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이후 지난 4개월간은 할리우드 영화가 한국 극장가를 지배한 시기였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부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분노의 질주: 더 세븐>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쥬라기 월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등 굵직한 영화가 줄지어 개봉했고 이에 맞설 만한 한국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스물>이 누적 관객 수 300만 명, <악의 연대기>가 200만 명을 넘어서며 체면치레를 했지만 그밖에 한국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성적 모두에서 암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영화의 반격이 시작된 건 6월 말 부터였다. 6월 24일 개봉한 <연평해전>이 500만 관객을 넘어서며 <쥬라기 월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와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싸움을 벌였고 7월 말 개봉한 <암살>이 바통을 이어받아 전체 매출액의 60%를 훌쩍 넘어서는 독주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비록 두 작품 이외엔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도 찾기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대중에게 거론되는 한국 영화가 간만에 등장했다는 점만으로도 반가운 소식이라 하겠다.

오는 8월엔 한국영화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조짐이다. 투자배급사 쇼박스의 <암살>에 이어 CJ 엔터테인먼트가 <베테랑>을,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협녀, 칼의 기억>을 연달아 내놓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티켓 파워를 보유한 몇 안 되는 한국 감독으로 평가받는 류승완의 <베테랑>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이병헌의 <협녀, 칼의 기억>이 <암살>과 치열한 3파전을 벌일 것으로 주목된다.

<베테랑>

베테랑 VS 포스터

▲ 베테랑 VS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류승완 감독이 <베를린> 이후 3년 만에 돌아온다. 베테랑 형사와 안하무인 재벌3세의 대결을 그린 형사액션물 <베테랑>을 통해서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짝패> <부당거래> 등을 연출하며 적어도 범죄액션장르에선 한국 최고의 기량을 보유한 연출자로 평가받는 류승완의 신작이란 점에서 기대하는 이가 적지 않다. 감독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진 <시사IN>의 주진우 기자가 <부당거래> <베를린>에 이어 도움을 줬다는 사실도 회자된다.

시사회를 다녀온 관객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류승완 감독의 역대 급 작품이라는 평가가 잇따른다. 사회질서를 무시하는 재벌3세를 악역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시의성도 충분하다. 박창진 사무장이 땅콩회항의 주역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상대로 미국 뉴욕 주에서 소송을 제기하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시기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외침이 더는 가볍게 들리지 않는 2015년 대한민국에서 <베테랑>이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기대된다.

류승완 감독과 정두홍 무술감독의 조합이 건재한 가운데 황정민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정웅인, 정만식 등 호화캐스팅이 이뤄졌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톱모델 장윤주도 주요 배역으로 합류했다. 각자의 영역에서 인정받는 베테랑들이 모여 어떤 결과물을 빚어냈을까. 8월 5일 확인할 수 있다.

<아마조니아>
아마조니아 포스터

▲ 아마조니아 포스터 ⓒ (주)영화사 빅


장 자크 아노의 역작 <베어>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8월 5일 개봉하는 신작 <아마조니아>를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주로 찍어온 티에리 라고베르트의 <아마조니아>는 다큐멘터리에 픽션을 가미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다. <베어>가 그러했듯 동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픽션에 비중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주역을 맡은 동물은 밀매꾼에게서 구조된 '꼬리 감는 원숭이'로 브라질 환경단체의 도움으로 10마리를 얻어 촬영을 시작했다. 애완용 원숭이가 비행기 추락사고 이후 아마존에서 생존한다는 이야기를 기본적인 얼개로 다큐 요소와 극영화의 성격을 모두 드러내는 작품으로 찍어냈다고 전한다. 2005년 <코러스>를 통해 세자르 영화제 음악상을 수상한 브뤼노 꿀레가 음악을 맡았다.

<하루>
하루 포스터

▲ 하루 포스터 ⓒ 더 픽쳐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란은 영화 강국으로 손꼽히는 나라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로 빛나는 명성을 얻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부터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제 84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외국어 영화상을 거머쥔 아쉬가르 파라디,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과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가족 모두가 영화인인 것으로 유명한 모흐센 마흐말바프가 모두 이란 출신이다. 엄격한 사전검열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온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지만 지난 수십 년간 여러 명의 뛰어난 영화인을 배출해온 나라가 바로 이란인 것이다.

