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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16일 오후 6시 4분]

지난 14일 오전 8시 10분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 2학년 4반 교실. 이 학교 전경원(45) 교사가 학생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전 교사는 "여러분과 헤어지게 됐는데, 구제될 수 있는 절차가 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죄송하다"라고 말한 뒤, 교실을 빠져나왔다. 어두운 표정의 학생들이 눈에 밟혔다. "담임 교체로 상처받을 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라고 했다.

서울 은평구 하나고 전경원 교사.
 서울 은평구 하나고 전경원 교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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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원 교사는 지난 8월 26일 서울시의회 하나고 특혜의혹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행정사무조사에서 증언한 이후 고초를 겪고 있다. 그는 하나고가 학생 성적을 조작해 신입생을 뽑았고, MB정부 고위인사의 아들이 일으킨 학교 폭력 사건을 은폐했다고 밝혔다. 이는 일파만파로 퍼졌다. 지난 2010년 3월 개교한 이후 짧은 기간 내에 입시 명문으로 명성을 얻은 하나고의 민낯이 세상에 드러났다. 

하나고 교가 가사를 지을 정도로 학교를 사랑했던 전 교사는 졸지에 '공공의 적'이 됐다. 14일 서울시교육청이 하나고와 그 재단인 학교법인 하나학원에 대한 현장 감사에 돌입했지만, 학교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담임에서 잘랐다. 전 교사는 한 달 새 몸무게가 10kg나 빠졌다. 이날 오후 하나고 인근 한 카페에서 기자는 그에게 물었다.

- 증언을 후회하지 않나?
"수업시간에 아이들 얼굴을 볼 때, 학부모가 쓴 글을 볼 때, 집에서 가족이 자는 모습을 볼 때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하지만 이는 개인적인 후회이고, 공적인 관점에서 보면 후회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고가 고름을 짜내고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과정 아니겠나." 

기숙사 남녀 성비 맞춰야 하니, 성적 조작?

전경원 교사는 지난 2009년 9월 하나고 개교 준비위원으로, 하나고와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3월 개교에 앞서 첫 신입생을 뽑기 위한 입학 전형을 짠 이가 바로 전경원 교사다. 그는 입학전형위원회에도 참여해 신입생을 뽑는 데 관여했다. 최종 합격자를 뽑는 회의 때 성적 조작이 있었다고 전 교사는 전했다. 

- 어떤 식으로 성적 조작과 입시 부정이 이뤄졌나.
"학교는 입시전형위원장인 정철화 교감과 전형위원들 앞에 빔프로젝터로 화면을 띄웠다. 지원자의 점수가 담긴 엑셀 표가 보였다. 정 교감은 남학생들을 선택해 '쟤 괜찮은데 올리자'라고 하면서 가산점을 줬다. 합격선 아래에 있던 남학생이 합격선 위로 올라갔고, 반대로 여학생들은 합격선 아래로 내려갔다."

- 입학전형위원들의 문제 제기는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한 선생님이 '못 하겠다'고 들고 일어났다. 정 교감은 당황스러워하면서 '(김승유) 이사장님이 하라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했다. 저를 포함한 입학전형위원들은 결국 서류에 사인했다."

- 당시에 문제가 될 거라는 걸 몰랐나.
"2009년 교무수첩에 일기를 썼다. 살펴보니 '성비 문제가 제기되면, 그 대응 논리로는 기숙사 수요 문제가 좋다'고 적혀 있었다. 기숙사 문제는 허구라고 봐야 하는데, 그때도 문제가 될 줄 알았다. 저도 서류에 사인했고 욕먹을 수 있다. 하지만 제가 책임질 부분을 책임지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

전 교사는 8월 26일 서울시의회 특위 행정사무조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폭로했다. 함께 출석한 정철화 교감은 "기숙사가 남자동·여자동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 한 층을 남자가 쓰면 여학생이 못 쓴다"라면서 "2013년 7월 서울시교육청 감사 때 감사위원들한테 설명을 드렸고, 감사위원들도 수긍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김승유 이사장 역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사소한 싸움에도 열린 학폭위... MB정부 고위인사 자녀는 예외


