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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미래와 관련해 자본가나 기업경영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조직률이 낮은 노동조합은 큰 위협이 되지 못한다. 전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국가 개입이나 간섭은 위축되어 있다. 놀랍게도 1990년대 초 국가사회주의의 붕괴 뒤 서구에서는 열정과 활력의 결핍이 자본주의의 최대의 위협이 되었다고 한다.

갤럽 조사 결과, 전 세계의 노동력 가운데 적절하게 '열성적인' 노동자는 13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반면 북미와 유럽에서 '적극적으로 해이해진' 노동력은 약 20퍼센트에 달한다. 이 때문에 미국 경제가 치러야 하는 비용은 연간 5500억 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노동자들에 대한 행복 컨설팅으로 작업장의 생산성을 높이려 하고, 행복 전도사들이 기업 연수장을 돌며 노동자들의 열정과 활력을 쥐어짜내는 이유들일 것이다.

 <행복 산업>
ⓒ 동녘
웰빙, 힐링, 행복지수, 긍정의 심리학이 행복산업의 이름 아래 광범위하게 유포되고 있는 풍경은 익숙하다. 행복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과학적인 측정과 처방을 통해 강요되고 통제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윌리엄 데이비스가 이 책 <행복 산업>에서 역설하는 주요 논점들이다.

저자 윌리엄 데이비스는 행복에 대한 정치적․산업적 관심이 폭증하는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한다. 먼저 자본주의의 본성. 저자에 따르면 정부와 기업은 '지금 자신들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행복경제학이나 긍정심리학이 오늘날의 정치 경제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결함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본이 영원히 이윤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술적 진보에 대한 기대감이다. 2014년 7월 페이스북은 뉴스피드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이용자 수십만 명의 기분을 성공적으로 전환시킨 과정을 설명한 학술 논문을 발표했다고 한다. 2014년 브리티시 에어라인은 신경 모니터링을 통해 승객들의 만족도를 보여주는 '행복 담요'를 시험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이러한 행복 관련 기술들이 수백만 명의 개별적인 욕망과 의견, 가치관을 포착하고 이를 돈으로 바꿔줄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새로운 후기 신자유주의 시대의 출발점"에 빗댄다.

저자에 따르면 행복과학에 대한 심리적 열풍은 이미 200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되어 온 현상이다. 제러미 벤담으로 대변되는 공리주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유포되어 온 과학적 유토피아, 정치·사회·경제 분야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행동주의 철학 등이 사상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저자는 그 모든 역사적 과정을 차례차례 고찰한다.

'행복'과 '불행'은 상대적이다. 저자에 따르면 총체적인 개인의 성장을 궁극의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총체적인 개인의 몰락이라는 질병을 피할 수 없다. 낙천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는 비관성이라는 병을 잉태한다. 경쟁주의를 중심으로 구축된 경제는 패배주의를 질병으로 몰고 간다. 서구 사회에서 우울증이 '감기'처럼 흔한 질병이 된 배경일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의 주장처럼, 즐거움은 법을 준수하는 것보다 훨씬 엄중한 의무가 되었다. (중략)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정신의 극대화와 이윤의 극대화는 갈수록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중략) 2013년에 발표된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약 산업이 미국 정신의학회의 예산 5000만 달러 중 절반을 책임졌고, 진단 기준에 대해 자문하는 11인 위원회 중 여덟 명이 제약회사와 연계되어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정신적 고통을 설명하는 방식은 거대 제약 회사의 금전적 이익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아 결정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울증에 대한 신경화학적 이해에 대해 마지막으로 살펴보아야 할 점은, 슬픔에 빠진 사람을 우울증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슬픔은 적어도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강에 나쁜 요인으로 간주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직후에 나타나는 중대한 우울증 증세들'을 완화시켜준다고 약속하는 웰부트린(Wellbutrin)이라는 새로운 약물이 등장하자 미국 정신의학회는 <정신 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5판에서 슬픔에 대해 적용하던 예외를 없애버렸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세상을 떠난 뒤 2주 이상 불행한 상태에 있으면 정신 질환으로 간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3, 204쪽)

그러나 저자의 지적처럼 인간의 행복을 어떻게 설명하고 그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는 궁극적으로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다. 저자는 마음을 탈맥락화한 독립 개체로 바라보고, 이를 전문가의 모니터링과 교정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 자체가 오늘날 엄청난 양의 불행을 양산하는 문화의 한 증상이라고 본다.

저자는 우줄증과 스트레스, 불안이 발생하는 데 권력 박탈이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긍정심리학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권력 박탈이 (각 개인의-기자) 신경이나 행동상의 오류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경제적 제도와 전략의 결과로 발생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꼬집는다. 저자가 보기에 행복은 구조와 시스템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행복산업을 퍼뜨리는 정부와 자본의 '음모'에 저항하기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경청과 비판이다. 저자는 감시하고 시각화하는 권력을 특권처럼 여기는, 눈의 감각 능력을 중심으로 설계된 정치 체제에서 귀의 감각 능력에 의존하는 경청은 대단히 전복적인 잠재력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비판 의식이나 분노의 태도 역시 마음과 뇌의 향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에 비해 외로움이 우울증, 자아도취에 빠질 공산을 적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옮긴이는 책 말미의 '옮긴이의 말'에서 2014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벨기에 감독 다르덴 형제의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을 소개하면서 냉혹한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용기와 투쟁, 평등하고 자유로운 연대 속에 순간적으로 깃드는 것이 행복인지 모른다고 말한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우울증으로 휴직 중이던 영세 공장의 노동자 산드라는 자신이 없는 사이 사측에서 나머지 노동자들에게 보너스와 산드라의 복직 중 하나를 택하는 투표를 실시하도록 한 결과 자신이 1000유로의 보너스에 밀렸음을 알게 된다. 퇴근하려는 사장을 만나 이틀의 말미를 얻어 재투표를 허락받은 산드라는 주말 이틀간 열여섯 명의 동료 노동자들을 만나 재투표에서 자신의 복직을 밀어줄 것을 어렵사리 부탁하지만 결국 재투표는 동수로 부결되고, 짐을 챙겨 나가려는 산드라를 불러 세운 사장은 회사 단합 차원에서 보너스와 복직 모두를 배풀되, 대신 산드라의 복직을 위해 계약직 노동자를 해고하겠다고 말한다. (중략) 산드라는 사장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회사를 나서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한다. "우리 정말 잘 싸웠지? 나 지금 행복해." (320, 321쪽)

'헬조선'과 '지옥불반도'라는 말이 유행하는 세상이다. 한편에서는 '아프니까 청춘' 식의 눈물 어린 힐링이 사람들을 다독이면서 열정과 성실과 긍정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을러댄다. 분명한 사실은 행복을 개인 문제로 축소 환원하는 목소리 뒤에는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정치적․사회적 구조의 문제를 숨기려는 '삿된' 의도가 숨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진정한 행복을 위한 꿈꾸는 이들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이다. 이 책이 실마리를 보여줄 것이다.

<행복 산업>(윌리엄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 동녘 / 2015.7.10. / 344쪽 / 1,6800원)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행복산업 - 자본과 정부는 우리에게 어떻게 행복을 팔아왔는가?

윌리엄 데이비스 지음, 황성원 옮김, 동녘(2015)


태그:#<행복 산업>, #윌리엄 데이비스, #행복경제학, #공리주의, #경청과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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