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시즌 프로농구 판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혼혈 선수들의 대이동이 완료됐다. 문태영(모비스→삼성), 문태종(LG→오리온스), 전태풍(KT→KCC), 이동준(삼성→SK), 이승준(동부→ SK) 등 혼혈선수 5인방이 다음 시즌 모두 새로운 소속팀에서 활약하게 됐다.

혼혈선수들이 KBL 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이들은 한국농구의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로 자리잡았다. 이들은 소속팀의 챔프전 우승과 플레이오프 진출, 정규리그-챔피언전 MVP 등 각종 주요한 기록들을 휩쓸며 KBL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거듭났다.

혼혈 선수 중에서도 KBL에서 가장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온 선수는 단연 문태영이다. 2009년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를 통하여 국내 팬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문태영은 당시만 해도 오히려 이승준-전태풍 등 KBL 입단 동기인 다른 혼혈 선수들에 비하여 인지도가 낮았으나, 이제는 역대 최고의 혼혈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문태영은 첫 소속팀이던 창원 LG 시절 국내 선수로는 유일하게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득점왕(09~10시즌)에 오르는가 하면, 국내 선수 득점 1위만 다섯 차례나 차지했다. 모비스(2013~2015)에서는 혼혈선수로는 최초로 3년 연속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해외무대와 태극마크 경력에서 앞선 친형 문태종이 정작 KBL에서 우승컵을 아직 한 번도 들어올리지 못한 것과 비교된다.

문태영은 그 영향력을 인정받아 최근 삼성과 8억 3천만 원(연봉 7억4700만 원, 인센티브 830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에 계약을 맺었다. KBL 역대 최고액이다. 1978년생으로 만 37세의 노장에게 너무 과도한 지출을 했다는 우려도 있지만, 문태영이 여전히 2~3년간은 최고의 기량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투자다.

반면 파격적인 대우와는 별개로 문태영에게는 말년에 고생길이 열렸다는 평가도 있다. 이전 소속팀인 LG나 모비스가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이었다면, 삼성은 리빌딩 팀에 가깝다.

한때 한국농구 전통의 명문구단으로 꼽혔던 삼성은 최근 4년간 세 차례나 플레이오프에 탈락했고, 지난 시즌은 역대 최저성적으로 최하위에 머무르는 등 자존심을 구겼다. 현역 시절 최고의 스타출신 사령탑인 이상민 감독으로서도 열악한 전력을 만회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지난 시즌도 평균 16.9점을 기록하며 국내 선수 득점 1위에 올랐고, 리바운드도 국내 3위(6.3개)에 오른 문태영은, 삼성이 간절히 필요로 하는 전천후 해결사의 조건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최상의 대안이었다.

삼성은 올여름 이정석-이동준 등 고액 연봉자들을 대거 정리하며 문태영을 확보하기 위한 샐러리캡을 비웠다. 김준일, 임동섭, 장민국 등 젊은 선수들 중심으로 세대교체를 추진하고 있는 삼성에서 문태영은 최고참 주희정과 함께 선수단의 리더로서 중심을 잡아줘야할 역할까지 맡게 됐다.

친형인 문태종은 주요 귀화혼혈선수 중 가장 늦게 이적을 결정지었다. 문태종은 원소속팀인 LG와 1년 3억8500만원에 계약후 사인 앤 트레이드로 오리온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오리온스가 문태종을 원한 것은 해결사 부재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오리온스는 추일승 감독 체제에서 꾸준히 6강 플레이오프에 나가고 있지만 단기전에서 취약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태종은 4쿼터의 사나이라고 불릴만큼 승부처에서 유난히 강했다. 지난 시즌에도 국가대표 차출로 인한 체력적 부담을 극복하고 평균 12.1점을 기록했다.

