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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앞 화분에 걸어놓은 반감만 살 것 같은 경고문, 효과가 있을까요?
▲ 담배꽁초 투척 금지 경고문 가게 앞 화분에 걸어놓은 반감만 살 것 같은 경고문, 효과가 있을까요?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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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오갈 때마다 어깨 높이 벽걸이 화분에 심은 피튜니아가 말라비틀어지는 것을 보며 "저 집은 화분에 물 좀 주지. 그렇게 바쁘나..."라고 생각했던 구멍 가게가 있습니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물 한 번 주지 않으면서 화분을 걸어놓는 것은 정말 몹쓸 짓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던 그 가게 앞에 얼마 전 제법 키 큰 나무를 심은 화분이 두 개 놓였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가까이 갔다가 화분 아래에 빨간 글씨로 큼지막하게 적힌 경고문을 보고는 뜨악 했습니다.

"꽁초 버리면 평생 재수가 없길..."
"담배꽁초 버리지 마!! 죽고 싶냐!!"
"담배는 꽁초 맛에 피운다"고 했는데 그 귀한 꽁초를 죽을 각오하고 버리다니..."

구름과자 좋아하는 사람들은 같은 장소, 같은 시간, 같은 자세로 습관처럼 담배 개비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 하얀 재를 툭툭 터는 걸 큰 즐거움으로 압니다. 그 습관성 존재를 어찌 말리겠습니까? 그들은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금연 구역인 요즘, 죽을 맛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흡연자들은 범사에 오래 참음으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흡연에 항상 힘씁니다. 그것이 남의 가게 앞이든 뒤든 상관없이 서로 권하는 것을 미덕으로 압니다. 그런데 빵집 앞에서 죽을 각오하고 담배 피던 사람들은 강심장인지는 몰라도 진정한 애연가는 못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군에 갔다 온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담배는 꽁초 맛에 피운다"고 했는데 그 귀한 꽁초를 죽을 각오하고 버리다니 말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마지막 담배 한 대는 기생첩도 안 준다"는 데 꽁초를 버린다는 건, 진정 담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래서 뜨악할 경고문을 내걸어야 할 만큼 화가 났던 걸까요? 사실 가게 주인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도 아닙니다. 그 가게를 주로 이용하며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은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들어먹지를 않고, 통하지도 않는 데다, 아무렇지도 않게 가게 앞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이 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습니까? 담배꽁초도 문제지만, 담배연기는 더더욱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게 주인은 그렇게 추상같은 경고문을 붙였을지도 모릅니다.

어찌됐든 평생 담배꽁초 버릴 일이 없는 바, 평생 재수 옴 붙을 일도 없는 입장인데도 경고 문구에 기분이 조금 상했습니다. 가게 주인은 가게를 찾는 손님들 덕택에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게 앞에 '평생 재수가 없길'이라는 저주 글이나, '죽고 싶냐'는 협박 문구를 써 붙인 것은 지나가며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에게만 아니라, 손님 중 누군가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구름과자를 입에 문 사람이든 아니든, 불특정다수가 볼 수 있는 글을 꼭 그렇게 써야 했나 싶었습니다. 가게 앞에 놓은 화분은 가게 얼굴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엄중한 경고를 날릴 수 있는 배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손님 대다수가 이주노동자라고 너무 만만하게 본 건 아닐까요? 손님 대다수가 내국인이라고 해도 그렇게 써 붙일 용기가 있었을까요? 그렇다고 가게 앞에서 담배 피는 사람이 줄어들 것도 같지도 않은데, 앞으로 가게 주인이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궁금해집니다. 말을 곱게 쓰면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시도라도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지 경험을 나누겠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이 즐겨찾던 흡연 구역이 거울을 매단 이후 사라졌다.
▲ 흡연자들의 옛 아지트 이주노동자들이 즐겨찾던 흡연 구역이 거울을 매단 이후 사라졌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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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쉼터도 건물 내에서 흡연하는 사람들 때문에 골치를 앓았던 적이 있습니다. 건물 안 모든 곳이 금연이라고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소용없었습니다. 특히 계단에 앉아 창문 너머로 팔을 쭉 뻗고 툭툭 담뱃재를 털며 구름과자를 토해내는 이들을 막을 재간이 없었습니다. 식후 흡연이야말로 행복의 지름길이라 맹신하는 흡연교도들의 확신은 워낙 견고해서 쉽게 깨지지 않았습니다.

처음 그들과 한판 싸움을 벌이기로 작정한 날, 재떨이가 된 창문턱을 대형 거울로 막아 버렸습니다. 이어 담뱃재와 가래로 거무튀튀하게 변한 스테인리스 재질의 쓰레기통을 광나게 닦았더니 금세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며칠 담배 피운 흔적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골초들의 아지트가 쉽게 바뀌진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얼마 동안 거울 밑에 약간의 담뱃재가 떨어진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타협안을 만들었습니다. 우선 창문 쪽에 있던 쓰레기통을 치운 다음, 컴퓨터실로 쓰던 창고를 흡연실로 만들었습니다. 흡연실은 옥상으로 연결되어 환기도 잘 되고 눈치 받을 일도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찾을 줄 알았는데, 처음에는 생각보다 찾는 사람이 적었습니다.

자기가 피고 싶은 곳이 아니라 누군가 지정한 곳에서 피는 것을 마뜩치 않게 여겼나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쉼터를 찾는 이주노동자들 사이에 금연구역이 어디인지 분명히 인식되고 있습니다. 덕택에 거울 밑이나 창문턱에서 담뱃재 찾기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가 될 듯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princeko/13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이주노동자, #소비자, #흡연, #담배꽁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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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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