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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선님이 쓴 <여성, 목소리들>(오월의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안미선님은 2009년에 <내 날개 옷은 어디 갔지?>라는 책을 선보인 적 있고, 나는 이 책을 무척 뜻있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여성, 목소리들>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설렜습니다. '날개 옷'을 찾던 안미선님은 '목소리'를 담아서 이웃한테 들려주려고 하는데, 온누리에 가득한 목소리 가운데 "여성 목소리"는 무엇일까 하는 대목을 가만히 헤아리면서 이 책을 천천히 읽습니다.

겉그림
 겉그림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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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저녁에 아이들을 재우는 자리에서 읽습니다. 두 아이가 책을 읽으면서 졸음을 하는 옆에 나란히 앉아서 읽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다가 틈틈이 읽습니다. 국이나 밥이 끓기 앞서 살짝 손이 비는 틈이 있는데, 이럴 때에 몇 쪽을 재빠르게 읽습니다. 빨래를 마당에 널고 기지개를 켜먼서 읽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시골집에 두고 혼자 바깥일을 하러 시외버스를 타고 먼먼 길을 달릴 적에 비로소 호젓하게 읽습니다.

의사와 간호사가 마주보고 킥킥 웃었다. 복용 시간을 일러 주나 싶어, 곧이곧대로 대답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아침부터 성관계를 해 놓고 부랴부랴 달려와 약을 타 가는 칠칠맞은 여자, 그들 눈에는 은민이 그쯤으로 보인 모양이다. 모욕을 지불하고 처방전을 쥐고 돌아서서 앞만 보고 걸었다. (17쪽)

몇십 년간 안전하다며 자국 여성들에게 먹여 온 경구피임약을 부작용이 우려되니 전문의약품으로 바꾸겠다고 했지만, 피임약의 위험에 대한 자세한 통계가 제시되지 않고, 얼마나 위험하다는 건지, 세대와 개인차를 고려해 여성들에게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약의 복용에서 얻는 이점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다 … 여성은 피임을 포함해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제대로 알고 이를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22, 24쪽)

이야기책이라고 할까, 인문책이라고 할까, 아니면 평화책이라고 할까, 또는 사랑책이나 삶책이라고 할까, 여러모로 여러 갈래에 들 만한 <여성, 목소리들>이라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이 책에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온갖 여성이 저마다 억눌리거나 짓눌리거나 아파하는 목소리를 담아요. 저마다 다르게 억눌리는 여성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담고, 이러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회읽기'를 하며, 한국 사회가 평화로 나아가는 길을 밝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여성 우위'나 '남성 우위'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이 서로 사랑하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 아끼는 길을 찾으려 합니다.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름을 넘어서 '사람'이라는 아름다운 숨결로 서로 새롭게 깨어나서 새로운 삶을 찾자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책 첫머리는 '여성 피임약'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을 섞는 자리에서 남성은 으레 피임기구를 안 쓴다고 합니다. 아기가 들어섰을까 걱정하는 여성은 아침부터 병원에 가서 의사와 간호사한테서 찬웃음이나 비웃음이나, 여러모로 웃음을 사는 창피나 부끄러움을 겪고서야 비로소 '여성 피임약'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여성 피임약이 '위험한지 안 위험한지' 제대로 밝혀지거나 알려진 적이 없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를 가르치는 성 교육도 없고 의학 교육도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여성 피임약뿐이 아닙니다. 나라에서 아이들한테 맞히려고 하는 예방주사 성분을 제대로 공개한 적이 없고, 부작용을 알려준 적이 없으며, 예방주사를 맞지 않고도 병에 안 걸리는가 하는 대목을 밝힌 적이 없습니다.

네가 나를 만나고 싶다면 내 감정에 귀 기울이라, 내 침묵을 들어라, 내 목소리를 들어라, 내가 너의 집이 아니고 다른 사람임을 받아들여라. (39쪽)

그들은 집이 더 이상 자신들을 보호하는 공간이 아니어서 가출했다가 거리에서 성폭력을 당했고, 성매매를 했고, 임신중절을 했거나 출산을 했다. (41쪽)

여자는 결혼 제도를 통하지 않고도 어머니가 될 수 있다. 안전하게 임신과 출산을 하고, 어머니 노릇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사회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 또한 여자는 성관계를 할 뿐 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있다. 여자는 피임을 준비하고 요구해도 된다. (50쪽)

