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학교>의 한 장면. 선생 박신양은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사람이다.

<배우학교>의 한 장면. 선생 박신양은 진정성으로 승부하는 사람이다. ⓒ tvN


<집밥 백선생>을 통해 백 선생 표 요리 붐을 일으켰던 백승룡 PD가 이번에 들고나온 것은 '연기'였다. <집밥 백선생>은 이미 '쿡방' 혹은 '먹방'이라는 트렌드로 자리 잡은 요리붐을 배경 삼아, <마이리틀텔레비전>을 통해 예능감을 인정받은 '백종원'이라는 요식업계 대표 주자를 얹었다. 덕분에 화제성을 순조롭게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연기라니? 날마다 지상파와 케이블에 범람하는 것이 연기라지만, 막상 그걸 가르치는 학교라니? 생경하기 이를 데 없는 장르였다.

그런데 이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박신양이 등장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부터 사태는 달라졌다. 2011년 SBS 드라마 <싸인> 이후 그토록 그의 연기를 보고 싶었지만, 오래도록 소식을 주지 않았던 독보적인 연기력의 배우 박신양. 그가 드라마도 아닌 예능에서 연기를 가르친다니, 그야말로 <집밥 백선생>의 백종원 못지않은 파괴력을 지닌 캐스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이른바 '발연기'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장수원, 남태현이 합류한다. 금상첨화. 그렇게 <배우학교>는 이미 캐스팅만으로 잔뜩 대중의 관심을 불러 모은 채 첫선을 보였다.

박신양과 학생들의 불협화음으로 시작

 <배우학교>는 리얼과 예능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배우학교>는 리얼과 예능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 tvN


지난 4일 첫선을 보인 <배우학교>는 박신양과 발연기의 대표주자들을 끌어모았다는 그 화제성에 주눅이라도 든 것처럼, 잔뜩 움츠린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박신양이라는 카리스마 있는 배우가 외딴 학교의 선생님으로 등장한 순간, 낯선 교실에서 머뭇거리던 학생들은 그의 존재감만으로 기가 억눌린 느낌을 십분 전달했다.

그런데 조금이라도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드라마 속 캐릭터처럼 언성을 높이며 "나가!"라고 외칠 것만 같은 선생 박신양이, 아직 교실조차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당혹스런 질문을 던진다. 자신은 누구인가, 왜 연기를 배우려고 하는가, 자신이 생각하는 연기란 무엇인가. 본질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질문이다.

그리고 그 당혹스런 질문에 막내 남태현부터 앞으로 나가 자기 생각을 말한다. 그 순간부터, tvN의 새 예능 <배우학교>는 비로소 시작된다.

<배우학교>의 백승룡 PD는 인터뷰에서 "예능으로 시작되었지만, 촬영을 하다 보니, 드라마인지, 다큐멘터리인지 모르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분명 <배우학교>의 시작은 예능이었다. 예컨대 이전에 출연했던 예능에서 보여주었던 캐릭터처럼, 깐죽거리며 질문의 초점을 흐리고자 했던 유병재의 답이 그랬다. 그가 틀린 건 아니었다. 발연기를 보였던 연기자들조차 예능일 것이라는 '편안한' 기대감을 근저에 깔고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바로 그 상대적으로 안일했던 학생들의 자세가, 대뜸 존재론적 질문으로 기선을 제압한 박신양의 선공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 지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리얼 예능 <배우학교>의 참맛이 빚어지기 시작한다.

어쩌면 예능처럼 시작했던 연기 강습이, 자신의 진정성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박신양의 진지함으로 인해 판도가 바뀐다. 잘못하면 오글거리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 될 상황이, 리얼 예능의 새로운 경지로 들어선 것이다.

진정성 리얼 예능의 본질이 되다

이런 아이러니한 예능의 맛은 바로 tvN이 독보적으로 가꾸어온 리얼 예능의 연장 선상에 놓여있다. 물설고 낯선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혹은 외딴 섬 만재도에서 배우들이 밥만 해먹는 민낯의 리얼함. 평생을 일만 하며 살아온 노년의 배우들이 힘들게 배낭여행을 하며 보여주는 여행의 민낯이 주는 진솔함. 예능이지만 '진짜'인 상황이 주는 감동을 <배우 학교>는 재연한다.

연기를 배우고자 온 학생들의 평범한, 혹은 틀에 박힌 대답이 이어지자, 박신양은 그 '허위'에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다시 던진다. 거기에 진땀을 흘리거나, 눈물을 보이고, 심지어는 가슴이 옥죄어 오는 고통을 호소하면서, 비로소 <배우 학교>는 리얼 예능으로서의 진정성을 탑재해 간다.

또한, 발연기로 호되게 여론의 뭇매를 맞았던 연기자들, 혹은 또 하나의 예능이라 생각하며 편하게 합승했던 유병재·이원종 등도 변한다. 박신양이 이제는 꽤나 질려버린 스테레오 타입화 된 그의 거죽을 벗고, 속살을 슬며시 드러낼 때, <삼시세끼> 혹은 <꽃보다 청춘>에서 보였던 민낯이 드러나며 시청자의 호응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익숙한 혹은 낯선 학생들이 <배우학교> 신입생으로서 포지션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견인차가 된 것이 바로 박신양이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3분의 시간을 주겠다고, 힘들 수 있으니 지레 기권하라니 선전포고를 하는 그. 그리고 그 선전포고가 엄포가 아니라는 듯, 어설픈 자기 포장이나 예능적 멘트는 단번에 벗겨 버리는 질문을 던진다. 예능이지만 '진정성'을 포기하지 않는 박신양의 존재가 바로 <집밥 백선생>의 백 선생 못지않은 존재감으로 새 예능의 성공을 점치게 한다.

이런 박신양의 진솔한 모습은 그저 연기가 아닌 '참스승' 혹은 마음을 울리는 '멘토'에 갈급한 시청자들을 감동하게 한다. 무수한 멘토의 지침서가 여전히 베스트셀러의 수위를 차지하는 세상에서, 연기를 매개로 등장한 박신양은 매우 매력적인 멘토이다. 날카롭고 원칙적이지만, 그렇다고 냉정하지는 않다. 가슴이 옥죄일 정도로 학생을 꿰뚫어 보지만, 아픈 학생에게는 한없이 따스하게 다가가는 선생으로 연출된 모습. 방향을 잃고 상처받은 영혼들의 시대에, <배우 학교>의 박신양은 드라마 속 박신양 캐릭터 이상으로 매력적이다. 종종 그를 드라마 속 캐릭터로 환원하는 듯한 오글거리는 자막과 <파리의 연인> OST의 범람이 걸리적거릴 정도로.

TV가 대신 요리 해주고, 대신 자연으로 돌아가 쉬게 하고, 여행도 다녀주는 세상. 이제 TV가 대신 진심 어린 '선생'마저 되어주는 '예능'의 시대. 그 첫 포문을 tvN의 <배우학교>가 성공적으로 열기 시작했다.

 예능 <배우학교>의 포스터. 연기 미생은 연기 완생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예능 <배우학교>의 포스터. 연기 미생은 연기 완생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 tvN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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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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