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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주세요."
"쌀이요?"
"네~."

"더워요."
"뜨겁다고요?"
"네~."

아침 일찍 쉼터 사무실 문을 열며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 쏨이 말했습니다. "밥 주세요." 용인이주노동자쉼터에선 이주노동자들에게 쌀과 가스를 제공하지만, 식사까지 대접하지는 않습니다. 쉼터를 이용하는 이주노동자들 스스로 전기밥솥을 이용해 밥을 하고, 요리를 하고 식사를 합니다.

그래서 "밥 주세요"라는 말이 '쌀 떨어졌다'는 말이란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다보면 쌀이 언제 떨어졌는지 확인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마침 사무실에 쌀이 놓여 있어서 바로 건네줄 수 있었습니다.

얼마 후 이주노동자들이 요리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고, 코끝을 자극하는 향이 사무실까지 건너왔습니다. 쉼터를 이용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대개 실직 상태이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으러 나가기 전에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아침저녁으로 식사를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이 식사 준비하는 자리에 가 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밥 달라고 했던 쏨과 또 다른 태국인,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큰 냄비 속에서 닭고기가 보글보글 끓으며 매콤하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동남아 특유의 향신료와 함께 흔히 월남고추라고 하는 동남아 고추를 송송 썰어 넣었다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게 해 주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절구에 그 매운 고추와 마늘을 으깨어 빻고 있었습니다. 주방 안으로 들어서자, 매운 열기를 타고 온 연기가 콧 속을 자극하여 하마터면 재채기를 할 뻔했습니다. 재채기를 참느라 코를 부여잡고 잠시 밖에 나갔다 오자, 이주노동자들은 식탁 위에 분주하게 그릇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향신료와 고추가 잔뜩 들어 있어 아주 맵다
▲ 태국식 닭고기 요리 향신료와 고추가 잔뜩 들어 있어 아주 맵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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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세 속 깊은 쟁반에 한가득 닭고기 요리가 담겨 나왔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같이 먹자고 권했지만, 장이 약한 탓에 매운 맛을 견딜 재간이 없을 것 같아 웃으며 손을 저었습니다. 쏨이 닭다리 한 쪽을 집어 들고 다시 한 번 권했다가 흐뭇한 표정으로 다리를 뜯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지만, 유혹에 넘어갔다간 속이 견뎌낼 재간이 없다는 걸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던 터라, 그냥 물었습니다.

"맛이 어때요?"
"더워요."

고기를 입에 가져가려던 다른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가 "더워요"라고 시원하게 답했습니다. 그 말은 '뜨겁다'고 한 말이었습니다. 아니면 '매워요'라는 뜻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덥다, 맵다, 뜨겁다' 뭐라고 했든 뜻은 통했습니다. 통한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이 정도면 제가 통역의 은사를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princeko 에도 올렸습니다.



태그:#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 #태국음식, #인도네시아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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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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