기저귀도 빨고, 마당에 물통도 놓아 물놀이도 시키고, 아이와 함께 사는 즐거움입니다.
 기저귀도 빨고, 마당에 물통도 놓아 물놀이도 시키고, 아이와 함께 사는 즐거움입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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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는 '미혼모'라는 말은 있어도 '미혼부'라는 말은 없습니다. 미혼모가 되는 여성을 차갑게 보거나 불쌍하게 보는 눈길은 있어도, 미혼부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을 바라보는 눈길은 아예 없습니다. 젊은 사내가 들어가는 군부대에서는 어떤 일이 있을까요? 젊은 사내는 군부대에서 무엇을 보고 배울까요? '남자가 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하고, '남자다운 남자'란 무엇일까요?

여성을 아낄 줄 모르는 마음으로는 같은 남성을 아낄 줄 모릅니다. 여성도 남성도 아낄 줄 모르는 마음으로는 어린이와 어르신을 아낄 줄 모릅니다. 여성도 남성도 어린이도 어르신도 아낄 줄 모르는 마음으로는 사람을 아낄 줄 모릅니다. 사람을 아낄 줄 모르는 마음으로는 숲도 시골도 나무도 풀도 흙도 냇물도 하늘도 바다도 이 지구별도 아낄 줄 모릅니다.

전쟁 역사를 더듬어 살피면, 전쟁을 일으킨 '여성 지도자'는 없습니다. 있을까요? 어쩌면 몇 사람 있을는지 모르지요. 그러나, 여성 지도자가 되어 전쟁을 일으키려는 사람이 참말 있을까요? 아마 독재자 아버지한테서 정치권력만 물려받은 사람이라면 '여성'이기 앞서 '독재자'이기 때문에 전쟁 소용돌이로 권력을 휘두르리라 느낍니다. 다시 말하자면, 모든 전쟁은 '남성'이 일으킵니다. 권력자 남성이 전쟁을 일으키고, 사회를 이르는 바탕인 수수한 여느 남성이 군대로 끌려가서 총알받이나 칼받이가 되어 수만 수십만 수백만이 '숫자놀이'처럼 목숨을 잃습니다. 권력자 남성은 전쟁무기를 휘두르면서 지도에 나타나는 땅빼앗기를 즐깁니다.

떠나면서 비로소 의문이 든다. 폭력이 지배하는 집에서 우리 노동은 왜 그렇게 이름이 없었고 우리 고통은 어째서 그 어느 사업장의 산재보다 철저히 은폐되었는지. (95쪽)

전쟁은 언제나 폭력입니다. 폭력은 언제나 전쟁처럼 흐르고 전쟁이 됩니다. 폭력을 사랑하기에 전쟁무기를 손에서 놓지 못합니다. 폭력에 휘둘리기에 전쟁무기가 있어야 평화를 지키는 줄 잘못 알고 맙니다.

전쟁무기로 평화를 지킨다는 생각에 휘둘리는 남성은 '여느 살림집'에서도 여성한테 주먹을 휘두르는 폭력이 있어야 '가정 평화'를 이룬다고 잘못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공장이나 회사에서 다치는 사람이 '산업재해(산재)'이듯이, 가사노동을 도맡아야 하면서 '한 집안 남성'한테서 두들겨맞거나 걷어차이는 여성도 모두 '산업재해'입니다.

아이하고 함께 지내기에,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함께 마늘을 까려고 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아이하고 함께 지내기에,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 함께 마늘을 까려고 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습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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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교사는 거의 다 여성이다. 그들은 민간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최저임금을 받는다. 6∼7세 같은 경우 아이들 스무 명에 배당된 교사는 한 명이다. (153쪽)

해고는 끝이 아니었다. 2010년 10월 14일, 정문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데 현대자동차의 정직원 관리자와 경비들이 달려들어 폭행했다. 자신들의 하청 여성 노동자가, 말 한마디 못하고 희롱을 당하고도 쥐죽은 듯 있어야 마땅할 '저년'이 감히 정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서 있다고, 그들은 우우 덤벼들었다. 입을 막아야 했다. (161쪽)

아이를 낳아서 돌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보육교사 한 사람이 스무 아이를 맡는 일이 어떠한 '삶과 일'인지 조금도 알 길이 없습니다. 아이를 어머니(짝꿍)하고 함께 낳은 아버지라고 하더라도 집 바깥에서 돈 버는 일에만 매달리느라 정작 아이를 하루 내내 보살피면서 사랑한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보육교사 한 사람이 스무 아이가 아닌 열 아이를 맡는다고 하더라도 이 일이 어떠한 '삶과 일'인지 하나도 알 노릇이 없습니다.

