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수상 불가라더니, 대종상 영화제의 '굴욕' 
결국 대리수상영화제...반세기 역사상 최악 '오명'
<국제시장> 대종상 빛바랜 10관왕..최악의 시상식
'제52회 대종상영화제' 불참-대리수상-실수로 먹칠, 볼수록 '망신살'
권위 바닥에 떨어진 대종상 영화제 파행

지난 20일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 이후 쏟아져 나온 기사의 제목이다. 그중에는 애써 <국제시장> 10관왕에 많은 의미를 부여한 헤드라인도 종종 보였지만, 이날 52년을 맞은 대종상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시각은 차가웠다.

누리꾼들이 대종상을 보는 시각은 더 회의적이고 냉소적이다. 기사의 제목보다 냉정한 평가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SNS에서 실시간으로 오간다. 역사로 보나, 그동안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보나 대한민국 대표 영화제로 추앙받아야 할 대종상 영화제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애니깽> <광해> <국제시장>...대종상의 '몰아주기' 역사 

 지난 20일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에서 10관왕의 영예를 차지한 영화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지난 20일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에서 10관왕의 영예를 차지한 영화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 ⓒ KBS


1962년 1회 개최 이후 정부가 밀어주는 국책영화, 반공영화 홍보의 장이라는 등 뒷말이 무성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제로 이름을 날리던 대종상 영화제의 오랜 명성에 삽시간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1996년 '애니깽 사태'로 유명한 34회 영화제부터였다.

1996년은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비롯해 박광수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장선우의 <꽃잎> 등 지금도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쏟아져 나온 시기였다. 그런데 대종상의 선택은 김호선 감독의 <애니깽>이었다. 이 작품은 개봉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애니깽>에 최우수작품상, 감독상을 수여한 대종상의 행보는 지금까지도 한국 영화의 대표적 미스터리로 꼽힌다.

다만 아직 <애니깽>이 개봉 전이라는 상황을 의식했던 것인지, 기술 부문을 포함해 10개 이상의 상을 몰아주는 해프닝은 없었다. 하지만 2012년 제49회 영화제는 대종상이라고 쓰고 광해 잔치라고 부를 정도였다. 당시 영화제는 <광해, 왕이 된 남자>(이하 <광해>)에 무려 15개의 상을 안겼다.

그 해에는 천만 관객을 기록한 <도둑들>도 있었고, 대한민국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도 있었다. <도가니>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의 전성시대> <내 아내의 모든 것>도 2012년 작품이었다. 하지만 대종상의 눈에는 <광해>밖에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 보니 상을 받는 사람도 미안해졌다. 남우조연상을 받은 류승룡은 <광해>가 아닌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소감을 대신했고,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원동연 리얼라이즈픽쳐스 대표는 상을 너무 많이 받았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 있었던 영화인과 시청자에게 사과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특정 영화 몰아주기 현상은 2015년 제52회 영화제에서도 반복되었다. 올해의 주인공은 10관왕에 오른 <국제시장>이었다. <애니깽> <광해>로 이어지는 대종상의 특정 영화 편애는 더 이상 놀라운 일도 아니다. 다만 영화제 시작 전부터 남, 여 주연상에 오른 후보 전원이 불참을 선언하는 등 끊임없이 파열음을 내왔기에 이번 영화제에서 또다시 재림한 '몰아주기'는 더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상을 받는 사람도, 그 장면을 보는 사람도 민망해지는 시상식. 대종상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출석하지 않으면 상 주지 않는 영화상. 결국은...

'몰아주기'보다 심각한 문제는 대종상 자체에 있었다. 시작은 지난 10월 13일 열렸던 대종상 기자회견이었다. "시상식에 출석하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겠다"는 발언 이후, 대종상은 곧바로 '출석상' 논란에 들어갔다. 누리꾼들은 '어느 배우가 상을 받기 위해 시상식에 참석할까'를 궁금해했다. 시상식 참석 여부에 오가는 많은 관심이 부담스러웠던지, 결국 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 전원이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다.

