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엄마, 약 산 거 봤어?"

친정 언니 전화다.

"어, 봤어."
"내가 어제 다락방에 몰래 올라가서 봤는데 약이 장난 아니게 많아. 이름 적어 놨으니까 네가 인터넷으로 검색 좀 해봐."

인터넷으로 약명을 검색했다. 그런데 식약처 홈페이지가 떡 하니 나온다. 이게 뭐지? 식약처에서 판매정지 처분 한 약이란다. 도대체 판매정지 된 약을 엄마는 어디서 샀을까? 엄마가 매일 어딘가를 다니는 거 같았다. 아무래도 거기서 약을 산 거 같다. 약장사들은 주로 엄마와 같은 노인들을 노린다. 엄마는 무릎이 아프지만, 병원은 잘 가지 않는다. 수술하라고 할까 무서워서다.

언니에게 전화했다. 언니는 내 말에 깜짝 놀라며 말을 한다.

"내가 영수증도 찾아봤어. 그 약값이 얼만지 알아? 자그마치 100만 원도 넘어. 내가 기가 막혀서."

언니는 판매처에 찾아가서 진상을 떨든가 해야 그 사람들이 엄마한테 약을 그만 팔지 않겠냐 했다. 판매처를 찾아가도 어쩌면 이미 이사를 했을지 모른다. 만일 이사를 안 하였더라도 그 사람들이 순순히 돈을 줄까? 무엇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최우선은 엄마가 그 약을 안 드시게 하는 거다.

'건강체험관'에 간 엄마... "그건 식품이라 부작용 없대"

영화 <약장수>에서 '홍보관'에 간 엄마들
 영화 <약장수>에서 '홍보관'에 간 엄마들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 (주)대명문화공장

관련사진보기


친정에 가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엄마가 먹는 약 내가 어떤 약인지 찾아봤더니 식약처에서 판매정지를 시킨 약이래. 그러니까 그 약은 안 먹는 게 좋을 거 같아."

엄마는 입을 앙 다물더니 아무 말이 없다. 조금 침묵이 흐르고 입을 연다.

"그건 약이 아니라니까? 식품이야! 그러니까 부작용이 없어."
"엄마, 걔들 말을 다 믿으면 안 돼. 식약처 홈페이지에 이 약 이름이 있다니까? 내가 엄마한테 거짓말하겠어?"
"알았어. 안 먹을게."
"엄마 그 약은 아까워도 버려. 그래야 안 먹지."
"알았다니까. 이제 고만 말 해."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다. 대답하는 걸 보니 내 말을 안 들어줄 거 같다. 더 이상 내가 할 일은 없는 듯싶었다. 그 후로 친정에 가면 다락방에 몰래 올라가 보았다. 다행히 나는 그 약을 친정에서 더 보지 못했다.

그리고 한참 뒤 친정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엔 무슨 전기요가 안방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다. 아이고 이건 또 뭐야? 하얀 육각형의 돌이 전기요에 촘촘히 박혀 있다. 보기만 해도 전기요 가격이 엄청 비싸 보인다. 이건 또 얼말까? 못해도 수백만 원은 하겠네.

전기요를 들이기 전부터 이상한 낌새가 있었다. 친정으로 오전에 전화하면 통화가 안 되었다. 내가 짬을 내서 친정에 가겠다 하면 엄마는 몇 시에 올지 시간을 알려 달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오후에 오라고 하셨다.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엄마 요즘 매일 어디 다녀?" 엄마는 머뭇머뭇하시더니 대답하신다.

"저기 중앙시장 있는데 가면 맥반석 전기요 체험하는 데가 있어. 엄마처럼 무릎 아픈 할머니가 다녔는데 좋아졌대. 매일 다니면 효과 본다고."
"엄마, 거기서 뭐 사라고 안 해?"
"엄마는 안 사. 걱정하지 마. 그리고 엄마가 살 돈이 어디 있니? 그리고 거기 다니는 게 병원에 누워 있는 거보다 훨씬 좋아. 엄마 나이에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어떤 사람들은 거기서 밥도 먹고 그러는데 엄마는 안 먹어. 거기 밥에 뭐 좋은 재료 썼겠니?"

엄마 말을 들으니 틀린 말도 아닌 듯싶었다.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 것보다는 매일 규칙적으로 다닐 곳이 있으니 건강에도 도움이 될 거 같았다. 너무 비싼 물건을 사지 않는다면 말이다. 엄마는 그곳에서 건강용품을 체험할 뿐 아니라 건강에 관한 강의도 들었다. 엄마 입에서 건강 상식이 줄줄 흘러나왔다.