정치를 맡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는 무엇을 얼마나 알까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시장이나 군수 자리를 맡는 이들은 '아이 키우기'를 얼마나 해 보았을까요? 아침 일찍 일터로 가서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공무원도 '아이키우기'를 얼마나 해 보았을까요? 정책을 결정하거나 집행하거나 세우는 모든 '정부·공공기관 일꾼'은 '아이키우기'를 하나도 모릅니다. 저마다 아이를 낳은 적이 없든, 아이를 낳았어도 '한집 여성이 도맡도록' 하든, '아이 돌볼 일꾼을 돈으로 써서 맡도록' 하든 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혼자 아이를 돌보면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살림하고 하는 일이 어떠한가를 제대로 아는 '남성'이나 '아버지'나 '정치인'이나 '공무원'은 매우 드뭅니다. 아이 하나만 맡아서 돌보더라도 하루가 어찌 가는가를 알 길이 없지요. 그런데 열 아이라면? 스무 아이라면? 보육교사는 아직 코흘리개인 아이들을 하나하나 오줌가리기나 똥가리기라도 해 줄 수 있을까요? 보육교사는 스무 아이한테 날마다 한 마디씩 차근차근 말을 섞을 수라도 있을까요?

"자고 싶다." 다른 설문지를 넘겨 본다. "육아를 하고 싶다." "여행을 가고 싶다." 굳은 몸에서 문득 흘러나온 한마디가 햇빛 아래서 꿈틀거리는 것 같다. 일주일에 하루도 쉬지 못하거나 하루에 12∼13시간을 일하고 나머지 10시간 안에 가사 노동과 가족 돌봄과 수면까지 다 해내야 하는, 그 대가로 최저임금 정도를 받는 여성들의 바람이다. (174∼175쪽)

큰아이는 제 동생 기저귀를 개려고 합니다. 곁에서 늘 이 모습을 지켜보니, 저절로 배우고 동생을 아끼는 마음도 키웁니다.
 큰아이는 제 동생 기저귀를 개려고 합니다. 곁에서 늘 이 모습을 지켜보니, 저절로 배우고 동생을 아끼는 마음도 키웁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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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여성 목소리는 언제나 억눌립니다. 여성인 교사는 많아도 여성인 지식인이나 인문학자는 드뭅니다. 여성인 가정주부는 많아도 남성인 가정주부는 드뭅니다. 여성은 교사나 지식인이나 인문학자로 일하더라도, 집에서는 '가정주부' 몫을 함께 맡아야 하기 일쑤입니다. 남성은 교사나 지식인이나 인문학자로 일하면, 집에서는 '두 다리 뻗고 놀거나 쉬면서 밥상을 받고 텔레비전을 켜고 신문을 펼치는 사람'이기 일쑤입니다.

아니, 남성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만 일해도 '집에서 집안일을 거의 안 하거나 아예 안 합'니다. 여성은 회사원이나 공무원으로 일해도 '집안일 도맡는 가정주부'로도 일해야 합니다. 남성은 집에서도 아이하고 보내는 겨를이 짧고, 아이하고도 잘 안 놀아 주기 마련이며, 아이가 똥오줌을 아직 못 가릴 적에 기저귀조차 제대로 못 채우기 마련입니다.

집에서 천기저귀를 쓰면서 아기 똥기저귀를 손수 빨아서 햇볕에 말리거나 폭 삶아서 말리는 남성이나 아버지는 몇이나 있을까요? 아기한테 젖떼기밥을 끓여서 먹일 줄 알거나, 아이한테 밥을 차려서 먹일 줄 알거나, 아이가 크면서 배우고 살면서 익힐 슬기나 사랑을 기쁘게 물려주거나 알려주는 남성이나 아버지는 얼마나 있을까요?

