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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발언했다. <조선일보> 2004년 6월 15일자.
▲ "계급장 떼고 붙자" 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고 발언했다. <조선일보> 2004년 6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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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

이는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원내대표가 제안한 것으로 논쟁 상대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었다. 이 말은 2004년 '올해의 말'로 선정될 정도로 회자되기도 했다.

김 전 대표가 보도자료를 낸 때는 2004년 6월 14일. 며칠 전 노 대통령이 민주노동당 의원들과 만찬 자리에서 "(아파트 분양 원가 관련) 원가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은 내 생각을 모르고, 또 내가 정책에 참여하지 않으니까 원가공개를 공약했는데 다시 상의하자"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서 "이는 결론이 어디로 나더라도 개혁의 후퇴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다"고 말했다. 김 전 원내대표는 이에 격렬한 반박을 제기한 것이다.

김 전 원내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계급장 떼고'라는 표현은 모든 것을 열어놓고 본격적으로 토론하자는 뜻"이라면서 "그 표현이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청와대가 누르는 모양이 되면 토론이 어렵다는 의미에서 사용했다"라고 말했다. 그 발언에 대해 즉각적인 '사과'나 발언취소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당시 '친노'로 알려진 유시민 의원이 청와대를 대신해 김 전 원내대표 발언을 비판했다. 유 의원은 "뭐 계급장 떼고 하자 말자 하느냐. 김근태 의원은 차기 주자고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높은 분들이 김근태 정동영처럼 별 세 개씩 단 분들 아니냐"고 반문한 뒤 "그분들이 계급장 떼고 나처럼 밑에 있는 사람들과 진지하게 논의해 보자는 말로 들리던데…"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아닌 자신과 논쟁하자는 제안으로 해석되는 발언이었다.

김 전 원내대표 발언에 대해 당시 청와대에서는 "허심탄회한 대화를 하자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밝혔을 뿐, 유감표명이나 대통령의 심기에 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보수언론에서는 신이 났다. <조선일보>는 '열린우리, 치고받고 계급장 떼고…' 제목의 기사를 통해 "노 대통령이 '권위 파괴형' 정치 행태로 성공을 거두고 여당 내 대선주자들이 윗사람을 치받으며 성장한 사실과, 초선 의원들의 강한 개성 등이 계급장 없는 분위기를 여권 내의 문화로 굳혀 가는 양상이다"라고 보도했다. 

'계급장 떼라'는 여당 지도부에 대한 노무현 대응방식

김 전 대표 발언이 있은 뒤 5일의 시간이 흐른 2004년 6월 19일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으로 알려진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김 전 대표를 만났다. 두 사람은 반주를 곁들이며 저녁을 함께했다. '계급장' 발언 이후 불편한 관계를 어느 정도 정리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김 전 대표측은 "계급장 발언 등 민감한 사안은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04년 6월 30일. 노무현 대통령은 개각을 단행한다. 신임 복지부 장관에 이름을 올린 인물은 '계급장'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김근태. 그는 복지부장관 내정자 신분으로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도 "(장관으로서) 대통령과 대등하게 토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체급'이 다른 장관임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당시 이해찬 총리가 운동권 후배란 점 때문에 두 사람의 상-하 관계에 언론의 질문이 나왔다. "이해찬 총리가 운동권 후배인데"라는 질문에 대한 김근태 복지부장관 내정자의 답변은 이러했다.

"사적으로야 노 대통령도 후배지. 노 대통령은 운동권 주변이었고 나는 중심이고."

김근태의 '계급장 발언'이 당시 노 대통령에게 굉장한 충격을 줬다는 사실은, 2년 세월이 지나서 확인된다. 2006년 8월 6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노 대통령이 오찬회동을 했다.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 김근태였다.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지지율이 낮았고, 인사와 관련된 문제로 오찬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 파문(논문 표절과 중복게재 의혹 등으로 교육부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던 일)과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기용을 둘러싼 열린우리당 내 비판 여론에 대해 인사권이 고유권한임을 강조하며 "밖에서 (불만을 터뜨리고) 그러지 말고 (대통령과) 협상하자"고 제안한다. 이어서 노 대통령은 "(2년 전) 김 의장은 나에게 계급장 떼고 맞붙자고 했지요"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계급장 발언'으로 김근태는 손해보지 않았다. 2년 후 대통령이 그 발언으로 섭섭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그는 발언 직후 복지부장관으로 입각했고, 그 발언에 따라 불이익을 당했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 

이 이야기는 참여정부에서 있었던 이야기였다.

운명의 7월 6일, 유승민은 물러날까?

국민들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 7월 4일자
▲ 여론은 유승민편 국민들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사퇴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겨레> 7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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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대통령에 대한 김근태 전 장관의 '계급장 발언'은 지난 2004년에 있었다. 그로부터 11년의 세월이 흘렀다. 정권이 두 번 바뀌었고, 지금은 박근혜 정부 3년차다. 현직 여당 원내대표에 대해 박 대통령이 격정적인 분노를 쏟아낸 지 2주가 지났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허리를 90도로 굽혔다. 몇 번이고 대통령에게 사과를 할 마음이 있음을 밝혔다. 유 대표는 "대통령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대통령이 마음을 열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5일 박 대통령은 너무나 유명해진 '배신의 정치' 운운하면서 '여당의 원내사령탑'에 대한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그날 이후 새누리당은 의원총회를 열었고, 사실상 유 원내대표에 대한 재신임 입장을 확인했지만 '친박' 지도부는 '책임을 지라'며 거세게 유 대표를 몰아세웠다. 그의 거취문제로 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욕설'이 오가는 등 파행을 겪기도 했다.

청와대와 친박근혜계 의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6일 "(오늘 거취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밝혔다. (오른쪽부터) 서청원 최고위원,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김태호 최고위원이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와 친박근혜계 의원들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6일 "(오늘 거취에 대해)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밝혔다. (오른쪽부터) 서청원 최고위원,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 김태호 최고위원이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굳은 표정으로 참석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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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유승민 대표가 누구처럼 '계급장 떼자'라는 말이라도 했던가. 박 대통령의 격한 반응을 보면 그 이상의 참기 어려운 공격이 있었던가. 표면적인 이유는 '국회법 개정안'이었다. 그런데 이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자유투표로 결정한 사안이었다. 유 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묻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국회법 개정안'은 박 대통령의 '유승민 제거'의 명분이었을 뿐, 실제 대통령의 분노는 '유승민의 자기정치'에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청와대 비서관들을 일컬어 '청와대 얼라들'이라고 표현한 것이나,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2주간 당-청 관계는 올 스톱됐다. 국무회의에서 '유승민 아웃' 발언 이후 박 대통령은 침묵했고, 여당은 '유승민 거취' 얘기 외 다른 주제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7월 6일 국회로 반송된 '국회법 개정안'은 재상정될 예정이다. 새누리당은 당론으로 '표결불참'을 확정했다. 야당에서는 "표결불참은 헌법기관 포기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분노를 확인한 여당이 표결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여당 불참으로 '국회법 개정안'이 자동 폐기 수순을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친박'은 이날을 '유승민 사퇴'의 디데이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유 대표가 이날 사퇴할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유승민 대표 본인뿐 아니라, 새누리당 다수인 '비박' 국회의원, 야당, 심지어 유승민의 지역구 주민들까지 그의 원내대표직 사퇴를 반대하고 있다. 이 같은 여론은 외면한 채 '대통령 뜻 관철'을 반복하는 '친박의 주장에서는 이성과 논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이야기는 박근혜 정부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이야기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김근태, #계급장, #노무현, #박근혜, #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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