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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악산, 의암호에서 시작하는 등산로 입구.
 삼악산, 의암호에서 시작하는 등산로 입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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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빙수 한 그릇이 간절하다. 한겨울 눈이라도 내려 쌓인 것처럼 하얗게 부슬거리는 눈꽃빙수 한 그릇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발을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지만, 시작부터 사람을 이렇게까지 힘들 게 만들 줄은 몰랐다.

등산로 초입에서부터 땀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루종일 뜨거운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데다, 등산로가 입구에서부터 급한 경사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경사로에 각진 돌을 놓아 계단 비슷하게 만들어 놓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지 않았으면, 두 배는 더 힘들게 산을 올라야 했을 것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다본 의암호 풍경.
 등산로 입구에서 바라다본 의암호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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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악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두 군데로 대별된다. 의암호에서 시작되는 등산로와 등선폭포가 있는 곳에서 시작되는 등산로가 그것이다. 이 등산로들은 서로 상이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쪽이 급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데 반해, 다른 한쪽은 상대적으로 경사가 완만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경사가 급한 쪽은 의암호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다. 이곳의 등산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르막으로 시작해 오르막으로 끝난다. 오르막 끝에는 또 '깔딱고개'라는 게 있다. 이 지점에서 잘못하면, 그야말로 숨이 '깔딱'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이 등산로에서 완만한 길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등산로 중간중간에 거대한 바위들이 나타난다. 그 바위들은 그냥 두 발로 걸어오를 수 없다. 두 발과 두 손을 모두 다 사용해야만 한다. 천만다행으로 바위마다 사람들이 잡고 오를 수 있는 쇠줄이 단단하게 고정돼 있다. 등산 초보자들은 이 쇠줄 없이 산을 오르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 길에서 빙수를 떠올리지 않고 배길 수 없다. 등산로 중간 지점에서부터는 쉬었다 가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진다. 삼악산은 당연히 고생을 심하게 해야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이 길로 발을 들여놓은 건 '기왕 맞을 매, 먼저 맞고 끝내자'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삼악산 등산로, 돌과 시멘트로 만든 계단.
 삼악산 등산로, 돌과 시멘트로 만든 계단.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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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로 드넓게 펼쳐지는 시원한 풍경들

등산은 호기롭게 시작됐다. 돌계단도 없는 것보다는 나아서, 그런대로 오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더운 날, 경사를 오르는 일이 쉽지 않다. 다리가 아픈 건 둘째 치고, 이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더위를 먹고 쓰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다. 그렇다고 중간에 등산을 포기하고 내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산에서는 산을 내려가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다. 삼악산에 '악'자가 들어가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삼악산은 비록 우리나라 '5대 악산'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다른 악산들만큼이나 거친 산인 것만은 틀림없다. 높이는 비교적 낮은 편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우습게 볼 수 있는 산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삼악산을 오르는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다. 등산로 중간중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내려다보는 산 아래 풍경이 무척 시원하고 아름답다. 그때까지 머리꼭지가 타들어 가는 것 같던 불볕더위를 다 날려버릴 정도다. 발아래로 춘천 시내와 의암호,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모두 한눈에 들어온다.

삼악산 정상 부근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춘천 시내와 의암호.
 삼악산 정상 부근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춘천 시내와 의암호.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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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푸른 물로 가득 차 있는 호수 안쪽으로는 '붕어섬'이나 '중도' 같은 펑퍼짐한 섬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그 섬들이 마치 물 위에 낮게 떠 있는 거대한 바지선들처럼 보인다. 그 풍경이 생각 밖으로 아름답다. 호수 너머로는 사각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춘천 시내가 멀리 내려다보인다.

호수 오른쪽으로는 거대한 시멘트 구조물이 보인다. 북한강을 가로막아 의암호 안에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먹을 수 있는 물을 저장하고 있는 의암댐이다. 때맞춰 모터를 단 작은 배 한 척이 붕어섬 곁을 스치듯 지나간다. 그림이 따로 없다. 산수화를 그리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욕심을 내 볼 만한 풍경이다.

삼악산 등산로에서 내려다본 풍경. 오른쪽으로 의암댐이 보인다.
 삼악산 등산로에서 내려다본 풍경. 오른쪽으로 의암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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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선녀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다

한동안 쇠줄을 잡고 계속 바위 위를 기어오른다. 이제 끝났으려니 하고 고개를 들어보면, 그 앞에 또 거대한 바위가 버티고 서 있는 게 보인다. 정상까지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된다. 그러고 나서 정상에 다다라서야 겨우 허리를 펼 수 있다. 별 탈 없이 무사히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고마울 따름이다.

