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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사무실 골방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주민들이라는 말만 나와도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절박해 보였다.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 사무실 골방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주민들이라는 말만 나와도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절박해 보였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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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꾸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을 흘릴 대목이 아닌데도 울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이 말을 한 뒤에도 그랬다.

"경북 영덕은 대한민국 최고 브랜드로 알려진 대게가 유명하며, 최상의 품질을 자랑하는 송이 생산량이 전국 1위인 곳이다. 송이로 거둬들이는 수익만 하더라도 300억 원 가량이다. 뛰어난 자연환경 때문에 한 해에 관광객만 천만 명이 찾는다. 그런데 핵발전소가 들어오면..."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짧은 커트 머리. 청바지 차림에 빨간색 등산화는 '탈핵 전투복'처럼 보였다. 그는 영덕군 영해관광시장을 누비며 전단을 나눠주다가 시장통에서 기자와 돌솥밥을 먹었다. 오는 11월 11일에 열릴 영덕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독려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단다.

그는 박혜령 영덕핵발전소반대범군민연대(아래 대책위) 대외협력위원장. 영덕 5일장이 열리는 지난달 25일 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식당에서 나와 대책위의 작은 사무실에서 마주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7살 때 대구로 이사 온 그는 2002년에 영덕이라는 도시에 반했단다. 풍요로운 바다와 아름다운 산, 그는 남편과 함께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으로 귀농했다.

"첫눈에 반한 도시로 귀농, 그리고 시작된 '전쟁'"

하지만 이듬해부터 이 동네에서는 전쟁이 시작됐다. 핵폐기물 유치 반대운동이었다.

"2003년, 2005년에 주민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동참했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2년 뒤에 대학을 들어갔기에 핵에 대한 지식은 상식 수준이었다. 2010년 영덕군이 핵발전소 유치 신청서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핵발전소 바로 알기'라는 글을 온라인에 몇 번 올렸다. 2011년 3월에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다. 위기감과 공포심이 들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요즘도 남편은 그에게 '가짜 농민'이라고 한다. 집에 붙어있을 새가 없기 때문이다. 농약을 치지 않아도 되는 콩, 수수, 조 등을 키우고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관리가 엉망이란다. 남편도 바깥 일(핵발전소 반대 운동)을 거들고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면 악취가 풍기고 파리가 꼬인다. 그럼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하는 게 상식이다. 핵발전소는 영덕 전역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데도 주민에게 묻지도 않았다. 핵발전소를 짓는다는 사실조차 알리지 않았다. 주민을 무시하는 행위다. 민주적인 절차를 밟지 않았다."

이 말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질문을 떠올렸다. 만약 청와대 옆이나, 서울 강남에 핵발전소를 짓는다면 어땠을까? 여론이 들끓었을 것이다. 핵발전소는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는 말도 쏙 들어갔을 것이다. '조중동'이라 불리는 보수언론은 강남 주민들을 향해 '님비현상'이라고 몰아붙일 수 있을까? 결국 영덕 주민들을 우습게 본 것이다.

영덕군 영해관광시장을 누비며 전단을 나눠주던 박혜령 위원장이 ‘핵발전소 반대’ 주민투표에 꼭 참석해 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영덕군 영해관광시장을 누비며 전단을 나눠주던 박혜령 위원장이 ‘핵발전소 반대’ 주민투표에 꼭 참석해 달라고 설득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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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발전소가 들어오는데도 주민 설명회를 열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았나?
"공청회도, 설명회도 없었다. 비공식적으로도 없었다. 지난 2012년 4월 27일에 법적인 절차를 거쳐야 했기에 환경영향 평가 차원에서 주민설명회를 했는데, 핵발전소를 유치하겠다는 전제를 깔고 일방적으로 한 행사다. 정보를 공개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주민들을 만나서 이렇게 설명한단다.

"핵발전소가 가동되면 일본 후쿠시마처럼 대규모 사고가 나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방사능에 오염되는데,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다. 수산물이 오염되어도 알 수가 없다. 암 발병률이 높아지는 등 주민들도 방사능에 오염된다. 핵발전소 가동으로 나오는 폐기물도 수백 년, 수만 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하는데 수십, 수백 세대를 거치면서 핵 쓰레기를 주민이 이고 살아야 한다." 

