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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와 4박 5일(7월 22일~26일)간 배낭여행을 다녀왔습니다. 15년 전 조카 녀석이 태어날 때, 지금 이 순간이 오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다행히 조카는 무럭무럭 잘 자라 어느새 삼촌만큼 키가 커버렸습니다. 때가 되었으니 꿈을 이루기 위해 떠났습니다. 서울 촌놈과 시골촌 놈이 함께한 배낭여행기입니다. -기자 말-

서울촌놈 조카 녀석과 시골촌놈 삼촌이 4박 5일간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 우리 배낭여행 떠나요 서울촌놈 조카 녀석과 시골촌놈 삼촌이 4박 5일간 배낭여행을 떠났습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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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앞 횡단보도에 조카 녀석이 서 있습니다. 때마침 삼촌을 발견했는지 손을 흔듭니다. 긴장한 낯빛입니다. 얼마나 긴장한 걸까.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것도 모르고 가파른 계단을 두 발로 걸어 오릅니다. 첫 배낭여행이니 어리둥절하겠지. 몇 년 전 기자도 첫 배낭여행을 떠날 때 조카 녀석과 똑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옛일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조카와 배낭여행을 떠납니다. 지난 22일 오전 8시 44분, 부산으로 향하는 열차에 조카 녀석과 함께 올랐습니다. 4박 5일간 <부산-대마도-부산>을 여행할 계획입니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밥부터 먹었습니다. 배가 든든해야 심장 박동 수가 누그러들 것 같았습니다.

기차가 서서히 움직입니다. 조카 녀석은 다시 긴장한 낯빛입니다. 꿈꾸던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기자도 덩달아 가슴이 설렙니다. 두근대는 감정을 애써 감추기 위해 코믹한 표정을 카메라에 담아봅니다. 웃으니 좀 낫습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조카 녀석이 부산여행 일정을 짰습니다. 삼촌만 따라 다니는 여행은 의미 없겠다 싶어 생각해낸 아이디어입니다. 녀석과 하루씩 번갈아가며, 일정을 계획하고 가이드 역할까지 소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돈도 각자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 싶고 먹고 싶은 게 생길 때마다 흥청망청 쓸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녀석은 이 모든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허기진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집니다. 다행히 곧 부산역에 도착했습니다. 조카 녀석은 기차여행의 절반을 '부산에서 가봐야 할 곳'을 찾는 데 썼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게임을 하는 데 썼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잔소리가 목까지 차올랐으나 참았습니다. 여행은 즐거워야 하니까요.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만 말했습니다.

'그래, 하고 싶은 거 맘대로 해보라'

조카의 재발견... "너 원래 이런 녀석이었니?"

첫 배낭여행에 긴장한 낯빛이 역력했던 조카 녀석은 예상 밖으로 쫌생이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해맑은 조카 녀석 첫 배낭여행에 긴장한 낯빛이 역력했던 조카 녀석은 예상 밖으로 쫌생이 기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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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 앞 차이나타운 인근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숙소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금방까지 까불던 조카 녀석이 쥐 죽은 듯 조용합니다. 삼촌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닙니다. 이 녀석이 이렇게 내성적인 아인 줄 몰랐습니다. 늘 천방지축인 모습만 봐왔던 터라 수줍은 소년으로 돌변한 녀석이 영 어색합니다.

묵을 방에 들어서자 '위통을 깐' 외국인이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한편에선 또 다른 외국인이 우리가 잠잘 2층 침대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넉살 좋게 삼촌이 "Hi(하이)"라고 말하자 조카 녀석도 어색한 얼굴로 "Hi(하이)"라며 손을 흔듭니다. 쭈뼛거리는 녀석에게 말했습니다.

"긴장 풀어, 인마. 빨리 짐 풀고 밥 먹으러 가자. 첫 번째 여행지 어디라고 했지?"