"힘이나 권력이 없는 서민 자식들은 사소한 싸움으로 징계를 받지만, 권력이 있는 사람들 자녀의 학교 폭력은 이사장까지 나서서 무마·은폐시켰다. 공정하지 않다"
 "힘이나 권력이 없는 서민 자식들은 사소한 싸움으로 징계를 받지만, 권력이 있는 사람들 자녀의 학교 폭력은 이사장까지 나서서 무마·은폐시켰다. 공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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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원 교사는 또한 학교가 MB정부 고위인사 아들의 학교 폭력을 은폐했다고 폭로했다. 그의 아들은 2011년 3월 하나고에 입학했다. 이후 다른 학생들에게 학교 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나, 2012년 5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다. 하지만 법에 따른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아래 학폭위)는 열리지 않았다. 전 교사의 말이다.

"피해 학생 진술서에 따르면, MB정부 고위인사의 아들은 피해 학생들을 '명령불복종'이라며 때렸고, 책상에 머리를 300번 부딪히게 한 적도 있었다. 손톱을 깎아서 피해 학생 침대에 뿌리거나 본인 공부가 끝날 때까지 잠을 재우지 않았다. 심각한 학교폭력이 있었지만, 학폭위가 열리지 않았다. 그동안 하나고에서는 사소한 싸움에도 학폭위가 열렸다."

전 교사는 "당시 저를 포함해 몇몇 교사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학교는 답변하지 않았다"라면서 "결국 학폭위는 열리지 않았고, 그의 아들은 전학을 갔다"라고 전했다. 김승유 이사장은 교사들에게 "당시 MB정부 고위인사가 '학기는 마치고 전학을 가게 해달라'고 전화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전학시켰다, 전학은 최고의 징계수위"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전 교사는 "(학교는) 학폭위에 따른 권고전학이 아니라, 조용히 전학을 갈 수 있도록 했다"라면서 "힘이나 권력이 없는 서민 자식들은 사소한 싸움으로 징계를 받지만, 권력이 있는 사람들 자녀의 학교 폭력은 이사장까지 나서서 무마·은폐시켰다, 공정하지 않다"라고 비판했다.

김승유 이사장 "모든 수단과 방법 동원해 못 견디게 하겠다"

전경원 교사는 2014년 10월 김승유 이사장으로부터 우수교원 표창을 받았다. '평소 헌신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학생지도와 수업연구에 충실하여 타의 모범이 됨은 물론, 학교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지난 3월 전 교사와 학교의 관계는 틀어졌다. 전 교사는 하나고 자체 교직원 평가에서 동료 교사를 평가하지 않은 것과 겸직에 대한 교감과의 갈등으로 인해 경고장을 받았다. 그는 경고장은 인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학교의 각종 부정행위도 여기에 담았다. 전 교사와 학교의 갈등은 커졌다. 지난 8월 1일 전 교사는 김승유 이사장과 독대할 기회를 얻었다. 전 교사의 말이다.

"MB정부 고위인사 아들의 전학 문제 등 갖가지 사안에서 접점을 찾을 수 없었다. 김승유 이사장은 '하나고 명성이나 선생님의 대외적인 인지도가 있으니까 조용히 학교를 떠나시죠'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무섭기도 하고 화도 났다."

- 뭐라고 답했나?
"'제 정년이 2033년이다, 그때까지 하나고에서 근무하고 싶고, 하나고가 정의로워지는 걸 보고 싶다'고 했다."

- 그랬더니?
"(김 이사장이) 저를 보고 웃으면서 '투쟁하시겠다는 거죠?'라고 했다. 이어 '그럼 재단에서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못 견디게 해드리죠'라고 말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앉아 있자, '두고 봅시다'라며 독대를 마무리했다. 머리가 띵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입학식·졸업식 때 점잖게 축사하는 모습이 아닌 독재자의 용어를 쓴 것에 충격을 받았다."

