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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규 시민기자(아래 호칭 선생)의 서평 잘 읽었습니다. 책을 꼼꼼하게 읽어 주시고 나름대로 저의 생각과 다른 부분을 짚어주셔서 고맙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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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의 저자인 저는 이 책에서 일본말 도다이구사(燈臺草)를 우리말로 '등대풀'이라고 쓰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원래 이 말은 등대가 아니라 등잔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등잔꽃의 오역이라고 썼습니다.

그러나 최종규 선생은 한발 더 나아가 오늘날에는 등잔불을 쓰는 집이 없다고 할 만하니, '불받침풀꽃' 같은 이름을 새롭게 붙일 수 있겠다고 했습니다. 좋은 의견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일본말 원어인 등잔꽃을 '인정하는 꼴'이라 썩 유쾌한 답은 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노견'이란 말을 아시는지요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나 한 가지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노견(路肩)이란 말이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말이었으나 요즈음은 갓길로 순화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일부 고속도로 공사장에는 '길어깨'라고 쓰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는 노견(路肩)을 한글화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다시 등잔풀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최종규 선생의 '불받침풀꽃' 의견은 일본말 도다이구사(燈臺草, 여기서 등대는 등잔을 가리키는 일본말)를 한글화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어느 쪽인가 하면 등대풀도 등잔꽃도 그리고 '불받침풀꽃'이란 의견도 모두 마땅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이 꽃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가장 알맞은 이름을 지어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 책에서 일일이 풀꽃이름을 제 자신이 지어 제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지적하셨더군요.

더군다나 일본말 이누노후구리를 그대로 옮긴 큰개불알꽃을 요즘 사람들이 봄까치꽃이라고 부르더라고 소개했더니 '봄까치꽃'이 아니고 '봄까지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이해인 수녀님이 쓴 시가 널리 퍼지면서 그만 '봄까치꽃'으로 아는 사람이 늘었는데, '봄까지꽃'이 왜 봄까지꽃인가 하면, 겨울이 저물 무렵 들과 논둑마다 하나둘 피어나서 봄이 지는 오월까지만 꽃이 피기 때문에 '봄까지'라고 하셨습니다.

들어보니 그럴듯하지만 저는 이내 의문이 생겼습니다. 진달래도 봄까지만 피고 개나리도 봄까지만 피는데 유독 큰개불알꽃만 '봄까지' 피는 꽃일까요? 저는 수많은 사람들이 '봄까치꽃'이라 하기에 '아, 봄소식을 들려주는 까치처럼 봄의 전령사라서 그렇게 부르나보다'라고 생각했고, 그 사실을 그대로 옮겼을 뿐입니다. 그것이 맞거나 틀리다는 것은 아니지요? 최종규 선생의 '봄까지꽃' 역시 맞거나 틀렸다고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 이름 역시 더 많은 논의가 진행돼야 하지 않을까요.

큰개불알꽃(이누노후구리) 말고 개불알꽃(아츠모리소)은 요즈음 복주머니란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식물학자 박만규 선생은 '요강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꽃을 보면 보는 이에 따라 다른 답이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만 일본인처럼 이 꽃을 '개불알'로 보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꽃의 이름은 1937년 <조선식물향명집>에서 개불알꽃으로 번역돼 있고, 이후 한국에서 나온 식물도감들이 이 이름을 달아줘 지금도 많은 식물도감에 그렇게 표기돼 있습니다. 저는 이 꽃을 복주머니란으로 해야 할지 요강꽃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이름으로 해야 할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소개만 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꽃이름을 제안할 만큼 한가하지도 않을 뿐더러 제가 제안한다고 해서 그것이 먹혀들어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지요.