변수는 문태종의 체력과 기존 선수들과의 포지션 중복이다. 내년이면 41세가 되는 문태종에게 더 이상 많은 출전시간을 기대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그런데 오리온스에는 문태종과 같은 포지션에 기용할 수 있는 선수가 차고 넘친다. 슈터만 해도 허일영과 전정규가 있는데다 포워드로 분류하면 김동욱-김도수와도 겹친다. 파워포워드로 분류되는 이승현이나 내년 제대 예정인 최진수 역시 스몰포워드까지 소화가능한 선수들이다. 문태종의 가세로 포워드진의 교통정리가 필요해진 오리온스로서는 당장은 아니라도 타 구단으로부터 트레이드의 유혹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문태종이 혼자 짊어져야할 부담은 적지만, 자칫 역할분담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지나친 경쟁구도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 포지션은 다르지만 또다른 혼혈선수인 전태풍을 제대로 활용하는데 실패했던 추일승 감독이 문태종과는 어떤 궁합을 보일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전태풍은 계약기간 2년, 보수 5억4천만 원(연봉 4억8600만 원, 인센티브 5400만 원)에 친정팀인 KCC로 복귀했다. 혼혈선수 중 한 번 뛰었던 이전 소속팀으로 되돌아간 선수는 전태풍이 유일하다. 전태풍은 2009년부터 3년간 KCC 소속으로 활약하며 1회의 우승과 준우승을 경험한 바 있다. 오리온스와 KT를 거치며 부침의 시간을 겪었던 전태풍은 KCC와 전주 팬들에게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KCC와 함께 전태풍에게 러브콜을 보냈던 LG의 제안을 거절한 가장 큰 이유였다.

적응기가 필요없다는 것은 KCC행의 최대 강점이다. 허재 감독은 더 이상 없지만 추승균 감독대행이나 하승진, 신명호 등 익숙한 인물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전태풍으로서는 빠르게 팀에 녹아들 수 있을 전망. KCC는 최장신센터 하승진을 계약 기간 3년에 보수 5억(연봉 4억 5천, 인센티브 5천)으로 잔류시킨데 이어 개인기가 뛰어난 전태풍까지 복귀하면서 다시금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전력을 갖추게 됐다.

그런데 KCC에는 이미 김태술이라는 국가대표 포인트가드가 있다. 전태풍도 1번으로 뛰는 것을 원하는 만큼 역할이 겹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정통파에 가까운 김태술과 일대일을 주무기로 하는 전태풍은 플레이스타일과 장단점이 다르다. 둘다 30대를 넘겼고 잔부상이 많다는 것은 공통점. 상황에 따라 두 선수가 역할을 분담하거나, 아니면 득점력이 좋은 전태풍을 2번으로 기용하는 것도 염두에 둔 영입이다.

이승준-이동준 형제는 귀화혼혈선수로서는 최초로 형제가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됐다. SK는 이승준 형제 외에도 기존의 김민수와 박승리까지 혼혈선수만 무려 4명을 보유한 다문화 군단이 됐다. 애런 헤인즈와의 계약이 만료되고, 최부경의 군입대, 박상오의 KT 복귀로 기존의 포워드 군단이 해체된 상황에서 이승준 형제의 영입이 대안이었던 셈이다.

SK의 선택은 그야말로 모 아니면 도로 평가된다. 화려한 탄력을 지닌 이승준과, 우직하고 저돌적인 이동준은 개인능력은 어느 정도 검증된 선수들. 하지만 팀공헌도에서는 평가가 엇갈리는데다 포지션상 김민수-박승리와 역할이 겹칠 수 있다. 문경은 감독의 교통정리와 역할분담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승준 형제의 만남이 관심을 모으는 것은 물론 형제가 한 팀에서 뛴다는 화제성도 있지만, 이들이 나란히 보유하고 있는 징크스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승준 형제는 영화 배우같은수려한 외모를 바탕으로 '연예인 형제'라는 닉네임이 있는가하면, 반대로 극악의 팀공헌도를 빗대어 '강등 전도사'같은 웃지 못할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KBL 경력만 놓고 봤을 때 이승준 형제가 남긴 업적은 초라하다. 형 이승준은 모비스-삼성-동부를 거쳤고, 동생 이동준은 오리온스-삼성을 거치는 동안 이들의 소속팀은 주로 하위권을 맴돌기 일쑤였다. 두 형제 모두 최고 성적이 6강 플레이오프 한번에 불과하다.

심지어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이던 동부나 삼성 등은 공교롭게도 이들이 합류한 이후에는 급격히 몰락하며 잇달아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경신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자주 비교대상에 오르는 문태종-문태영 형제가 가는 팀마다 소속팀을 플레이오프 단골손님에 올린 것과 대조되는 장면이다.

물론 팀성적의 몰락이 이들의 책임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한 팀의 주전급 선수로서 유쾌하지 못한 징크스임은 사실이다. 두 형제는 나란히 전술 이해도가 떨어지고 공격에 비하여 수비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선수 스스로 발전이나 개선 의지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구나 형 이승준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1년을 쉰 상황이라 우려가 더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전 소속팀과 달리 같은 팀에서 한솥밥을 먹게 됐다는 동기부여와 정신적 안정이 두 형제의 명예회복에 계기가 될수 있을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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