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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전시되던 동물들이 식용으로 매각되어 논란을 빚고 있다. 도축농장에서 현장을 급습한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다음날인 8월 20일 서울 시청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 "서울대공원 전시동물의 도축장 판매를 금지한다" 지난 19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에 전시되던 동물들이 식용으로 매각되어 논란을 빚고 있다. 도축농장에서 현장을 급습한 동물보호단체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다음날인 8월 20일 서울 시청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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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 '쓰고 난 후 남은 것'을 뜻하는 이 말은, 살아 있는 존재를 지칭할 경우 그 존재를 '소비'의 대상으로 전락 시키는 표현이다. 오늘날 젊은 층 사이에선 자본주의 사회에서 효용가치가 없는 자신을 비웃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지난 8월 19일 서울대공원 동물원(아래 서울동물원)의 사슴·흑염소 43마리가 식용으로 도축 농장에 매각된 사건과 관련, 기자는 얼마 전 동물원 관계자와 통화를 했다. 통화 중 기자가 매각된 동물들에 대해 언급하자, 관계자는 곧바로 그 동물들을 '잉여 동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살아 있는 동안 잉여가 되길 원하는 존재가 있을까? 서울대공원 홈페이지의 동물원장 인사말에는 동물들의 '복지'와 '행복', '생명의 존엄성'이 동물원이 지향하는 주요 가치로 언급돼 있다. 그런 동물원에서 '잉여'라는 반생명적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는 현실이 씁쓸하다.

고양이 한 마리에게 새 주인을 찾아줄 때도 입양을 희망하는 사람이 고양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조건을 갖췄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입양 후에도 정기적으로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애묘인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러나 서울동물원의 사슴과 염소 43마리는 도축 농장으로 매각됐다. 식용으로 매각된 줄 몰랐다는 말로 동물원은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최소한 도축 농장으로는 가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마련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보다는 애당초 잉여가 생겨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번 사건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이 궁금하던 중, 어느 고3 학생이 떠올랐다. 동물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많은 번뇌와 노력을, "공부를 그렇게 했다면 이른바 명문대 자유 이용권을 끊었을 법한 수준으로 거쳤다"는 학생이었다. 그 학생은 국내 동물원의 열악한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에, 급기야 "재수의 위험을 무릅쓰며" 동물원 평가 보고서를 썼다. 지난 12월 출간된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가 바로 그 결실이다(관련기사 : "동물원 때문에 재수 각오한 고3... 그 '불편한' 이야기").

저자인 최혁준씨는 지금은 특수동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그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기 위해 지난 8월 26일 서면 인터뷰를 진행해 27일 답변을 받았다.

'잉여'의 삶은 고달프다

최혁준 씨가 쓴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책공장더불어 펴냄)
 최혁준 씨가 쓴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책공장더불어 펴냄)
ⓒ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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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서울동물원 사건을 통해 드러난 동물원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진행되는 번식과 이에 따른 잉여 개체 발생'이라고 생각한다. 동물원에서 '잉여'로 불리는 개체들의 삶은 고달파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 지난 8월 21일 자 <오마이뉴스> 기사(관련기사 : 식용 사슴, 알고 보니 서울대공원 동물)에서 서울동물원 관계자는 "앞으로 동물원에서 매각되는 동물들의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가 동물 복지를 준수하는 개인이나 기관에 한정되도록 자격 기준을 정할 것"이라며 "그런 방향으로 서울동물원에서 내부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 자격 기준이 정말로 만들어진다면, 공매로 올라온 동물들을 사려고 하는 주체가 국내에는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동물 복지를 준수'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서울동물원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동물원 측은 팔려가는 동물에게 최대한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말의 자비심이 있다면, 동물을 관리하는 수준이 기존보다 못한 곳으로는 보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동물 입찰에 참여하는 주체의 자격 기준을 정하는 데 반영된다 해도,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그런 기준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주체는 서울동물원 외 몇몇 동물원 밖에 없다고 본다.

서울동물원이 이번 사건으로 큰 실망을 안겨주긴 했지만, 동물들을 서울동물원보다 잘 대우할 수 있는 동물원이나 농장·전시장·개인 사육자는 국내에 거의 없다. 서울동물원 역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시정 방향을 제시했다기보다는 모호한 '모범 답변'을 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 동물들을 공개적으로 매각하는 것이 잉여개체를 처리하는 적절한 방법이라고 보는가?
"동물들이 식용으로 사용되지 않고 복지 기준을 만족하는 곳으로 매각된다면, 공개 매각을 나쁘게만 보지 않는 입장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현실이 그렇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동물들이 민간으로 팔려간 후에는 동물들에 대한 처우나 용도 변경에 대한 규제와 관리 감독이 어려워진다.

