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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곽정숙 전 의원①] "일 년 남았대" 어느 전직 국회의원의 고백
[인터뷰- 곽정숙 전 의원②] 비례대표 1번 제안, 한마디로 거절했다

곽정숙 전 의원은 임기 종료 후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화실을 간다는데, 소품부터 대작까지 다양하다. 전시회도 한 번 했는데, 수익은 전부 기부했다고 한다.

작심사년 그림 그리기, 고향을 화폭에 담다

그림을 그리는 곽정숙 전 의원의 모습. 벌써 4년째 배우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곽정숙 전 의원의 모습. 벌써 4년째 배우고 있다.
ⓒ 곽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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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그리는 것은 재미있나? 이제는 화가다. (웃음)
"그림을 4년째 배우고 있다. 나이 오십이 넘어 동네 아이들이 다니는 미술학원에 나가 줄긋기부터 시작했다. 선생님의 칭찬에 진짜 천재적 소질이 있는 줄 알고 열심히 그렸다. (웃음) 처음에는 정말 재미있었다.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겠다고 평생교육원을 다니고, 중견 작가에게 그룹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으로 그렸다. 솜씨도 나아지고, 화가가 다된 듯 가슴이 부풀었다.

작품의 크기도 커지고, 내용이나 기술도 다양해졌다. 점점 더 잘하고 싶어졌고, 잘하려고 할수록 오히려 점점 그리기가 어려웠다. 머리로는 잘할 것 같았는데 손은 따라주질 않았다. 선생님께서 내 속내를 알아채고는 '잘 그리려고 하지 말고 재미있게 그려 보세요'라고 한마디 했다.

'아, 그래. 그냥 재미있게 그리면 되는 것을. 잘하려고만 하니 어렵고 힘들구나' 싶었다. 내 목표는 '그림 그리며 행복하기'이지 '그림 잘 그리는 화가'가 아니다 생각하면서 다시 재미난 그림 놀이에 흠뻑 빠졌다. 지금까지 작심사년을 이어오고 있다. 이 재미를 어찌 포기하거나 멈추겠는가? (웃음)"

- 풍경 그림이 좋다. 어디를 그린 것인가? 광주 근교인가?
"고향 영산포다. 내가 요즘 영산포 초등학교 동창생 밴드를 한다. 영산포 그림을 올리니까 난리가 났다. 옛 생각이 나는지 정말 좋다고들 한다. 영산포는 항구였다. 예전에는 모든 물자가 다 배로 들어와서 영산포가 문물의 중심지였다. 목포와 영산포도 배로 오갔다. 포구에 싱싱한 생선이 넘쳤다.

내가 1960년생인데 1960·1970년대에는 영산강에서 멱도 감고, 조개도 잡으면서 놀았다. 아버지가 군인이라 엄하셨는데 주말이나 휴일에는 아버지랑 같이 영산강에 가서 목욕하고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 재미에 주말이면 아버지를 기다렸다. 집 앞 다리 위로 차가 지나가면 아버지가 오는 차인가 설렜다. 1981년에 영산강 하구언을 만들어 뱃길을 막아 버렸다. 완도, 해남, 목포를 가려면 다 영산포를 거쳐서 갔는데 옆으로 가는 새 길이 생기면서 영산포는 쇠락했다. 마을도 사람도 다 저무는 때가 있다."

곽정숙 전 의원이 직접 그린 작품
 곽정숙 전 의원이 직접 그린 작품
ⓒ 곽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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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말고도 무척 바쁘다고 들었다.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늦둥이 딸하고 사는 1급 장애인 엄마가 있다. 부업으로 집에서 전자부품 조립을 하는데 1박스에 6000원이란다. 작은 단칸방에 가득 벌려놓고, 휴식 없이 꼬박 12시간 하면 2박스를 할 수 있단다. 그나마 일이 계속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일감이 오면 감지덕지란다. 그렇게 일해 한 달에 10만~20만 원 번다. 그래도 일할 때가 즐겁다고 한다. 조금씩이라도 모아서 딸의 장래를 준비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고 한다.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1시간에 1000원 벌이 말고, 최저임금이라도 받을 수 있는 그런 일터를 마련해 주고 싶다.

