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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에 대해 설명하는 최경덕님
 세월호 특조위에 대해 설명하는 최경덕님
ⓒ 성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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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30일(현지 시각),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가 미국 뉴욕에 있는 '내셔널 오페라 아메리카 센터(The National OPERA AMERICA Center)'에서 열렸다.

유가족과 '세월호를 잊지 않는 뉴욕 뉴저지 사람들'의 만남은 지난 2015년 3월, 경빈·동혁 어머니들과의 간담회 이후 10여 개월 만이다.

이날 간담회는 지난 1월 27일 뉴욕에 도착한 제종길 안산시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그리고 고 최성호군 아버지 최경덕님, 고 김건우군 아버지 김정윤님으로부터 듣는 '세월호, 지금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이후에는 관객과 '질문과 대답의 시간'이 마련됐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유가족의 요구'는 세 가지였다. '온전한 세월호 인양',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그리고 '국민안전대책 마련'이 그 내용이었다. 해당 요구 조건에 대한 사회자의 설명으로 시작된 이 날 간담회 내용의 일부를 아래에 옮겨본다.

"9.11 테러 박물관 방문, 추모사업 위해 미국 방문"

- 사회자 : "뉴욕에 오시게 된 이유를 설명해 달라."
제종길 시장 : "안산시에서는 세월호 사고 이후 '세월호 사고 수습 지원단'을 구성, 분향소·팽목항 근무와 함께 가족들의 안전·복지·생활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추모에 관련된 것은 지방정부 책임으로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뉴욕 9.11 테러 박물관 등을 방문해서 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 추모 사업 진행 방법 등에 대해 알기 위해 오게 되었다. 유가족분들도 같이 가자고 제안해서 뉴욕에 함께 오게 된 것이다."

최경덕님 (아래 최) : "지난 1월 25일에 결정된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추모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 시점'이라는 말에 공감해서 '9.11 추모사업'에 대해 공부하러 왔다. 간담회 계획은 없었지만, 그동안 가족들의 목소리가 외부에 전달되는 데 어려움이 있던 터라 가감 없이 전달하고자 왔다. 현재 특조위가 가진 문제점, 국가 상대로 소송하게 된 배경, 유가족 상황 그리고 성금수령에 대한 돈 이야기 등 지금까지의 경과보고와 함께 현재 상황을 그대로 이야기하겠다."

- 유가족 모임이 법인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 : "법적인 대표성이 있는 단체 이름의 필요성을 느껴 2015년에 사단법인을 만들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2016년에 들어서 서류가 접수되었으며 사단업인 '416 가족협의회'로 승인이 났다. 여기에는 희생자 가족, 생존학생, 일반인 가족, 화물 피해자, 그리고 희생당한 선생님 가족 등 크게 5그룹으로 현재 350가구가 회원으로 포함되어 있다. 운영위원장, 집행위원장 이하 5개의 분과(진상규명, 인양, 심리 생계, 대외협력, 추모사업)로 구성되어 있다."

- 유가족들이 번갈아가며 동거차도로 가서 상주한다고 들었다. 동거차도가 무엇인가?
최 : "세월호 침몰 지점 바로 앞 섬의 이름이다. 정부가 지난 2015년 4월에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이뤄지는 인양에 관한 작업을 지켜보고 있다. 희생자 부모들이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들어가 배에 훼손되는 건 없는지 등을 지켜본다. 주로 밤에 작업하는 데 이쪽에서 볼 수 없게 헤드라이트를 동거차도 쪽으로 비추는 등 여러 가지로 방해하고 있어, 지켜보는 데 어려움이 있다."

- "특조위의 진행 상황을 알려달라."
최 :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것 중 우리가 요구한 것은 오직 진상규명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이다. 2015년 3월에 공표된 재원 및 규제에 관한 특별법은 유가족이 요구한 적이 없다.

그동안의 진행 상황은 2015년 1월에 특조위 구성에 대한 위원들이 결정되고, 3월에 임명장을 받았지만 조사원 채용은 지난 8월부터야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조사원 채용이 아직 끝나지도 못했다. 특조위에 대한 예산은 9월에서야 집행되었는데 이들의 임기가 1년이며 6개월 추가할 수 있다고 정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기준에 의하면 아직 제대로 갖춰진 게 없는 지난 2015년 1월이 특조위 활동 시작 시점이 된다. 활동이 몇 개월 남지 않은 상황이다. 사고원인 등 정확한 것은 세월호가 인양된 후 더 조사해서 그 이후에 결과를 발표해야 맞다는 게 가족들의 입장이다."