그런데 바위 위를 기다가 중간에 그만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던지, 정상 부근에 다다라서 아예 길을 잃고 만다.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걷다가 그만 정상을 그대로 지나친다. 다행히 등산로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던지, 얼마 안 가 다시 등산로 표지판을 발견한다. 그때부터는 비교적 순하게 이어지는 하산길이다.

의암호에서 시작한 등산길에 비하자면, 등선폭포를 향해 내려가는 등산길은 아예 산책로나 다름이 없다. 물론 등선폭포 쪽에서 올라온 사람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등선폭포에서 시작되는 등산로 역시 한동안은 목재 계단을 계속 밟아 올라야 하는 탓에, 경우에 따라서 무척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흥국사 근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개 한 마리.
 흥국사 근처,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개 한 마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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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선폭포는 양쪽으로 바위 절벽이 버티고 서 있는 좁은 협곡 사이에 있다. 절벽과 절벽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수가 무척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은 날이 가뭄 탓에 등선폭포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등선폭포 주변에는 작은 폭포들이 여러 개 있다. 이름만 대략 대여섯 개는 되는 것 같다.

등선폭포 주변에 계곡 물을 담은 아담한 소들이 여러 개 있다. 모양과 크기가 여러 가지다. 잘 찾아보면 하트 모양을 한 소도 볼 수 있다. 소들은 대부분 한 사람이 들어가 앉기에 알맞은 크기다. 그중에 '선녀탕' 이름이 붙은 것도 있다. 그 소에도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선녀와 나무꾼'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등선폭포에는 또 효심 깊은 처녀가 선녀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도 있다. 오랜 가뭄에 폭포수마저 말랐을 때, 그 처녀가 간절한 기도를 올리자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등선폭포로 다시 물이 흘렀다. 처녀는 폭포 앞에서 100일 동안 정성을 다한 기도를 올렸고, 그 덕에 어머니 병도 고쳤다는 이야기다.

그 후에 처녀가 선녀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 걸 보니, 아마도 100일 기도 끝에 생명을 다한 모양이다. 하늘을 움직이는 일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과 몸을 아끼지 않고 사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다. 요즘 날이 가물어도 너무 가물었다. 어쩌면 지금이 바로 그 처녀의 환생이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오랜 가뭄으로 물줄기가 가늘어진 등선폭포.
 오랜 가뭄으로 물줄기가 가늘어진 등선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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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발로 걷는 게 오히려 편안한 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삼악산을 오를 때는 무슨 유격훈련이라도 받으러 온 기분이었다. 그런데 산을 내려오면서부터는 바위 위를 기어오르는 일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처음에 쇠줄을 잡을 때는 한순간이라도 빨리 이 고행이 끝나고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길이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그랬던 것이 정상을 넘어서 드디어 쇠줄을 잡아야 하는 고행에서 벗어났을 때는 이제 쇠줄을 잡는 일처럼 익숙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다시 쇠줄을 잡아야만 안심하고 등산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고 보니, '고행'이 곧 '고생'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두 발로 걸어 다닐 때는 네 발로 걷는 건 생각도 못 했다. 그런데 네 발로 걸어야만 하는 상황을 맞고 보니, 오히려 두 발로 걷는 게 더 위태롭다. 악산이라고 무조건 겁낼 게 아니다. 악산에서는 네 발로 걷는 게 당연하다. 때로는 온몸을 다 사용해야만 한다. 네 발로 걸어야만 편안한 산, 그게 삼악산이다.

등선폭포로 내려가는 길에 나타나는 협곡.
 등선폭포로 내려가는 길에 나타나는 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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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악산을 오르는 데는 무엇보다 '장갑'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맨손이 더 편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이 뜨거운 여름에는 만용이 될 수 있다. 바위가 나타나는 곳에서는 대부분 쇠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그놈의 쇠줄이 보통 뜨거운 게 아니다. 맨손으로는 잡기 힘들 수도 있으니, 장갑을 끼는 게 바람직하다.

물은 충분히 가져가는 게 좋다. 땀을 많이 흘리는 만큼 수분을 자주 보충해 주어야 한다. 가뭄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산속 계곡 물도 빠르게 말라가고 있다. 산속에서 물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등선폭포 아래 등산로 입구에 차와 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의암호 쪽엔 달랑 매표소만 있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태그:#삼악산, #등선폭포, #의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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