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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MBC<다큐스페셜> '채식의 함정'이 방송됐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채식 제일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한 프로그램이라고 합니다. 해당 프로그램 작가가 출연자를 섭외하는 글을 올렸던 채식인들의 커뮤니티 '한울벗채식나라'에서는 방송 후 방송 내용이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반발이 일었습니다. 이 카페 회원이자, <오마이뉴스>에 연재기사 "'고기 킬러' 채식 전도사 되다"를 써온 기자도 이 프로그램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아래 기사를 통해 짚어보고자 합니다. - 기자 말

채식을 하는 이유는 건강때문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채식의 함정'은 건강과 영양만을 주요 가치로 내세웠다. MBC<다큐스페셜> '채식의 함정'의 한 장면.
▲ 건강상의 이유로 채식을 중단했다는 미국인 조던 영거 채식을 하는 이유는 건강때문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채식의 함정'은 건강과 영양만을 주요 가치로 내세웠다. MBC<다큐스페셜> '채식의 함정'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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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뒤에는 '육식은 곧 건강의 적'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최근에는 생선은 물론 유제품까지도 밥상에 올리지 않는 100% 채식만을 고집하는 비건(vegan·완전채식주의자)들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과연 채식만으로 완벽한 밥상을 꾸릴 수 있을까요?"

방송 초반부에 등장하는 위 내레이션은 채식인들이 '채식은 건강식·육식은 건강의 적'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지녔다고 전제한다. 그러면서 채식만으로 '완벽한 밥상'을 꾸릴 수 있는지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채식인들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논리다.

이런 전제는 채식을 하며 채식인들과 교류하는 기자가 보기엔 억지스럽다. 채식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은 채식인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채식전도사'를 자처하는 기자조차도 채식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같은 건 갖고 있지 않다. 그런 것은 오히려 편협한 사고로 간주하여 경계한다. 방송에 출연한 채식인들 역시 채식만으로도 건강할 수 있다고 했지, '채식만 해야 건강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방송은 (정작 대다수의 채식인은 요구하지 않는) 절대성과 완벽성을 채식의 전제로 삼았다. 이런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은 '식물도 생명'이라는 이유로 채식주의를 비판하는 사고방식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연재기사를 통해 강조했듯이, 채식은 절대 병에 걸리게 하지 않는 만병통치약도, 아무 것도 죽이지 않는 절대선도 아니다.

'채식 만능주의'는 채식인도 거부한다

제철 채소와 집에서 만든 된장·고추장·간장·식초로 맛을 낸 그림이네 가족의 밥상. MBC<다큐스페셜> '채식의 함정'의 한 장면.
 제철 채소와 집에서 만든 된장·고추장·간장·식초로 맛을 낸 그림이네 가족의 밥상. MBC<다큐스페셜> '채식의 함정'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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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무리한 전제에서 시작했기 때문일까? 방송은 한때 채식을 '맹신'했다가 완전히 돌아선 3명의 극단적인 사례를 통해 채식에 문제제기를 한다. 미국인 2명과 일본인 1명인 이 세 사람은 채식을 하는 동안 우울감· 피곤·고무 알레르기·척추 통증 등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채식의 위험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런데 이들 3명의 사례에서 '채식의 함정'을 찾기에는 무리가 있다. 채식으로 건강이 나빠진 사례가 있다면, 채식으로 건강이 좋아진 사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세 사람이 제대로 된 채식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방송은 이들이 채식을 하는 동안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먹었는가에 대해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이 겪은 증세의 원인이 '채식'이라고 말할 근거는 본인들의 느낌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이들이 자신의 방식에 문제가 없었는지 충분히 따져보지 않고 채식 탓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이들 중 <채식의 배신>의 저자로 국내에도 알려진 리어 키스는 '채식'이 아닌 '극단적인 편식'을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책에서 리어 키스는 채식을 하는 동안 탄수화물에 편중된 채식을 했다고 밝혔다. 역시 방송에서도 "누구보다도 완벽한 비건 다이어트를 고수했다"면서 "곡물만 섭취했고 콩을 통해 단백질을 보충했다"고 했다. 덧붙여 "비건 채식을 하면 매일 탄수화물을 과다하게 섭취하게 된다"면서 "하루에 3번 이상 식사를 하면 사실 많은 양의 설탕을 몸에 퍼 넣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러나 탄수화물에 편중된 식단을 '완벽한 비건식'으로 보기도 어렵거니와, 그런 것을 권장하는 채식 전문가는 없다. 리어 키스가 제대로 채식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채식의 배신>에서 그녀는 식물의 죽음마저 피하기 위해 아무것도 먹지 않는 호흡주의자의 세계를 기웃거렸다고 한다. 채식인으로서 합리적인 사고를 했다고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한편 방송에서 언급된 채식의 단점과 육식의 장점을 부각한 해외 연구 결과는 자금의 출처를 밝힐 필요가 있다. 대개 그런 연구는 육류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축산업계의 지원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이런 연구에서 공정한 결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게다가 채식의 장점을 밝힌 연구 결과 역시 무수히 많음에도 이런 자료는 방송에 언급되지 않았다. 채식의 단점만 제시하며 '채식의 함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정하다고 볼 수 없다.

