작한 분당도 아니고, 또 사체를 유기한 양평도 아닌 강원도 원주로 가서 자수한다. 그리고 이씨의 자수를 접수한 원주경찰서가 이 사건을 맡았는데 이는 대단히 드문 사례였다. 통상 사건이 발생한 해당 지역으로 사건을 이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자수를 접수한 원주경찰서가 맡았다. 유미자씨는 지금도 이 점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이씨는 왜 사건과 상관도 없는 강원도 원주까지 찾아가 자수한 것일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찰이 유씨에게 딸의 비보를 알려준 6월 1일 밤 10시 30분 전에, 4명의 남자가 원주경찰서를 찾아왔다. 그들은 바로 이씨와 인희씨가 재직하던 회사의 임직원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유족보다 빨리 경찰서를 찾아왔을까. 

이씨가 자수한 시각은 그날 저녁 6시 30분. 경찰은 그로부터 30분 후인 7시경, 유족보다 먼저 이씨의 회사에 자수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그래서 회사 고위직 임직원은 유가족이 도착하기 2시간 전인 저녁 8시 30분경 경찰서를 방문해 이씨와 면담할 수 있었다. 그들은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이후 경찰 수사는 상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경찰 수사가 유미자씨에게 또 다른 '10년 한'으로 남게 된 이유다. 이 사건의 핵심은 직장 상사가 직위를 이용해 벌인 직장내 성희롱 사건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여직원을 납치해 강간하려다 무참히 죽인 살인 사건이었다.

그런데 경찰 수사는 달랐다. 담당 수사 경찰은 이 사건을 '내연 관계에 의한 치정 사건'으로 몰아갔다. 즉, 두 딸을 둔 재혼 유부남(이씨)과 미혼 여성(황인희씨)이 내연 관계로 불륜을 벌이다가 다툼이 일어 살인이 벌어졌다고 수사 방향을 잡은 것이다. 딸을 잃은 것도 원통한데 그 딸의 명예마저도 죽이다니... 유미자씨는 더 이상 딸을 잃은 슬픔으로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나서 진실을 밝히기 시작했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내연 관계 치정 살인사건'은 가해자인 이씨의 경찰 진술에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씨는 인희씨와의 관계를 묻는 경찰 질문에 '직장 동료 사이'라고 여러 차례 진술했다. 그런데도 담당 경찰은 이를 '내연 관계'라고 둔갑시켰다.

이씨가 자수한 다음날인 2005년 6월 2일, 경찰이 작성한 '피해자에 대한 관계 수사 보고'가 그 증거다. 담당 경찰은 이 문서에서 가해자인 이씨가 '직장 동료 사이'라고 진술했음에도 '피의자는 동료 사이였다고 주장하나, 내연의 관계임을 추궁하여 밝힐 예정임'이라고 보고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내연 관계가 아님을 밝혀낸 이는 결국 어머니 유미자씨였다. 담당 경찰의 '내연 관계 추궁' 운운하는 보고 문서를 근거로 검찰에 진정하는 등 항의하자 검찰은 잘못을 인정했다. 그런데 담당 경찰의 변명은 정말 기가 막혔다. 당시 검찰이 보낸 문서에 의하면, "'내연의 관계'라는 표현은 자신(담당 경찰)이 무식하였기 때문에 잘못 표현한 것"이라며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변명에 그 어머니는 가슴을 쳤다. 하지만 이 진실이 바로잡힌 때는 이미 1심 재판이 끝난 후였다.

살인범 이씨는 1심에서 15년을 선고 받았다. 끔찍한 살인 유기 사건에 상대적으로 낮은 형량이 내려진 이유가 바로 '내연 관계' 운운 때문이었다. 하지만 2심 판결은 더욱 황당했다. 이씨는 판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해 형량을 더 낮췄다. 1심보다 3년이 깎인 12년 형을 선고 받은 것이다. 이 형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는 통상의 강간 살인사건 형량이 20년 이상인 점에 비해 매우 낮은 것이었다.

