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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24일 오후 8시 28분]

사건 당사자들과 진행한 인터뷰와 7일에 열린 두 기자회견(복지관 측, 피해 당사자 측)에서 배포된 보도자료를 종합해 이 사건을 재구성했다. 모든 대화와 증언은 보도자료와 인터뷰 내용 중에서 인용했고, SNS 게재 글은 당사자의 허락을 구해 옮겨 왔다. - 기자말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 버려야겠네."

이 '농담' 한 마디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부천시 원종동에 있는 원종종합사회복지관(아래 복지관)에서 벌어진 일이다.

지난 4월에 벌어진 이 사건은 석 달이 지난 지금껏 해결되지 않았다. 현재 임신 5개월째인 직원은 의사에게서 "유산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들었다. '농담'을 한 부장은 지금 병원에 입원해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 임신한 직원과 가까이 지내던 계약직 직원은 6월 말에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지난 7일에는 계약직 직원과 복지관 관장이 각각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사건의 시작

부천시 원종동에 있는 원종종합사회복지관
 부천시 원종동에 있는 원종종합사회복지관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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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은 지난 4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 A씨는 임신했다는 사실을 직장 동료들에게 알렸다. 마침 복지관에는 항암 치료차 휴가 중인 부장이 와 있었다. A씨의 임신 소식을 접한 부장은 A씨가 없는 곳에서 직원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래는 지난 6일 복지관 측 보도 자료에 근거한 내용이다.

"부장님 저도 둘째 가질 거예요." (직원 1)
"애기 낳은 지 얼마 안 됐는데, 그러면 책상 뺀다." (부장)
"그러면 부장님 휴직 끝날 때까지 부장님 책상도 온전하지 못할 걸요?" (직원 1)
"그래도 저는 둘째 낳을 거예요." (직원 2)
"일할 사람이 없는데, 앞으로는 직원 뽑을 때 가임기 여성 뽑지 말아야겠네.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 버려야겠네." (부장)

부장과 이야기를 나눈 직원 중 한 명은 다음 날(4월 18일) A씨에게 부장의 '농담'을 전했다. A씨는 그날도 복지관이 참여한 행사장에 들른 부장에게 인사하러 갔고, A씨가 부장에게 한 첫 마디는 "죄송해요"였다. 부장은 A씨에게, 복지관의 예산 사정이 좋지 않아 A씨가 육아 휴직에 들어가도 사람을 더 뽑을 수 없으니 동료 직원들에게 잘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부장과 대화를 마친 뒤 창백해진 얼굴로 사무실로 돌아왔다(부장이 18일 A씨에게 "가임기 여성 다 잘라 버릴 거다"라는 이야기를 직접 했는지는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A씨는 동료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부장의 '농담'은 둘째 치고,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고 있는 상급자에게 "죄송해요"라고 이야기한 자신이 무척 수치스럽다고 했다. 지난해 8월부터 1년 계약직으로 근무 중인 사회복지사 B씨는 이 일을 복지관 관장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A씨가 속한 팀의 팀장은 '직급 체계'라는 것이 있으니 부장에게 먼저 보고해야 한다고 만류했다.

이 때 A씨는 '농담'의 당사자인 부장을 다시 만나는 것이 두려우니 관장에게 직접 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결국 B씨가 A씨와 상의하여 메일을 작성해 관장에게 보냈고 관장은 메일을 통해 사건의 내용을 알게 됐다.

"사과하고 화해했다" vs. "사과가 아니었다"

7월 7일 오전 11시 부천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
 7월 7일 오전 11시 부천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기자회견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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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 오후 5시 부천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원종종합사회복지관의 기자회견 (사진 : 원종종합사회복지관)
 7월 7일 오후 5시 부천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원종종합사회복지관의 기자회견 (사진 : 원종종합사회복지관)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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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7월이 될 때까지 복지관에서는 관장의 주도로 여러 차례 직원 전체 회의가 열리게 된다. 회의에서 관장은 "농담으로라도 인격에 해를 끼치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부장과 A씨를 화해시키려 노력했고 실제로 부장과 A씨는 따로 만나기도 했다.

