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최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으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 직접 만든 종이 모빌을 들어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방송으로 만난 시청자들은 "이제 어른이 됐으니 잘 할 거에요"라는 말에 큰 위로를 받는다. ⓒ 유성호


"제가 그 코딱지들 중 하나였어요."

처음부터 고해성사할 수밖에 없었다. 1982년생임을 말하며 당시 <TV 유치원 하나둘셋>을 봤던 기억의 한 조각을 내보이니 선생의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10년만의 지상파 예능 출연,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은 각종 매체는 물론이고 업계 관계자들의 전화를 하루에서 수십 통씩 받는다고 한다. 꼭 인터뷰하고 싶다며 낮잠 시간에, 식사시간에 전화와 문자로 괴롭혔던 지난 일주일이 떠올라 면구스러워졌다.  

29일 늦은 오후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 위치한 '아트오뜨'를 찾았다. 아이들을 위해 그가 직접 마련한 이 미술체험박물관은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도 40분 이상 더 들어가야 하는 오지에 있었다. "작년에야 수도가 들어왔어요. 가스는 한 10년 뒤에나 들어오려나?"라며 김영만 선생이 너털웃음을 짓는다. 평소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머물다가도 어쩔 땐 한 달 이상 머물며 애정을 쏟는 곳이라고 했다.  

채팅이라는 말에 번쩍... "코딱지들 어떻게 자랐는지 궁금했다"



잠시, 아니 꽤 오랫동안 그의 존재를 잊었던 시청자들에게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이 소환한 김 원장은 추억 그 이상의 것을 전했다. 성인이 된 코딱지들에게 김영만 원장은 20여 년 전 그랬듯 '말하는 새'와 '요술꽃'으로 말을 걸었다. 여기에 요즘 유행하는 '스냅백'(힙합 스타일 모자)으로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전매특허 유행어 중 하나를 던진다.

"차암 쉽죠?"

따지고 보면 그도 그랬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유명 화가 밥 로스 아저씨도 쉽다고 그랬다. 그런데 속상하게도 그땐 왜 그렇게 잘 안 됐을까. "이제 어른이 됐으니 잘 할 거예요"라는 말에 시청자들이 크게 반응했다. 방송 중 '실검'의 뜻을 몰라 "실제 검색어 아니에요?"라고 되묻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말하려다 "아웃백 커피!"를 외친 이 '아재'는 분명 '치명적인 위로'를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

- 솔직히 이렇게 화제가 될 줄 예상 못하셨죠? 잘 자랐다는 그 말에 다들 위로를 얻는 거 같아요. 어른이 돼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칭찬보단 꾸중에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노심초사하며 살기 십상인데 뜻밖의 따뜻함에 공감한 거 같아요.
"상상도 못했죠! 실은 <마리텔>이 뭔지도 몰라서 섭외 전화를 받고 동영상도 보고 인터넷도 뒤졌어요. 그게 방송되는 시간엔 나 같은 어른들은 자야해!(웃음) 근데 채팅이라는 말에 '아, 그때 코딱지 친구들이 잘 하던 것이겠구나. 한 번 정도야 해볼 수 있겠다' 싶었지. 아들과 아들 친구들에게 전화해 봤어요. 다들 너무 유명한 프로라고 근데 악플도 올라 올 텐데 괜찮겠냐고 하더라고요. 근데 젊은 엄마, 젊은 아빠들도 볼 테니 등수는 생각말고 한 번 해보라고 권하더군요.

궁금하더라고요. 요것들 어떻게 자랐을까! 제가 전국을 돌면서 강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 코딱지 세대들은 만나기 힘들어요. 주로 그들의 엄마들이나 아주 어린 꼬맹이들을 보니까. 솔직히 날 불러준 피디님에게 고마워요. 고정 여부를 묻는 분도 많은데 그건 잘 모르겠어요. 제가 듣기로는 이게 고정이라는 개념이 없잖아요. 피디님의 권한이죠."

