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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4일 '총장 선출 종단 개입 사태 해결을 위한 성토대회'에 참석한 500여 명 동국대 학생들이 "종단 개입으로 선출된 총장은 물러나라", "일면, 보광 스님은 사퇴하라"라고 적혀있는 손 피켓을 들고 있다.
▲ '종단 개입 안돼' 손 피켓 든 학생들 지난 6월 4일 '총장 선출 종단 개입 사태 해결을 위한 성토대회'에 참석한 500여 명 동국대 학생들이 "종단 개입으로 선출된 총장은 물러나라", "일면, 보광 스님은 사퇴하라"라고 적혀있는 손 피켓을 들고 있다.
ⓒ 허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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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투쟁이나 하라고 부모님이 너희 낳고 미역국 드신 거 아니다."
"너희 반대쪽에서 사주받고 하는 거 다 안다."
"너희가 열사라고 착각하지 마라.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냐?"

동국대 교수·교직원과 학생들의 대화에서 실제로 오갔던 '흔한 대화'다. 동국대 모 교수로부터 실제 이런 얘기를 들었다는 김아무개 학생(27)은 "나는 그 사람들이 말하는 반대쪽(김희옥 전 총장 측)의 정책에 반대하다가 징계를 받은 적도 있는데, 내가 그들 사주를 받아서 행동한다니 어이가 없었다"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5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대)가 사회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또 다른 뭔가를 포기해야만 했다. 또래 친구들이 벚꽃 구경을 갈 때 이들은 15m 높이 탑에 오르고, 항의 피켓을 들고 종일 서 있어야 했다. 동국대 정상화를 외치는 학생들에게 있어 '사소한 포기'는 이미 많은 걸 포기한 이들에게 '최대한의 포기'였다.

동국대 학부·대학원 총학생회와 일반 학생들로 구성된 '미래를 여는 동국 공동추진위원회(아래 미동추)'는 지난해 12월부터 현재까지 긴 싸움을 하고 있다. '조계종의 동국대 총장 선거 개입 규탄과 논문 표절이 있는 한태식 현 총장(아래 보광 스님)의 사퇴'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동국대 측은 그러나 총장 선출에는 문제가 없다고 일관하고 있다.

약 7개월간 미동추에서 활동해온 학생들은 "총장 퇴진을 위해 이사장실 점거와 고공농성, 삭발식과 3천배 등을 해왔다"며 "분신과 투신을 제외하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본 셈"이라고 말했다. 강의실과 도서관에 있어야 할 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광장으로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 행동에 나선 학생들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고공농성] 45일간 15m 상공에서..."흔들리는 마음, 학생들이 붙잡아줬죠"

최장훈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총장 선거 원천 재실시'를 주장하며 4월 21일 학교내 20m 높이의 조명탑위에 올라갔다. 45일차인 6월 4일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병원에 입원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최장훈 동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총장 선거 원천 재실시'를 주장하며 4월 21일 학교내 20m 높이의 조명탑위에 올라갔다. 45일차인 6월 4일 고공농성을 해제하고 병원에 입원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미래를 여는 동국 공동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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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훈 동국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장은 4월 21일 어두컴컴한 새벽 3시, 절박한 마음으로 광장 내 15m 높이의 조명탑에 올랐다. '현 총장 사퇴, 총장 선거 전면 재실시'를 요구하면서다. 좁디좁은 조명탑에서 친구들 도움으로 숙식을 해결하던 그는 45일이 지난 6월 21일에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그는 함께 응원해준 학우들 덕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람이 많이 불 때는 조명탑이 심하게 흔들려 무서웠지만, 응원 방문을 하는 학생들 덕에 버틸 수 있었어요. 사실 고공농성을 한다고 조계종단과 이사회가 바로 달라질 거라 기대하긴 어려웠죠. 단 적어도 학생들과 시민사회가 문제를 알아주길 바랐어요. 다행히 내려오는 날, 과거에 비해서 많은 학생이 모여 함께 하는 모습에 긴장감이 많이 풀렸어요. 

지금은 방학이라 활동이 좀 뜸하지만, 주위 얘기를 들어보면 학생들은 여전히 조계종의 횡포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어요. 곧 다시 한 번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부담 없는 자리를 만들어낼 계획이에요."

[3000배] 12시간 쉼 없이..."끝나고 나니 팔·다리 온몸이 삐걱댔어요"

최광백 동국대 총학생회장이 6월4일 12시간 동안 '보광스님 사퇴'를 염원하는 3천배를 하고있다.
 최광백 동국대 총학생회장이 6월4일 12시간 동안 '보광스님 사퇴'를 염원하는 3천배를 하고있다.
ⓒ 미래를 여는 동국 공동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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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훈 회장이 고공농성 중이던 5월 27일 오후, 최광백 동국대 총학생회장은 학내 팔정도 불상 앞에서 총장 보광스님의 사퇴를 염원하는 3천배를 시작했다.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2시에 시작된 3천배는 12시간이 걸려서야 끝이 났다. 3천배를 마친 최 회장은 다리에 힘이 풀려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8시간이 넘어서 2천배쯤 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어요. 팔다리가 삐걱대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거든요. 그래도 이 악물고 버텼던 건, 중간에 포기하면 남들에게 '내가 이 문제에 항의한다'는 목소리조차 낼 수 없을 것 같아서예요. 얼굴을 모르는 학생들도 지나가면서 응원해줬어요. 12시간 후 끝나고 옆을 보니, 어느새 음료수 40여 개가 놓여있더라고요."

