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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강한 두 나라, 미국과 중국의 정상이 워싱턴에서 회담을 했다.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우호적이었으며, 상대의 위상을 인정해주는 배려가 곳곳에 묻어났지만 갈등의 지점들이 어디인지는 명확하게 드러났다. 언론이나 전문가들의 예상을 크게 벗어난 서프라이즈는 없었지만 기저에 흐르는 미국의 자신감이 유독 눈에 띄었다. 

윈윈의 강대국 관계를 구축하려는 오바마와 시진핑

시진핑과 오바마.
 시진핑과 오바마.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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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상이 한목소리로 생산적이고 가시적 결실이 있었던 회담이었다고 평가했고, 양국의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정리하자면 세력전이의 불안정한 상황이 제로섬의 갈등관계로 악화되지 않도록 협력적으로 관리하고, 더 나아가 예측 가능한 트랙에 진입함으로써 윈-윈의 강대국 관계를 구축해가자는 것이다. 이는 지난 수년간 미중관계를 규정하는 기본원칙의 재확인이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해야만 세계 평화도 가능하다는 점이 반복적으로 강조되었다.

'누가(who)' '어떻게(how)' 달라지고 또 책임져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견해가 갈렸다. 이 부분에서 오바마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 만찬을 포함한 여러 행사에서 화기애애하기 이를 데 없었던 환대와는 달리 본 회담에서의 굳은 표정은 이번 만남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인권문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티베트 문제를 지적했으며, 남중국해에서의 영유권분쟁과 인공섬 건설과 군사력 강화에 우려를 표했다. 시진핑 주석이 고전적 영토주권과 각국의 고유전통을 이유로 반박하던 모습은 수세적인 느낌이 들었던 반면, 오바마가 국제법이 허락하는 어디에서도 미국은 자유롭게 항해하고 비행할 것이라고 한 언급이 훨씬 강력하게 다가왔다.  

일각에서는 민감한 이슈들을 국내정치를 의식해 거론은 했지만, 본격적 논쟁을 벌이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한 회담이라고 말한다. 아주 잘못된 평가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만남에서 중국보다는 미국의 뜻이 관철된 측면이 조금 더 큰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 같다. 3가지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미국이 대중관계에서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이버해킹 문제에 대해서 중국은 자세를 낮추었고, 미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사이버해킹을 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공식합의문에 포함한 것은 미국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오바마는 물론이고 민주당의 숙원사업인 기후협약에 관해 시진핑 주석의 구체적 양보를 끌어낸 것도 미국에는 의미가 남다르다. 그동안 중국은 기후협약과 관련해서는 갈지자 행보를 해왔었다. 

큰소리친 오바마, 계산된 행동

마지막으로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우발적인 군사충돌 방지에 대한 장치마련이다. 이를 상호 양보라고 볼 여지도 있지만, 최근 수년간 이 지역에서 보다 공세적 행위패턴을 보이던 쪽이 중국임을 고려해야 한다.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후 동북아에서 양국의 항공기가 여러 차례 충돌위기가 발생했고, 최근 들어 위험은 커졌으며 빈도는 잦아졌다.

작년 말 미국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 검토위원회'의 연례보고서는 중국의 전투기와 군함이 미군과 일본 자위대를 상대로 초근접 비행 같은 위험한 군사행동을 벌이면서 위기상황을 초래하고 있으며, 이는 역내에서 오판의 가능성이 커지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정상회담 직전인 9월 15일만 하더라도 두 대의 JH-7 중국전투기가 미국의 RC-135 정찰기를 500피트 내까지 접근해 요격(intercept)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할 때 충돌예방조치 마련에 대한 합의부분도 미국의 요구를 담은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

물론 중국 입장에서는 적진 한가운데서 가진 회담이었다는 점이 감안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1년여 정도 임기만 남겨둔 레임덕의 시점에서, 특히 미국의 긴 대선기간을 감안하면 오바마의 자신감이 약간은 의외였다. 무엇이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퇴임을 앞둔 상황에서 거리낄 것 없이 하고 싶은 얘기를 했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랬다면 오히려 더 직설적으로 상대를 자극했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균형과 절제로 특징지어지는 이번 회담은 미국정부의 대중정책의 자신감의 표현이자 고도로 계산된 행동이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미·일 동맹은 중국 견제를 위한 중장기 보험

미국의 자신감은 크게 두 가지로부터 연유한다. 하나는 최근 미일동맹의 강화를 통한 아시아재균형전략이 계획대로 상당부분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패권하락에 대한 대비이자, 중국의 부상이 위협이 될 경우를 대비한 재균형전략은 냉전적 동맹체제의 부활이지만, 그럼에도 과거 소련에 대한 봉쇄일변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기까지는 봉쇄와 상호의존의 동시적 추구로, 아직 전략의 방향이 확실히 정해진 것은 아니다. 또한 재균형전략의 성패는 곧 아시아의 동맹국들의 지지와 적극적인 부담공여가 필수적이다.