그래서 일을 벌였다. '힘을 합해서 사업장을 하나 만들자. 우리가 다 사장이 되자'고 했다. 도자기 공방 협동조합 일터를 만들 계획이다. 노동의 욕구도 충족하고, 소득도 내고, 작업 환경부터 노동시간까지 우리한테 꼭 맞는 행복한 일터 환경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협동조합이 그런 거 아니냐? (웃음)

우리가 2시간밖에 일할 수 없는 몸 상태라면 그만큼만 일하도록, 각자의 특성과 여건에 맞는 일터였으면 좋겠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하는 즐거움을 함께 누리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함께 일하는, 사회인이 갖는 평범한 행복감을 나누고 싶다. 소득은 아주 높지 않아도 괜찮다. 그래도 다른 일 하면서 뼈 빠지게 고생해 얻었던 소득보다는 많았으면 좋겠다.(웃음)

협동조합 어려운 거 안다. 지속적인 일터가 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돈 많이 벌겠다는 욕심은 버렸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노동에 대한 욕구·공동체에 속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고, 문화적 욕구도 채워줄 수 있는, 마음 넉넉한 일터를 만들고 싶다. 정치 참여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사회에 긍정적 이바지를 할 수 있다. 장애인 스스로 주인이 되는 좋은 일터 모델 만들기, 이게 내가 마지막으로 할 일이다."

"최선 다했던 의정활동, 후회는 없다"

식사 중에 웃음을 보인 곽정숙 전 의원
 식사 중에 웃음을 보인 곽정숙 전 의원
ⓒ 곽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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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활동에 후회는 없나?
"의정활동에 후회는 없다. 최선을 다해서 해 나갔던 것 같다. 보건복지부 전재희 장관, 진수희 장관 두 분 다 임기가 끝나고 사석에서 인사를 하는데 나에게 의정활동 잘하셨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의례적 인사는 아니었다. 어떤 의원들은 질의할 때 잘 모르고 한다 싶을 때가 있는데 나는 정확하게 알고 질문을 했기에 핵심을 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장관 이전에 동료의원으로 나의 상임위 활동을 지켜봤다고 한다.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다른 의원들과 비교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정부 측에서도 잘했다고 인정할 정도면 잘한 것 아닌가? (웃음)

평가를 그렇게 해주니까 아무래도 잘한 것 같다. (웃음) 인정은 기쁨과 위안이 된다. 지금 하라고 해도 더 잘할 자신은 없다. (웃음) 내가 할 역할을 다했다. 물론 아쉬움은 있다. 좀 더 준비를 잘해서 갔더라면 초반부터, 시작부터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정치인은 준비하는 기간이 필요하다. 준비가 충분하다면 처음부터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곽정숙 전 의원 수상내역
곽 의원은 의정활동과 관련하여 상을 많이 탔다. 국회에서 입법 성과를 종합하여 시상하는 '입법정책 우수의원' 상을 2009년, 2010년, 2011년 연속으로 수상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의정활동을 펼친 의원에게 시상하는 '공동선 의정활동상'(사회정의시민행동)의 첫 번째 수상자이기도 하며, '대한민국 반부패청렴대상'(한국 반부패정책학회), '거짓말 안하는 정치인'(신라대학교)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시각장애인 인권 증진(시각장애인연합회), 아름다운 기부문화 조성(아름다운 가게), 장애인권리협약 인준 활동(국제장애인권리협약한국비준연대), 여성장애인 인권 증진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자랑스런 광주대인상(광주대학교), 의료민영화저지(의료민영화 저지 시민단체), 지역복지봉사 유공자(한국지역사회복지봉사회), 사회복지사 처우개선(한국사회복지사협회), 노숙인 권리 증진을 위한 법 제정(한국부랑인복지시설연합회),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활동(복지국가실현연석회의), 2012시청자미디어센터 유공자(광주․부산 시청자미디어센터), 외국인 장애인 등록 정책 추진(주한 대만대사관) 등으로 감사패를 받았다.

형식적인 상이 아니다. 사유가 명확하다. 관련법을 통과(또는 저지)하거나 예산을 확보했기에 받은 상들이다. 하나하나 정말 소중하다.
- 후배 정치인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들 '어떻게 해서 당선될 것인가'에 대한 준비만 하지 '당선되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가'에 대한 준비는 안 한다. 사실 국회의원이 된 이후가 더 중요하지 않나? 상임위와 관련해서는 '전체'도 봐야 하고, '부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을 잘하려면 '현장'을 알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렵고 힘겨운 사람들,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치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정책은 국민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정치는 국민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 애정 없이 정치했다가는 국민의 삶을 파탄 낼 수도 있다. 애정은 사람들의 생활에 기반을 둔다. 생활에 뿌린 내린 정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물론 기본적인 능력도 있어야 한다. 지도력, 행정력, 전문적 지식 등을 무시할 수 없다. 이게 없으면 또 안 된다. 그러면서도 헌신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정치하는 동안 '나'는 없다. 나를 내려놓고 시작해야 한다. 목숨까지 내놓겠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정치가 엉망으로 보이는 것은 이런 정치인이 부족해서 아닐까."