[삭발식] 한참 멋 부릴 나이 25살, "동국대 정상화 위해 머리 밀었죠"

김건중 동국대학교 부총학생회장이 '보광스님 사퇴'를 외치며 삭발을 하고있다. 200여 명의 학생들이 삭발식에 참석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김건중 동국대학교 부총학생회장이 '보광스님 사퇴'를 외치며 삭발을 하고있다. 200여 명의 학생들이 삭발식에 참석해 눈물바다를 이루었다.
ⓒ 미래를 여는 동국 공동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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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 살 또래 친구들이 한창 옷과 머리에 멋을 부릴 때, 김건중 동국대 부총학생회장은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머리를 밀었다. "현 총장은 종단 개입과 논문 표절로 이미 도덕성을 잃었다"는 이유에서다. '2학기 등록거부'를 결의하는 선포식도 열린 이날 삭발식에는, 학생 200여 명도 참석해 그를 지지했다. 

"처음부터 삭발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근데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미약하지만 머리카락이라도 잘라 결의를 다질 수 있다면... 그렇게 이틀 만에 진행한 삭발식인데,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모여 함께 울어줬어요. 투쟁이 계속 이어지고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한다면, 삭발이든 뭐든 저는 더 할 수 있습니다."

[1인 시위] 4학년 '취준생'이지만... "이대로 취직하면 부끄러울 것 같았어요"

5월 25일 석가탄신일, 미래를 여는 동국 공동추진위원회가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위 두사진은 김예은 학생이 피켓시위를 하고 100배를 하고 있는 사진이다. 세번째 사진은 7월11일 총장 취임식날 성토대회에서 김예은 학생이 발언하고 있는 사진이다.
 5월 25일 석가탄신일, 미래를 여는 동국 공동추진위원회가 조계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위 두사진은 김예은 학생이 피켓시위를 하고 100배를 하고 있는 사진이다. 세번째 사진은 7월11일 총장 취임식날 성토대회에서 김예은 학생이 발언하고 있는 사진이다.
ⓒ 허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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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졸업반, 취준생'... 피켓을 들고 1인 시위 중인 한 여학생에게 붙어있는 수식어다. 종단에 항의하며 1인 시위에 나선 김예은 학생(동국대 영어영문학 4학년)은 시위 도중 주변인들에게 "취업은 어떻게 할 거냐"란 말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가 나선 것은 "모른 척 이대로 취업하면, 스스로 부끄러울 것 같아서"다.

"제가 신입생일 때 학과 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졌는데, 당시 선배들이 정말 많은 걸 포기하고 학교에 저항해 싸우는 걸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제가 졸업반이던 때 '조계종 선거 개입과 논문표절 총장 선출'이라는 문제가 터졌죠. 만약 내가 입을 닫고 취업에 매진한다면 스스로도 부끄럽고, 이 모습을 후배들이 답습할까 걱정됐어요. 취업은 미룰 수 있지만, 침묵한 내 모습은 영원히 남을 것 같더라고요. 1학년 때 제게 좋은 영향을 준 선배들에게 고마워요. 1인 시위를 하는 저를 보고 한 명의 후배라도 좋은 영향을 받는다면, 취업을 잠시 미룬 것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요."

[기타 치며 투쟁] "투쟁이 늘 딱딱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동국대학교 사회과학대 밴드 '마구만'의 회원들이 문화제에 참석해 밴드 공연을 하고있다. 왼쪽의 두 사진은 6명이 참석한 5월 4일 문화제 사진이고, 오른쪽 사진은 500명이 참석한 6월 4일 성토대회 사진이다.
 동국대학교 사회과학대 밴드 '마구만'의 회원들이 문화제에 참석해 밴드 공연을 하고있다. 왼쪽의 두 사진은 6명이 참석한 5월 4일 문화제 사진이고, 오른쪽 사진은 500명이 참석한 6월 4일 성토대회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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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입학한 정치외교학과 신입생 이권용씨는 문화제마다 기타를 들고 공연을 하며 투쟁에 참여했다. 딱딱하기만 했던 학내 집회를 "말랑말랑한 집회로 만들고 싶어서"다. 현재는 학내 사회과학대 밴드 '마구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제가 입학하자마자 조계종 선거 개입으로 학교가 시끄러웠어요. 얼마 후 논문 표절 논란도 불거졌고요. 저도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나서서 행동하기는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러다 문화제가 매주 한 번씩 열린다는 알게 됐는데, 보통 집회는 발언하고 구호만 해서 너무 딱딱하잖아요. 기타 치고 노래하며 싸우는 말랑말랑한 집회를 만들고 싶었어요.

