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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내일 퇴소합니다."
"아, 네. 어디 가세요?"
"마산 갑니다. 김해도 가 볼 겁니다."
"멀리 가네요."

'퇴소'라는 말에 순간 입꼬리가 올라갔습니다. '이주노동자쉼터가 무슨 훈련소도 아닌데, 퇴소라니, 대체 퇴소라는 말은 어디서 배웠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퇴소하고 마산 간다는 러이는 서른 살을 갓 넘긴 총각입니다.

베트남 수도인 하노이에서 하이퐁(Hai Phong) 방향으로 한 시간 거리인 마을에서 왔다는 그는 7년 전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입국해서 천안에서 3년, 부산과 용인에서 2년씩 보냈습니다.

러이는 천천히 또박또박 끊어서 말하는 습관 때문에 7년이나 한국에 있던 사람치고는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직접 이야기해 보면 발음도 정확하고,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이 가끔 '조사'를 빼먹는다는 것 말고는 상당한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가 이주노동자쉼터를 이용하는 동안 꾸준히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퇴소'한다고 했던 그는 올해 벌써 세 번을 쉼터를 들락거렸습니다.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입소합니다', '퇴소합니다'라고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마산까지 간다는 말에 그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이주노동자쉼터 한국어교실 매주 일요일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들
▲ 이주노동자쉼터 한국어교실 매주 일요일 한국어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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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이가 한국에 왔을 때인 2008년은 글로벌 경제위기로 많은 회사들의 경영이 어려울 때였습니다. 처음 천안에 있는 자동차 부품회사에 배정받았지만, 회사는 일감이 없어 기계를 놀리고 있었습니다. 많은 한국인 직원들이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들은 그만 두겠다고 해도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고 붙잡아두었다고 합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주의 동의가 없으면 근무처를 옮길 수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언제 회사가 정상화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경영상 이유로 해고했다가 인건비가 싼 이주노동자들을 재고용 못할 수 있기 때문에 무리수를 두었던 것입니다.

"이주노동자쉼터는 그저 지나가는 곳이 아니다"

그 회사에서 러이는 2년 동안 돈도 못 벌어 친구와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때 러이가 도움을 받았던 곳은 규율이 엄격했던 것 같습니다. 단체를 이용할 때 반드시 입소와 퇴소 절차를 지키도록 했다고 합니다.

2년을 허송세월했던 러이는 그 뒤 3년 동안은 한 번의 근무처 변경 외에는 큰 문제없이 열심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한 번 고향을 다녀 온 러이는 하나 뿐인 여동생이 대학을 마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하고, 2층짜리 집도 번듯하게 지었습니다.

"베트남에 있을 때 75킬로요. 지금 58킬로입니다. 1킬로도 안 늘어요."
"일이 힘들어서 살 빠졌어요?"
"아닙니다. 생각이 많습니다. 고향 생각. 일 생각. 결혼 생각"
"결혼은 언제 할 거예요?"
"5년 뒤요. 35살입니다."

서른다섯이면 베트남에서 결혼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지만, 모아놓은 돈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러이의 설명이었습니다. 7년 동안 앞뒤로 2년씩 회사에 일이 없거나, 일자리가 없어서 힘들게 보낸 그는 희망찬 5년 뒤를 꿈꾸며 살 빠지는 것을 감내하고 있습니다.

그런 러이와 말을 할수록 특이한 언어 습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주소나 전화번호, 단체 대표 연락처 등을 물을 때 꼭 '우리'라는 말을 앞에 붙이고 물었습니다.

"우리 주소가 어떻게 됩니까?"
"여기요?"
"네."

'우리'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건지, 그 용도를 정확히 모르는 건지 모르지만, 굳이 고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먼 길을 가는 러이에게 이주노동자쉼터는 그저 지나가는 곳이 아니라, 마음 두기도 하고, 정이 가는 '우리' 쉼터일 거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함께 더불어 살기를 꿈꾸는 이주노동자쉼터가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우리 쉼터'인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princeko에도 게재했습니다. 말랑말랑한 이주노동자, 다문화 이야기 열다섯번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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