채식 연구하는 의사들, "왜곡의 극치" 비판

이권우 '학생동물보호협회' 대표가 지난 22일 홍대 앞에서 주최한 채식 홍보 캠페인. 거리에 시청각 시설을 설치하여 농장동물의 현실을 알리고 채식을 홍보했다.
▲ 채식 홍보 캠페인 이권우 '학생동물보호협회' 대표가 지난 22일 홍대 앞에서 주최한 채식 홍보 캠페인. 거리에 시청각 시설을 설치하여 농장동물의 현실을 알리고 채식을 홍보했다.
ⓒ 이권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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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6일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소시지·햄·베이컨 등의 가공육을 1군 발암물질로, 쇠고기·돼지고기를 비롯한 붉은 고기를 2군A 발암물질로 분류했다. 육식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것은 별로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오래 전부터 육식은 '풍요의 병'이라 불리는 각종 성인병과 암질환의 주요원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개인의 건강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소가 아파하면서 젖을 짜낸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우유는… 소의 아픔 때문에 안 먹고요. 달걀을 먹기 위해서 사람들이 그 (닭) 안에다가 억지를 아기를 낳는 무슨 약 같은 걸 넣는대요. 그런 걸 넣어서 억지로 사랑하지 않았는데도 아기(달걀)가 생겨서 그런 데서 닭이 많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안 먹어요."

21년차 채식인인 부모님과 함께 방송에 출연한 11살의 한그림양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를 위와 같이 밝혔다. 동물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즉 동물의 건강을 위해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채식주의 운동이 시작된 배경에는 '공장식 축산'이라 불리는 현대의 육류생산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

연재기사를 통해 밝혔듯이, 공장식 축산은 소·돼지·닭을 생명이 아닌 공산품처럼 다룬다. 또한 항생제·성장호르몬제·약물 등을 남용하고,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하여 지구를 오염시킨다. 그리고 각종 전염병·신종 바이러스를 양산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한다. 공장식 축산 반대와 생명권은 진보정당인 녹색당이 선거의제로 다루고 있다. 동물에 대한 연민을 넘어 사회진보의 가치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채식주의는 '다함께 살자'는 사회운동임에도 방송은 채식인 출연자들의 건강에만 초점을 맞췄다. 방송에서는 9명의 채식인 출연자의 건강 검진을 시행하여 건강 상태를 체크한 다음, 근육 부족·높은 체지방량·비타민 부족·높은 수치의 호모시스테인 등을 문제 삼았다.

방송은 사람들이 채식을 결심하고 지속하는 사회적 배경도 충분히 부각해야 했다. 이런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출연진의 건강만을 파고든 진행방식은 (채식에 대해 모르는) 시청자로 하여금 채식을 '본인의 건강을 도모하는 개인주의'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출연진의 검진 결과를 놓고 앞으로 생길 수 있는 문제만을 강조함으로써 출연진을 맹목적인 믿음 하나로 본인과 가족의 건강을 희생시키는 사람들로 오해할 여지를 남겼다. 

게다가 채식인 출연진의 검사 결과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은 채식을 연구하는 의학 전문가들이 보기에 공정한 것이 아니었다. 지난 14일 채식을 일반에 알리고 보급하는 의사들의 단체인 '베지닥터'는 '왜곡의 극치를 보여준 MBC<채식의 함정>'이라는 글을 통해 이 프로그램이 "채식을 흠집 내기 위한 요소들만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균형과 공신력 있는 정보전달 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그 근거로 방송에서 한국인의 사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 심혈관질환 및 당뇨병에 대한 기본적인 검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그나마 시행한 검사 결과도 제대로 제시돼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프로그램에선 분명히 콜레스테롤 검사를 진행했다고 했으나 그 결과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며 "결과를 제시하지 않은 것은 전 출연진의 콜레스테롤 및 중성지방 검사 결과가 매우 양호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에 "애초에 채식인의 건강상태를 공정하게 보여줄 의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면, 채식인의 혈중 콜레스테롤 검사 결과도 당연히 제시됐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방송이 채식인의 근육량 부족을 문제 삼은 것과 관련해서는 근육량 자체가 건강의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1970년대 중반 이후 동물성식품과 식용유 섭취량이 늘면서 한국인의 체격이 커지기 시작한 동시에 당뇨병과 심혈관질환도 증가했다는 사실을 들면서, "적당한 근육량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운동이 아닌 과도한 단백질과 지방을 통해 근육량을 늘리는 것은 건강을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반박했다.