복지관측에 따르면 5월 18일 직원 전체회의에서 이번 상황을 공유하고, 이날 오후 부장과 A씨가 사과하고 화해하는 자리를 가졌으며, A씨는 자기 문제는 끝났다고 5월 19일 해당팀에서 공유했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지난 7일 기자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부장의 사과가 "너의 오해로 벌어진 일이지만 네가 기분 나쁘다면 사과하겠다"는 식이었다며 진정한 사과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A씨는 "임신 초기라 심신이 지쳐 있는 상황이어서 그런 사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며 "이 상황을 어떻게든 빨리 마무리 짓고 싶었고, 본인의 생각이 완고한 부장과 복지관에 대항할 자신이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복지관 측은 "부장과 A씨가 만나서 화해했고 이후 서로를 위로하는 카카오톡 메시지도 주고받았다. 게다가 A씨는 이후 관장과 함께한 사석에서 B씨의 개입을 후회한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임산부도 가해자다?

문제는 다시 불거졌다. 지난 6월 1일 B씨는 직원 카톡방에 '이번 일이 끝난 게 맞냐며,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본인이 새로운 피해자가 되었다'며 전체회의에서 발언기회를 달라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어 6월 8일 열린 직원 전체회의에서 피해자, 가해자 논쟁이 벌어졌다. 아래는 이날 벌어진 논쟁을 복지관 측 보도자료와 A·B씨 측 보도자료를 참고해 정리한 내용이다.

B씨 : "(부장을 '가해자'라 부르며)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가해자다."
간부 1 : "피해를 줘서 가해자가 된다면 나도 임신했을 때 (육아 휴직으로) 다른 직원들에게 피해를 줬으니 나도 가해자였다. 그렇게 따지면 임산부도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가해자다."
부장 : "직급 체계를 무시하고 관장을 만나면 우리 조직이 어떻게 운영되겠나. 팀원들이 부장에게 사과를 요구하는데 내가 어떻게 부장 노릇을 하겠나."
관장 : "이번 사건은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인지 판단할 수 없다. B씨가 가해자일 수도 있다. B씨도 우리 조직에 피해를 입혔으니 가해자다."
A씨 : "조직을 이렇게 힘들게 해서 죄송하다." 

회의 이후 부장은 "임산부도 가해자" 발언을 한 간부와 A씨를 만나게 해 사과하게 했고 A씨도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후 A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 사실을 알렸고, B씨도 페이스북에 복지관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관장은 A, B씨에게 페이스북에 글 올리는 것을 자제해 줄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A, B씨는 SNS가 자신들의 상황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며 잇달아 글을 올렸다.

6월 15일에는 A씨가 복지관 측에 요구하는 사항들을 다섯 가지로 정리해 SNS에 올렸다. ▲ 복지관 측의 성차별과 인권 침해 공식 인정 및 입장 표명 ▲ B씨에 대한 불이익 행위 중단 ▲ 재발 방지 조치 및 성평등 교육 ▲ 전체 회의를 통한 당사자들의 공개 사과 ▲ A씨를 위한 특별휴가 제공.

관장은 6월 18일 직원 전체 회의에서 A씨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부장을 비롯한 간부들도 다시 A씨에게 사과했다. 그러나 A씨는 7월 10일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복지관 측이 성차별적 인권 침해는 인정하지 않았고 전체 회의는 다섯 가지 요구 사항 중 '당사자들의 공식적인 사과'만 이행하는 자리였다"며 "사과는 받겠다고 했지만 그 자리에서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6월 21일 자신의 SNS에 "당사자들 사과의 자리는 있었지만 (복지관의) 공식적인 입장표명은 없었다. 22일까지 공식입장을 문서로 전달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복지관 측은 7월 7일 기자회견에서 "18일 회의에서 A씨가 사건 당사자들의 사과와 관장의 요구 사항 수용을 모두 받아들였다"며 "A씨가 SNS를 통해 복지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없었다는 글을 올렸을 때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A씨가 6월 21일 SNS에 올린 글.
 A씨가 6월 21일 SNS에 올린 글.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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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복지관 측에 '공식 입장'을 문서로 전달해 줄 것을 SNS로 거듭 요청했지만, A씨에게 전달된 문서에는 '이미 전체 회의에서 공식 입장을 표명했고 A씨가 수용했으니 더 이상의 입장 표명은 없다'고 적혀 있었다.