내 딸의 명예회복을 요구한다

인희씨의 어머니 유미자씨에게 지난 10년은 끔찍했다. 딸을  잃은 것도 원통한데 진실을 밝혀 억울함을 풀어줘야 할 국가의 잘못으로 더 큰 고통을 받았다. 특히 인희씨가 살해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강간 미수 범죄에 대해서는 수사조차 하지 않은 것도 억울하다.

특히 이씨가 인사과장으로 근무하던 공기업의 사건 후 처리는 유씨에게 또 하나의 상처가 되었다. 회사는 이씨가 자수한 당일 그를 해고 조치한다. 이씨가 자수한 시각이 6월 1일 저녁 6시 30분. 그리고 30분후인 저녁 7시 경찰에게 연락을 받고 회사 임직원이 경찰서를 방문한 시각은 저녁 8시 30분경. 이미 하루 일과가 끝난 늦은 시각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그 6월 1일에 인사과장 이씨에게 해고 인사 명령을 내린다. 놀라울 정도로 빠른 조치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회사는 돌연 3일 후인 6월 3일 이씨에 대한 해고 명령을 취소한다. 그러면서 징계상 해고가 아닌 스스로 사표를 제출하는 '면직 처분'으로 변경해 이씨의 사표를 수리한다. 왜 회사는 이씨에게 이런 특혜를 줬을까? 회사가 작성한 인사 명령에 의하면 사유는 이렇다. 이씨가 재직 과정에서 회사에 공을 많이 세워 그 업적을 감안해 해고를 취소한다는 것이다. 끔찍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유미자씨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상사의 성희롱이 살인 사건으로 비화됐는데도 회사는 여전히 '우리와는 상관없는 개별적 사건'이라는 입장만 고수했다. 거기에 경찰과 검찰의 잘못된 수사와 부실한 재판으로 가해자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아 이제 2년 후면 석방된다.

어머니가 딸의 억울한 죽음에 항변하기 위해 시위하는 모습
 어머니가 딸의 억울한 죽음에 항변하기 위해 시위하는 모습
ⓒ 유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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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유미자씨에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그 10년의 한을 풀 수 있겠냐고. 유씨의 요구는 크게 세 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해자 이씨에 대한 추가 기소'다. '내연 관계 사이에서 벌어진 성추행이니 강간이 아니라'며 수사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제라도 이씨에 대해 성폭력 특별법을 적용해 수사하라는 것이다.

둘째는 회사가 이 사건에 대해 윤리적·도덕적 책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직장내 성희롱으로 시작해 끝내 살인사건으로 비화된 이 사건에 대해 회사는 자신의 책임을 끝내 부인했다. 하지만 사건 전반에서 회사 관계자의 행위는 유미자씨가 분노하기에 충분하다. 이씨의 납치 사실을 알고도 이를 침묵한 직원과 소속 팀장의 행위, 그리고 사건 발생후 경찰서를 방문한 임직원과 이씨의 퇴직 처리 과정 등이 그렇다.

셋째는 근로복지공단의 책임이다. 인희씨는 사건 당시 밤 10시까지 야근을 하다가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 퇴근길에 직장 상사로부터 살해됐는데도 근로복지공단은 인희씨의 죽음을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다. 유미자씨로서는 납득할 수 없는 행정 업무다.

올해로 꼭 10년이다. 딸을 잃은 유미자씨의 머리에는 손바닥 반만한 탈모 증세가 생겼다. 극심한 스트레스와 분노로 인한 탈모다. 아무 죄도 없는 국민이 이처럼 큰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를 해결해 줘야 할 국가의 방관은 계속되고 있다.

곧 인희씨의 10주기 기일이다. 어머니는 지난 10년간 해온 것처럼 올해도 딸의 추모제를 한다. 곱고 착했던 고 황인희. 고작 23살의 짧은 삶을 살다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고통 속에 꺾인 그 넋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어머니 유미자씨. 힘 내시라.

○ 편집ㅣ박순옥 기자



태그:#유미자, #물망초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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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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