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소년이 으슥한 길을 가고 있었다. 생긴 거로 보면 중학교 2~3학년 정도 됐을까? 소년은 요리학원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 자신의 진로를 요리 쪽으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소년을 따라가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고등학교 1~2학년쯤 돼보였고, 소년보다 키가 10cm 이상씩은 더 컸다. 소년이 문득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세 사람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야 너 일로 와 봐."

소년은 이 말을 듣는 순간 도망갈까 주저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도망가더라도 결국 잡힐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소년은 순순히 자신을 부른 그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소년이 두 사람의 곁으로 가자, 키가 더 큰 한 사람이 말했다.

"야 돈 얼마 있냐? 있는 거 다 꺼내봐."

소년은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소년의 가방에는 요리학원 등록비인 25만 원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고민하던 소년은 문득 가방 속에 학원비와 함께 요리학원에서 사용하는 요리용 칼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소년은 가방을 뒤지면서 돈을 꺼내는 척하다가 요리용 칼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그러는 너네는 얼마 있냐!?"

이번엔 오히려 두 사람 쪽이 당황했다. 당황하다 못해 겁에 질려서 지갑을 뒤지더니 6000원을 소년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소년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한마디 더 했다.

"진짜 이거밖에 없어? 뒤져서 나오면 죽는다?"

두 사람은 가방을 더 뒤졌고 9000원을 소년에게 다시 건네주면서 말했다.

"지... 진짜 이게 다야. 진짜야!"

소년은 그때서야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가 봐."

소년이 말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사람은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어렸을 적 친구가 겪은 일, 비극이 되다

그 시기는 우리 학교 학생들이 참 '삥'을 많이 뜯기도, 옆 학교 학생들에게 많이 뜯기기도 하던 그런 때였는데, 이 소년이 요리용 칼을 이용해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오히려 역으로 돈을 뜯은 이 일화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 일이 있었던 후 소년은 항상 칼을 가지고 다녔다. 요리용 칼이 여의치 않은 날에는 커터칼이라도 꼭 소지하고 다녔다.

그래야 무언가 마음이 편했다. 그 일이 있었던 후 몇 개월이 지났고, 그 일도 서서히 친구들의 기억 저변으로 잊혀갈 즈음 일이 터졌다. 학교에서 소위 '잘나가는' 친구와 그 소년이 싸움이 붙은 것이었다. 소년은 일방적으로 맞았지만, 거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소년이 주머니에서 커터칼을 꺼냈을 때 상황은 달라졌다. 칼을 꺼낸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소년은 칼을 꺼내 그 친구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옆에서 싸움을 구경하던 친구들이 단체로 그 소년을 저지했다.

그 일이 있은 후 학교에는 소년에 대한 소문들이 무성히 퍼졌고, 와전되었으며, 수많은 비아냥에 시달렸다. 비열한 새끼라고, 소년을 보는 선생님들의 시선도 차가워졌고 소년은 징계를 받고 결국 전학을 결정하게 되었다. 그 후로 그 소년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고, 그 소년이 전학을 간 뒤에도 몇 개월 동안 소년의 이야기는 회자하며 안 좋은 소문으로 퍼졌고, 더욱더 와전되었고, 소년은 자리에 없었지만 계속 욕을 먹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도둑이 있다. 바늘도둑, 소도둑, 어린 도둑, 늙은 도둑 등등 수많은 도둑과 수많은 종류의 도둑질이 존재한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행했을, 혹은 겪었을 도둑질이 바로 이 '삥'일지도 모른다. 삥이란 단순히 돈이 필요해서, 혹은 친구들과의 일탈로, 우정 이라는 철없는 이름으로, 철없던 시절 장난처럼 했을 그런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삥'이라는 것은 한 소년에게는 단순히 소년의 돈이 아닌 평화롭든 혹은 보통과 다름없던 그 소년의 삶의 평화를, 균형을 빼앗아간 커다란 의미의 도둑질이었다. 두 형이 돈이 필요해서 한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소년을 돈 뜯으려 했던 것이 소년에게는 걷잡을 수 없이 커다란 도둑질이 된 것이다. 소년이 전학을 간 뒤에 그 소년의 소식에 대해서 자세히 들을 수는 없었지만, 소년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기 때문에, 그곳에서도 소년에 대한 뒷얘기가 많이 돌았고, 소년의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았다는 것은 간간이 들려오는 소식들로도 알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단지 돈을 위해서, 철없던 학창시절 우정 이라는 이름으로 벌였던 사소한 일탈이었을 지도 모르는 그 가볍고 철없는 행위가 다른 누군가에게 나비효과처럼 번져서 그의 학창시절이 나아가 인생이 궤를 달리하게 된 것이다. 돈을 누가 뜯었건 주체에 상관없이, 그들의 돈을 뜯으려는 행위로부터 소년의 인생은 꼬이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돈을 뜯긴 것은 소년이 아닌 두 형이었지만, 그런데도 그 형들이 뜯어간 것은, 아니 소년이 가져간 것은 형들의 돈이 아닌 자신의 학창시절이었을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도둑들' 응모글



태그:#삥, #도둑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