방송에서 지적한 채식인의 비타민B12 부족과 관련해서는, 비타민 B12 섭취를 위해 동물성식품을 섭취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동물성식품 섭취로 인해 오히려 콜레스테롤이 상승하고 심혈관질환 위험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비타민B12를 가장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은 보충제"라고 밝혔다.

베지닥터는 끝으로 건강을 위해 동물성식품을 섭취할 필요는 전혀 없으며, 식용유·설탕·콩고기와 같은 가공식품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자연 상태의 식물성 식품들로 식단을 구성하면 (방송이 주장하듯이) '전문가적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최상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참가한 모든 채식인의 검사결과를 확보해 방송에서 제시되지 않은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라며 제작진에게는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는 '채식의 함정'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할 것을 요청했다.(베지닥터의 글 전문 보기).

소수자의 선택 존중하지 않는 사회

20년간 채식을 하다가 건강 이상으로 중단했다는 미국인 리어 키스가 베이컨과 계란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채식의 배신>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국내에도 소개됐다. 책이 출간된 후, 황성수 의학박사는 '채식의 배신? 가공식품의 배신!'이라는 기사에서 그녀가 가공식품을 주로 먹어 건강이 상했다고 반박했다. MBC<다큐스페셜> '채식의 함정'의 한 장면.
 20년간 채식을 하다가 건강 이상으로 중단했다는 미국인 리어 키스가 베이컨과 계란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채식의 배신>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국내에도 소개됐다. 책이 출간된 후, 황성수 의학박사는 '채식의 배신? 가공식품의 배신!'이라는 기사에서 그녀가 가공식품을 주로 먹어 건강이 상했다고 반박했다. MBC<다큐스페셜> '채식의 함정'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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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제작진에게 이상의 비판에 대한 입장과 반론을 묻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에 대해 MBC<다큐스페셜> '채식의 함정' 제작진(외주 제작)은 따로 인터뷰는 하지 않는다면서 아래와 같은 입장을 알려왔다.

제작진은 "본 프로그램에서 공장식 사육 문제를 다루지 않은 이유는 환경이나 동물보호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아닌 건강과 음식에 관련된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채식이 무조건 나쁘고 육식이 좋다고 말하는 게 이 다큐멘터리의 본질이 아니며, 채식주의가 건강 만능주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채식이 나쁘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채식을 잘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육식주의자들의 건강검진은 고기 관련 다큐멘터리를 할 때 진행할 것"이며 "앞으로도 탄수화물, 고기 등 여러 분야를 시리즈로 다룰 생각이니 다른 편도 마저 보고 이야기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방송의 취지가 위의 해명과 같다면, 제작진은 '베지닥터'와 같이 채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지닌 전문가의 조언을 통해 채식에 관한 정보를 올바르게 제공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제공할 만한 지식을 갖춘 전문가는 방송에 등장하지 않았다. 방송은 '채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암시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시청자의 관심을 '더 나은 채식'이 아닌 '육식'으로 돌렸다.

채식이 영양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는 현실 뒤에는 소수자의 선택을 고려하지 않는 사회가 있다. 채식인들은 외식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호소한다. 채식인을 위한 메뉴와 식당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자를 포함한 채식인들은 직장 회식메뉴가 삼계탕이나 설렁탕 등 어느 한 가지로 통일됐을 경우 밥과 김치만 먹기를 감수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외국처럼 어느 식당에 가든 채식 메뉴를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채식인이 많다. 이런 점에서 채식을 알리는 캠페인은 소수자의 권리 찾기 운동이기도 한 것이다. 

'채식의 함정'이 방송된 후, 해당 프로그램 작가가 출연 섭외 글을 올렸던 네이버 카페 '한울벗채식나라'에는 제작진이 애초에 출연을 제의한 내용이나 출연진이 촬영에 응한 취지와는 전혀 다르게 방송이 편집됐다고 비판하는 출연자들의 글이 올라왔다. 카페 운영진은 해당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정부부처와 방송사에 문제를 제기하고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채식의 함정'은 밥상에 대한 상식을 뒤집는다고 했다. 그러나 '채식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해묵은 편견을 재생산하는 해당 방송에서 상식을 뒤집는 내용은 없었다. 한국 사회는 다양성에 관대하지 않다. 상사가 권하는 술 한 잔을 거절하기도 힘든 조직 문화에서 스스로 채식인임을 밝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채식의 함정'은 편협한 접근 방식으로 채식을 왜곡시켜 이미 숱한 편견에 시달리는 채식인들에게 더 많은 짐을 안겨줬다. 제작진이 프로그램 제작에 앞서 본인들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고민해야 했던 이유다.  

○ 편집ㅣ손지은 기자



태그:#MBC<다큐스페셜> ‘채식의 함정’, #채식주의, #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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