금강초롱에 하나부사 이름을 단 걸 봐줄 수 있을까요

최종규 선생은 "저자 이윤옥씨는 아무래도 '일본 식물학자'가 한국 풀이름에 '학명'으로 이름을 올린 대목을 안타깝게 여기는 듯합니다. <조선식물향명집>에 실린 풀이름을 비롯해서 한국에서 널리 쓰는 풀이름 가운데 '아직 옳게 바로잡지 못한 풀이름'이 제법 있습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풀이름'이 창씨개명됐다는 주장은 올바르지 않습니다"라고 하면서 "'학명'은 학술논문으로 처음 올린 사람 이름이 붙으니 어쩔 수 없지요. 저자 이윤옥씨는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이라는 책에서 일본 식물학자만 안타깝게 바라보는데, 한국 풀이름이나 나무이름을 찬찬히 살피면 '일본사람 이름'만 있지 않아요. '서양사람 이름'도 많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서양인 이름도 많은데 왜 일본사람 이름만 가지고 난리냐?'라고 들려 씁쓸한 여운을 남기는군요. 일본인 학자가 한반도에서 새로운 식물을 발견해 자신의 이름으로 학명에 올린 것이 아무렇지 않다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으니까요? 정말 아무렇지 않은 것입니까? 금강초롱처럼 어여쁜 꽃에 초대 일본공사 하나부사 이름을 달아 준 것도 그냥 봐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마키노 국화는 어떻구요? 또 이토히로부미를 위한 통감제비꽃도요. 좋습니다. 이제는 일제강점의 시대가 지났으니 구태여 그런 이야기를 해서 뭐하느냐고 한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그러한 사실을 알고라도 있자고 한 것이 그리도 불쾌하십니까?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닐 것입니다. 쓰라린 식민의 역사를 겪은 어르신들은 풀꽃이름에 일본인 이름이 들어있다는 것만으로도 화들짝 놀라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그런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왜 안 그러겠습니까? 선생님은 어느 나라 사람입니까? '우리 식물이름에 서양인 이름도 많은데 왜 하필 일본인 이름만 가지고 촌스럽게 떠느냐?'고 서평을 쓰신 건 아니겠지요.

한발 물러나서 보면 최종규 선생의 지적처럼 우리말글 속에는 택배(宅配, 타쿠하이)나 물류(物流, 부츠류) 같은 일본말만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힐링이니 스펙이니 자고 나면 서양말도 물밀 듯 우리 말글살이를 해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서양말들은 괜찮고 일본말 찌꺼기만 나쁘다"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초점을 산만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저의 전공인 일본말만 다룬 것일 뿐입니다.

이 책은 지난 35년간 일제침략기 동안 벌어진 한반도 식물조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기간에 한국땅에 건너와 우리 산하를 뒤졌던 사람들이 일본인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또 일본인처럼 조직적으로 우리 산하를 뒤진 사람들도 없습니다. 최종규 선생처럼 생각하시는 분들은 조선총독부가 모리다메조를 앞세워 일본말로 만든 <조선식문명휘>(1922) 같은 책을 샅샅이 보시고 주장을 펼치시면 좋겠습니다. 과연 이런 책을 만든 일본인과 서양인을 동급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인지 재차 묻고 싶습니다.

<조선식물향명집>에 대한 언급에 대해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2015, 인물과사상사》 표지
▲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2015, 인물과사상사》 표지
ⓒ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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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답하며 마치겠습니다.

최종규 선생께서는 "저자 이윤옥씨는 <조선식물향명집>에 실린 머리말에서 1930년대 한국 식물학자가 '조선총독부 사전'과 '일본인 식물도감'을 바탕으로 삼아서 풀이름을 붙였다고 적었어요. 따옴표를 붙이면서 이렇게 적습니다. 그러나, 이는 아주 틀린 말입니다. 디지털 한글박물관에 들어가면 <조선식물향명집> 원본을 읽을 수 있습니다"라면서 원문을 달아 놓으셨습니다.

설마 이러한 책을 쓰는 사람이 서문을 잘못 읽었겠습니까? 저의 인용글은 단 한 자도 가감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서문의 사정이 있는 것을 구체적으로 풀어 쓰지 않았을 뿐인 것을 가지고 틀리네, 맞네 한다면 지적의 논지가 흐려짐을 헤아려 주십시오.

