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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0만 관객들은 간난산고의 삶을 살아온 아버지들에게 영화 <국제시장>을 눈물로 바쳤다. 타국 막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파독 광부들의 처절한 장면에선 눈물바다가 됐다. 파독 광부 아버지의 삶은 조명됐지만 진폐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광부 아버지들의 삶은 외면당했다. 막장에서 캐낸 석탄으로 춥고 허기진 시대를 달래준 왕년의 산업 전사들의 삶을 3회 연재한다. - 기자 말

진폐재해자 3만여 명... 정부 증산보국에 희생된 '광부아버지'

성희직 진폐제도개선추진위원장이 삼탄아트마인에 전시된 광부들의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성희직 진폐제도개선추진위원장이 삼탄아트마인에 전시된 광부들의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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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363개였던 탄광은 2012년 5개로 대폭 줄었고, 광산노동자들은 6만8000여 명에서 3700여 명으로 크게 줄었다. 증산보국의 기치를 내걸고 석탄증산정책을 시행하던 정부는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을 추진했다. 주거 환경 변화에 따라 석유 및 도시가스로 연료가 대체되면서 국민 연료였던 연탄은 자취를 감추었다. 대신 3만여 명의 진폐재해자를 남겼다.

진폐재해자란 진폐증에 걸린 산업재해자이다. 진폐증은 광부들이 주로 걸리는 산업재해로 미세 먼지가 허파에 쌓여 생기는 만성 폐질환으로 불치병이다. 진폐증 환자를 양산시킨 건 정부와 광업소다. 생산제일주의는 안전작업과 광부의 건강을 외면했다. 치료와 보상조차 받지 못하고 숨진 광산노동자들은 얼마나 될까?

"도급제 막장에선 발파하고 2~3분도 지나지 않아 화약연기 가득한 막장을 더듬으며 들어가서 탄을 캤다. 작업 조건이 나쁜 막장에서 마른천공(일명 가다꾸리)할 때는 매캐한 돌가루가 콧구멍과 입안에 가득 달라붙어 목이 메였다. 몸무게보다 무거운 갱목을 등짐으로 나를 때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고, 숨이 턱밑에까지 차올라 방진마스크를 벗어던질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은 안전보다 생산이 먼저였다."

광부 출신 시인 성희직(58) 정선진폐상담소장의 증언이다. 석탄증산이 애국이라고 강조하던 정부와 광업소에게 광부의 안전과 보건은 뒷전이었다고 했다. 분진예방과 환기시설, 살수장치 등의 안전조치가 도외시 된 탄광막장에서 5년, 10년, 20년, 30년 일한 광부들이 진폐재해자가 된 것이다.

진폐환자들 국회 앞 갱목시위... 진폐연금-폐렴 진폐합병증 인정 촉구

성희직(오른쪽) 진폐제도개선위원장이 지난 15일 국회 앞에서 갱목 시위를 하고 있다.
 성희직(오른쪽) 진폐제도개선위원장이 지난 15일 국회 앞에서 갱목 시위를 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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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진폐재해자협회와 광산진폐권익연대가 구성한 '진폐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성희직)는 15~16일 이틀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과 1인 갱목시위를 전개했다. 그러면서 ▲ 진폐기초연금 50% 지급법안 처리 ▲ 폐렴을 진폐합병증으로 인정 등 진폐제도개선을 촉구했다.

진폐제도개선위원회는 성명서에서 "산업화시대라 불린 60~80년대엔 탄광사고로 숨진 광부들이 연평균 250명, 중경상자가 4000~5000여 명 발생했다"면서 "전쟁터 같은 막장에서 다행히 살아남은 광부들의 상당수는 불치병인 진폐증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광부들의 안전과 목숨보다 석탄을 더 귀하게 여겼던 정부당국의 생산제일 정책의 희생양이 광부와 진폐재해자"라면서 "불치병이자 현재 진행형 직업병인 진폐증을 일반산재와 동일시하는 산재정책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진폐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성희직)가 15일 국회 앞에서 진폐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진폐제도개선위원회(위원장 성희직)가 15일 국회 앞에서 진폐제도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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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2012년 신계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진폐의증 진폐기초연금 50% 지급'법안 처리를 촉구했다. 이 법안은 진폐장해 13등급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월 81만 원)의 50%(40만 5000원)를 진폐의증(진폐의심)에게도 지급하게 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이다. 하지만 노동부의 반대와 19대 국회가 종료를 앞두면서 자동 폐기될 상황이다.