외국인 앞이라 긴장한 것일까요? 여행지로 향하는 방법을 까먹은 녀석이 다시 교통법을 찾습니다. 그사이 기자는 말도 안 되는 '콩글리시'와 '보디랭귀지'를 섞어 외국인과 대화를 했습니다. 어이없이 바라보던 조카 녀석이 한 마디 합니다.

"알아듣는 게 신기하네."

외국인에게 되지도 않는 콩글리쉬와 바디랭귀지를 선보이는 삼촌에게 조카녀석이 한마디 했습니다. "알아듣는게 신기하네"
▲ 철없는 삼촌 외국인에게 되지도 않는 콩글리쉬와 바디랭귀지를 선보이는 삼촌에게 조카녀석이 한마디 했습니다. "알아듣는게 신기하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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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촌 덕분에 용기를 얻은 것일까요. 조카 녀석이 독일서 왔다는 외국인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저도 가세해 '조카와 삼촌이 여행 왔다'를 온몸으로 표현했습니다.

조카 녀석은 첫 여행지로 해운대에 위치한 '아쿠아리움'을 선택했습니다. 블로그를 보고 찾아낸 곳입니다. 버스를 탔습니다. 무려 45분이나 달려 해운대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해운대는 이미 여러 차례 가본 적이 있는 곳이라 조카와의 여행에서는 제외한 지역입니다. 숙소를 굳이 부산역에 잡은 이유도 '부산=해운대' 공식을 벗어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데 헛수고가 됐습니다. 또다시 잔소리가 목까지 차오릅니다. 욱하는 감정도 솟아오릅니다. 따지고 보면, 조카 녀석의 잘못도 아닌데 말이죠. 이번엔 늘 혼자서 여행한 기자가 느끼는 바가 큽니다.

입장료를 확인하더니 조카 녀석의 입이 벌어집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흠칫 놀라는 기색입니다. 동전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둔 지폐를 꺼내는 손이 떨립니다. 녀석에게 입장료를 받아 계산하려고 하는데, 카드할인이 된다고 합니다. 금액은 3000원. 그런데 이 녀석 할인받은 금액을 "반띵"하자고 합니다. 거부했습니다. "말도 안 돼"라며 항의합니다. "왜 안돼"라며 받아쳤습니다. 근데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걸핏하면 "3000원 할인"을 거들먹거리며, 그날 하루 기자를 힘들게 했습니다. 참다 한마디 했습니다.

"쫌생이."

거금을 낸 '아쿠아리움'은 기대에 부응하지는 못했습니다. 조카 녀석은 "벌써 돈을 이렇게나 많이 썼어"라고 안절부절할 뿐 도통 수족관 생물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산만하게 그냥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그 놈의 돈 타령'만 해댑니다. 역시, '쫌생이'입니다.

아쿠아리움을 둘러보고 해운대 거리로 나왔습니다. 다음 여행지를 묻자 조카 녀석, 해맑게 웃으며, "생각 안 해봤는데"라고 대답합니다. 정말 웃기는 '짬뽕'입니다. 큰소리 칠 때는 언제고 이제와 "아몰랑"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옛말을 곱씹어봅니다.

"삼촌, 학원 안 가니 정말 좋아" 조카의 여행 소감

광안대교가 내려다보이는 동네 전망대에서 조카 녀석이 내뱉은 한마디에 가습이 아프고 아련했습니다.
▲ 부산야경 광안대교가 내려다보이는 동네 전망대에서 조카 녀석이 내뱉은 한마디에 가습이 아프고 아련했습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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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녀석에게 10만 원을 '대출'해줬습니다. 이튿날 대마도 여행 경비가 예상보다 더 필요할 듯했습니다. 조카 녀석은 "빚지기 싫다"고 거부했습니다. 혹시 모르니 비상금으로 가지고 있으라니 그제야 돈을 받아듭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경제관념이 철저한(?) 놈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카 녀석과 의논 끝, 깡통시장에 가기로 했습니다. 야시장 구경도 하고 끼니도 해결하기로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도착한 평일 야시장은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한창 클 나이 때라 그런지 조카 녀석은 먹을거리를 보자마자 신이 났습니다. 편의상 계산은 번갈아가면서 하기로 하고 야시장을 누볐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 말귀는 잘 알아듣지 못하더니 계산 순서는 기막히게 기억합니다. 수학을 가장 싫어한다는 놈이 누가 몇백 원 더 냈는지 계산도 척척입니다. 쫌생이인 줄 알았는데, "삼촌, 내가 낼 차례야"라며, 선뜻 나서기도 합니다. 기념으로 팔찌를 사주자 "고마워. 이거 매일 하고 다녀야지"라며, 돈 쓴 사람도 기분 좋게 해줍니다. 이런 면이 있는지 그동안은 미처 몰랐습니다. 녀석이 새삼 다시 보입니다.