'매각된 동물이 식용으로 쓰였다는 걸 몰랐다'는 서울동물원의 주장이 사실이고, 몰랐던 이유가 민간 공개 입찰 시스템의 필연적인 구조적 문제에 기인한 것이라면, 현 제도의 한계를 더욱 드러내는 셈이다. 따라서 동물을 공개적으로 매각하는 관행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잉여동물 발생 최소화'가 근본 해결책

도축농장에서 스트레스로 폐사한 서울동물원의 염소.
 도축농장에서 스트레스로 폐사한 서울동물원의 염소.
ⓒ 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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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체적인 방법은?
"애당초 잉여 개체 발생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이미 외국의 선진 동물원들에 의해 제시됐다. 중성화수술(불임수술)의 경우 서울동물원에서도 부분적으로 시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논란도 많고 비용과 위험성을 무시할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방법이다. 북미 지역에 있는 주요 동물원에서는 중성화 수술과 더불어 약물을 통한 피임도 주로 행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밖에 암수 개체를 필요에 맞춰 분리 사육하거나, 번식기·배란·발정기를 체크해 암수 합사 여부를 유동적으로 관리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개체들의 사회적 관계나 종 고유의 사회적 습성을 저해할 우려가 크고, 사육하는 입장에서도 여러모로 수고가 든다. 어떤 방법이 동물을 위한 최선책인가에 대해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이다."

- 동물권리단체들은 상업성에 치중해 동물의 복지를 저해하는 현재의 동물원에 반대한다. 그래서 현존하는 동물원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거둬야만 하는 동물들을 위한 '보호 시설'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호 시설로서의 동물원 기능이 증대돼야 한다는 데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국내의 보호시설은 해외(기자주 : 서구의 경우 '생츄어리(sanctuary)'라 불리는 보호 시설이 확대되고 있다)와 같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 어느 정도 명백하다. 따라서 동물원이 보호 시설의 역할을 수행하는 주체 중 하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동물권이 신장될수록 더 많은 보호시설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동물권과 자연 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수록 인간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동물들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예로 현재 전국에 있는 야생동물구조센터는 영구적인 장애가 있는 동물들을 비롯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기에 부적합한 동물들을 공간·인력·지원의 한계 때문에 전부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동물원이 이런 동물들을 위한 보호 시설의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호랑이와 염소는 다르지 않다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매각된 후 농장에서 도축된 서울동물원의 새끼 흑염소 사체를 증거물로 입수, 지난 8월 20일 기자회견에서 공개했다.
 '케어'와 '동물을 위한 행동'은 매각된 후 농장에서 도축된 서울동물원의 새끼 흑염소 사체를 증거물로 입수, 지난 8월 20일 기자회견에서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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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사건과 관련 서울동물원에 바라는 바가 있다면?
"내 책을 읽은 독자에겐 이번 사건이 굉장히 의아하게 여겨질 수 있다. 책에서는 국내 9개 동물원이 비교 평가되는 과정에서 서울동물원이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울동물원이 부분적으로 시행 중인 개체 수 조절책을 소개하면서 '서울동물원은 무계획적 증식에 대해서는 사실 국내 동물원 중 가장 우려할 부분이 적은 곳이다'라고 평가했기 때문에 더욱 뜻밖이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번 사건과 관련 서울동물원에 특히 실망이 큰 이유는, 서울동물원이 관람객에게 인기가 많고 보전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은, 이른바 '전략종' 동물에 대해서는 개체 수 조절책을 어느 정도 적용하고 있고, 과잉 개체가 발생해도 최대한 끌어안고 가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43마리의 염소와 사슴들이 식용으로 처분된 것과 달리, 시베리아호랑이의 경우에는 시설에 비해 개체 수가 많은 상황을 고려하여 더 이상의 번식을 막는 조치가 이뤄지고 있으며, 최대한 많은 호랑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방사장을 넓혔다. 물론 여러 현실적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 동물원의 입장에서 염소와 시베리아호랑이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동물원이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동물 복지의 관점에서 보자면, 염소와 호랑이는 다를 것이 없는 동물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래도 서울동물원이라면 충분히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동안 서울동물원 문제를 다룰 때는 항상 동물원의 입장을 한 번 더 고려하는 편이었지만, 이번 사건에서는 그렇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서울동물원이 '가장 귀가 열린 동물원'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현재 쏟아지는 비판을 겸허히 듣고, 앞으로의 운영 방향에 충분히 반영하기를 바란다."