현재 일본이 적극적으로 부담하겠다고 나서고는 있으나 그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지금은 미일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일치하지만, 상황은 언제든지 달라질 수 있다. 미중관계가 갈등보다는 공존으로 갈 경우에도 달라질 수 있고, 또 재무장을 위해 동북아에서 지나친 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미국이 원하지는 않는다. 미일동맹강화는 중국이 위협이 될 경우를 대비한 중장기 보험의 성격이 강하다. 또한 중국이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경고이자 압박이기도 하다. 중국의 부상을 지켜볼 여유가 거의 없는 일본과는 달리 미국은 시간적 여유가 있으며, 이것이 자신감으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도 있는 두 번째 근거는 180도 달라진 양국의 경제상황에 기인한다. 2008년 이후 미국의 경제는 끝 모를 추락을 거듭했고, 반대로 중국은 세계 경제를 호령했었다. 미중의 세력전이 논쟁을 촉발한 이유가 바로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추월가능성 때문이었다. 작년 11월 오바마가 중국을 방문할 때만 하더라도 온통 중국경제의 추월을 언급했었는데, 불과 1년 만에 양국의 위치가 정반대로 바뀌었다.

중국경제는 지난 6월 이후 주가가 45%나 폭락할 정도로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으며, 일각에서 중국이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에 빠졌다고 말한다. 반면에 미국은 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2분기 GDP 성장은 예상치를 상회하며 무려 3.9퍼센트에 이르렀고, 고용지표는 지난 7년 동안 최고점을 찍었다. 미국이 중국을 더 지켜볼 여유와 자신감이 생긴 또 다른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대중전략과 아시아 재균형전략의 근간이 바뀐 것은 아니며 숨고르기의 조정국면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아시아태평양이 양국이 교차하는 중심무대이며, 향후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국가와 가장 큰 개발도상국이 각축을 벌이는 곳이며, 역동적인 경제발전뿐 아니라 세력변동의 폭이 큰 탓에 글로벌 평화와 발전을 좌지우지할 지역이다.

세계 40퍼센트의 인구가 살고, 50퍼센트의 무역량과 57퍼센트의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동시에 군비경쟁이 이미 노골화되고 있다. 국방비 1위에서 3위까지, 여기에다 10위안에 2개국이 더 있다. 나머지 북한은 10위권 밖이지만 핵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유럽과는 달리 역내 집단안보체제가 부재하고, 동맹과 대립의 단층구조는 고도의 경로의존성에 의한 끈질긴 생명력을 보이고 있다. 이곳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질서를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것이 양국 모두 절대적 목표일 수밖에 없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라는 프레임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과 한반도

그렇다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우선 당분간은 동북아 각국이 어느 정도 관리와 조정국면으로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미국의 정치 일정이 그러하고, 중국 역시 국내사정이 여의치 않다. 일본 역시 개헌이라는 최종관문이 남아있지만 미일안보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안보법 개정을 달성한 이후 내년 여름 참의원 선거까지 시간이 남아있다.   

이는 우리에게 긍정과 부정적 함의를 모두 가진다. 긍정적인 것은 우리에게 시간적 여유와 운신의 폭을 제공할 수 있다. 급격한 정세변동, 특히 미중 갈등 고조는 우리에게 어려움을 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숨고르기를 할 여유는 일단 반갑다.

그러나 부정적인 함의도 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가 미중 양국의 최우선 과제는 아니라는 점과, 특히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해 주었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조금 더 단호하고 객관적인 대응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발하지 말 것을 경고하면서도 북한을 명시하지 않았고, 또 공동합의문에 넣지 않음으로써 대북전략의 근간은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면 단기적인 국면에서의 열쇠는 결국 북한이 쥐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북한의 전략적 도발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조정 국면에서 과감한 이니셔티브로 남북한 및 북미의 화해국면을 이끌어 낼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도발에 대한 경고와 통일대박 담론만 반복하면서 공을 다시 북한에 넘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로켓발사나 핵실험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나 압박을 논의하는 것은 패턴 반복일 뿐 정책적 대안으로 실효성을 이미 상실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연설에는 8.25 남북합의와 9월 초 한중정상회담의 모멘텀을 이어가는 어떤 전향적이고 획기적인 제안도 없었다. 기존입장을 고수하며 조정국면에 편승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 기회를 놓치면 북한은 도발에 나설 것이고, 핵능력은 더욱 고도화될 것이며, 이번에 미중이 덮어둔 진영대결구조는 다시 고개를 들것이다. 한국외교의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코리아연구원 홈페이지(knsi.org)에도 함께 실립니다. 글쓴이는 김준형 교수는 한동대 국제정치학과 교수입니다.



태그:#미중정상회담, #오바마, #시진핑, #아시아재균형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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