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를 헝그리(Hungry)하게 키우지 못한 50대 학부모입니다. 삶의 목표를 잡지 못해 표류하는 아이와, 은퇴 후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가 현실적인 문제가 된 저의 처지는 일응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지구 반대편 먼 이국땅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 점점 심각해지는 청년 실업문제와 베이비 부머들의 2막 인생에 대해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기자 말

일요일, 호주 여행 두 번 째날 찾아간 마법의 모험 정원(The Enchanted Maze Garden)은 아서스 씨트 주립공원에 인접하여 있으며, 멜버른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어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유원지이다.

트리 서핑(Tree Surfing)을 중심으로 몇 가지 놀이시설을 보유하고 있어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높다. 어른들은 아이들과 같이 트리 서핑을 하거나,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을 산책하며 쉴 수 있는, 입장료를 받는 유료공원이다.

야트막한 야산의 정상 부근에 있는데 워낙 산지가 없는 호주 지형으로 인해 호주의 남쪽 해안과 주변 농장의 경치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점심 때쯤 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안내소를 겸한 식당에서 가볍게 식사를 한 후 잔디에 앉아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주변 사람들을 보니 성인층은 중국인들이 주축을 이루는 것 같고, 그 사이를 어지럽게 뛰어 다니는 호주 어린이들이 공원에 활기를 불어 넣고 있었다.

가끔씩 보이는 호주 특유의 눈부시게 하얀 피부를 가진 미인에 감탄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 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예약 시간까지 우리는 더운 날씨로 지친 몸을 재충전했다. 그리고 드디어 트리 서핑이 시작되었다.

나는 거의 기절할 뻔 했다

- 잘 정돈된 소박한 공원이다.
▲ 마법의 모험정원 - 잘 정돈된 소박한 공원이다.
ⓒ 정성화

관련사진보기


나중에 알았지만 트리 서핑은 군대에서 하는 유격훈련 체험과 비슷한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에는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어 이들이 유격훈련을 받는 모습을 많이 봤는데, 그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나무 사이를 산책하는 그런 체험으로 생각하고 왔다가, 트리 서핑의 실체를 알고 나서, 나는 이런 걸 왜 돈을 주고, 멀리 호주까지 와서, 이렇게 아까운 시간에 해야 하는지 한숨이 나왔다. 큰애도 같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작은 애는 그런 걸 별로 내색하지 않는 성격이고, 아내는 어디에든 잘 적응하는 성격이니까, 아마 큰애와 내가 뭘 밟은 듯 가장 안 좋은 표정이었으리라.

어쨌던 유격 훈련은 시작되었고, 한번 안전장치를 줄에 끼워 넣으면 그 단계가 끝날 때 까지는 중간에 빠져 나올 수 없다. 중국에서 온 아줌마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내 뒤에서 날렵하게 생긴 호주 아가씨가 나타나 그 아줌마를 끌고 다음 단계로 건네 준 다음에 다시 돌아 왔다. 마침 나무 사이의 로프를 건너고 있던 나는 거의 기절할 뻔 했다. 호주 아가씨가 거칠게 내 옆을 지나가면서 만든 진동 때문에 로프에서 떨어질 뻔 했던 것이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나는 여전히 고소공포증을 가지고 있다. 운 좋게 군대에서도 하지 않은 유격훈련을 여기에서 오십이 넘은 나이에 다시 한 것이다. 다리는 부들부들 떨렸고, 줄을 얼마나 세게 잡았는지 호주 여행 내내 근육통을 앓았다. 그러나 단계를 거듭하면서, 그래서 높은 곳에서 느끼는 공포감이 줄어 들수록 나도 모르게 트리 서핑의 재미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트리 서핑은 로프나 로프 위에 놓인 판자로 만들어진 통로를 따라 나무와 나무 사이 높은 공간을 건넌 후 지상으로 줄을 타고 고속으로 낙하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나무와 나무 사이의 무서운(?) 다리를 무사히 건너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성취감이 느껴진다. 높은 곳에서 줄을 타고 지상으로 고속으로 날아가는 속도감은 일종의 쾌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게임을 한다는 것이 좋았다.

지상 높은 곳에서 내가 제일 앞장 서고 아이들에게 빨리 오라고 큰 소리도 질러 보고, 먼저 건너 온 경험을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지상으로 떨어지는 속도를 제어하지 못해 나도 나무껍질이 깔려 있는 푹신한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러나 뒤따라 오는 아이들이 그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못한다고 놀리기도 했다.

이렇게 우리 가족이 정말 오랜만에 함께 깔깔 웃으며 한 놀이는 마지막 단계 가장 높은 나무에서 번지점프 비슷한 것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큰애에게서 느꼈던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이 웃고 떠드는 사이에 많이 사라지고, 게임이 주는 어떤 일체감이 우리를 기쁘게 했던 오후였다.

거기에 내가 터무니 없이 화를 냈던 것이다

문제는 돌아오는 길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발생했다. 호주의 2월은 한여름이다. 더운 날씨 때문에 끊임 없이 차가운 물이 먹고 싶어지는데, 자동차에 물을 두면 금방 미지근해진다. 어떻게 해결책이 없나 고민하다가, 빙고~, 슈퍼마켓에서 얼음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얼음을 담는 보온병만 사면 된다. 그런데 보온병이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 어느 것을 사야 하는지 의견을 들어 본다고 하는 게 문제를 일으켰다.

작은 애가 무심코 반대의 말을 했는데, 거기에 내가 터무니 없이 화를 냈던 것이다. 멀리 호주까지 와서, 작은 애도 오랜만에 만났고, 정말 오랜만에 같이 여행을 하는 것인데,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 왔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처음도 아니었다. 이상하게 나는 큰애에게는 심하게 화를 내지 않는데, 작은 애에게는 한 번씩 도를 넘어설 정도로 화를 낸다. 이번 여행 중 큰애가 유학원 형의 여자친구가 일한다는 식당에 데려간 일이 있다. 탕수육 비슷한 음식을 몇 가지 먹다가 내가 맥주를 주문했다. 그런데 작은 애가 무심코 내가 맥주 마시는 것에 대해 반대 비슷한 말을 하자 내가 또 터무니 없이 화를 냈다.

큰 애와 작은 애는 성장 과정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큰 애는 태어나서 바로 집에 오지 못하고 황달 때문에 병원에 입원을 했다. 태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링거를 꽂을 데가 없어서 머리에 주사 바늘을 꽂은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속칭 '경기'라고 하는 갑자기 체온이 올라 가는 증상 때문에 야간에 병원 응급실을 단골로 드나들었다. 그 외에도 잦은 병치레 때문에 아주 힘들게 키웠던 기억이 있다.

그에 비해 작은 애는 어떻게 키웠는지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로 쉽게 키웠다. 아픈 데도 별로 없었고, 공부도 잘 했고, 대학도 큰 무리 없이 들어 갔다.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므로 내가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 그런데 내가 왜 그랬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지만 현실적으로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난다. 고맙게도 작은 애가 같이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가줘서 일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태그:#호주, #워킹홀리데이, #멜버른, #베이비부머, #워홀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