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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람들은 나를 '직장인 모험가'라고 부른다. '직장인'이면서 '모험가'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를까. 대부분 '글쎄…'라면서 고개를 갸웃거린다. 언뜻 보기에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모험을 하러 가는 곳은 사막과 오지다. 사막은 단지 뜨겁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타들어 간다거나 살을 녹인다는 감정을 얹어야 그나마 표현했다 싶어진다. 또 사막 하면 실과 바늘을 연결지어 생각하듯 낙타가 있는 고독하고 여유로운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낙타보다 전갈이나 불개미떼를 만나기가 훨씬 더 쉽다.

"사막에 왜 가세요?" 누군가 묻는다면...

사막은 단지 뜨겁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 2010년 사하라사막 260km 레이스에서 사막은 단지 뜨겁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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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의 광풍인 할라스가 불어대면 몸을 가누기 조차 힘들다. 그런 곳에 대체 왜 가느냐고 묻는다. 달리러 간다. 그것도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러 간다. 나 같은 사람을 '사막레이서' 또는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 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더 마음에 든다.

흥미진진한 만화 영화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13년째 세계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횡단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내가 엄청난 체력을 가진 줄 안다. 그러다 막상 나를 만나면 너무나 평범한 외모와 얌전하기 그지없는 인상에 놀란다.

웃을 수 있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 2012년 그랜드캐니언 271km 레이스에서 웃을 수 있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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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가 공무원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란다. 내 직장은 서울 강북구청이고, 주택과에서 재건축 관련한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선을 넘나드는 오지 모험가와 공무원이라는 이미지가 얼른 겹쳐지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런데 나는 일도 꽤 열심히 하는 공무원이다. 동료들이 부러워하는 '대한민국 청백봉사상'도 탔으니 근거 없는 자랑은 아닐 게다. 이 말을 하는 건, 내가 원래부터 모험가 기질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걸 밝히기 위해서다. 그저 평범한 가장이고 보통의 직장인이다.

나는 원래부터 모험가가 아니었다.
▲ 2007년 청백봉사상 시상식장(백범기념관)에서 나는 원래부터 모험가가 아니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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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막을 횡단한 것은 마흔 즈음이었다. 남자 나이 마흔은 심상치 않은 시기다. 나는 고위직에 오른 것도 아니고, 재산도 모으지 못했다. 사실 공무원이 재산을 많이 모았다면 그게 정상은 아닐 것이다.

집을 장만하는 갓보다 가족의 생계와 녀석들 교육비 충당에 더 치중해야 했다. 집값은 정신없이 뛰었고 나는 집을 여전히 장만하지 못했다. 그러니 내 재테크 실력은 완벽하게 낙제점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아무것도 부러운 게 없다. 10년 이상 거침없이 사막과 오지를 달려왔기 때문이다.

경상남도보다 넓은 우유니사막은 한참을 달려도 매 그 자리었다.
▲ 2014년 우유니사막 171km 레이스에서 경상남도보다 넓은 우유니사막은 한참을 달려도 매 그 자리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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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적지 않은 경비에 위험까지 무릅쓰며 그 고생을 하느냐고 묻는다. 편안하고 안락한 크루즈 여행 같은 게 좋지 않으냐고 말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미쳐서 그러는 거지 뭐, 허허허" 하고 웃어넘긴다.

물론 틀린 대답은 아니지만 정확한 답변도 아니다. 사람들이 내게 이런 어정쩡한 대답을 듣고 싶어 물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내게 묻듯이 나도 내 자신에게 물어야 했다. '왜, 왜 나는 사막에 가는 걸까?'라고.

나에게 있어 한계는 넘어서라고 존재하는 경계일 뿐이다.
▲ 2011년 호주 아웃백 530km 레이스에서 나에게 있어 한계는 넘어서라고 존재하는 경계일 뿐이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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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껏 도전을 계속해온 사막과 오지에서의 레이스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의 상황에 자신을 내던지는 일이다. 독하디 독한 자신과의 싸움이다. 시각장애인과 나를 끈으로 연결하고 그의 눈이 돼 달리기도 했다. 이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을 뛰어넘는 궁극의 도전이었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좋은 기록을 내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극한에서 나는 서울의 일상에서는 만나기 힘들었던 내 영혼을 봤다. 내 영혼이 눈에 보이면 그 안의 자아를 있는 그대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다녀오고 나면 또 다른 사막과 오지를 찾는다. 있는 그대로의 벌거벗은 자아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다. 탈출이라고 해도 좋다. 도피라고 깎아내려도 상관없다.

"이대로 죽어도 후회 없다"

나는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충직한 낙타가 되었다.
▲ 2005년 고비사막 253km 레이스에서 나는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충직한 낙타가 되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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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진 한 장을 보여주고 싶다. 사막의 밤을 담은 사진이다. 반짝이는 별이 보이는가? 밤이 깊어 가면 사막에 있는 사람은 손에 잡힐 듯 쏟아지는 수많은 별 무리에 묻혀 하나의 점이 된다.

나는 묵직한 배낭을 짊어지고 땀과 모래로 뒤범벅이 된 채 잠시 우두커니 서서 하늘을 보곤 한다. 자동차 소리도, 컴퓨터 팬 돌아가는 소리도 심지어 새 소리조차 없는 사막은 진공 상태처럼 조용하다. 거기서 나는 블랙홀에 빠지듯 우주라는 새로운 차원을 경험한다. 이런 밤하늘을 느낄 때, 나는 이대로 죽어도 후회 없다는 생각을 한다.

별무리에 갇혀 대자연과 하나 되면 외로울 틈이 없다.
▲ 2006년 아타카마사막 252km 레이스에서 별무리에 갇혀 대자연과 하나 되면 외로울 틈이 없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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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사막과 오지를 넘나들었지만 나는 아직도 그곳에 갈 때마다 아내와 사무실 눈치를 살피는 소심한 남편이고 직장인이다. 그렇지만 사막의 모래폭풍을 가르며 뛸 때의 나는 절대로 소심한 사람이 아니다.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던져지면 소심했던 내 모습은 사라지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남자 중의 남자가 된다. '빅듄'이라고 불리는 엄청나게 큰 모래산의 능선을 달리면서 나는 스스로 매우 강한 사람임을 확인하곤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 위에 당당히 서 있기 때문이다.

사막을 달릴 때 나는 스스로 무척 강한 사람임을 확인한다.
▲ 8박10일간 530km 레이스 후 피니쉬라인 앞에서 사막을 달릴 때 나는 스스로 무척 강한 사람임을 확인한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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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먹여 살리는 일 말고는 내 인생 아무것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한번 저질러보라고 말하고 싶다. 과거에 학업 때문에, 취업 때문에, 가족의 생계 때문에 뒤로 밀어뒀던 일들, 이런 저런 핑계로 애써 외면해야 했던 일이 분명 있을 것이다.

굳이 나처럼 사막을 찾아가는 일이 아니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가보고 싶은 열망'을 현실로 끌어내는 일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앞만 보고 살아가길 요구한다. 그때 '나는 그렇게 하기 싫다'고 선언한다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십중팔구 미쳤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한때 들었던 '미쳤다'는 말이 즐겁게 기억될 만큼, 후회 없는 인생이 펼쳐진다는 걸 말이다.

살아남은 전사들은 더욱 강하게 정상을 향해 치고 올랐다.
▲ 사하라의 빅듄(Big Dune) 살아남은 전사들은 더욱 강하게 정상을 향해 치고 올랐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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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직장인모험가, #김경수, #사막, #오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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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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