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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 역사학 교수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138억년 전 '빅뱅'으로부터 21세기 '첨단과학기술 혁명'의 시대까지를 개괄하는 '빅 히스토리'(Big history)의 걸작이다. 역사학, 생물학, 진화학, 심리학, 우주과학, 정치, 경제, 종교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류의 역사를 지구 연대기의 관점에서 풀어놓았다. 유인원부터 사이보그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진화와 성장기는 마치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방대한 이야기의 끝에서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간이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기자 말 

과학혁명, 무한성장과 무한파괴 양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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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피엔스> 표지 .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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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진로를 결정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19쪽)

인지혁명과 농업혁명으로 지구의 '지배자'가 된 사피엔스는 5백년 전 '과학혁명'으로 일찍이 유례없는 세상을 창조해가고 있다. 저자는 현대 과학이 무지를 기꺼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모든 전통 지식과 구별된다고 본다.

이슬람, 기독교, 불교, 유교와 같은 근대 이전의 전통지식들은 세상의 중요한 것들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가르쳤다. 세상은 절대적인 힘에 의해 주조된 세계였고 이 경계를 넘어서는 질문은 허용되지 않았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한 대가로 목숨을 걸었던 것처럼 말이다.

저자는 "현대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라며 "덕분에 우리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능력과 새로운 기술을 발명할 역량이 크게 확대되었다"고(360쪽) 설명한다. 과학혁명은 '지식의 혁명'이 아니라 '무지의 혁명'이었다.

지난 5백년간 인간의 힘은 경이적으로, 유례없이 커졌다. 1500년에 지구 전체에 살고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의 수는 5억명이었다. 오늘날에는 70억명이 산다. 1500년 인류가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총 가치는 오늘날 화폐로 치면 약 2,500억 달러였다. 오늘날 인류의 연간 총생산량은 60조 달러에 가깝다. 1500년 인류가 하루에 소비한 에너지는 약 13조 칼로리였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 1,500조 칼로리를 소비한다. 숫자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라. 인구는 열 네배로 늘었는데 생산량은 240배, 에너지 소비는 115배 늘었다. (351쪽)

과학혁명, 산업혁명, 자본주의 삼각 편대의 질주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과학은 산업혁명의 동력이었고, 자본주의를 촉진했다. 자본주의자들은 정치적, 경제적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과학에 돈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발전한 과학은 자본주의 경제가 성장의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구원투수'로 등판해 자본주의를 구하는 일등공신 노릇을 했다.

영원히 계속되는 경제성장에 대한 자본주의자의 믿음은 우주의 섭리에 위배된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경제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과학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학적, 기술적 연구를 통해 기존의 자원을 더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방법 뿐만 아니라 새로운 유형의 에너지와 원자재를 만들어냈다.

무한성장이 '무한행복'으로 연결된 것은 아니었다. 값싸고 풍부한 에너지와 원자재를 이용해 생산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만큼 생태계는 파괴됐다. 지구의 녹색과 푸른색을 콘크리트와 플라스틱이 덮어버리는 면적이 늘어날수록 환경위협과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점점 생태적 재앙의 신호를 보낸다.

국가와 시장의 힘이 막강해지고 지역공동체가 붕괴하면서 수백만년 동안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던 인간은 지난 2세기 만에 '소외된 개인'(509쪽)이 되었다. 심지어 핵무기 개발과 체르노빌,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류는 과학 덕분에 역사를 발전시켜 왔으나 동시에 역사를 끝장낼 능력도 보유하게 되었다.

사피엔스, 그들은 신이 되려 하나?

자연선택의 결과,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어떤 생명체도 누리지 못했던 거대한 운동장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이 운동장에도 여전히 경계선이 있다. 그렇다면 사피엔스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고 아무리 많은 것을 이룩한다고 할지라도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이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의 한계를 초월중이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 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 40억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선택의 법칙에 따라 진화했다. 지적인 창조자에 의해 설계된 생명체는 단 하나도 없었다. (561쪽)

현대 과학은 40억년간 지구를 지배해 온 자연선택의 법칙을 '지적 설계'로 대체하려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그 방법은 생명공학, 사이보그공학, 비유기물 공학이다. 과학자들은 살아있는 개체의 유전자를 조작해 해당 종에게는 없는 특성을 만들어내고 전혀 새로운 종을 창조하는 실험을 반복 중이다.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은 인간의 질병을 치유하는 수준을 넘어서 인간의 생리기능, 면역계, 수명 뿐만 아니라 지적, 정서적 능력까지 크게 변화시키는 단계로 발전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대단히 파격적이고 논쟁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기술이 발달할 경우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대체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의학이 몰두하는 주제가 인간 능력 강화에 있는 시대가 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든 인간에게 강화된 능력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을까? 아직은 공상에 불과하겠지만 과학기술에 의해 인간을 뛰어넘는 초인간 엘리트 종의 등장이 현실화 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은 역사의 다음 단계에서는 기술적, 유기적 영역 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에도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이다. 또한 이러한 변형은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사람들은 '인간적'이라는 용어 자체에 의문을 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알 수 없는 일이다. (584쪽)

저자는 "이런 기술의 혁신은 거대하고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위험을 낳을 수도 있다. 우리는 현실주의자가 되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며 "이것은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해야 할 가장 적당한 시기"라고(서문, 8쪽)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의 과학은 우리에게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재설계할 수단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며 사회, 경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도 유전공학, 나노기술, 컴퓨터 중계장치에 의해 바뀔 수 있다면 '인간적'이라는 말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가지겠느냐고 반문한다. 지금 우리는 생명의 미래에 관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에 와 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무로 모른다. 과거 어느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친구라고는 물리법칙 밖에 없는 상태로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의 친구인 동물들과 주위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든다.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면서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588쪽)

덧붙이는 글 |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지음 / 김영사 펴냄 / 2015.11. / 2만2000원)

이 기사는 이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yes24.com/xfile340)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피엔스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김영사(2015)


태그:#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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