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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도둑이었다. 장발장처럼 빵을 훔치지 않았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것을 훔쳤다. 열두 살의 나는 매일 배가 고팠다. 하지만 참았다. 그런데 마음의 허기짐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이 허기짐이 마음에 뚫린 구멍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표현할 수 없는 이 마음의 상태가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과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했다.

다섯 번째 딸, 부모는 나를 낳고 슬퍼했다

내게는 형제들이 많았지만, 독립적으로 자랐던 형제들은 나를 돌볼 생각을 하지 못했고,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힘들었던 부모님 또한 나를 돌보지 못했다. 아들을 원했던 부모님은 다섯 번째도 딸을 낳자 슬퍼했다. 그러하니 나의 탄생이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길거리에 버려진 강아지 마냥 방목됐다. 그 결과, 일곱 살이 된 나는 말은 잘했지만, 글을 쓰거나 읽을 줄 몰랐다. 그 또래 아이들이 다 할 수 있다는 일 더하기 일이 이가 된다는 것조차 몰랐다.

초등학교를 입학한 나에게 선생님의 말은 외계인이 보내온 이상한 기호로 된 매우 낯선 것으로 느껴졌다. 부족함이 많았던 나는 일 학년 내내 나머지 공부를 했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만은 더하기, 받아쓰기 대신 빨간 색연필을 쥐여 주곤 다양한 선 긋기를 시켰다. 연필 쥐는 힘조차 없다는 것을 아셨던 거다. 몸을 낮추어 나와 시선을 맞추며 가르치시던 선생님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선생님의 눈빛 속에는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낯설지만, 기분을 좋게 하는 감정이 묻어있었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이런 담임을 만났더라면 나는 좀도둑이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열두 살이 된 나는 공부를 좋아하게 되었고 친구도 생겼다. 하지만 언제나 혼자 다녔다. 그 시절 내 머릿속에는 삶에 대한 물음표로 가득 차 있었다. 어른들이 정해놓은 이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상을 왜 책상이라 불러야 하는지, 의자와 바꾸어 부르면 안 되는지, 여자를 남자라 부르고 남자를 여자라 부르면 왜 안 되는지, 내가 알고 있는 사물의 이름들을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들에 대해 그 누구도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고,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나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피를 흘리지 않고 죽는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열두 살 소녀가 된 후로도 흉터로 남게 될 고통의 시간과 깊은 외로움을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나의 이런 마음을 보려는 이도 없었고 말해도 이해하려 드는 이도 없었다. 깊은 외로움 속에 내가 나를 껴안고 할 수 있었던 것은 낙서와 중얼거림뿐이었다. 그래도 마음의 구멍은 채워지지 않고 커져만 갔다.

그 후로, 나는 엄마 몰래 설탕을 훔쳐 먹었다. 커다란 숟가락으로 듬뿍 설탕을 퍼 입에 넣었다. 달달한 설탕이 입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기분이 좋아졌다. 그 순간 내가 느끼는 슬픔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설탕을 먹다 들켜 혼이 났지만 멈추지 못했다.

'마음의 허기' 달랜 단맛, 열두 살에 초콜릿 도둑이 됐다

 외로움으로 괴로워 하던 열두살 가을, 문방구에서 훔친 초콜릿을 먹으며 '마음의 허기'를 달랬다. 그러나 '뚫린 마음'은 초콜릿으로 메워지지 않았다.
 외로움으로 괴로워 하던 열두살 가을, 문방구에서 훔친 초콜릿을 먹으며 '마음의 허기'를 달랬다. 그러나 '뚫린 마음'은 초콜릿으로 메워지지 않았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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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초콜릿을 훔치겠다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수업이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 꼭 들르는 곳이 있었다. '청운사'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가게였다. 선물가게나 구멍가게에서 파는 물건은 다 팔았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눈이 즐거워지는 공간이었기에 하루라도 들르지 않으면 눈에 가시가 돋아나는 것 같았다.