복지관 측은 "A씨는 복지관의 공식입장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이 없다, 페이스북과 관장의 카톡을 통해 전달했으며, 관장도 카톡을 통해 A씨에게 입장을 전달했을 뿐 복지관의 문서로 전달한 적은 없다"고 반박했다.

'재계약 불가' 통보

지난 6월 말 복지관은 오는 7월 31일자로 계약이 만료되는 B씨에게 '재계약 불가' 통보를 우편으로 보냈다. A씨는 자신의 SNS에 "B씨에 대한 재계약 불가 통보는 이번 사건에 대한 보복이고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 7일, A·B씨 측과 복지관 측은 부천시청 브리핑룸에서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밝혔다.

건강 문제로 A씨가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B씨는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통해 복지관에 다음과 같이 요구했다. ▲ 성차별 및 인권침해에 대한 공식 인정과 공개 사과 ▲ 자신에 대한 보복성 부당 해고 철회.

복지관 측은 오후 5시 기자회견을 통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 성차별 및 인권 침해 여부는 외부 기관에 조사 의뢰 예정 ▲ 2015년 복지관 보조금 동결과 호봉 상승 및 인건비 가이드라인 상승으로 B씨와 재계약할 예산 부족.

쟁점 정리

복지관 측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4월 17일 부장은 직원들에게 '농담'으로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 버린다"고 이야기했지만 다음날 A씨를 만나선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 부장과 A씨는 나중에 화해했으며, 그 말은 '농담'이었을 뿐 상처 줄 의도는 없었다. ▲ 6월 18일 전체회의를 통해 당사자들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었고 A씨도 사과를 받아들였다. ▲ B씨에 대한 계약해지는 계약 기간 만료와 인건비 예산 부족 때문이다.

그러나 A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4월 18일 부장은 A씨를 만나 "가임기 여성은 다 잘라 버린다"는 말을 했다. ▲ 6월 18일에 있었던 사과는 복지관의 공식적인 사과가 아니었다. ▲ 복지관은 성차별과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 B씨에 대한 계약해지는 이번 사건에 대한 보복이고 사업의 연속성과 연결지어 볼 때 부당해고다.

따라서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사건의 진행 과정에서 성차별과 인권침해가 있었는가? 둘째, 6월 18일 전체 회의에서 있었던 사과는 복지관의 '공식적' 사과였는가? 셋째, B씨에 대한 계약해지에는 계약 기간 만료와 인건비 부족 외에 보복성의 성격이 있는가?

첫 번째 쟁점을 살펴보자. 복지관 측은 7월 7일 기자회견을 통해 "부장 및 직원들의 진술과 A·B씨의 진술이 서로 사실 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성차별 및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복지관 측은 성차별 및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여서울복지시민연대와 경기복지시민연대 등 외부 복지 단체들에 조사를 의뢰할 예정이다. 반면 A·B씨 측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두 번째 쟁점에선 A씨와 복지관 측의 주장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복지관 측은 "충분히 사과했고 A씨도 사과를 받아들였으며 18일 회의가 공식적인 자리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A씨는 "복지관이 성차별과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았다"며 복지관 측의 사과를 부정한다. 즉 두 번째 쟁점은 첫 번째 쟁점인 '성차별 및 인권침해의 여부'가 판가름 나면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다.

세 번째 쟁점은 A씨의 사건과 B씨의 사건을 하나로 보느냐, 별개로 보느냐의 문제다. 복지관 측은 "B씨의 계약 기간은 1년 전부터 예정된 것이었고 A씨의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A씨와 B씨는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통보는 A씨의 편에 섰다는 이유로 B씨에게 가해진 보복성 부당해고나 다름이 없다"고 주장한다. 7월 31일자로 계약 기간이 만료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설사 계약해지에 다른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복지관 측의 조치는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대로 법정까지?

현재 A·B씨 측은 부천원종종합사회복지관의성차별·인권침해해결을위한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복지관 측과 본격적으로 맞설 채비를 마쳤다. 복지관 측은 '복지관의 명예를 훼손하는 폭로를 계속할 경우 B씨에게 반드시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외부 기관 조사 의뢰나 법정 싸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복지관 스스로 내부에서 성차별과 인권 침해가 있었는지 판단하고 지역 주민을 설득할 수 있는 공신력을 하루 빨리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물론 복지관이 이번 사건을 어떤 방식으로 슬기롭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다.


태그:#부천시, #원종동, #원종종합사회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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