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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호기심이 낳은 낙서
▲ 벽에 쓴 낙서 성에 대한 호기심이 낳은 낙서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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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령이) 춘향의 허리를 안고 상하의복을 모두 벗겨 병풍 위에다 걸떠리고 도련님도 옷을 벗고 꼭 끼고 누웠으니 좋을 호 자가 절로 된다. 베개가 위로 솟구치고 이불이 발치로 벗어지고 침병이 뒤쳐질 제 뜬눈으로 날을 새니 동방이 히번이 밝아온다."

판소리 <춘향가>(김연수 창본 '동초제') 사설의 한 대목이다. 단옷날 광한루에서 그네 뛰는 춘향을 보고 춘정에 겨웠던 이몽룡이 춘향의 집을 찾아가 다짜고짜 첫날밤을 치르는 장면을 묘사한 부분이다(뒤에 이어지는 '사랑가' 대목은 더하다). 이 같은 엄청난 사실을 월매는 날이 밝아서야 겨우 알아차린다. 이몽룡과 성춘향이 제대로 '사고'를 친 것이다.

당시 이몽룡과 성춘향은 이팔청춘 그러니까 요즘으로 치면 열대여섯 살, 학교를 다녔다면 중학생 또래였다. 만약, 중학생 이몽룡과 성춘향이 저렇듯 용감하고 거침없이 사랑을 나누었다면 둘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십중팔구는 둘 다 문제아로 낙인 찍혀 학교와 집에서 찬밥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을 터다.

중학생 성관계(이성 또는 동성) 시작 연령이 2007년 11.4세(남 11.1세, 여 12.1세)에서 2014년 10.7세(남 10.6세, 여 10.9세)로 남녀 모두 전반적으로 빨라졌다는 청소년 건강 행태 조사 결과 자료는 어른들이 기함하기에 충분하다. 용돈 많고 성적 좋은 중학생의 성관계 비율이 높다는 논문 자료도 놀랄 만하기는 마찬가지다.

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초등학생도 휴대폰을 지니게 되면서 '손 안의 야동 세상'이 가능해졌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터치 몇 번으로 야동 세상으로 날아갈 수 있는 호시절(?)이 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버젓이 길 위에 나뒹구는 온갖 성인물이 유혹하는 세상이지만 '야동'과 'ㅅㅅ('섹스'의 첫 자음들)'이 중학생들에게 그리 만만하고 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게 또 현실이기도 하다.

세상이야 뭐라고 하든 말든 이몽룡과 성춘향의 좋을 호 자를 몹시도 부러워하고 있을 중학생들이 펼쳐 놓는 몇 개의 장면을 통해 그들의 '성'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보자(음란 마귀가 깃든 관음증은 정중히 사양한다).

'야동'과 '옆집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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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집 누나.avi .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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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결혼식장에 입장하기 30초 전의 신부 같은 열다섯 살 남학생 민준이. 청춘의 봄을 맞으며 성에 대한 호기심이 자꾸만 마구마구 발동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보았다는 야동은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그에게 소중한 친구 같은 존재였다.

공부도 잘하는 편이어서 학교에서는 나름 모범생으로 인정 받는다. 그런 민준이의 교실 책상 위에 한 줄 붉은 글씨로 써놓은 문장이 있었다. '태어나서 야동이 제일 쉬웠어요'. 공부도 운동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부족함 없는 민준이였는데 그 중 제일 쉬운 게 '야동'이었다는 깜찍하고 솔직한 고백을 책상 위에 큼지막하게 펼쳐놓은 것이다. 너무 솔직하게 까발려 놓아 오히려 그 문장에서는 아무런 욕망 같은 게 없어 싱겁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오래된 책의 제목을 패러디해 '야동'으로 변주한 녀석의 기발한 발상 뒤집기 한 판이 절로 웃음이 나게 했다. 야동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신뢰이거나 반대로 야동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리기 위한 폭로성 자기 경고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대놓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왜 그런 문장을, 하필 책상 위에, 다른 색깔도 아닌 빨간 펜으로,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등의 샘솟는 궁금증은 덮어두었다. 물어봐서 될 일도 아니거니와 야동이 제일 쉬웠다는 건 한편으로는 이미 그 세계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현철이다. 수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책상 네 개를 붙여 한 덩어리의 모둠을 만들도록 했다. 모둠 활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현철이네가 모둠을 만들기 위해 책상 머리의 방향을 맞춰 자리를 잡는 사이 언뜻 보이는 게 있었다. 그걸 보려고 다가가는 사이 책상은 반듯한 모둠 형태를 갖췄는데 이럴 수가! 현철이의 책상 왼쪽 귀퉁이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글씨로 '옆집 누나.avi'라고 가지런하게 써 놓았다.