1999년 <어린이와 군인>으로 데뷔한 이래 세계 유수의 영화제서 재능을 인정받은 레자 미르카리미 역시 이란 출신의 연출자다. 그의 신작 <하루>는 토론토, 로테르담, 스톡홀름, 테살로니키영화제 등에 공식 초청되었고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한국에도 소개된 바 있다. 아직 미국과 영국, 홍콩 등 몇몇 국가에서 제작된 영화 이외의 작품을 만나보기 힘든 한국의 현실에서 <하루>의 개봉은 이란 영화를 접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8월 6일 개봉한다.

<블러바드>

블러바드 포스터

▲ 블러바드 포스터 ⓒ (주)마운틴픽쳐스


그는 활기찬 목소리로 베트남의 아침을 깨우던 아나운서 애드리언이었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오래도록 잊지 못할 키팅 선생님이기도 했다. 절대로 친구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의 기적을 믿었던 선한 사람 닥터 세이어부터 나이든 피터팬과 램프의 요정 지니도 모두 그였다. 가족을 되찾기 위해 어떤 어려움도 불사했던 미세스 다웃파이어, 마법의 게임 속에 갇혀 잃어버린 26년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쥬만지 아저씨 알렌 패리쉬. 겉모습은 40살처럼 보이지만 실은 10살 아이였던 잭까지.

그보다 나은 위로가 있을까? "네 잘못이 아니야 Not your fault" 윌에게 더없이 좋은 어른이 되어주었던 숀 맥과이어 박사를 기억한다. 래리였던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다람쥐를 두려워하던 순진한 친구. 다람쥐가 무서워 화장실에 가지 못하던 그 친구를 위해 역시 상상으로 만들어낸 쌍권총과 바주카포를 동원해 화장실까지 가는 길을 열어냈던 패치 아담스를 기억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 같았던 로봇 앤드류도 아름다운 뻥쟁이 제이콥도 음악에 미쳐있던 뉴욕의 앵벌이 두목 위저드까지 모두 그가 연기했다. 때로는 유쾌했고 때로는 진지했으며 절실했고 안쓰러웠던 로빈 윌리엄스를 기억한다. 그가 떠난 지 1년, 우리는 이 영화 이후로는 그가 출연하는 새로운 영화를 만나볼 수 없을 것이다. 13일 개봉.

<협녀, 칼의 기억>
협녀, 칼의 기억 메인 포스터

▲ 협녀, 칼의 기억 메인 포스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이 영화가 드디어 개봉한다. 한국형 무협의 신기원을 열 것으로 일찌감치 평가받았으나 주연배우 이병헌이 일으킨 파문에 휩싸여 개봉을 연기해왔던 <협녀, 칼의 기억>이 8월 13일 막을 올린다. 연출을 맡은 박흥식 감독은 지난 6월부터 한효주 주연의 <해어화> 촬영에 돌입한 상태인데 한효주 역시 동생과 관련한 구설수에 휘말리며 여론이 좋지 않아 연이어 된서리를 맞았다는 평이다.

하지만 <협녀, 칼의 기억>은 비교적 신선한 무협 장르인데다 전도연, 김고은, 이경영 등 검증된 배우들이 다수 출연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이병헌의 경우에도 그가 출연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가 먼저 개봉해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는 점에 비춰볼 때 개인적인 문제가 흥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다. 4대 배급사 가운데 하나로 확고한 입지를 가진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든든하게 뒤를 받치는 만큼 <협녀, 칼의 기억>이 <암살> <베테랑>과 함께 한국영화 3파전을 벌일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로 데뷔한 이래 <인어 공주>, <협녀, 칼의 기억>까지 세 차례 전도연과 호흡을 맞추게 된 박흥식 감독의 연출도 기대를 모은다.

<뷰티 인사이드>
뷰티 인사이드 메인 포스터

▲ 뷰티 인사이드 메인 포스터 ⓒ NEW


빌 머레이와 앤디 맥도웰이 주연한 <사랑의 블랙홀>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해롤드 래미스의 1993년 작 로맨틱코미디인 이 영화는 개봉당시 폭넓은 인기를 누리진 못했으나 상당수 팬들에게 만큼은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바 있다. 개인적으로는 유치한 제목과 촌스런 포스터, 기발한 상상력에 행복한 결말까지 갖춘 완벽한 작품으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미덕을 지녔다고 평가한다.

