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사회자인 아프가니스탄 배우 마리나 골바하리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사회자인 아프가니스탄 배우 마리나 골바하리 ⓒ 유성호


길거리에서 구걸하던 한 소녀가 한 감독에 의해 배우가 됐다. 그때 나이 13세. 평범한 아프가니스탄 소녀였던 마리나 골바하리(Marina Golbahari)가 우연하게도 영화 <천상의 소녀>로 데뷔하게 된 순간이었다. 그는 이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오게 됐고, 그 후로 14편의 장·단편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갔다.

그가 12년 만에 부산을 다시 찾았다. 송강호와 함께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그 소녀가 이렇게 자랐다"고 개막식 자리에서 감탄한 송강호처럼 마리나 골바하리 역시 남다른 감회를 품고 있을 것이다.

영화제가 한창 진행 중인 2일 남편이기도 한 매니저와 함께 그를 만났다.

단지 하루하루 사는 게 목표였던 때, 갑자기 배우가 됐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사회자인 아프가니스탄 배우 마리나 골바하리

아프가니스탄 배우 마리나 골바하리가 "행복한 이야기이건 슬픈 이야기이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잘 조망한 작품을 만들고 싶고,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 유성호


배우를 꿈꾸지도 않았고, 단지 하루하루 사는 게 목표였던 때가 있었다. 그 역시도 "세디그 바르막 감독(마리나 골바하리를 데뷔시킨 인물)님이 왜 날 발탁했는지 제대로 들은 적이 없어서 물었던 적이 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내 눈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고 하더라. 어려운 인생을 겪고 있기에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하셨다. 이렇게 영화로 인기도 얻고 연기를 하게 돼서 영광이다. 아프가니스탄이 여성 인권이 취약하다고들 하는데, 나 역시 다른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여성들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배우를 천직이라고 여기기에는 좀 이른 거 같다. 다만 남편(TV 프로그램 PD일을 하고 있음)과 함께 연출 공부를 하면서 더 많은 걸 이루고 싶다."

자연스럽게 자리잡은 배우의 꿈은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로 이어졌다. 특히 탈레반 정권 등 극단주의 이슬람 정권을 경험하며 힘들게 사는 자국 국민들을 위해서였다. 마리나 골바하리는 "행복한 이야기이건 슬픈 이야기이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잘 조망한 작품을 만들고 싶고, 출연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새로운 목표

제20회 BIFF  개막식사회자, 송강호-마리나 골바하리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사회자인 송강호와 아프가니스탄 출신 배우 마리나 골바하리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0일까지 세계 75개국 304편의 작품이 해운대 영화의전당과 센텀시티, 남포동 등 6개 극장 35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해운대 비프빌리지와 남포동 비프광장 야외무대인사, 오픈토크, 영화의전당 두레라움광장 등 어느 해 보다 풍성한 작품과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찾아간다.

▲ 제20회 BIFF 개막식사회자, 송강호-마리나 골바하리 지난 1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서 사회자인 송강호와 아프가니스탄 출신 배우 마리나 골바하리가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유성호


부산영화제 측의 초대를 직후부터 이들의 행보는 보안 대상이었다. 복수의 관계자들이 두 사람이 함께 한국에 온다는 사실에 대해 함구할 것을 기자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자국 사정 상 안전에 위협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밝히니 남편 누르락 아지즈는 "보다 안전한 해외 어떤 국가에서 영화 공부를 하는 게 지금 큰 바람"이라며 "사실 안전이 최우선 목표고, 그 다음이 제대로 된 교육"이라고 답했다.

모든 게 위기는 아니었다. 이제 결혼한 지 2주째인 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역경을 이겨내는 중이다. 인터뷰 내내 마리나 골바하리 왼손에 새겨진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뜻인지 물으니 남편과 자기 이름의 머리글자와 행복을 기원하는 주문이란다. 아프가니스탄 전통 명절마다 여자들이 손에다가 하는 일종의 헤나였다.

인터뷰 내내 밝은 모습이었던 두 사람. 마리나 골바하리는 어느 새 아시아에선 상징적 존재가 됐다. 고난 속에서 좋은 연기를 보이는 모습에 다른 국가 여성들도 힘을 얻을 것이라 말하니 웃으며 말한다. "정말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배우는 꽃과 같다. 물을 주는 꽃이 예쁘게 자라나는 것처럼 관심과 힘이 필요한 존재가 배우다. 내 영화들이 잘 될수록 주목도 받을 텐데, 이왕이면 한국 관객들과도 만나고 싶다. 아무래도 개인적으론 오사마 역할(<천상의 소녀> 배역 이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영화계에 들어온 계기가 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탈레반 정권 하에 있었다. 그때 분위기와 민낯을 이 작품으로 만날 수 있을 거다. 나 역시 현실적 이야기에 기반을 둔 작품을 계속 하고 싶다.

참, 우리나라에 드라마 <대장금>이 방영됐다. 한국 사람과 한국 문화도 좋아한다(웃음). 언젠가 영화를 잘 만들어서 부산영화제에 낼 날이 왔으면 좋겠다."

인터뷰 말미, "부산에 머물며 해변과 전시장도 가고 쇼핑도 하고 싶다"는 계획을 전하며 두 사람이 웃어 보였다. 어떤 그늘도 외로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르락 아지즈 PD "아프간 영화 산업 아직 걸음마"

마리나 골바하리와 11개월 연애 끝에 결혼한 누르락 아지즈는 자국에서 TV 프로그램 등을 연출하는 PD다. 영화를 공부해 아내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소망이 있는 남자기도 했다. 그가 아프가니스탄 영화 산업의 현실을 일부 전했다.

"한 때는 투자자들이 영화계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몰리기도 했다. 지금은 (여러 정치적 이유 등으로) 모두 철수했다. 딱히 영화 제작 전반을 관여하는 제작사나 영화 교육 프로그램은 없다. 1년에 대 여섯 편 정도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정도다. 정부가 딱히 영화 제작에 개입하거나 간섭하진 않아서, 눈치 보는 일은 없다. 다만 지원이 아쉽다.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들은 있지만 이들을 키워 줄 여건이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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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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