"어느 날 나는 친구집엘 놀러 갔는데 친구는 없고 친구 누나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라는 내용이 등장하는 황지우 시인의 시가 얼핏 스쳐갔다. 그리고는 이내 현철이의 내밀한 세계 한켠을 들여다 본 것 같아 '이 녀석도 참….'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없는 누나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이 자극적인 성적 판타지로 드러났을 '옆집 누나.avi'가 현철이에게는 특별(?)했던가 보다. 책상 위에 '옆집 누나'를 모셔다 놓을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시험 끝 '야동' 시작

"집에 가서 야동 볼 거예요."

1학기 1차 지필 평가(중간고사를 요즘은 그렇게 부른다) 마지막 날 종례를 마친 무렵이었다. 저마다 시험을 끝낸 해방감에 환호성을 지르는 학생들의 모습이 시원해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학교에서 1분 1초라도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가방을 챙겨 교실 문을 나서는 규태에게 시험도 끝났는데 오늘 뭐 할 거냐고 슬쩍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이 그랬다.

"야구 동영상?"
"에이~"

시험 끝났으니 '야동'을 보겠다고? 갑자기 치고 들어온 녀석의 너무도 당당한 말에 허를 찔린 듯 살짝 당황했다. 얼른 아무렇지 않은 듯 '야구 동영상'을 말하는 거냐고 되물었더니 다 아는 처지에 왜 이러냐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거기에 웃음을 보태더니 "에이~(선생님도 참)" 하는 단말마를 남기고 녀석은 황급히 사라져 버렸다. 정신 없는 사이 뭔가에 홀린 듯한 느낌.

그렇게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 그들과 연결된 SNS를 열었다. 공교롭게 거기에도 규태와 한 마음 한 뜻인 학생들의 발언들이 날것 그대로 올라와 있었다. 휘동이가 올린 "야동 보고 싶다"와 노규가 쓴 "ㅅㅅ하고 싶다"가 차례로 타임라인을 흔들고 있었다.

이미 그 아래에는 친구들이 달아 놓은 수십여 개의 댓글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휘동이와 노규의 글에 우호적인 반응 나아가 동참(?)하고자 하는 댓글과 이건 좀 아니니 삭제하라는 반응들이 나란히 팽팽했다. 'ㅅㅅ'를 두고 '세수'하고 싶다는 것이냐, 혹은 '살살'하고 싶다는 것이냐 하고 묻는 시답잖은 농담들도 간간이 들어 있어 웃음을 머금게 했다.

'야동'과 'ㅅㅅ' 사이에서 그들은 격렬하게 논쟁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수업 시간보다 치열했고 적극적이었으며 진지했다. 남녀를 구분할 필요도 없었거니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이 정성이라면 서울대 수석 입학은 물론 하버드 수석 졸업도 가능할 듯했다. 그들은 그렇게 그들 나름대로 세상에서 허락되지 않은 금기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 중이었다.

그러나 SNS에서 그토록 치열하게 토론하던 학생들도 막상 현실로 돌아오면 '야동'이나 'ㅅㅅ' 앞에서 머뭇거리고 망설이게 마련이다. 그 때문에 억압된 욕망은 역설적이게도 더욱 크게 욕망을 자극한다. 이들은 어쩌자고 열다섯 살이 되어서 이런 욕망의 지옥에 빠져 있는 것일까.

스스로 욕망의 화신이 되어 시험 끝 야동 시작을 당당하게 선언했던 규태가 집에 가서 정말, 무사히, 야동 관람에 성공했는지는 지금도 가끔씩 궁금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가 야동 관람 후기를 알려준 바가 없으니 자세한 뒷이야기는 알 길이 없다. 시작과 끝이 한결같지 않은 녀석이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할 밖에. 음란 마귀를 물리칠 수 있는 부적이라도 하나 얻어다 줘야 하는 걸까.

야동은 질렸다, 실전

중학생들이 종종 신체를 이용해 낙서를 한다는 이야기를 지난 연재(관련 기사 : ①'나도 좀 살자'... 중딩 예은이 낙서에 '철렁'②"외로워서 벽에 입술로..." 중2 여중생의 '고독')에서 한 바가 있다. '성'과 관련한 것도 예외가 아니다. 수업을 진행하다가 앞자리에 앉은 남학생의 손등에 써놓은 글씨를 보게 됐다. 뭔가 싶어서 자세히 봤더니 "실전⑲ 첫 경험 야동은 질렸다, 실전!"이라고 사인펜으로 휘갈겨 쓴 듯한 문장이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이 저지른 만행이라고 볼멘소리로 일러바치는 게 아닌가. 지난 쉬는 시간에 여학생이 남학생의 손등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그런 문장을 휘갈겨 썼다는 이야기이다.