전 교사는 "기업도 이러지 않을 것이다, 교육자한테 할 말인가"라고 성토했다. 그는 그 뒤 김 이사장의 장기집권을 비판하면서 기업의 사회공헌으로 설립된 학교에서 개인의 사유화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하는 칼럼을 언론사에 보냈다. 그러자 학교는 교사·학부모·졸업생에게 정 교사가 김 이사장을 공격한다고 알렸다. 학교는 8월 말 전 교사의 인권위 진정서를 근거로, 그의 직위해제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이사회를 예고했다. 이는 서울시의회 행정사무조사로 인해 연기됐다.

"탄압 잘 이겨내 정년 퇴임하겠다"

"부정에 문제를 제기한 교사가 탄압을 잘 견디고 이겨내 학교가 올바르게 서는 모습을 보고 정년퇴임을 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다."
 "부정에 문제를 제기한 교사가 탄압을 잘 견디고 이겨내 학교가 올바르게 서는 모습을 보고 정년퇴임을 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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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고는 8월 29일 전 교사가 문제를 제기한 사안에 대해 과장·왜곡됐다는 내용의 신문광고를 냈다. 전 교사는 "전날 김승유 이사장이 회의를 소집하는 등 사실상 김승유 이사장이 주도한 것"이라면서 "학교는 신문 광고에 이름 올리는 걸 반대하는 교직원을 파악했다, 누가 말할 수 있겠나, 또한 자신의 이름이 올라갔는지 모르는 교직원 숫자만 20여 명에 달했다"라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폭로로 상처를 받았을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전 교사에게 폭로를 중단하라며 10일 이상 단식을 한 유아무개 교사는 전 교사와 친한 후배 교사다. 전 교사는 "후배 교사는 폭로를 통해 아이들이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그 진정성을 충분히 이해한다"라고 전했다.

일부 학부모의 비판도 적잖은 부담이다. 학교는 담임 교체를 하면서 2학년 학부모들 상당수가 담임교체에 서명했고, 여기에는 2학년 4반 학생의 학부모가 모두 참여했다고 밝혔다. '전경원 너는 선생님도 아니고 개XX이다, 교직에서 떠나라'라는 내용의 이메일도 받았다. 10일에는 검은색 옷을 맞춰 입은 몇 명의 학부모가 2시간 동안 전 교사가 있는 교무실에서 '학교를 떠나라'는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전 교사는 무엇보다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입학사정관제에서 학교 명예가 떨어지면, 고3 학생들이 불안해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 좋지 않은 때"라면서 "이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라고 전했다. 그럼에도 전 교사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말했다. "응원한다는 이메일을 보내온 학부모와 교사도 있다, 우리 사회의 정의로움을 추구하는 많은 분이 힘을 주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의 말이다.

"하나고가 치부를 은폐한다면, 비리사학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고는 사회적 책무 측면에서 가야 할 길이 멀다. 그게 담보가 될 때 위대한 학교로 발돋움할 수 있지만 이를 외면하면 소위 입시명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부정에 문제를 제기한 교사가 탄압을 잘 견디고 이겨내 학교가 올바르게 서는 모습을 보고 정년퇴임을 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은평지역 학부모와 시민들이 14일 오전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앞에서 입시부정, 학교폭력 은폐 의혹, 내부고발 교사 보복 등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은평지역 학부모와 시민들이 14일 오전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앞에서 입시부정, 학교폭력 은폐 의혹, 내부고발 교사 보복 등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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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단체협의회, 은평지역 학부모와 시민들이 14일 오전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앞에서 입시부정, 학교폭력 은폐 의혹, 내부고발 교사 보복 등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은평지역 학부모와 시민들이 14일 오전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앞에서 입시부정, 학교폭력 은폐 의혹, 내부고발 교사 보복 등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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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은평지역 학부모와 시민들이 14일 오전 서울 은평구 하나고등학교앞에서 입시부정, 학교폭력 은폐 의혹, 내부고발 교사 보복 등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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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전경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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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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