물론 그들에게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정해진 스케줄이 있었던 것. 제52회 대종상 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쁜 배우들이다. 유아인은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촬영하고 있고, 하정우와 김윤진은 해외 체류 중이었다. 또 전지현은 임신으로 모든 공식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일각에서는 대종상 측이 불과 2주 전에 배우들을 섭외하려고 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배우들은 고심 끝에 시상식 불참을 선언했고, 대종상은 국내외 영화제를 통틀어 주연상 후보 전원이 불참하는 전무후무한 영화제로 기억되었다.

시상식 전날, 주연상 후보에 오른 배우들의 전원 불참 소식에 조근우 대종상 영화제 본부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배우들을 두고 "후진국 수준"이라고 맹비난했다. 대종상 불참을 선언한 유아인은 이후 자신의 SNS에 '꼰대의 품격'이라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조 본부장을 겨냥한 글인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 대종상을 이만큼 효과적으로 표현한 단어가 또 있을까.

 지난 20일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은 <뷰티인사이드> 백종열 감독을 대신하여 상을 받는 이병헌 감독. 그 또한 이번 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 후보에 올랐었다.

지난 20일 열린 제52회 대종상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을 받은 <뷰티인사이드> 백종열 감독을 대신하여 상을 받는 이병헌 감독. 그 또한 이번 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 후보에 올랐었다. ⓒ KBS


올해 대종상은 '대리수상 불가'가 주요 원칙이었다. 하지만 주연상 후보에 오른 모든 배우들이 불참하다 보니 대리 수상이 이뤄질 수밖에 없었다. 주연상 외에도 대부분의 부문에서 대리수상이 이뤄졌다. 심지어 공로상 수상자인 원로 배우 윤일봉마저 불참해 지인이 대신 상을 받았다.

대종상은 일부 후보가 참석한 부문에서도 시상식에 오지 않은 후보에게 상을 줬다. 신인감독상 후보에 올라 영화제에 참석했던 이병헌 감독은 이날 불참한 <뷰티 인사이드>의 백종열 감독을 대신해 상을 받았다. 남우조연상은 후보에 오른 유해진과 유연석이 참석했지만, 참석하지 않은 오달수가 받았다. 

대리수상은 어느 시상식에서나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작 전부터 '대리수상 불가 원칙'을 강하게 내세웠던 대종상의 대리수상 남발은 웬만한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더 웃긴 촌극으로 남게 되었다. 무엇보다 시상식에 참석한 후보가 있음에도 다른 후보에게 상을 주고, 그 상을 일면식도 없는 경쟁 후보에게 전달하라는 지시 혹은 부탁은 대종상 역사상, 아니 한국영화 역사상 길이 남을 명장면이었다.

참석한 배우 기근 속 이날 주인공은 MC 신현준? 

 지난 20일 열린 제5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진행, 대리수상, 시상자 등 여러 역할을 두루 소화해내어 주목받은 배우 신현준

지난 20일 열린 제52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진행, 대리수상, 시상자 등 여러 역할을 두루 소화해내어 주목받은 배우 신현준 ⓒ KBS


올해 대종상 영화제는 그나마 한류스타인 이민호와 라이징 스타 강하늘, 박서준, 이현우, 박소담의 등장으로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다. 그러나 출석한 배우들이 워낙 적었던 탓인지 수상자뿐만 아니라 시상자도 턱없이 부족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날 시상식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인물은 5년 연속 대종상 영화제의 진행을 맡은 배우 신현준이었다.

불참한 수상자를 대신하여 상을 받는 것은 기본이요, 남우주연상 시상자이자 진행자로 한꺼번에 많은 역할을 두루두루 소화한 신현준의 존재감은 일당백이었다.

신현준의 고군분투도 군데군데 드러나는 파열은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MC로서 무너질 대로 무너진 영화제의 분위기를 어떻게든 띄우고자 노력한 신현준의 노력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내년에는 지금보다는 훨씬 품격을 갖춘 대종상에서 신현준을 만날 수 있기를. 10관왕을 차지한 <국제시장>도 아니요, 신현준의 일당백만 남은 제52회 대종상 영화제는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될 뼈아픈 교훈을 남기고 쓸쓸하게 막을 내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진경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neodol.tistory.com), 미디어스에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대종상영화제 국제시장 신현준 이병헌 감독 대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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