문방구 안을 두 바퀴 돌고 나서 마지막에 서 있던 곳이 과자 코너였다. '아폴로' '네거리 사탕' '쎄시' '호박꿀' '쫀드기' '뽀빠이' '대롱대롱' 등 많은 군것질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 시선은 언제나 이름 없는 초콜릿으로 향했다. 색깔도 다양하고 먹어본 기억이 없어선지 더 눈길이 갔다. 문방구를 오가다 나처럼 매일 문방구를 들르는 아이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순희였다. 순희는 작은 나보다 키가 더 작았다. 일 년 전, 나와 같은 책상을 썼고, 맨 앞에 서지 않는 내가 부럽다고 말했던 아이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자진해서 일 번이 되었다. 그 일로 인해 친한 친구 사이가 된 것은 아니지만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다.

순희는 나처럼 문방구 안을 돌지 않았다. 단지 과자 코너 앞에만 서 있었다. 순희가 통속에 손을 넣고 초콜릿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사지 않을 거면 만지지 말라는 주인아줌마의 말을 그 아이는 듣지 못했는지, 무시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행동이 정말 멋져 보였다. 나도 순희처럼 통속에 손을 넣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나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한참을 서서 순희의 행동을 지켜보다 밖으로 나와야 했다.

문방구에서 멀어져가는 나를 순희가 불렀다.

"자."

순희의 손바닥에는 빨간 포장지에 쌓인 동전 초콜릿이 있었다. 초콜릿을 받아든 나는 단번에 빨간 포장지를 열고 속에 든 것을 통째로 입속에 넣었다. 혓바닥과 천장 사이에 낀 초콜릿은 매우 달고 부드러웠다. 초콜릿이 주는 단맛은 설탕이 주는 단맛보다 더 내 기분을 좋게 했다. 초콜릿이 녹는 내내 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하나로 만족할 수 없었다.

"하나만 더 줘."

순희는 망설이지 않고 초콜릿을 하나 더 주었다. 순희가 나를 좁은 골목으로 데려가더니 자신이 입고 있던 잠바 주머니 속에 있던 것을 꺼내 보여주었다. 알록달록한 초콜릿들이 두 손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안 어렵다. 내일 알켜 주께. 근데 딴 애들한텐 비밀이데이."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은 '마음의 구멍'

나는 초콜릿만 훔쳤다. 달달한 초콜릿을 먹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따스함이 오래가진 않았지만, 잠깐은 행복할 수 있었다. 백 원을 주면 여러 개를 살 수 있었지만 내겐 백 원이 없었고 초콜릿을 훔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뚫려버린 마음의 구멍을 초콜릿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매일 조금씩 초콜릿을 훔쳤다. 과자 코너 근처에 반 친구들이 있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주인이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기만 하면 나는 통속에 초콜릿을 만지작거리다 빠르게 손을 놀려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종종 초콜릿을 훔치는 순희를 만나긴 했지만 우린 서로 모른척했다. 가을에 시작된 도둑질은 겨울방학을 돼서야 끝났다.

아무리 먹어도 마음의 구멍은 메워지지 않았다. 울 일은 더 많아졌고, 깊은 외로움은 더해갔다. 초콜릿이 주는 행복감은 점점 줄어들었다. 또, 도둑질하고 난 뒤에 찾아오는 죄책감이 나를 힘들게 했고 충치가 생겨 치통으로 밤잠을 설치는 일이 생겼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했던가, 초콜릿을 훔치다 문방구 주인아주머니에게 들키고 말았다. 그 순간, 사위가 새하얗고 내 몸이 가루가 되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감옥에 가겠지. 매일 꽁보리밥을 먹게 되겠지. 모두 나를 미워하고 멀리하겠지.'

그러나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불러 세워 큰소리로 혼을 내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눈짓으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나는 주머니에 든 초콜릿을 꺼내 도로 통 속에 넣고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 뒤로는 그 문방구는 절대 가지 않았다. 그리고 초콜릿 대신 설탕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마음이 괴로우면 대량의 초콜릿을 흡입하는, 단맛의 유혹에 빠져든다.

덧붙이는 글 | 도둑들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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