노동시간이 가정을 유지하는 시간, 삶을 지탱하는 시간을 삼켜버렸다. 최장 노동시간이지만 생산성은 되레 떨어지는 이상한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가족을 희생해야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노동자로 취급받고 있다. (237쪽)

"저는 앞으로도 선택하면서 살고 싶은데 어떤 작업이든 내가 하는 선택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재능은 별로 없지만 건강한 힘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찾고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항상 있어요." (취업준비를 하는 '하람'이 들려준 말/287쪽)

안미선님은 <여성, 목소리들>이라는 책에서 이 나라 여성 목소리만 들려줍니다. 어쩌면, 볼멘소리로 '꼭 그렇지는 않다구!' 하고 부아가 나는 남성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어쩌면, 성난 소리로 '여자 주제에!' 하고 한마디 내뱉을 남성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여성 노동자'나 '노동자'가 아닌 '하청'이나 '비정규직'라면서 고개를 돌릴 남성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가사노동자'가 아닌 '가정주부'일 뿐이라면서 등을 돌릴 남성이 있을는지 모르지요.

참말 얼마 앞서까지도, 또 아직도 곳곳에서, 차례상이나 제삿상에서 여자가 절을 하면 '여자가 어딜 함부로!' 하고 외치는 남성이 많았습니다. 젊은 사내나 아들이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만지려고 하면 매섭게 나무라는 남성 어르신이 많았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왜 남성과 아버지는 왜 그리 바보스러울까요? 몸으로만 보면, 남성은 여성보다 힘이 세거나 튼튼하다고 할 만합니다. 남성은 여성하고 몸으로 대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을 더 많이 할 줄 압니다. 작고 가녀린 여성이 아기한테 젖도 물리고 기저귀도 갈고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남자 어른 수발'까지 다 하고 '술상 차리기'도 하고 심부름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여성이 남성보다 '힘이 없으니까' 온갖 일을 다 시키면서 힘으로 억누르면 된다고 여기는 마음일까요?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여성'쯤이야' 주먹 한 방이나 발길질 한 차례로 가볍게 '누를' 만하다고 여기는 마음일까요?

여성 목소리를 듣고, 남성과 여성이 저마다 제 숨결을 더 깊이 헤아리면서 사람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삶으로 거듭나는 자리가 명절이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여성 목소리를 듣고, 남성과 여성이 저마다 제 숨결을 더 깊이 헤아리면서 사람으로서 사랑을 나누는 삶으로 거듭나는 자리가 명절이 될 수 있기를 꿈꿉니다.
ⓒ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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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설문지에 새로운 질문을 넣었다. '일주일에 몇 번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해요?' 결과를 보니 5명 중 1명 꼴로 '없다'고 답변했다. 가장 많은 답변은 주 1∼2회였다. 일주일에 단 한 번도 가족과 같이 식사를 하지 못하면서 남의 밥상을 차려야 하는 속마음을 그려 본다. (181쪽)

함께 차리는 밥상이 맛있습니다. 함께 둘러앉아 이야기를 꽃피우는 밥상이 즐겁습니다. 함께 차리고 함께 치우는 밥상이 아름답습니다. 함께 먹을 밥을 함께 짓고 함께 가꾸며 함께 손질하여 함께 다스리는 하루가 사랑스럽습니다.

논일하고 밭일을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하면 힘이 덜 듭니다. 서로서로 돕고 아끼면서 일을 하면 언제나 흥얼흥얼 노래가 나옵니다. 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힘들지 않아요. 일하면서 웃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다면 고단하거나 고달픈 일은 없습니다.

한가위나 설날에 온 집안 사람들이 둥그렇게 밥상맡에 앉아서 '삶을 아름답게 짓는 길'을 이야기할 수 있으면 참으로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한가위나 설날이 아니어도 한집 사람들이 다 같이 동그랗게 밥상맡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생각을 살찌우고 사랑을 키울 수 있으면 그야말로 기쁜 하루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분법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는 길은 으레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아름다운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안 아름다운 길입니다. 하나는 사랑스러운 길이고, 다른 하나는 안 사랑스러운 길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억누르는 길은 안 아름답고 안 사랑스럽습니다. 거꾸로 여성이 남성을 억누른다면(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이 또한 안 아름답고 안 사랑스럽겠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굳이 안 아름답거나 안 사랑스러운 길로 가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함께 아름답고 함께 사랑스러운 길로 가면 됩니다. 아름다움과 사랑으로 삶을 지을 수 있을 때에, 우리 보금자리부터 새롭게 피어나고, 우리 사회도 차근차근 새롭게 거듭나리라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책이름 : 여성, 목소리들
안미선 글
오월의봄 펴냄, 2014.9.1.
13000원



여성, 목소리들 - 섹슈얼리티, 가족, 노동, 삶…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안미선 지음, 오월의봄(2014)


태그:#여성 목소리들, #안미선, #평화책, #인문책, #삶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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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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