- 몸은 좀 어떤가? 편안해 보인다.
"1월에 치료를 중단했으니 이제 6개월 지났다. 의사가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이라고 했는데 6개월이나 살았다. 길다고 말했던 기간의 반은 살았다. 누구나 가는 인생 과정이다. 죽음이란 것은, 여기서 멈추느냐 조금 더 가느냐의 차이다.  결국, 모두가 가는 길이다. 나는 오히려 죽음을 준비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도 그랬고, 임기를 마친 후에도 나는 인생을 되돌리고 싶은 생각이 없다. 잘 살아왔다. 삶이 감동이었다. 성경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는 말이 나온다. 기쁠 때 기뻐하는 건 당연하다. 어렵고 힘들어도 '아, 기쁘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많이 아프면서도 나는 웃음 짓고 살았다. 아파서 곧 죽는다 해도 '괜찮아, 감사해'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돌아보면 매 순간이 기적 같다.

노인복지대학에서 죽음에 대해 강의도 한다. 놀랍지 않나? 7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인데 나는 거기 비하면 새파랗게 젊은이다. 그런데 내가 어르신들 앞에서 감히 죽음을 말한다. 내가 죽음이 코앞에 있는 실체적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고,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어르신들이 내 말을 귀 기울여 듣는다. 나는 어쩌면 이미 죽음을 지나온 것 같다. 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것은 '죽음'에 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에 대해 회피하지 말았으면 한다. 진지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게 삶에 대해 더 좋은 자세다.

나는 아픈 뒤로 유언장을 써놓았다. 어르신들에게도 유언을 남기시라고 말한다. 수업에 들어가면 '어르신들, 학생들, 유언장 써놓으신 분이 있으십니까?'하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글씨를 쓰실 수 있으면 종이에 쓰시고, 글씨가 어려우면 녹음을 하시라고 한다."

밤에 누울 때마다 '이제 멀지 않았구나'

- 유언장에 뭐라고 썼나?
"슬퍼하지 말라고 썼다. 밤에 누우면 '이제 멀지 않았구나!' 싶다가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살아있네, 아직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늘 죽음을 생각하고 살아가는 게 삶을 부여잡는 것보다 진지하게 살아진다. 아픔을 통해 참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인색해지지 않는다. 좋은 것들이 있다.

현존하는 것에 대한 물욕도 없다. 사는 게 점점 더 좋아져서 떠나갈 때 슬퍼지면 어떻게 하나 싶기도 하다. 사람들과 이별은, 슬프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있는데, 더는 보지 못한다는 건, 사람들을 두고 떠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쉽다. 사람은 본질에서 다 악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다 좋은 점이 있다. 단점이 있어도 소중하다. 아, 이 좋은 사람들을 다 두고 가려니 아깝다. 조금만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

곽 의원은 내게 직접 그린 그림을 선물로 주셨다. 내가 내려오는 시간에 맞춰 급히 액자를 맞추느라 애먹었다고 하신다. 광주에 가기 전부터 졸랐다. 같이 일하던 의원실 후배는 결혼할 때 그림 그려 주시고, 왜 나는 안 주시느냐고 따졌다. 억지를 써서라도 의원님이 그린 그림을 받고 싶었다.

그림 선물은 처음이지만 그동안 많은 선물을 받았다. 손재주가 좋아 브로치, 핸드폰 고리를 만들어주셨고, 집으로 불러 곧잘 밥도 해주셨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선물은 책이다. 국정감사나 대정부질의, 인사청문회같이 노동이 집중되는 일정이 끝나면 보좌진들과 함께 큰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고르라 하셨다. 평소에 마음에 두었던 두껍고 비싼 책 두세 권을 집어 들고나오면 웃으며 계산하셨다. 그 책을 읽노라면 힘들었던 기억은 눈 녹듯 사라지고, 다시 일할 기운이 솟았다. 의원님은 나누는 기쁨을 아는 분이다.

웃고 있는 곽정숙 전 의원
 웃고 있는 곽정숙 전 의원
ⓒ 곽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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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떠날 수 있게 다 정리해서 이제 가진 게 별로 없네. 그림도 열심히 그리는데 여기저기 선물을 많이 해서 정작 나한테는 별로 없어. 그런데 나 아무래도 오래 살 것 같아.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도 많잖아. 깨끗하게 나아서 건강하게 오래 살 것 같아. 왠지 그런 느낌이 들어."

의원님이 환히 웃으신다.

저런 표정이라니, 편찮으시다는 게 거짓말 같기도 하다. 내가 보고 싶으면 그냥 내려오라 하시지 왜 이런 악동 같은 거짓말을 하시는 건지 순간 울컥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돌팔이 의사 양반"하고 따지는 데 앞장서고 싶다.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의원님의 저 웃음은 기억하고 싶다. 살다 보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닥쳐올 때가 있다.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그때 저 환한 웃음을 떠올린다면 나도 살짝 미소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견뎌질 것 같다. 아픔은 이렇게 나뉘나 보다. 행복은 이렇게 전해지나 보다.

나의 보좌는 아직 남아있다. 잘 보내드리는 것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곽정숙,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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