사정은 이렇습니다.

소화 12년(1937년)에  나온 <조선식물향명집>에는 본문에 앞서 서(序), 범례(凡例), 사정요지(査定要旨)가 있습니다. 서(序)를 잘 읽어 보면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은 상태에서  <조선식물향명집>을 만들게 된 경위가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조선식물향명집>에 나오는 조선명(조선산식물향토명)을 짓는 데는 다음과 같은 문헌을 토대로 했다고 적혀있습니다(본문에는 '여기 기재된 것이 중요한 것이다'라고 돼 있지만 이 말은 이 책을 토대로 한 것을 말하며 실제 <조선식물향명집>은 이들을 토대로 했음). 1937년에 나온 <조선식물향명집>이 참고로 한 책은 다음과 같습니다.

향약채집월령, 향약본초, 동의보감, 신림경제, 제중신편, 방약합편고적, 총독부편조선어사전, 모리박사저서조선식물명휘, 이시도야·정태현편 조선삼림수목요감, 나카이 박사 저서 조선삼림식물편 등입니다.

서(序)는 이렇게 이어지는데 "위에 있는 문헌에는 동물이명(同物異名) 등이 있고 지방에 따라 이름이 다른 것들이 많으며 조선어에 생소한 내외선학들(주로 일본학자를 일컫는 것임)의 오기(誤記)도 있어 편집자들이 예부터 연구하던 것에 덧붙여 3년간 100여 차례 만나서 수집한 방언을 토대로 하고 전기문헌(前記文獻, 곧 앞에 예시한 문헌)을 참고로 식물명칭을 사정(査定)하였으며 이것은 2000여종에 달한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따라서 최종규 선생의 지적처럼 제 책 115쪽에 '조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선명은 그대로 이용하되 이름을 알 수 없는 것은 총독부에서 만든 <조선어사전>이나 일본인이 쓴 식물도감을 토대로 이름을 붙였다'라고 쓴 걸 틀렸다 하시면 안 됩니다. 최종규 선생처럼 자구(字句) 하나에 시비를 거는 사람을 고려했다면 '서(序)와 범례(凡例), 사정요지(査定要旨)에 나오는 문장을 모두 예시했어야 하는데 그것이 번거로워 서(序)에 싸잡아 말한 것일 뿐이지 없는 말을 보탰거나 뺀 일은 없습니다. 

읽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사정요지(査定要旨)의 1항에 "조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조선명은 그대로 채용함"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기타 <조선식물향명집>에 임하는 편집자들의 사정(査定) 기준을 요약해 놓고 있음은 잘 아실 테지요. 정리하자면 저자의 115쪽 기술부분은 <조선식물향명집> 서(序), 범례(凡例), 사정요지(査定要旨)를 아우르는 내용이며 어느 한 부분도 가감이 없는 내용임을 밝힙니다.

더 하고 싶은 말은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책 머리말에서도 밝혔듯이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꺼내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회의감에 많은 고민을 한 사람입니다. 물론 알게 모르게 우리풀꽃 이름을 되살리려고 애쓴 분들도 많이 있음을 압니다. 그 가운데 최종규 선생님도 한 분이겠지요.

그럼에도 여전히 2015년 8월 현재도 우리 풀꽃 이름은 제 이름을 올바르게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책 한권으로 그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들꽃을 사랑하는 것은 식물학자들만의 몫은 아니라고 봅니다. 생태적인 것은 식물학자들이 더 자세히 알겠지만 꽃이름에 관해서 만이라도 광복 70주년을 맞는 올해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 책으로 '화두' 하나를 던진 것으로 생각합니다.

꼼꼼하게 제 책을 읽고 몇 가지 이야기를 지적하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 잘못된 이름으로 불리는 우리 풀꽃 속의 일제 잔재

이윤옥 지음, 인물과사상사(2015)


태그:#우리 풀꽃, #창씨개명,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일본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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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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