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돼먹은 영애씨 14 티저 포스터 막돼먹은 영애씨 14 티저 포스터

▲ 막돼먹은 영애씨 14 티저 포스터 막돼먹은 영애씨 14 티저 포스터 ⓒ tvN


이번 시즌(<막돼먹은 영애씨 시즌 14>)은 더욱 독해진 인상이다. 희망퇴직이란 허울의 부당해고, 경력자 채용 면접에서의 나이차별, 생존을 위한 창업, 그리고 같은 이유의 배신까지. 을보다 못한 병과 정들의 고군분투는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이미 '진상력 만랩'을 찍은 정지순(정지순 분)과 라미란(라미란 분) 캐릭터에 악덕 사장의 표본과도 같은 조덕제(조덕제 분)까지 가세하며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인내심을 자주 시험한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얼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계속 보고 있으면 건강을 잃을 것 같은 염려마저 든다.

'새 사장' 조덕제는 무식과 무례의 극치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하지만 "염병할" 효율성을 탑재해 이른바 '능력 있는' 경영자로 큰 사장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시종 카고바지와 등산복 차림에 육두문자를 구성지게 구사하며 따귀, 발길질 등의 물리적 폭력도 마다않는 조 사장의 가장 큰 악덕은 부하직원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인간이길 포기하게끔 강박한다는 것이다.

희망퇴직을 언급하며 라미란과 이영애(김현숙 분) 둘 중 한 명의 퇴직을 강권하는 장면은 이 캐릭터의 특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이 짝이여? 저 짝이여?"). 문제는 이런 인물, 이런 갑들이 (굳이 땅콩사건까지 갈 필요도 없이) 현실에 차고 넘친다는 사실일 게다. 취업규칙조차 강제화되지 않은 10인 이하 소규모 사업장에서 이런 진상 갑들의 횡포를 막을 제도적 수단은 극히 드물다.

제도가 보호해주지 않는 폭력에 맞서 인간 존엄성을 지켜내는 방식은 깊은 분노를 참지 않고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밖으로 토해내는 일 정도일 진데, 이 경우 피해자는 외려 가해자의 외피를 뒤집어쓰는 경우가 태반이다. 극중 영애는 꼭 잘 참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다("염병은 네가 염병이다! 이 염병할 놈아!").

순간의 존엄을 지킨 뒤의 결과는 항상 영애에게 불리하다. 부당해고를 당했음에도 어딘가에 호소조차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는 것이다.

해고 후 재취업에 실패한 영애는 미란과 함께 생계형 창업을 하고 큰 일거리를 따내는 등 '초심자의 행운'도 다소간 따르는 듯하다. 하지만 조 사장의 악행은 멈출 줄을 몰라 영애의 동업자인 미란을 스카웃해 가는 지경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짓" "나 사람 아니에요" "네가 인간이야?" 등 인간의 자격을 묻는 대사가 유독 많이 등장하는데, 작가는 돈 앞에서 무기력한 병과 정들의 '인간성'을 부각시키고 싶었던 듯싶다. 다소 무리한 전개라는 비난에도, 미란의 배신이 생계 때문이라는 부분에 이르러 많은 이들이 공감한 건, 우리네 병정들의 삶이 드라마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생계 때문에 배신하는 병·정들

이번 시즌에 비중이 크게 높아진 신입사원들의 모습 역시 소름끼치게 현실적이다. 낙원사의 조현영(레인보우 조현영 분)은 중국어회화가 가능한 능력자임에도 회사 내에서 막걸리를 마시는가 하면 해장으로 라면스프를 말아먹는 등 별 생각 없이 하루를 사는 캐릭터다. 영세사업장인 낙원사에 어울리지 않는 큰 야망을 품고 입사한 박두식(박두식 분)의 모습도 어딘가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특히 두식이 자신의 야망을 현실화하기 위한 처세법이란 것도 사실 고작 윗사람에게 과할 정도로 굴종하거나 자신과 같은 급의 현영이나 박선호의 실수를 고자질하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이영애디자인의 박선호(박선호 분)는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고 뭐든 '대충' 하는 캐릭터다. 처가살이를 하는 '백수 가장' 김혁규(고세원 분)는 여전히 공인중개사 시험을 공부하고 있고,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던 '연대생' 이용주(이용주 분)는 9급 공무원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아프면 환자지 청춘이냐?"란 일갈로 유명한 유병재는 카메오로 등장하여 각종 질병과 증후군에 시달리는 '환자' 신입사원 역할을 소화한 바 있다.

삼포, 오포에 이어 칠포세대(결혼, 출산 등 7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뜻)라는 조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부모의 경제적 조력을 받지 못한 청년들의 유형이란 위의 캐릭터들을 크게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물론 드라마는 드라마인지라,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4>는 어느 정도 비현실적이기도 하다. 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내내 영애의 옆엔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이든, '썸'이든, 짝사랑이든, 언제나 곁이 되어줄 남자가 존재했다. 여기에 더해 드디어 이번 시즌엔 삼각관계다. 소름끼치도록 인간적이고 속정이 많은 전 사장 이승준(이승준 분)과 응당 모든 게 완벽한 구남친 김산호(김산호 분)의 조합은 보는 이들을 대리만족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한편 부인 몰래 창업한 딸에게 돈을 빌려주는 영애 아버지(송민형 분)와 영애 회사에서 행패를 부리는 조 사장과 머리끄덩이를 잡고 치고받으며 싸우는 영애 어머니(김정하 분)의 존재는 보는 것만으로도 조금 울컥하기까지 하다. 이런 연인들과 이런 부모가 곁에 있다면, 그깟 해고쯤, 그깟 배신쯤, 그리고 숱한 외모 비하와 나이 차별 등 각종 언어 폭력쯤 쉬이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현실의 병과 정들에게도 언제나 그들 편이 되어줄 연인과 부모의 존재가 단단히 뒤를 받쳐주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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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 반려견 '라떼' 아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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