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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일 <조선일보>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연평해전> 관련 카드뉴스

3일 <조선일보> 공식 페이스북에 올라온 <연평해전> 관련 카드뉴스 ⓒ 조선일보 페이스북


"카메라는 불행한 일들과 그들이 잊혀지는 것에 대한 무기이다."

<조선일보>가 무려 독일의 거장 감독 빔 벤더스의 명언을 소환했다. 영화 <연평해전>을 위해서다. <조선일보>는 2일 자사 페이스북에 올린 카드뉴스를 통해 <연평해전>을 평가하지 않는 평론가들을 질타하고 나섰다. 빔 벤더스의 명언은, 그러니까 불행한 우리 역사인 제2연평해전을 기록한 영화를 왜 평가하지 않느냐는 준엄한 꾸짖음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 뉴스의 제목은 심지어 ''변호인'은 되고, '연평해전'은 안 된다?'였다.

<조선일보>는 이 카드뉴스에서 <연평해전>에 관해 네이버 전문가 평점을 예로 들었다. "영화가 아닌 예비군 안보교육"이란 단평 하나만이 올라왔다며, 이에 반해 <변호인>은 15명의 전문가가 평을 올렸다며 투덜댄다. 그리고는 전문가들이 "정치적"이라서 피하는 <연평해전>을 본 52%가 20대이고, "다큐멘터리 느낌이 들 정도로 담백했다"는 제2연평해전 당시 초등학생이었다는 어느 관객의 평도 잊지 않고 곁들였다. 

<조선일보>는 지난 1일 이 같은 취지가 담긴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될 연평해전'이란 제목의 칼럼 '한현우의 팝컬쳐'를 프리미엄조선에 게재하기도 했다. SNS에서 논쟁을 일으킨 카드뉴스는 한현우 기자의 칼럼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연평해전>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조선일보>의 행보는 이미 영화기사로는 이례적으로 개봉 첫날 극장 스케치 기사를 내보낼 때 예견된 일이었다.

누가 영화를 정치적으로 몰고 가는가. 또 누가 영화를 정치상업적으로 이용하는가. <연평해전>의 개봉 직전과 직후, 보수언론, 종편, 일간베스트(아래 일베)라는 삼각편대가 보여준 행태를 보면 이에 대한 답이 나온다. 지난 <국제시장> 논란에서 한층 더 진일보했다는 측면에서 우려를 자아내기에도 충분하다.

<연평해전> 밀어주기가 문제적인 이유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의 한 장면 ⓒ ㈜로제타 시네마


YTN 역시 <연평해전>에 주목 또 주목했다. 개봉일 하루 전인 6월 24일 김학순 감독을 스튜디오로 초대해 인터뷰했다. 대개 이런 인터뷰는 영화가 흥행가도에 오른 뒤 진행되기 마련이다. YTN은 <연평해전>의 개봉일과 일일 박스오피스를 차지한 6월 24일과 25일 양일간 다각도로 숱한 기사를 쏟아냈다. 6월 29일 13주기 추도식에 맞춰 정치권의 행보 역시 영화와 연결지었다.  

한데, 공교롭게도 YTN의 조준희 현 사장은 기업은행 은행장 출신이다. 기업은행은 <연평해전> 제작비 80여 억 원 중 30억 원을 투자했다고 알려졌다. <명량>이나 <국제시장>의 소액투자와는 달리 투자주관사로 나섰다. 연평해전 통장을 출시하고 1+1 티켓 이벤트 등 마케팅 활동도 열심이었다. YTN의 <연평해전> '올인'이 석연치 않아 보이는 이유다. 

<TV조선>의 활약(?) 역시 대동소이하다. 개봉일부터 영화에 주목한 <TV조선>은 개봉일 박스오피스 1위부터 이틀째 1위, 100만 돌파 코앞, 100만 돌파 등등 하루가 멀게 <연평해전>의 흥행 소식을 전했다.

