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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아침 출근 길. 늘 그렇듯 모 대학의 교정 앞을 지나간다. 그런데 요근래 출근길이 제법 소란스러워졌다. 원인은 대학교의 선거철.

빨간색, 파란색. 마치 어느 당을 대표하는 일명 '당 잠바'를 입고 정문 앞에서 지지하는 후보를 뽑아달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마치 대한민국 선거철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그들이 입고 있는 잠바와 지지호소들은 한데 묶여 선거방식의 지루함을 생성해낸다.

하지만 선거의 겉모습만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내걸고 있는 '선거 공약'에도 흔히 여의도에서 풍기는 찜찜한 냄새가 난다.

"지하철 급행 유치, 교통 장학금 신설, 야구장 확충" 등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공약이 남발한다.

이 같은 공약들은 취업난과 학과생활로 바쁜 재학생들의 무관심을 더욱 촉구시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20대 초중반의 선거 후보자들은 현재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당의 평균 의원들보다 훨씬 더 나이가 어릴 뿐더러 굳이 '잠바'와 '소음'의 방식이 아닌 그들을 어필할 수 있는 미디어 사용 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 표라도 얻어야 한다는 심정인 그들은 내 이런 생각에 반기를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선거를 추구하는 방식은 단순히 '어른들 베끼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베끼끼 아닌, 본질로

실험의 장이 되어야 할 대학에서 '다른 가능성에 대한 탐구'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다. 학문뿐만 아니라 대학에서 선행되는 모든 부분은 학생에 의해서 새로 만들어지고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이 정석이다.

씁쓸하게도 요즘은 대학의 기업화로 인해 오히려 학생이 을이 돼가고 있다는 실정이지만 적어도 선거라는 제도는 '학생의 학생에 의한 학생을 위한' 제도이다. 사실 다른 건 몰라도 가장 학생다운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선거이다.

하지만 그들이 내세우는 선거공약은 총학생회 후보자들의 정치적 이권을 위한 단발성 공약이다. 이는 선거 후보자들이 진심으로 재학생의 입장이 되어 필요한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진짜 너의 색을 보여줘

얼마 전 모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커밍아웃을 한 여학생이 뽑혔다는 소식이 있었다. 이례적으로 총학생회의 선거율도 높았다. 이는 성소수자라는 사적인 영역을 정치의 영역에 끌어들였다는 이유로 말이 많았지만, 본질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낸 이례적인 학생회 선거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굳이 자신이 지향하고 있는 특별한 레퍼런스가 없을지라도, 누구나 자기만의 색깔과 목소리가 있다. 이러한 자신의 색깔을 이용하여 충분히 표권을 쥐고 있는 학생들을 설득할 수 있다.

'선거=당론=색' 이러한 논리는 현 대한민국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그들의 '판'이다. 그러한 판을 대학 선거에 그대로 가져 오는 것은 답습을 넘어 앞으로 정치계로 나아갈 수도 있는 학생들의 다른 가능성을 한정시키는 일이다.

고등학교 때, 화장하는 몇몇 친구들을 보고 선생님은 줄곧 "어릴 땐 아무것도 안 바른 게 더 이뻐"라며 화장 안 한 수수한 모습의 친구들을 칭찬하셨다.

이른 아침부터 빨간색, 파란색 잠바를 챙겨입고 교문 앞을 나선 이 친구들이 오히려 자신의 진정한 색깔을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오늘 고등학교 때 그 선생님의 마음이 되어 "잠바 안 입은 모습이 더 이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태그:#학생선거 , #선거 , #대학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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