- 코딱지의 기원이 주의력이 산만한 아이들을 집중시키기 위함이었잖아요. 떠드는 애들에게 '코딱지!' 이러면 '우리 코딱지 아니에요'라며 집중하게 되는 식. 다 큰 성인들에게도 그 말을 쓰신 게 신의 한 수였던 거 같아요.
"기원은 그게 맞아요. 사실 <마리텔>에선 그 말을 안 쓰려고 했어요. 다 컸잖아요. 청년들인데.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준비하기 직전까지 안 꺼내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했는데 몇 분 지나니까 툭 튀어나왔어요. 근데 그게 반응이 좋더라! 그 다음부터 막 갔죠. (웃음)"

소통 안 된다고 욕하는 이들이 잘못... "특권은 누리세요"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 유성호


- 방송에서 입은 티셔츠 문구도 혹시 의도하신 건가요? 'Life is too short to be little' 이거 영국 소설가가 한 말로 알고 있는데 굳이 해석하면 '인생은 짧으니까 사소한 거에 연연하지 말고 큰 가치를 추구하라'잖아요.
"나도 몰랐어요. 티셔츠 살 때 디자인 보고 사지, 누가 문구를 보고 사! (웃음) 마트에서 9900원 주고 산 걸 그날따라 골라서 입고 갔는데 뭔가 맞아떨어진 거죠. 어휴, 근데 다른 출연자들 보니 정말 대단해요. 나도 두 세 시간 강의하는 게 습관이 돼 있는데 2부 때 막바지엔 많이 힘들었거든요. 이은결씨는 한 시간 반을 계속 마술하고, 김구라씨 역시 프로더라고요. 방송인은 역시 달라. 저도 물론 방송을 예전에 했지만 방송인은 아닌 거 같아요. 절반 방송인 정도네 반반."

- 방송하시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의 줄임말도 많이 배우셨죠?
"그 말들? 못 배웠어요. 배울 생각도 없어. 그 줄임말들 여러분들 특권이에요. 그걸 내가 건드리기에는... 물론 '헐' 이런 건 알죠. 'ㅋㅋㅋ' 이것도 이제 아는구나! 하여튼 그건 여러분들 세계의 것이니까 누리세요. 바깥의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마 알려고도 하지 않을 거예요."

- 그런 말을 전혀 모르시는데 소통이 되는 게 신기했어요. 보통 나이가 들면 꼰대라고 치부하기 쉬운데 우리 '영맨'(<마리텔> 방송 당시 김영만 원장의 별칭)은 전혀 꼰대의 느낌이 없었어요. 오히려 요즘은 젊은 사람 중에 꼰대가 많아요.
"방송 보시면 알겠지만 제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잖아요. 그럼 작가들이 알려줘요. 모르는 걸 아는 척하는 게 성격에 안 맞아! 일단 부딪혀 보고 판단하는 거예요. 줄임말 쓴다고, 어른들이 욕한다고 창피해 하고 주눅들 필요 없어요. (소통 안 된다고) 욕하는 어른들이 잘못된 거예요. 해준 게 뭐가 있다고 욕을 해."

김영만 선생의 "참 쉽죠?"... '특급 위로'가 돼 돌아오다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종이접기 아저씨로 불리는 김영만 씨 작업실 한편에 제자들이 쓴 편지가 붙어있다. ⓒ 유성호


- 서른 중반에 우연히 접하셨다던 종이 접기가 평생 업이 됐어요. 다른 인터뷰에선 이걸 '희열'이라 말씀했는데 선생께 종이예술은 어떤 의미인가요.
"솔직히 주위 사람들에게 밀려서 한 거지. 주변에서 잘한다! 이러면 신나서 하잖아요. 사람 심리가 원래 그래요. 1988년 <TV 유치원 하나둘셋>이 방송의 시작이지만, 그때의 5년 전부터 이 일을 했어요. 종이 접기라는 게 조형 예술의 한 장르였고, 제가 그걸 공부하면서 지방에 강의도 다니고 했거든요. 그러다 방송에 나가게 됐고, '종이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으며 지금까지 온 거죠. 날 밀어준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워요. 취미 겸 하는 일로 돈도 벌고 자식들 장가도 보냈잖아요. 감사한 거죠."

