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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나는. 어디에요?"
"내 옷 어디에 있어요? 라고 묻는 거죠?"
"네"

베란다에 널어둔 자신의 빨래를 찾던 태국 출신 이주노동자 쏜차이가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옷, 나는, 어디에요?"라고 한 마디씩 끊는 말로 물었습니다. 그는 일요일엔 한국어교실 등으로 오가는 사람이 많아 이동식 빨래 건조대를 계단 위 창고로 옮긴 것을 모르고 있었나 봅니다. 보통은 이주노동자들 일요일 아침이면 베란다에 널린 빨래를 스스로 걷습니다. 그런데 쉼터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빨래가 안 보여서 무척 황당했을 것입니다.

"옷, 나는, 어디에" 그래도 말은 통한다

베란다에 줄줄이 널어 놓은 빨래들을 일요일 오전엔 걷어둔다.
▲ 이주노동자쉼터 빨래 베란다에 줄줄이 널어 놓은 빨래들을 일요일 오전엔 걷어둔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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쏜차이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지 일 년이 조금 넘습니다. 근무처 변경 문제로 용인이주노동자쉼터를 이용하고 있는 그는 태국에서 한국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일상 생활에서 쓰는 단어들도 제법 많이 알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표현하고자 할 때면 무척 진지하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앞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그와 대화하려면 사전이 있다 해도 쉽지 않습니다. 한국어가 서툰 대부분의 외국인이 그렇겠지만, 어법이나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 구사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외국인이 하고자 하는 말의 의도를 알아채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말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하는 법이니까요. 옷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가장 급한 것은 '옷'을 어떻게 찾느냐는 것입니다.

쏜차이는 어순이 틀리고, 주격 조사가 틀려도 '옷'이라고 하는 핵심만 놓치지 않는다면 알아들을 수 있는 문장을 구사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 옷 어디에 있어요? 제 옷 찾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자칭 통역의 은사를 갖고 있다고 농담 삼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나저나 태국어는 목적어를 주어 앞에 쓸까요? 아닙니다. 아직 한국어가 서툰 그는 당장 갈아입을 '옷'이 급했던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기온은 찬데, 입을 옷이 없었을 때 당황했을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태국은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로 연평균 기온은 28℃(최고 32.5℃, 최저 23.7℃)인 나라입니다. 아무리 볕 좋은 가을이라지만 열대성 기후 지역 출신 이주노동자들에겐 벌써 한기를 느끼는 계절입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면 그는 더욱 추운 겨울을 맞아야 할지 모릅니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princeko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이주노동자, #태국, #빨래, #고무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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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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