하루의 마무리는 숙소 주인이 추천한 '이 동네 전망대'에서 끝마쳤습니다. 광안대교의 야경이 "살아 있는" 곳이었습니다. 혼자만 알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이었습니다. 멍하니 야경을 바로 보는데, 조카 녀석이 한참 수다를 떱니다. 마치 이 적막한 고요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처럼. 아직 조카 녀석은 심심한 것은 못 참는 나이니까요.

여행 첫날, 하루를 정리하며, 조카 녀석을 떠올려봤습니다. 한없이 해맑은 녀석입니다. 그리고 보니 투정 한 번 부린 적이 없습니다. 삼촌을 배려하는 마음도 컸습니다. 그동안 깨닫지 못한 것들입니다. 조카 녀석에게 첫 여행의 소감을 물었습니다. 대답이 아프면서 아련합니다.

"삼촌, 학원 안 가니 정말 좋아. 여기 야경도 너무 좋고. 왠지 모르겠는데, 태안 집(삼촌 고향 집) 생각난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는 조카녀석. 삼촌인 기자도 맞은편에 앉아 만화책을 열독했습니다.
▲ 보수동 헌책방 부산 보수동 헌책방에서 만화책을 읽고 있는 조카녀석. 삼촌인 기자도 맞은편에 앉아 만화책을 열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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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의 일기
일정 : 아쿠아리움->숙소->야시장->보수동 책방->김민부전망대

아쿠아리움은 크고 비싼 거에 비해 딱히 볼 것이 없던거 같다. 같은 곳만 도는데 2명이 4만 7000원이나 하다니...뭐 그래도 여러 종류의 동물을 볼 수 있어서 괜찮은 거 같았다.

깡통야시장은 먹을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최고로 좋은 곳이었던거 같다. 씨앗호떡, 케밥, 떡볶이, 타코야끼...타코야끼는 여러 번 먹어봤지만 씨앗호떡과 케밥은 처음 먹는 것이기에 기대를 하고 먹었다. 씨앗호떡은 맛이 있었지만 내 기대를 채우지는 못했다. 기대가 너무 컸던게 잘못이여... 하지만 케밥이 내 기대를 꽉꽉 채워줬다. 케밥은 정말 맛있었다. 터키에서는 길거리음식으로 팔다니...부럽다.

보수동 책방은 옛날 책들이 정말로 많았다. 나도 옛날에 보던 만화책에 빠지고 삼촌도 어렸을 적에 보던 책에 심취했다. 영업이 거의 끝나갔지만 웃으면서 우리를 반겨주신 책방주인 아저씨, 아주머니도 떠오른다.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슈퍼에서 파는 커피보다 맛있는 것 같았다. 다음에도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다.

김민부전망대는 올라가는 길이 좀 힘들었지만, 전망대에 올라가서는 그 힘든 것을 다 잊어버렸다. 빌딩 사이에 낀 안개들과 광안대교가 보였는데, 우리는 그것을 보고 감탄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정말로 멋있는 곳 같았다. 이곳은 부산에 왔을 때 한 번 더 오고 싶은 곳이다.

오늘의 느낀 점 : 여행의 시작!!! 재미있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태그:#조카와 떠난 배낭여행, #배낭여행, #부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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