"요산이 부족하면 ○○이 안 좋아진다. 미네랄이 풍부한 음식을 먹어야... 비타민E가 부족하면..."

엄마는 집요하게 결석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엄마의 집요함이 낯설어 보였다. 알고 보니 매일 출석 도장을 받으면 무언가 선물을 준다고 했다. 다락방에 쌓여 있는 비누와 휴지도 그렇게 받은 것인 듯싶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번잡한 곳 다니길 싫어했던 엄마가 그런 곳에 다니는 것이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엄마가 체험관에 매일 가는 건 적적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자식으로 나는 어떤가? 내 자식새끼들 챙기기 바빠 친정에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 그러니 나보다 매일 얼굴 보면서 살갑게 대해주는 그곳 사람들이 더 고마울 것이다. 자식도 사회도 해주지 못하는 일을 건강체험관에서 대신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후, 친정 안방을 떡하고 차지한 전기요를 발견했다. 그 뒤로 맥반석 벨트, 방석, 훈증기... 친정 살림이 하나하나 늘어 갔다. 엄마의 몸이 좋아진다는데 내가 드린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닌데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평생 아껴 모은 돈 들고 '체험관'으로...

영화 <약장수>. 홍보관에 간 옥님(이주실 분)
 영화 <약장수>. 홍보관에 간 옥님(이주실 분)
ⓒ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 (주)대명문화공장

관련사진보기


친정 엄마는 진짜 검소하다. 1932년생으로 힘들었던 시절을 보냈으니 절약이 몸에 밸 수밖에 없다. 세탁기 헹굼 물 모아서 변기 물로 재활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겨울엔 가스비 아까워 보일러를 자주 틀지 못한다. 그런 양반이 아껴 모은 돈을 이런 데 쓰다니 말이 되나? 먹을 거라도 잘 해 먹고 살면서 모은 돈이라면 덜 아깝기라도 하지. 나는 한숨이 나왔다.

저 많은 물건 사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 궁금증이 올라왔다.

'전기요 저건 300만 원 될 거야. 저 훈증기도 100만 원은 되겠지? 방석은 한 20만 원. 벨트도 20만 원. 깔게도 30만 원 다 합치면 아무리 못해도 500만 원은 되겠다. 그 돈을 저 사기꾼들 입에 쏘옥 넣어줬다니. 차라리 나를 주지. 아이 셋인 나한테 500만 원을 주면 요긴하게 쓸 곳이 얼마나 많은데.'

돈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이 머릿속에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순간 '원망'의 마음이 내 속에 깃들었다. 하지만 이내 내 정신이 돌아왔다. 그 돈이 내 돈인가? 엄마가 아끼고 아껴서 모은 '엄마 돈'이다. 그러므로 그 돈을 어디에 쓸지 결정권은 오로지 엄마에게 있다.

내가 친정에 간 날, 엄마가 말했다.

"여기 너도 누워 봐 정말 좋아. 엄마 손발이 차고 배가 잘 아프잖아? 그런데 여기 누워 있으면 정말 좋아져. 엄마 무릎 아픈 것도 좋아졌고."

나도 손발이 차다. 밤에 잠자리에 들라치면 양말을 꼭 찾아서 신어야 잠들 수 있다. 엄마를 닮아서 그렇다. 젊은 내가 그러니 나이 든 엄마는 오죽이나 심할까? 전기요 하나에 수백만 원 들여 산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안 될 것도 없다. 젊은 내가 나이든 엄마의 마음을 몸을 어찌 알겠나?

그리고 한참 뒤 엄마는 체험관에 안 다니신다고 했다.

"요즘은 거기 왜 안 다녀?"
"자꾸 뭐 사라고 하고 그래서. 그냥 아버지랑 산에 다닐게. 필요한 건 이제 집에 있는데 집에서 하면 돼."

언니한테 말을 전하니 언니가 그런다. "거기 사람들이 뻔하지. 물건 안 사는데 가면 잘해 주겠냐? 물건 안 사면 못 다녀. 눈치가 얼마나 빠른데." 그렇게 엄마는 건강체험관 다니는 생활을 끝냈다. 내 마음도 홀가분해졌다.

친정에 전기요를 들여놓은 지 십 년이 지났다. 그 후로 해가 다르게 엄마는 걷는 걸 힘들어하신다. 엄마가 걷는 걸 점점 어려워하시니 내 마음이 변한다. 엄마에게 병원은 무섭고 아픈 몸은 어제와 다르다. 단 하루라도 아프지 않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에 엄마는 또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를 꺼낼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나는 그래도 걸어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를 되뇌일 거다. 이 시기도 지나가면 난 그때가 좋았어 하고 안타까워할 거 같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부모님 뒷모습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