<동아일보>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영화 개봉일에 맞춰 '6·25와 연평해전 이후 우리 안보의식 얼마나 달라졌나'라는 사설을 내보냈던 <동아일보>. 이어 <연평해전>을 관람했다는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두고 지난 1일 '문재인, '연평해전' 보고도 DJ 칭송할 생각 나던가'란 사설로 DJ의 제2연평해전 관련 대응을 비판했다.  

"영화 '연평해전'을 관람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그제 "제2연평해전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켜낸 값진 승리의 해전이었다"고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중략) 그러나 "김대중(DJ) 정부는 북의 도발에 단호한 응징을 하면서도 전면전으로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칭송한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햇볕정책'을 추구한 DJ 정부의 교전수칙은 북한 경비정이 먼저 사격해야 우리 측에서 대응 사격을 한다는 것이다. 여섯 용사가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적의 공격을 극심한 긴장감 속에서 대비하다 희생된 것도 이 때문이다. 국군 통수권자였던 DJ는 제2연평해전 다음 날 일본으로 날아가 월드컵 축구 결승전을 관람했고, DJ 정부는 당시 군인연금법에 전사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적과 싸우다 산화한 영웅들을 전사자로 예우하지 않았다.

뒤늦게나마 정치권에서 순직 처리된 참수리 용사들을 전사자로 격상하자고 나온 것은 다행이지만 DJ와 같은 당 대표가 DJ 대북정책의 희생자들에게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제2연평해전 리더십'을 격찬하다니 기가 막힌다."

일베에 '떡밥' 주는 보수언론

<동아일보>의 이러한 사설은 단편적인 몇 가지 사실로 당시 상황을 호도하는 편에 가깝다. 의견이 분분한 김대중 정부의 제2연평해전 관련 대응은 그리 간단하게 규정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잘 알려지다시피, 김대중 대통령의 월드컵 경기 관람은 이미 예정돼 있던 한일 정상의 개폐막식 교차 참석과 정상회담의 일환이었다. 당시 청와대와 김대중 대통령은 제2연평해전의 승리에도 불구하고 한일월드컵 폐막식과 정상회담에 불참한다면 한반도 안보위기를 만천하에 알리게 된다는 인식 하에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던 것이다. 당시 각 언론보도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연평해전>이나 보수언론이 거론하는 교전규칙 역시 다르지 않다.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교전규칙은 김영삼 정부 당시 과거 유엔군 산하에서 만든 작전예규의 하위 개념인 합참예규에 4대 규칙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당시 보수언론은 연일 DJ의 햇볕정책이 안보를 흔들었고 제2연평해전의 피해를 키웠다고 주장해왔다. 선제공격을 불허한 4대 수칙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일부에선 김대중 정부 하에서 교전 규칙이 변경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전사자 발생 시 영결식 참여 또한 대통령이 불참하고 각 군 참모총장이 영결식을 주도하는 관례를 따른 것이다. 오히려 국방장관과 총리 등 해군참모총장의 상급자들이 사전조문을 마쳤고, 김대중 대통령 역시 한일정상회담 직후인 2002년 7월 2일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 중인 부상자들을 방문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표가 언급한 "제2연평해전 리더십"은 이렇게 북한의 도발에도 향후 도발 가능성을 배제시킨 채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월드컵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한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풀이될 수 있다. 

문제는 <동아일보>와 같은 이러한 일방적인 논조가 영화 <연평해전>의 입장과 더불어 일베 사용자들과 같은 이들의 비판 논리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베의 경우 DJ와 호남 혐오를 자기정체성을 드러내는 주 논리로 깔아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개봉 전부터 논란과 응원을 거듭하며 <연평해전>을 '정치적'으로 만들었던 일베에게 <동아일보>의 사설부터 각종 보수매체의 영화 띄우기야말로 논리와 동질의식을 만들어주는 좋은 '떡밥' 아니겠는가.