- 도축 농장에 남아 있는 서울동물원 동물들에 대한 처우가 어떻게 진행되기를 바라는가?
"일을 벌인 쪽에서 수습을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현재로서는 서울동물원보다 나은 처우를 제공할 수 있는 곳도 딱히 없으니 서울동물원이 다시 수용하는 방법이 최선인 것 같다.

매각된 동물들 중 염소를 제외한 사슴과(Cervidae) 동물들은 모두 서울동물원의 사슴사에 수용되던 종들인데, 사슴사는 예전부터 단조로운 환경과 단순한 관람 구조, 특유의 분변 냄새, 부족한 교육 요소 때문에 관람객에게 외면 받아왔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동물원 내 개선 순위에서도 뒤로 밀리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서울동물원이 호랑이의 경우처럼 동물을 배려하기보단 희생을 강요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서울동물원이 더 이상 사슴사와 그곳의 사슴들을 방치하지 않고 제대로 된 시설과 관리를 제공하길 바란다."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북 콘서트 사진. 왼쪽부터 책을 펴낸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 저자인 최혁준 씨, 행사를 주최한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임순례 대표.
▲ "동물원의 동물은 안녕한가요?"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북 콘서트 사진. 왼쪽부터 책을 펴낸 책공장더불어의 김보경 대표, 저자인 최혁준 씨, 행사를 주최한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임순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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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사건과 관련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동물원이 잉여 동물을 외부에 팔아 처리하는 것은 비단 오늘날에만, 그리고 서울동물원에만 국한되지 않는 현상이다. 오래 전부터 국내 여러 동물원과 동물 체험 시설에서는 인기가 없거나, 관람 가치가 떨어졌거나, 값이 싸고 구하기 쉬운 동물들이 처치 곤란해졌을 경우, 한때는 관람객의 사랑을 받았던 그들을 훨씬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아 왔다.

여러 체험형 동물원, 산발적으로 열리는 각종 동물 체험전에는 어린이들을 매료하는 귀여운 병아리 떼나 앙증맞은 아기 돼지들이 있다. 이들은 몸집이 크고, 많이 먹고, 더 이상 귀엽지 않은 다 자란 동물이 되기 전에 동물원 밖으로 팔려나간다.

이렇게 '배신'당하고 버려지는 동물들 중에는 대개 언제든 전시용에서 식용으로 '용도 변경'이 가능한 가축이 많다. 그리고 동물원에서 가축을 기르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동물을 만져보고, 먹이를 주고,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을 그런 용도로 사육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과 동물 복지에 관련된 문제점이 많기 때문에 일종의 '대타'로서 그들을 이용하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가 동물원에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동물을 '소비'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희생되는 동물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거의 무분별한 전시 종 선정으로 보유하고 있는 동물 가운데 보전이나 전시 가치가 낮은 동물들을 '정리종'으로 분류해, 장기적으로 개체 수를 줄이거나 외부로 반출하는 방법으로 전시를 중단하는 운영 방향이 서울동물원을 중심으로 시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국내 동물원들은 시설과 공간,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종의 동물을 집약적으로 전시하는 데다가, 종 보전과 무관한 해외 종을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운영 방향의 취지에는 적극 동의하는 바다.

그러나 그러한 운영이 이번 사건과 같이 동물들에게 막대한 희생을 요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면 동의할 수 없다. 현재 크고 작은 개선을 앞둔 지방 동물원이 많다. 서울동물원을 포함하여 종 선정을 하고 있는 동물원들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사건을 다각도로 분석한 최혁준씨의 의견을 지면 관계상 전부 싣지 못한 것이 아쉬워 인터뷰 전문을 따로 공개해뒀다. 아래 덧붙이는 말의 링크를 참조하기 바란다.

한편 서울대공원 동물원 측은 지난 27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잉여 동물 매각과 관련해 문제가 되고 있는 부분에 대하여, 향후 잉여 동물의 처리방안에 대해 동물 분야 학자를 비롯한 외부 전문가와의 토론회 등을 거쳐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동물 보호 단체 '케어'는 도축 농장으로 매각된 동물들을 도로 데려갈 것을 서울동물원에게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 인터뷰 전문 보기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 #서울대공원 동물원, #식용 매각, #동물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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