- 특별법 중 지원 규제에 관한 것은 무엇인가?
최 : "국가가 어떤 식으로 배·보상을 할 건지 발표한 것이다. 배·보상에 관한 내용은 선사가 증·개축 등 잘못하여 사고가 났으니 피해자 가족이 2015년 3월 28일부터 9월 28일까지 신청하면 국가가 먼저 금액을 지불하고, 선사에게서 받겠다는 내용으로 3월 28일에 시행령이 내려졌다. 이것을 신청하면 국가는 잘못이 없다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구조에 관한 것은 분명 국가의 잘못이다. 그래서 국가를 상대로 지난 2015년 9월에 소송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의 소송은 기소독점주의에 의해 손해배상 소송밖에 할 수 없다."

"침몰의 원인은 세월호 인양 후 정확히 알 수 있다"

- 그동안 특조위에서 밝혀진 게 있는가?
최 : "가족이 사건 신청을 한 게 지난 2015년 9월이다. 아직 결과 나온 게 아무것도 없다."

- 특조위 구성 위원 중에서 여당 추천 의원들이 비협조적이라 들었다.
최 : "특조위 구성위원 중 여당추천 의원 5명 중 1명만 남아 있다. 2명은 이번 총선에 출마, 당연히 사퇴가 된다. 2명은 사고 당시 대통령 행적에 대해 조사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고 현재 참여하지 않고 있다. 가족들이 궁금한 건 대통령의 사생활이 아니다. 대통령의 행적수사요구란 사고 당시 그리고 사고 수습에 관한 공적인 행동에 대해서 어떻게 수행되었는지에 대한 행적을 알고자 함이다."

- 생계는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가?"
최 : "수령 안 한 사람들도 있지만 국민의 성금을 받았다."

- 법적인 도움은 어떻게 받고 있는가?
최 : "참사가 터지고 나서 많이들 도와준다고 여러 변호사가 왔었다. 지금은 2명 남았다. 이런 큰 사고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 원래 단원고 학생들이 타기로 한 배는 세월호가 아니었다고 들었다. 배가 바뀐 이유를 알고 있나?
최 : "특조위에 그것도 조사해달라고 신청해두었다. 아직 결과 나온 것은 없고, 따라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진 사람도 없다.

특조위가 사건을 조사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위원들 자체 직권조사와 그리고 신청으로 조사가 이뤄질 수 있는데, 직권조사로 들어간 사건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청을 넣는 것이다. 지금 사건조사 신청이 350건이 넘었다."

- 선박 자동식별장치인 AIS 항적에 관한 조사도 포함되어 있는가?
최 : "그것은 하나의 의혹이다. 배가 크게 회전했을 때 닻을 내려놨으면 조사를 해봐야 한다. 나름대로 조사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인양 작업하면서 훼손된 부분 중 하나에 닻이 포함되어 있다. 침몰의 원인에 관한 건 세월호가 인양된 후 정확히 알 수 있다."

- 9.11 박물관에 다녀오셨다. 방대한 양의 자료가 보관된 걸 봤을 텐데 희생자 아이들의 교실 존치 문제 등은 어떻게 되어가는가?
최 : "2014년 12월경, 단원고·교육청·가족들이 공감한 것은 아이들의 명예 졸업식을 하게 되면 추모공간을 작게나마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 이후 결정난 것이 없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세월호가 인양된 후 희생자들의 명예 졸업식·교실 존치 문제·분향소 등에 관한 것들이 결정돼야 할 것이다."

- 특조위에 대한 유가족들의 신뢰도는 얼마나 되는가?
최 : "현재 가족들의 무기는 특조위 하나뿐이다. (아직 밝혀진 게 하나도 없는데) 특조위의 기간이 연장이 안 된다면 특조위 2기 구성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현재는 특조위가 제대로 된 예산으로 충분히 조사하고 진행될 수 있도록 국민들도 잘 지켜보고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

유가족과의 두 번째 간담회에 다녀 와서

뉴욕에서 열린 유가족과의 간담회는 3일간의 짧은 홍보 기간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자리가 꽉 차서 복도에까지 서 있었을 만큼 많은 사람과 함께했다. 예정된 시간보다 행사가 30분이 연장되었지만 질문시간이 턱없이 모자랐을 만큼 반응도 뜨거웠다.

이렇듯 많은 사람의 관심과 응원 그리고 유가족들의 피나는 노력과 간절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에 관한 내용이 진척된 게 없는 건 왜일까? 지난 3월 뉴욕 플러싱에서 유가족 어머니들과의 만남 이후 무려 10여 개월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말이다.

간담회 포스터
 간담회 포스터
ⓒ 성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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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유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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