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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제주도 여행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주로 가는 곳만 가는 것 같고, 제주의 속 살은 제대로 못 느끼고 오는 것 같습니다. 비록 30일 뿐이었지만 제주를 가깝게 느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사실, 노력했다고는 하나 그저 마을을 걷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등 소소한 일상을 보낸 것이 다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소한 일상에서 제주 여행의 참맛을 알게 됐습니다. 제주는 천천히 오래도록 보면 더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 기자 말

제주에서 한 달을 지내고 왔다고 말하자 이런 질문이 되돌아온다.

"제주에 한 달이나 볼 게 있어요?"

나는 살짝 눈에 힘을 주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못 보고 온 게 많아요."

지난 5월 26일 나는 제주도행 비행기를 탔다. 돌아오는 날도 정해져 있었다. 6월 24일. 30일간의 제주도 여행이었다. 딱 30일이다.

딱 30일 만이라도 제주에 머물고 싶었다. 사실 앞 문장을 나는 이렇게 적고 싶었다. 딱 30일 만이라도 제주에서 '살고' 싶었다고. 하지만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살다'라는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제주에 자신의 삶을 건 사람만이 제주에 살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고작 30일간 그곳에 있었던 나는 그저 제주에 잠시 머문 것뿐이다.

제주에 머물다

제주 어느 바닷가
 제주 어느 바닷가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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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머무는 동안에는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했다. 게스트하우스는 처음이었다. 낯 모르는 이와 숨결을 나누며 자는 것도 처음이었다. 낯 모르던 이와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이와 헤어지는 것이 이리도 아쉬운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안 것도 처음이었다. 차라리 30일 내내 한 곳에서만 머물 걸 그랬다. 매번 게스트하우스를 떠날 때마다 코끝에 힘을 바짝 줘야 했으니까.

30일 동안 열 곳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다. 게스트하우스마다 각기 다른 6인실, 4인실, 2인실, 1인실에서 잤다. 게스트하우스는 해안가 쪽에 위치한 곳 위주로 선택했다(첫 번째 게스트하우스만 제외). 대부분이 방에서 나와 몇 분 걸으면 바다에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바다에 쉽게 닿을 수 있는 게 내겐 무엇보다 중요했다. 제주도를 간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바다가 있기 때문이었으니까.

나는 감성적이지 못한 성격이다. 대체로 뭘 봐도 시큰둥하다. 어렸을 적 아빠는 주말마다 우리를 데리고 이 나라 여기저기를 여행하셨다. 듣기로는 꽤 많은 곳을 여행했던 것 같고, 나도 여기저기 실려 다녔던 것은 기억나는데, 어딜 갔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빠는 나랑 그 시절의 여행을 이야기 할 때면 분통을 터트리신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이걸 봐도 시큰둥, 저걸 봐도 시큰둥 하던 애가 뭘 기억할 수 있을까.

그런데 유독 바다만은 좋았다. 바다 앞에선 시큰둥 할 수 없었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나는 누구보다 감성적인 아이가 됐고, 또 한껏 감상에 빠져 내 삶을 저 하늘 끝까지 띄워 놓곤 했다. 바다는 특히 커서 좋았다. 너무 커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보이지 않으니 애써 그 끝에 다다를 필요도 없지 않은가. 끝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만 해도 그렇게 마음이 놓일 수가 없었다.

'뻥~'. 바다 앞에만 서면 그래서 이런 소리가 온 몸에서 퍼져나왔다. 온몸의 긴장과 두려움이 '뻥~' 하고 바다 저 반대편 끝으로 사라지는 소리였다.

그간, 며칠이고 몇십 일이고 계속 바다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다. 그러다 이번에 기회가 왔다. 마침 나는 긴장과 두려움이란 두꺼운 옷을 입고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중이었고, 또 막 달리기를 시작한 터였다. 달리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난다. 대부분은 기존에 하던 생각의 반복이거나 연장이지만, 아주 가끔은 뜬금없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제주도로의 한달 여행도 달리던 중에 뜬금 없이 떠오른 생각 중 하나였다.

'제주도에 가서 한 달간 있어보자. 바다를 보며 달려보자. 계속 걸어보자. 그러다보면 내 삶에 대해서도 어떤 결론이 나겠지.'

무계획 제주도 여행

용눈이 오름 분화구 속에서
 용눈이 오름 분화구 속에서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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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비행기와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떠나기 얼마 전에야 부모님께 여행 소식을 알렸고, 언니에겐 24인치 캐리어를 빌렸다. 출장을 제외하고 이렇게 오래 여행을 떠나는 것은 처음이어서 짐을 어떻게 싸야 할지 고민이 됐다. 결국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물건을 넣었다 뺐다 해 엄마의 혀를 차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꼭 가야 할 어딘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이미 제주도의 웬만한 곳은 다 가본 터였고(떠나기 전엔 이렇게 생각했다), 그 중 특별히 또 가보고 싶은 곳도 없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지루하다 싶으면 게스트하우스에 어디 갈 만한 곳이 없는지 물어볼 작정이었다.

차도 빌리지 않고 걷거나 버스를 타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는 버스를 탈 일도 거의 없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여행을 시작하자 거의 매일 버스를 탔던 것 같다. 내 다리로는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었고, 나중에는 이곳 저곳 가고 싶은 곳도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 중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면 '오름'을 알게 됐다는 사실이다. 제주도에는 360개가 넘는 오름이 있다. 오름이란 화산 분출물로 만들어진 기생 화산을 말한다. 그냥 쉽게 '작은 산'이라 생각해도 된다. 제주도 지도를 펴 보면 ○○오름이나 △△봉이라 이름 붙여진 곳들이 꽤 많이 보일 텐데, 이게 다 오름이다. 유명한 관광지인 성산 일출봉도 제주도 오름 중 하나다.

몇 군데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중 용눈이 오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시 한 번 꼭 오르고 싶었는데 결국은 못 오른 것이 너무나 아쉽다. '오름의 여왕'이라 불리는 다랑쉬 오름을 오르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로 아쉽다. 다음 제주도 여행에선 이 두 오름을 꼭 먼저 오를 예정이다.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술도 자주 마셨다. 걷기도 많이 걸었고, 버스 기사 아저씨와도 거의 매일 '밀당'을 했다. 비를 맞는 건 결코 낭만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고, 너무 피곤해 침대에 누워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 종일 한 적도 있었다. 중국인 친구도 사귀었고, 한국인 친구도 사귀었다. 나이 때문에 골치가 아픈 적도 있었고, 처음으로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나름 목숨을 걸고 달려 본 적도 있었다. 이모든 걸 나는 혼자 했다.

이제야 나는 왜 여행 좀 한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여행은 혼자 해야 하는 거라고 말하는지를 알겠다. 혼자가 아니었다면, 나는 내가 경험한 것의 반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곳에 그렇게 오래 멈춰서 있지도 못했을 것이고, 하늘을, 바다를,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렇게 오래 바라보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혼자여서, 참 좋았던 여행이었다. 물론, 조금 외롭기도 했지만.


태그:#제주도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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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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