진영 논리로 좌지우지되는 영화들, 착잡하다 

다시 영화를 둘러싼 환경으로 돌아와 보자. "왜 평론가들이 평가하지 않느냐"는 <조선일보>의 투덜거림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사안이다. 지난 <국제시장> 논란에서, 기나긴 기사에서 발췌된 문장만으로 종편을 비롯한 각종 (보수) 매체에서 융단폭격을 받고 논란의 중심에 섰던 허지웅의 예가 그러하다. 이미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진영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안에 대해 "영화적으로 후졌다"고 발언할 수 있는 지평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영화 <소수의견>의 한 장면. ⓒ 시네마서비스


그 와중에, <소수의견>이 마주친 현실은 더욱 볼썽사납다. 같은 날 개봉한 두 영화는 개봉 전부터 "<연평해전> VS <소수의견>"의 프레임이 만들어졌다. 두 영화 관계자들 모두 원치 않았던 진영논리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지난 6월 25일자 <중앙일보>의 '영화 '연평해전'과 '소수의견' 동시 개봉에 바란다'는 사설 역시 엇비슷했다.

"동시 개봉된 두 영화는 이미 지지자들로부터 적극적인 응원전을 끌어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입장에 따른 무조건적 지지와 배척, 영화를 매개로 한 소모적인 진영 다툼의 기미까지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두 영화가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제각각 담아내고 있음을 믿는다. 또한 동시 개봉이 우리 사회의 보다 성숙한 관람풍토를 끌어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영화는 영화로 바라보는 성숙한 관객의 힘, 또 영화가 정치 진영 간 갈등을 증폭하기보다 상대 진영의 이해를 돕는 '문화의 힘'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사실 이러한 진영논리는 여느 영화들보다 언론들이 빨리 움직인 결과다. 그리고, 그러한 '진영논리'는 수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종편이 영향력을 불리고 있는 현재는 더더욱 그렇다. 과연 <연평해전>을 둘러싼 작금의 환경이 "영화는 영화로 바라보는 성숙한 관객의 힘"만을 의지할 수 있는 환경인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개봉과 함께 앞다퉈 정치인들이 달려가고, 그걸 언론들이 받아쓴다. 해군을 비롯해 군이 적극적으로 제작에 참여했기에 군인들의 단체관람도 쇄도한다. 한국전쟁 65주기와 제2연평해전 13주기를 맞아 학교와 기업, 지자체들의 단체관람도 이어지고 있다. <연평해전>의 배급사가 '메르스 사태'를 이유로 들어 영화계의 상도덕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봉일을 2주 연기한 것이야말로 '신의 한수'였다고 해야 할까.

그러는 사이, <연평해전>은 2일까지 223만을 돌파하며 흥행 순항 중이다.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개봉 첫 주말 스크린 1000개를 넘어서기까지 했다. 정작 평론가들이 호평 중인 <소수의견>은 그의 절반도 되지 않는 300개 대의 스크린 수를 확보하는 데 그쳤고, 그나마도 유지하기가 버거웠다. 엇비슷하게 2013년 촬영을 시작해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영화의 흥행결과가 이렇게 극명하게 갈리는 중이다.  

"사진이 진실이라면, 영화는 초당 24번의 진실이다."

프랑스의 거장 장 뤽 고다르의 말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수사 아래, 같은 투자배급사인 'NEW'가 배급한 <변호인>과 <연평해전>을 비교하는 <조선일보>에게 돌려주고픈 말이다. 과연 <연평해전>이 그 진실을 제대로 조명하고 있는지, 또 그렇게 '정치'하게 기록하고 있는지, 또 우리 매체 환경은 그러한 영화들을 개별의 위치나 완성도에 맞게 제대로 대접하고 있는지 말이다.

갈수록 영화와 작품 외에 '진영논리'의 힘이 세지고 있다. 자본의 힘이 좌지우지하는 영화계에 이제는 그 '좌우'의 '진영논리'가 더 짙게, 더 힘세게 드리워지는 중이다. <연평해전>을 둘러싼 일련의 분위기에 착잡함을 금할 수 없는 이유다.

○ 편집ㅣ홍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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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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