오는 8월 20일 개봉하는 <뷰티 인사이드>는 어떤 의미에서 <사랑의 블랙홀>과 닮아 있다.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고 고백하려 한다는 멜로물의 구도 가운데 황당한 장치를 개입시켜 극을 이끌어간다는 점이 그렇다. <사랑의 블랙홀>이 매일 같은 날 깨어나게 된다는 설정을 두었다면 <뷰티 인사이드>는 주인공 우진이 매일 다른 사람으로 모습을 바꾸며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남자, 여자, 아이, 노인, 외국인 등 자고 일어나면 모습이 변하는 남자가 어떻게 사랑하는 여자에게 다가서는지가 유쾌한 상상력으로 버무려졌다.

우진 역은 모두 21명의 배우가 돌아가며 맡았다. 김대명, 도지한, 배성우, 박신혜, 이범수, 박서준, 김상호, 천우희, 우에노 주리, 이재준, 김민재, 이현우, 조달환, 이진욱, 홍다미, 서강준, 김희원, 이동욱, 고아성, 김주혁, 유연석이 그들이다. 이제껏 보여진 적 없었던 실험적 작품인 만큼 배우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판타스틱 4>
판타스틱 4 포스터

▲ 판타스틱 4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2008년도의 <인크레더블 헐크>, 2011년도의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판타스틱 4>도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릴 수 있을까? 어느새 할리우드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리부트 행렬에 동참한 마블의 <판타스틱 4>가 오는 8월 20일 개봉한다.

<위플래쉬>의 마일즈 텔러, <빌리 엘리어트>와 <설국열차>의 제이미 벨, <혹성탈출: 반격의 서막>의 토비 켑벨 등 스타성보다 연기력에 중점을 둔 이번 시리즈의 캐스팅은 이안 그루퍼드, 제시카 알바, 크리스 에반스가 나섰던 오리지널 시리즈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판타스틱 4>가 <어벤져스>나 <스파이더 맨>, <엑스맨> 시리즈 등과 같이 마블의 한 축으로 우뚝 설 수 있을까? 귀추가 주목된다.

<미라클 벨리에>
미라클 벨리에 포스터

▲ 미라클 벨리에 포스터 ⓒ 영화사 진진


프랑스 TV 시리즈물의 연출자로 오랜 경력을 쌓아온 에릭 라티고의 여섯 번째 영화 <미라클 벨리에>가 8월 27일 개봉한다. 프랑스에서는 개봉 이후 3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주연을 맡은 루안 에머라에게 제40회 세자르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안기며 많은 화제를 낳았다.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말을 할 수 있는 소녀 폴라가 합창부에 들고 노래를 하며 겪게 되는 갈등을 다뤘다. 일찍이 경험한 적 없는 세상과 처음 접한 소녀의 이야기는 언제고 흥미롭다. 홍보를 위해 내한하기도 한 루안 에머라는 이 영화를 디딤돌 삼아 스타로 비상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해 보라.

<마지막 위안부>
마지막 위안부 포스터

▲ 마지막 위안부 포스터 ⓒ (주)투윈미디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간다. 오래도록 이어져온 수요집회도, 국민의 뜨거운 관심도 자신들이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입장을 바꿔놓지 못하고 있다. 아득한 절망감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무엇인가 하는 무력감도 밀려온다. 통탄할 만한 일이다.

위안부의 명예를 되찾고 그 피해를 보상받는 건 선택이 아닌 당위의 문제다. 무너져가는 현실을 뒤집고 바로 세워야 할 것을 바로잡기 위해 분발해야 마땅한 오늘이다. 기억은 그 모든 작업의 시작이다.

<마지막 위안부>는 일제의 만행으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와 고통 받은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감독은 이 영화를 위해 10여 년 동안이나 조사과정을 거쳤다고 밝혔다. 외적 의미를 넘어 작품성으로도 승부할 수 있는 영화가 만들어졌을까? 그렇길 바란다.

<암살교실>
암살교실 포스터

▲ 암살교실 포스터 ⓒ (주)에이원엔터테인먼트


걸그룹 '카라'의 전 멤버 강지영이 출연한 영화 <암살교실>이 한국에서도 개봉한다. 어느 날 갑자기 교실에 등장한 괴물과 그 목에 걸린 무지막지한 현상금, 일본이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영화이기에 더욱 볼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다고 검증되지 않은 싸구려 영화인 것도 아니다. 원작 만화는 1000만부가 넘게 팔렸고 일본 개봉 당시 300만 관객을 모았다. 제 19회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유럽 판타스틱 영화제 연합 아시아 영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색적인 영화를 보길 원하는 관객이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기대작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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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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