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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발신] 어머니, 안녕하세요? OO이가 최근에 책을 안 가져오거나 과제를 빠뜨리는 경우가 잦습니다.

월말이 임박해 바쁘기만 한 회사, 점심을 먹고 잠시라도 노곤해질 여유도 없이 일하고 있는데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큰아이 담임한테서 온 메시지였습니다. 문자를 꼼꼼히 읽으면서 '설마…' 했다가, '왜 그랬지?' 했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화장실로 갔습니다.

찬물로 손을 씻고 찬기운이 남은 손으로 얼굴을 토닥거리며 정신을 차리고 맘을 진정시켜 보려했지만 계속해서 속만 상할 뿐이었습니다. 좀 덜렁거리는 작은아이라면 모를까 평소 얌전하게 매사 꼼꼼하게 잘 챙겨서, 오히려 회사 다닌다는 핑계로 잘 챙겨주지 못하는 엄마가 미안해할 정도인 큰아이가 잘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믿고 싶지 않았습니다. 

네 선생님, 책은 학교 사물함에 넣고 다니는데 요즘 일기장 등을 빠뜨린것 같아서 저도 어제 밤에 얘기했습니다. 제가 요즘 바빠서 한 번 더 챙겨주질 못해서 그랬나 봅니다. 고맙습니다.

답장을 보내고도 선생님이 보내신 문자내용 중에 있던 '잦은'이라는 글자가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습니다. 한 번도 두 번도 아니고 잦은 횟수로?

어쨌든 집에 가서 보자고 생각하며 화장실에서 기지개를 쭉쭉 펴고 나와 자리에 앉아 일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따라 옆에 동료가 휴가 가는 바람에 처리해야 할 일은 내 몫 + 알파, 산더미입니다. 큰아이 담임의 문자에 열을 내서 그런지, 일을 열심히 해서 그런지, 당이 떨어져 배가 출출하다고 느껴지던 3시 30분. 휴대폰이 책상 위에서 요란하게 떨렸습니다. 이번에는 작은아이 유치원이었습니다.

"어머니, OO가 갑자기 열이 좀 많이 나서요. 해열제를 좀 먹일까요?"

아침에 멀청하게 유치원에 간 작은아이가 열이 난다는 전화로, 이 시간에 달려갈 수 없는 워킹맘의 대답은 어쩔수 없이 "네, 먹여주세요. 퇴근하면서 병원에 데리고 갈게요. 많이 지치거나 힘들어하지는 않나요?"였습니다. 그러고서는 오늘 일이 많아 야근하면 좀 마무리 되겠다 싶었는데 그 계획은 무산되게 생겼고, 또 퇴근시간에 어린이집에 들렀다가 병원까지 들를 생각을 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다가 괜히 화가 났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 숙제며 가방을 제대로 못 봐준 게 미안하고 싫었고, 이렇게 바쁠 때 아픈 아이를 생각하면 한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도대체 왜 나쁜 일들은 하루에 몰아쳐서 생기는지.

'오늘 하루 10년 늙은 이 여인네 얼굴, 내일은 팽팽하게 해주세요'

프랑스 유럽의회에 참석한 '워킹맘' 론줄리 의원
 프랑스 유럽의회에 참석한 '워킹맘' 론줄리 의원
ⓒ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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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퇴근시간이 좀 넘어 월말이 되어 전체적으로 바쁜 회사 분위기를 살피며 죄 지은 듯 미안해하며 부랴부랴 나왔습니다. 그러고서는 작은아이 유치원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 집으로 갔습니다. 엄마가 들어서자마자 뭔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자백을 시작하는 큰아이는 이미 학교에서 반성문까지 쓰고 왔으며, 사실은 책을 잃어버렸는데 그걸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엄마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맞벌이 부부 아이의 특징인지, 우선 제가 먼저 해보려 했다는 아이의 말에 이 순간에는 칭찬을 해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이나 엄마에게 말을 하고 책을 찾든 사든 도움을 받아야지 왜 혼자서 다 해결하려 드냐고 아이를 오히려 혼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차리는 저녁상은 왜 이리 시간이 걸리고, 또 저녁 설거지는 왜 이리 힘이 드는지 간신히 간신히 끝냈습니다.

그렇게 폭격 맞듯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잠자리에 들기 전 세수를 하고 화장대 앞에 앉았습니다. 어머나 이게 누구야? 순간 얼마 전 인터넷에 돌던 '워킹맘 얼굴, 하루 사이에 10년 늙는다'라는 한 화장품 광고의 영상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출근에 시달리고, 고된 일을 하고, 퇴근하고 다시 집에 와서 아이들과 남편을 챙기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없이 지낸 워킹맘인 여자의 얼굴이 5~10년은 더 늙어보였다는 영상.

그 여인처럼 아침에 화장대 앞에 앉아 있던 내 모습은 불과 하루 사이에 10년은 더 늙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광고를 만든 사람들이 편집으로 그렇게 해놨나' 하고 별 생각 없이 봤던 영상 속 여자의 늙어버린 얼굴이 자꾸 생각나, 눈꼬리를 올리고 '아에이오우' 안면 근육 운동을 하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영양크림을 발랐습니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딱 한 가지씩만, 바쁘고 정신 없는 워킹맘을 위해 이렇게 나쁜 일들은 몰아쳐 생기지 말고 하루에 딱 한 가지씩만 생기면 조금 더 버티기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 그러다가 한편으로는 차라리 한꺼번에 우르르 떨어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맨 나중에 잠들기 전 가장 분명하게 든 생각은 '오늘 하루 10년 늙은 이 여인네 얼굴, 내일은 팽팽하게 해주세요'였습니다.

가정, 일, 그리고 모진 스트레스에도 이겨내는 동안 얼굴까지, 워킹맘이 신경쓰고 지켜내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 편집ㅣ최규화 기자



태그:#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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