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편집자말]
 영화 <내부자들>에서 정치깡패 안상구 역할을 맡은 이병헌. 그가 깡패가 아니었다면, 대중의 반응은 달라졌을까.

영화 <내부자들>에서 정치깡패 안상구 역할을 맡은 이병헌. 그가 깡패가 아니었다면, 대중의 반응은 달라졌을까. ⓒ (주)쇼박스


사람들은 메시지(Message)보다 메신저(Messenger)를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언론이 그렇다. 최근 광화문 집회만 보더라도, 그들이 모인 이유(메시지)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복면과 배후세력(?)에 대한 이야기만 넘쳐난다. 언론이 앞장서 메신저를 공격하면, 힘이 없는 자의 주장은 단순한 정치공작이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흠집내기로 치부된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영화 <내부자들>은 바로 이런 현실을 스크린에 담았다.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 분)는 대한민국 여론을 움직여 자신들이 원하는 대통령 후보까지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 권력자들의 비리를 세상에 까발린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인 비리장부까지 공개해도, 그의 메시지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그가 깡패이기 때문이다.

그가 깡패이기 때문에

재벌은 돈으로 증인을 매수하고, 언론은 안상구를 파렴치한 사기꾼과 성폭행범으로 몰아세운다. 대중은 깡패의 말이 아닌, 언론과 정치인의 말을 더 신뢰한다. 여론은 너무도 쉽게 돌아선다. 그렇게 재벌-국회의원-논설주간이 하나 되어 저지른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은 희대의 사기꾼이 저지른 정치공작, 즉 '거짓말'로 마무리된다.

결국,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안상구가 깡패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입김, 재벌 회장의 돈, 논설주간의 펜은 서로 방패막이가 되어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할 뿐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원작 웹툰을 그린 윤태호 작가의 말대로, 모든 균열이라는 것은 내부의 조건이 완성하는 법. 처음에는 그저 대어를 낚아 출셋길에 오르고자 했던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은 이 빌어먹을 시스템에 균열을 내기 위해 스스로 '내부자'가 되고자 한다. 언론과 대중이 깡패의 말은 믿지 않더라도, 검사의 말은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장훈은 기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로 시스템의 일원이 되고, 그곳에서 '결정적 증거'를 들고나온다.

우장훈의 주장은 안상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커다란 폭발력을 발휘한다. 메신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검사이기 때문에

 영화 <내부자들>에서 줄없고 빽없는 검사 우장훈 역할을 맡은 조승우. 메시지는 바뀌지 않았다. 메신저만 바뀔 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변했다.

영화 <내부자들>에서 줄없고 빽없는 검사 우장훈 역할을 맡은 조승우. 메시지는 바뀌지 않았다. 메신저만 바뀔 뿐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변했다. ⓒ (주)쇼박스


물론 시스템의 일원이 돼서 가지고 나온 '빼 박(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만약 우장훈이 검사가 아닌 일반인이었다면, 그 역시 안상구의 전철을 밟지 않았을까? 펜은 칼이 되어 끊임없이 그를 흠집 낼 것이고, 돈은 채찍이 되어 그를 무릎 꿇리려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공허한 메아리로 그쳤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현직 검사의 양심선언과 내부고발은 '광야의 외침'이 되어 마침내 시스템에 균열을 일으켰다. 그들 중 누구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란 변명과 "주어가 없다"란 핑계를 댈 수 없을 만큼 우장훈의 반격은 완벽했다. 그리고 통쾌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본다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고 있는 부패와 비리의 민낯을 들추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가 된다. 아무리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의문을 제기해도, 언론에서 눈감고 "빨갱이"란 낙인을 찍으면, 결국 메시지 싸움은 메신저 싸움으로 변질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이강희(백윤식 분) 논설위원이 대중을 개·돼지로 묘사하고, 재벌 총수가 파업노동자를 향해 "빨갱이"라고 소리치는 건 그래서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서늘하다

결국 안상구는 복수에 성공하고 우장훈은 정의를 지켜내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건 그리 유쾌하지 않다. 오히려 절망적이다. 영화가 아닌 현실이라면, 운명 공동체인 그들 중 누구도 시스템에서 이탈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안상구와 우장훈 같은 존재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결국 그들은 메신저 싸움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가정이 아니다. 광화문 집회 참가자들을 '불법세력'으로 규정하는 권력자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기사화되고, 복면 시위대를 IS와 비교하며 '복면시위 금지법'이 일사천리로 발의되는 게 바로 2015년의 대한민국이 아니던가.

메시지(Message)를 지우기 위해 메신저(Messenger)를 부각하는 건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서늘하다. 기온이 내려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박창우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saintpcw.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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