문화제에서 공연할 때 솔직히 가사도 많이 틀리고, 삑사리도 나고... 인간미가 넘쳤죠(웃음). 그래도 학생들이 노래를 따라부르고, 같이 박수도 치면서 더 대중성 있는 문화제가 돼 좋았어요. 공연 때문에 수업을 몇 번 빠지긴 했지만, 학우들이 즐기는 싸움의 장이 된 듯해서 전 만족해요. 지금 총장이 사퇴할 때까지 계속 기타로 참여하고 싶어요."

[영상 촬영] "공부하기 싫어서 데모? 우리도 편하게 공부하고 싶다고요"

사회과학대 기획국 집행부원인 강준영 학생은 미동추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릴 동영상 촬영을 담당하고 있다. 삭발식, 집회 등 그간 모든 상황마다 한 발짝 물러나서 이를 관찰했던 강준영 학생은 "공부하기 싫어서 데모하는 거 아니냐"는 외부 시선에 대해 억울함과 답답함을 토로했다.

"1인 시위나 기자회견을 하다 보면, '쟤들 공부하기 싫어서 데모하는 것'이라며 혀 차는 소리를 듣곤 해요. 저희도 도서관에 편히 앉아 공부하고 싶죠. 근데 선배가 1인 시위를 하다 조계종 관계자에게 내동댕이쳐지는데, 어떻게 공부만 할 수 있어요? '학생이 공부만 할 수 있는' 대학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학교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봐요. 동국대가 정상화 될 때까지 싸울 거에요."

'미래를 여는 동국 공동추진위원회' 학생 30여 명이 지난 7월 7일부터 매일 낮 12시부터 한 시간동안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미래를 여는 동국 공동추진위원회' 학생 30여 명이 지난 7월 7일부터 매일 낮 12시부터 한 시간동안 1인시위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 미래를 여는 동국 공동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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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24일 미동추는 학내 운동에 멈추지 않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자문을 받아 교육부에 동국대 이사회를 감사해달라는 감사청구서를 제출했다. 미동추 측은 이날 "연대를 위해 비슷한 상황인 상지대에 방문, 총학생회끼리 간담회를 했다"며 "동국대 이사회는 더는 불법을 자행하지 말라"고 밝혔다.

지난 27일에는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앞서 상지대 총학생회 등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상지대 이사 선임 취소 청구' 소송과 관련해,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도 학교법인 이사 선임에 관해 다툴 법률상 권리가 있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법원은 "대학 자치나 학문의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도 보장해야 한다고 봤다.  

미동추 측의 부당 개입 및 논문 표절 의혹 제기와 관련해 동국대 법인 측은 그러나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법인 사무처장인 종민스님은 지난달 11일 조계종 종립학교관리위원회 회의에서 "총장 선출은 종단의 압력이나 외압이 아닌 적법한 절차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며 "학생들이 주장하는 이사장 퇴진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은 재심사 중이다. 양영진 동국대 교무부총장은 29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앞서 연구진실성위원회가 보광스님 논문 표절 심사를 했는데 절차가 생략돼 큰 하자가 있었다"며 "현재 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재검토 중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표절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심사를 맡은 이 위원회의 위원장이 양 교무부총장이라, 표절 심사가 제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한편 미동추 소속 학생들은 이달 7일부터 서울 안국역에 있는 조계사 앞에서 '대한불교조계종은 동국대 총장 선거 개입사태를 해결하라'는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다시 시작했다. 방학 중이지만 작게나마 투쟁을 이어가려는 노력이다. 학생이 아니더라도 동국대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평일 낮 12시부터 1시까지 1인 시위에 참여할 수 있다.
'조계종, 동국대 총장선거에 부당 개입'... 논란은 어디서부터?
총장 선거와 관련한 동국대의 내홍은 작년 12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총장 후보로 추천된 3명 중 최고 지지율로 연임이 유력했던 김희옥 당시 총장(전 헌법재판관)이,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등 고위직 스님들과의 식사 후 갑자기 자진사퇴를 발표한 것. 당시 조계종 수뇌부가 '다음 총장은 2위로 추천된 보광 스님으로 해야겠으니, 양보하고 후보를 사퇴하는 게 좋겠다'라고 말한 사실이 이후 제정 스님 등 감사 2인의 감사결과에 따라 드러났지만, 이사회가 이를 외면하면서 사태는 더 악화됐다. 앞서 '종단 개입은 외압'이라며 자승 총무원장 등 종단 관계자들을 고소·고발했던 동국대 총동창회와 총학 등은 거세게 반발했고, 이후 총장 보광스님의 논문 표절과 이사장 일면 스님의 불법 선출 논란이 더해지면서 학생들을 중심으로 '논문표절 총장 사퇴·조계종 선거개입 해결'을 촉구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허우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22기 대학생 인턴 기자입니다.



태그:#동국대 자승, #동국대 총장, #동국대 조계종, #조계종 개입 , #자승 총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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