여학생이라고 해서 성에 대한 에너지를 숨기거나 소극적으로 드러내는 건 아니었다.
▲ . 여학생이라고 해서 성에 대한 에너지를 숨기거나 소극적으로 드러내는 건 아니었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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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에게도 물었다.

"왜 그랬어요?"
"그냥 장난으로..."
"실전 어쩌고 하는 게 장난...?"
"네, 그냥 장난..."

아무리 장난이라 하더라도 여학생이 남학생의 손등에 야동 말고 실전 운운하는 낙서를 하고 남학생은 그걸 어쩌지 못하고 손등을 내어준 사건. 장난으로 이해하고 웃고 넘어가기에는 정도와 수위가 좀 넘어선 것으로 보였다. 여학생이라고 해서 성에 대한 에너지를 숨기거나 소극적으로 드러내는 건 아니었다.

"장난이라 하더라도 남의 몸에 이런 낙서를 하는 건 성폭력 같은 범죄가 될 수도 있어요. 이런 일은 앞으로 절대로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을 마치자 여학생도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느꼈는지 이내 그런 장난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내놓았다. 남학생에게도 낙서를 지우도록 일러주었다. 야동보다 실전을 원했던 여학생의 장난 같은 욕망은 그렇게 사그라졌다.

이들 말고도 피임 기구를 휴대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난 호기도 있고, 웬만한 ⑲금 도서는 다 읽어봤다는, 그랬더니 내용이 거의 모두 비슷하다고 자랑스럽게 고백했던 ⑲금 도서 전문가 상준, 조루와 발기 부전이 있는 남자는 남자 친구가 될 수 없다고 학습지에 써 놓았던 희연이와 수미, SNS로 여학생들에게 음란물을 보냈다가 신고를 당해서 경찰 조사까지 받았던 선철, 교과서나 사물함 혹은 책상 등 아무 곳에나 sex(y)라고 써 놓은 것들, 성기 모양을 직접 그려놓은 낙서들까지 열다섯 살들의 '성'과 관련한 생각과 욕망은 무성하고 무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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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과 관련한 온갖 흔적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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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성은 숨기고 가두고 위장하는 어른들의 그것보다 차라리 솔직하고 깔끔하다. 솟구치는 호기심이 부추기는 순수한 욕망인 탓이다. 그러나 이미 알 만큼 다 안다. 그래서 제대로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이다. 열다섯 살이기 때문에 모르는 척해야 한다는 어른과 사회의 암묵적 요구와 강요는 이들의 성이 건강하게 성장할 기회를 박탈하고 말았다. 여전한 순결 강요와 금지 중심의 성교육은 이들에게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 되었다.

열다섯 살 중학생들의 성에 대한 호기심은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이니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될 일이다. 눈만 돌리면 어디든 야동과 섹스는 차고 넘친다. 이런 현실을 두고 차단하고 막으면 된다는 생각은 단절과 불통의 화법이다.

온라인에 무차별적으로 떠도는 음란물의 무분별한 유통을 막고 미성년자들이 온갖 유해 정보에 노출되는 것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지난 4월 개정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을 중학생들도 '딸통법'이라 비웃으며 한껏 야유와 조롱을 보냈던 이유 역시 거기에 있었다. 야동을 보기만 해도 처벌한다는 소문이 무성했으니 중학생들까지도 화를 낼 이유는 충분했다.

할아버지의 음란물 탐색이라는 재미로 '야동 순재'라는 말이 유행어였던 때가 있었다. 유행은 지났지만 아직도 '야동 순재'는 건재하다. '야동 순재'에는 어떤 숨김도 거짓도 없었다. 솔직히 욕망을 드러냄으로써 더 이상 음란하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좀 더 공개적이고 솔직하게 중학생들이 성을 배우면서 성장할 수 있었으면 싶다. '야한 동영상'이 '야동'으로 '섹스'가 'ㅅㅅ'로 은폐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일, 폭력적이고 왜곡된 성 의식이 생기지 않도록 유쾌하고 솔직하게 가르쳐 주는 게 어른들의 몫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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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어나서 야동이 제일 쉬웠어요 .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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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조혜지 기자

덧붙이는 글 | 기사 속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태그:#중2병, #중이다, #야동,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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