- 좋아하는 일로 돈 버는 게 쉽지 않잖아요.
"엥? 왜 쉽지 않아요. 쉬운 일이에요. 물론 저도 30대 중반에 종이 접기 한다고 하니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색종이 딸랑 하나 가지고 뭘 하겠냐 이런 말도 들었죠.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비전이 있어야 뛰기 시작하잖아요. 그때 전 비전이 없었지만 뛰었어요. 우리나라 미술 영역의 한 쪽을 슬쩍 건드려 보고 싶었죠. 건드렸는데 뭔가 안 되면 그때 포기해도 되잖아요."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 젊은 시절 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한 사진. ⓒ 유성호


- 현실이 무서워서가 아닐까요. 예능프로가 선생님을 소환했고, 거기서 다들 위로를 얻는데 일종의 과거에 대한 향수잖아요.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이런 대사가 있어요. '과거에 대한 향수는 고통스런 현재의 부정'이라는. 선생에 대한 환호를 단순히 향수라고 묶고 싶진 않지만, 분명 현실에서 고통이 큰 건 맞는 거 같아요.
"보니까 (<마리텔> 출연에 대해) 추억을 건드린다고들 하더라고요. 맞아요. 고모부나 이모부가 얘기하듯 다가가려 했으니까요. 힘들 때 추억이 그리운 법이에요. 안 힘들면 그립지 않아. 현실이 바쁘면 또 그것에 대응하느라 추억이 떠오르지 않고요. 보통 나이가 들면 추억을 생각하잖아요. 내가 왕년에 이랬는데 하면서... 그만큼 힘들게 오래 살아서 그래요. 지금 여러분들이 말 한 마디에 감동 받는 이유도 많이 힘들어서 그런 걸 거예요. 한 마디에 감동을 받는다고 하니 나 역시 미안해요. 그냥 종이나 접고 있을 것이지 엉뚱한 소리해서 감정이나 건드리고."

- 제 주변의 코딱지들이 꼭 질문해달라고 해서 가져온 질문이 있어요. 마냥 아이이고 싶은 어린이 아닌 '어른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할까요.
"인터뷰 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내가 코딱지들에게 가장 부러워하는 게 뭔지 알아요? 내가 안 갖고 있는 걸 여러분은 갖고 있어요. 내가 아무리 돈이 많고, 잘 나가도 결국 부러워하는 게 젊음이에요. 나도 물론 젊었지만 그게 변색되고 퇴색했잖아요. 내가 없는 거 지금 기자님이 갖고 있는 거 맞죠? (웃음)

젊음은 도전이에요. 삼포, 오포, 이제 칠포까지 나와? 우리나라 단어도 좋은 게 있고 안 좋은 게 있어요. 포기라는 단어가 얼마나 나쁜 건지! 포기의 반대는 도전이에요.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젊음이란 걸 믿어보고 도전해보세요. 결혼, 취업 뭐 이리 포기하는 게 많아! 인생이 얼마나 창창한데. 지금부터 포기하면 나머지를 어떻게 살아요.

스펙 쌓으세요. 자격증 이런 거 말고. 그건 종이짝일 뿐이지. 전 인생의 스펙을 말하는 거예요. 어려움이 닥치면 이겨내 보려 하세요. 그게 노하우가 돼요. 몇 번의 어려움을 이겨내다 보면 기회가 와요. 그럼 그 동안의 노하우를 잘 섞어서 잡는 겁니다. 어려움을 경험하지도 않고, 그냥 다 싫다는 거? 그건 좀 치사하잖아. 적어도 난 그렇게 안 살았어요. 무조건 들이 밀었어!(웃음)"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이 29일 오후 충남 천안 병천면 자신의 미술체험박물관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최근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출연으로 큰 관심을 받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인터뷰 2] 친구 주식 반토막 안 났다면, 종이접기 선생도 없었다
[인터뷰 3] '영맨'의 고백 "상처받기 전에 손 떼야죠"

○ 편집ㅣ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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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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