- 지금 영덕 핵발전소 유치에 대한 주민들의 여론은?
"여론조사 결과 등을 보면 반대하는 주민이 60~70%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 주민투표를 위해서 서명을 받으면서 선거인 명부를 작성하고 있는데, 어떤 분들이 참가하고 있나?
"예전에 서명한 분들의 자료가 노출돼서 두려워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이런 어려움을 겪으며 서명을 받았다. 혹시나 이 자료가 지자체 쪽에 흘러들어간다면 주민들에게 미칠 영향이 걱정된다. 실무 담당자 외에는 전혀 모르는 상태다."

- 11월 11일 투표율은 얼마나 나올 것 같은가?
"사실은 기밀이다. 목표는 주민 수의 40%  정도. 1만5천표 정도일 것으로 예상한다. 찬반을 떠나서 주민들이 다 나왔으면 한다. 이제는 '나라가 하는 일인데'라는 단서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가 하든 나의 판단이 필요하고, 나의 결정이 필요하다. 그게 진짜 민주주의다. 찬성이든, 반대든 소수가 소외되지 않고 짓밟히지 않아야 한다."

- 그렇다면 반대표는 어느 정도일 것으로 예상하나?
"100%다. (웃음) 찬성하는 분들이 작정하고 투표에 참여할 수도 있지만, 찬성 측은 투표에 참여하지 말라고 선전하고 다닌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 게 목표인 셈이다. 그래서 90%는 넘지 않을까 싶다."

이곳이 강남이나 청와대였다면 핵발전소 가능했을까?

영덕군 영해관광시장을 누비며 전단을 나눠주던 박혜령 위원장이 ‘핵발전소 반대’ 주민투표에 꼭 참석해 달라고 상인을 설득하고 있다.
 영덕군 영해관광시장을 누비며 전단을 나눠주던 박혜령 위원장이 ‘핵발전소 반대’ 주민투표에 꼭 참석해 달라고 상인을 설득하고 있다.
ⓒ 김종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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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핵발전소 유치를 주장하는 분들도 지역 주민이다. 이들은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령화로 농업이 피폐해지고, 농촌 인구가 줄고 있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농업을 살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걸 핵발전소로 극복할 수 없다. 지역이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각각의 자립적인 경제 기반을 갖고 있어야 한다. 다양한 연령이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핵발전소 유치 지원금으로는 안 된다."

- 지원금이 내려오면 어떻게 쓰나?
"개별보상은 없다. 지원금은 사용 목적이 정해져 있다. 그런데 주민들은 '뭐라도 하나 떨어지겠지?'하며 기대를 품고 있다. 전기 요금도 다 감면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계신다. 한수원에서 건강검진 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정도는 핵발전소 때문에 병에 걸린 주민들에게는 푼돈이다. 언제부터인가 가치와 돈을 저울에 놓고 살아가지만, 무엇이 더 이득인지 논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 그럼 영덕이 살아남기 위한 대안이 있다면?
"젊은 층이 들어와 살기 위한 귀농정책을 적극적으로 펴야 한다. 또 소중한 자원이 많은데 발굴하지 못하고 있다. 봉화와 영양은 송이를 특화해서 다른 지역으로 유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국 생산량 1위이자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송이의 70% 정도가 다른 지역으로 유출되어 그쪽 상품으로 팔린다. 타 지역과 비교하면 오염되지 않은 바닷가도 그냥 묵혀 있는 상태다.

대게로 유명한 강구의 해안은 천연 자원이다. 배를 타고 나가보면 외국 그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다. 그런데 이를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 농민들이 아직도 뼈가 빠지게 농사지어서 아이들을 유학 보내느라 허리가 휘는데 지역의 아이들이 터를 잡고 미래를 꿈꾸는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핵발전소가 생기면 아이들이 지역에 남으려고 하겠나?"

- 투표 이후에는 어떻게 활동할 계획인가?
"더 광범위한 싸움을 해나가기 위한 더 많은 집회와 법적 검토 등 필요한 모든 시도를 할 것이다. 정부가 강행한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겠다."

- 마지막으로 더 할 얘기가 있다면"
"핵발전소 유치신청서를 낸 전임 군수는 2005년 핵폐기물 유치에 찬성한 인물이다. 핵폐기장 반대 싸움 이후에 주민들을 겁박하고 탄압했다. 영덕군은 경북 도심에서 멀리 있으며, 대학이나 노조가 없기 때문에 사회운동 자원이 빈곤한 곳이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반대 운동이 미진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구석구석 돌면서 만난 대다수 주민은 핵발전소 건설에 반대한다. 주민들의 뜻을 받아서 열심히 할 생각이다.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오는 11월 11일 주민투표를 잘 성사시킬 수 있도록 시민들의 물심양면 도움을 부탁한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태그:#핵발전소, #영덕군, #박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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