이들은 "엑스레이 판독으로 구분하는 진폐장애 13등급과 진폐의증은 진폐장해 차이가 아주 미세하다"면서 "주영수 한림대 의대 교수의 진폐환자 건강실태 조사에 의하면 진폐의증 환자들이 오히려 질병 유병율이 높게 나타났는데 생활고 때문에 치료를 받지 못한 탓으로 나타났다"면서 진폐의증 환자에 대한 대책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진폐재해자에게 가장 치명적인 질병이 폐렴이고, 폐렴에 걸린 진폐환자 상당수는 폐렴으로 사망한다"면서 "10년 전부터 폐렴을 진폐합병증으로 인정해달라고 건의했지만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무시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이 진폐재해자들의 폐렴 치료비는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폐렴을 진폐합병증으로 인정하기엔 의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진폐제도개선위원회에 따르면 13급 이상 9400여 명과 요양환자 3000여 명은 진폐재해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진폐의증 3300여 명과 진폐끼보유자 1만 2000여 명은 인정받지 못한 상태다.

"폐렴 치료해주면서 진폐합병증으로 인정 않는 건 모순"

박병철(64) 한국진폐재해자협회 서울경기지회장(왼쪽 끝)과 회원들이 진폐증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
 박병철(64) 한국진폐재해자협회 서울경기지회장(왼쪽 끝)과 회원들이 진폐증의 고통을 설명하고 있다.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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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58) 한국진폐재해자협회 사무국장은 20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폐렴을 진폐합병증으로 불인정하는 것에 대한 부당성을 이렇게 말했다. 김 국장은 15일 국회 앞 갱목시위를 전개했다.

"진폐의증 환자가 결핵에 걸리면 진폐합병증으로 인정하면서 요양과 휴업급여를 지급했고, 폐암으로 사망하면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했다. 그런데 2010년 산재보험법이 개정되면서 진폐의증 재해자들은 보상대상에서 제외됐다. 폐렴 치료는 해주면서 진폐합병증으로 인정하지 않는 건 모순이다. 개정이 아닌 개악된 것이다."

박병철(64) 한국진폐재해자협회 서울경기지회장은 진폐 3등급을 받은 중증 재해자다. 수시로 입·퇴원을 하면서 말로 표현 못할 고통을 마약성분 진통제로 달랜다고 했다. 당뇨까지 앓으면서 손톱이 빠지는 증세를 앓고 있다.

국회 앞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 지회장은 지난 15일 "평상시에 감기에 자주 걸려서 바로 입원하는데 진폐증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병이 폐렴이고, 가장 큰 사망원인"이라면서 "진폐증 환자는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여도 폐렴에 걸리면 언제 어떻게 될지 장담 못한다"며 폐렴의 무서움을 강조했다.

진폐증 환자인 늙은 광부아버지들.
 진폐증 환자인 늙은 광부아버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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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영(77·인천시 남구 주안4동)씨는 태백 동원탄좌에서 30년간 채탄과 굴진 등을 했다고 했다. 89년 13급을 받았다는 양씨는 24일 진폐증에 대한 재검을 받는다고 했다. 양씨는 근로복지공단의 진폐증 환자 검진시스템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양씨는 "계단 3개만 올라가도 숨이 차서 주저 않는다"면서 "(근로복지공단이) 걷기도 힘든 환자들을 정밀검사 받아라, 재검을 받으라고 면서 오라 가라 하는 것도 힘들고, 검사를 신청하면 4개월에서 9개월까지 걸리니 기다리다 죽겠다"고 하소연했다. 산업 애국자에 대한 예우가 아닌 홀대의 수준이란 것이다.

세상의 끝 막장에 선 늙은 광부들

삼탄아트마인 계단에 그려진 광부들에 대한 벽화.
 삼탄아트마인 계단에 그려진 광부들에 대한 벽화.
ⓒ 조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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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빈국 대한민국을 경제부국으로 일으킨 산업역군 광부들. 탄광사고로 죽거나 다치면서 나라를 일으킨 광부아버지들이 받은 것은 훈장이 아닌 진폐증이다. 폐광이 되거나 늙은 노동자로 탄광 막장에서 구사일생으로 빠져 나온 광부아버지들이 선 곳은 풍요로운 노후가 아닌 세상의 끝 막장이다.

태백과 정선 등 폐광지역 늙은 광부들이 상경한 이유는 자식 손주를 보러온 게 아니다. 걷는 것도 숨 쉬는 것도 힘겨운 진폐증 광부들은 60~70kg 무게의 갱목을 등에 지고 국회 앞에서 시위했다. 진폐증의 고통과 생활고를 토로했지만 간절한 호소는 국회 문턱도 넘지 못했다. 늙은 광부아버지들이 무관심한 행인들에게 나눠준 전단지에는 이런 문구가 써있다.

"진폐재해자 대량발생은 산업화시대의 아픔입니다. 우리들의 인권과 복지문제 해결에 국회의 특별한 관심과 도움을 호소합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진폐증, #광부, #진폐의증, #진폐합병증,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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